누룩이 없이

고린도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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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찬송가 284장 “오랫동안 모든 죄 가운데 빠져”
고린도전서 5:1-8
“누룩이 없이”
2024. 9. 9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누룩이 없이”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권면도 하고 책망도 하면서, 어떻게든 교회를 바로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강한 책망을 담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서 음행에 대한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음행에 대한 문제는 바울이 처음 다루는 문제가 아니에요.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쓰기 전에 먼저 써서 보냈던 고린도A서에서 이미 한번 다뤘던 문젭니다.
오늘 본문 밑에 9절로 가서 봐 볼까요? 9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죠.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 이게 바로 고린도A섭니다. 먼저 보낸 편지가 있었어요. 여기에다가 너희가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고 써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전혀 뉘우치지 않고, 여전히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고, 음행을 하면서 교회를 더럽히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이 너무 화가 나니까, 마구 책망을 하는 겁니다.
자, 오늘 본문으로 가서 보면요. 오늘 본문 1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지금 교회에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누군가가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문제가 있죠. 자기 아버지의 아내와 성관계를 했다는 거예요. 여기서 아버지의 아내는 나한테는 엄마죠. 그런데 친엄마가 아니고, 새엄맙니다. 나를 낳은 친엄마가 아니라, 새엄마, 계모죠.
하지만 친엄마든 새엄마든 어쨌거나 나한테는 엄마예요. 그런데 엄마하고 성관계를 하는 겁니다. 그것도 한번만 한 게 아니라, 지금까지도 계속 하고 있다는 겁니다. 1절 끝에, 취하였다는 말이 현재형이거든요. 자기 엄마하고 지금도 계속 성적인 죄를 짓고 있어요.
너무나 기가 막히는 일이죠. 그래서 바울이 1절에 뭐라고 했어요?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그런 짓은 이방인들도 안 하는 짓인데,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느냐? 이런 말이에요. 기가 막히죠.
자,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교인들이 저런 범죄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 2절 봐 볼까요? 2절 같이 읽습니다. 시작,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교인들이 죄를 알고도 오히려 교만하여졌습니다. 여기서 교만이라는 말을 지난 시간에 설명을 드렸죠? “바람을 불어서 부풀게 하다” 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교인들이 성적인 잘못을 알고도, 그것을 감추기는커녕 오히려 부풀리고, 자랑을 한다는 거예요.
이것은 바울이 개척한 교회들 중에 오직 고린도교회에만 있는 문제였습니다. 고린도라는 도시 자체가 음행이 가득한 도시였기 때문에, 교인들이 음행에서 떠나지를 못해요. 하기야 태어나면서, 자라면서 보고 들은 게 음행이니까, 이게 잘못인지를 몰라요.
심지어 도시에서 매춘을 장려해요. 고린도에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는데, 여기에 천 명의 여자 사제들이 상주하고 있어요. 그리고 밤마다 매춘을 하는데, 여기서 벌어들이는 돈이 어마어합니다. 그래서 도시 차원에서 이 사업을 밀어줬습니다. 더 열심히 하라고. 모든 편의를 봐줘요.
그런 곳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요? 자연스럽게 음행을 배우면서 자라겠죠. 그리고 그게 죄인지도 몰라요. 다 하니까. 본래 저런 건가 보다, 하는 거예요.
그러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이제는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해서 가정을 맺고, 서로에게 충실하며, 다른 곳에 눈 돌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요. 또 가족끼리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고린도교인들이, 그것을 알면서도 계속 그 죄를 반복하고 있어요. 그래서 교회 안에 음행을 한 성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통한히 여기지를 않아요. 통한히 여긴다는 것은 애통한다는 거거든요. 교회 안에 범죄가 일어나면 슬퍼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교회에서 쫓아내야 하는데, 쫓아내지도 않아요. 쫓아낸다는 것은 교인명단에서 제적을 시킨다는 겁니다. 너는 더이상 우리 교인이 아니다. 내보내는 거예요.
그런데 교회가 아무것도 하지를 않아요. 그냥 그런갑다 하고 있어요. 하지만 바울은 가만히 있을 수 없죠. 그래서 음행한 자에 대하여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는지 해결방법을 제시하는데요. 그 전에 먼저 바울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는 말을 합니다.
3절에 보니까,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아멘.
내가 지금 몸은 너희랑 멀리 떨어져 있지만, 영으로는 함께 있다. 이런 말을 해요.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혹시라도 교인들이 ‘바울이 여기 있지도 않으면서 뭘 안다고 저래?’ 하고 생각할까봐, 내가 너희랑 함께 있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내가 영으로 너희와 함께 있다. 그래서 너희 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음행한 자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내가 정확히 판단을 했다는 거죠.
자, 그러면서 밑에 4절과 5절에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말하는데요. 4절, 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아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말이 두 마디가 있는데요. 첫번째는 맨 처음, “주 예수의 이름으로” 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라는 말이에요. 이 두 말만 붙여서 보면 무슨 말이 됩니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굉장히 이상한 말이 되죠. 음행한 자를 사텐에게 내주는데, 주 예수의 이름으로 내준다는 겁니다. 사탄에게.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우리가 이것을 정확히 해석하려면, 사탄에게 내준다는 말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는 누가 통치를 하시죠? 그리스도가 교회를 통치하셔요. 그러면 세상은 누가 통치를 합니까? 사탄이 세상을 통치해요.
그러니까 사탄에게 내준다는 말은, 사탄이 다스리는 세상으로 쫓아낸다는 말입니다. 교회 밖으로, 출교를 한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이 말을 바울이 “출교하라”고 해도 될 텐데, 굳이 “사탄에게 내준다”는 말로 표현을 했어요. 이것은 교인들에게 충격을 주기 위한 표현입니다. 아, 음행을 저지른 자는 사탄의 통치 아래 떨어지게 되는구나. 충격을 받게 돼요. 단순히 육신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구나. 경각심을 갖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라는 말을 다시 살펴보면, 이 말이 과거형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사탄에게 내주었다고 표현을 하는 것이 맞기는 맞아요. 하지만, NIV 영어성경에는, 이 말을 명령형으로 번역을 해놨어요. “사탄에게 넘겨주어라” 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문맥적으로 봐도, 명령형으로 번역을 하는게 맞아요.
왜냐하면, 지금 그렇게 하자는 거거든요. 아직 음행한 자가 교회에 그대로 있어요. 그게 기가 막히니까 바울이 지금 그 사람을 쫓아내라고 명령을 하고 있는 겁니다. ‘어찌하여 그를 쫓아내지 않고 가만 있냐? 너희가 주 예수의 이름으로 그를 쫓아내라. 사탄에게 내어줘라.’ 이런 말입니다.
그런데 5절을 자세히 보면, 그렇게 내쫓는 것이 진정으로 그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라고 말을 하죠. 5절을 다시 봐 볼까요?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내주라는 말이죠.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어라.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아멘.
육신은 멸하고, 영은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쫓아내라는 겁니다. 교회에서 쫓겨나면 육신은 괴롭죠. 같은 신앙의 공동체에서 쫓겨나면 얼마나 서럽고 억울하고, 괴롭겠어요? 그러나 그런 강력한 징계가 있고 나면, 비로소 그가 자기 잘못을 깨닫고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가 끝까지 뉘우치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교회를 위해서는 반드시 그를 출교해야 돼요.
오늘 본문 6절부터 보면, 누룩에 대한 비유를 하는데요.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서, 교회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비유로 설명을 합니다. 6절에 보니까,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여러분, 누룩이 뭡니까? 빵을 만들 때 빵을 부풀게 하는 발효제죠. 밀가루 반죽에 넣으면 반죽덩이리가 부풀어 올라요. 누룩을 많이도 안 넣습니다. 조금만 넣는데도, 덩어리 전체를 부풀게 합니다.
죄가 이런 거예요. 아주 작은 죄가 공동체 안에 들어오면, 급속도로 전염이 됩니다. 빵이 부풀듯이, 죄가 순식간에 팽창해요. 교회는 본래 거룩한 공동쳅니다. 그런데 그 안에 죄가 들어와도 그것을 방치하면, 교회는 더이상 거룩한 공동체가 아니라 타락한 공동체로 변질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누룩을 즉시 제거해야돼요.
자, 7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7절 시작,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아멘.
바울이 너희가 본래 누룩 없는 자라고 말을 하죠. ‘너희는 누룩 없는 깨끗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너희 안에 묵은 누룩이 있다는 거예요. 그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다고 말해요. 우리 모두는 본래 묵은 누룩이 가득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런 우리를 깨끗케 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신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도로 묵은 누룩을 가까이 하면, 그리스도의 희생이 소용이 없어져요.
그리스도가 자기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우리를 깨끗케 하셨는데, 우리가 도로 더러워진다면, 그것만큼 바보같은 짓이 어디 있겠어요? 우리는 누룩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 말씀 제목처럼, “누룩이 없이” 살아야 돼요.
그래서 오늘 본문 8절에 바울이 우리가 누룩이 없이 살자고 권면을 하는데요. 8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아멘.
바울이 먼저 우리가 명절을 지키자고 말을 해요. “명절을 지키되” 이 명절은 7절에 있는 유월절을 말합니다.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을 급이 떠날 때, 발효되지 않은 빵을 가져갔죠.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을 챙겨서 급히 떠났어요. 그래서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지킬 때 누룩 없는 무교병을 먹습니다.
바울이 이것을 비유로 말하고 있는 거예요. 이스라엘 자손이 유월절을 지키면서 무교병을 먹었던 것처럼, 너희도 너희를 구원하신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생각하면서, 누룩이 없는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누룩이 있거든 즉시 제거하고, 또한 교회 안에서 내가 혹시라도 누룩과 같은 사람이 아닌가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나에게서 나쁜 영향력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입을 조심하고, 행실을 조심하고, 생각까지도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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