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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 인해 핍박받는 자의 복
의로 인해 핍박받는 자의 복
마태복음 5:10–12 (NKSV)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12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억울할 때가 언제입니까.
예배 열심히 드리면 만사형통한다고 했는데 잘 안풀리고, 실패하고
헌금많이 하고 교회 봉사 많이 하면 사업성공하고 물질 축복한다고 했는데 여전히 안되고 있고
가장 억울한것은 옳은 일을 하고, 선한 일을 하고, 정의로운 일을 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실거라 여겼는데 오히려 실패로 허덕이게 됩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오히려 술수를 부리고, 속이고, 욕을 얻어가면서 욕심부리며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잘되어가고 있을까요?
이대로 우리가 믿음생활을 계속 하는 것이 맞을까요?
우리는 참 많이 배운 것이 있습니다. 신명기 말씀속에 하나님 말씀을 잘 지키면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는 다는 것을 말이다.
15 “그러나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또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한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온갖 저주가 당신들에게 닥쳐올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힘이 있고 없고를 떠나 순전히 하나님 말씀에 지켰냐 안지켰냐에 성공과 실패가 달렸습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해 바벨론 포로로 끌려 갔을때 이스라엘을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조롱하며 살아가는 바벨론의 으마으마한 규모와 발전, 문화 등을 말이지요.
아니, 우리가 율법을 얼마나 열심히 지켰는데 조금 못지켰다고 이렇게 고생하는데 저들은 하나님 없이 사는데 이렇게 잘 살고 있어?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당대 의인으로 통했고, 순종잘 하기로 소문난 사람인데 고난을 당합니다.
친구들이 끊임없이 욥을 정죄합니다. 욥이 아무리 생각해도 물론 죄인이지만 누구보다 잘 지켜왔는데 이렇게까지 고난을 받을 일인가…그러나 결국 욥은 고난의 이유를 모르지만 해결이 됩니다.
이 모든 고난의 난제를 욥이 해결합니다. 욥의 해결은 인과 응보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니까 다시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 시간으로 가 봅시다.
예수님은 의를 위해, 예수님때문에 고난당하고 박해를 당하면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하냐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의”는 디카이오수네 라는 말로 정의, 보편적정의, 옳은 일을 말합니다. 의를 쫓아가는 길이 기쁘고 즐거울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기꺼이 지시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시며 만족하셨습니다.
또 예수님 이후로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도바울과 다른 제자들이 고난에 뛰어 들었습니다. 제자 안드레는 러시아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사형을 당할 때 자신은 X자 십자가에 처형시켜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그 십자가를 맞이합니다.
안드레 십자가가 지금 스코트랜드 국기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12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시험하려고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 일어나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13 그만큼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 여러분은 또한 기뻐 뛰며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14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욕을 당하면 복이 있습니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위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도 복음을 전하면서 기꺼이 고난을 감당했고 죽음조차도 기쁘게 받아 들였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로 초점을 맞춰봅시다.
흔히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으로 감당합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고백합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이 길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오늘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훨씬 편안한 길이 있었고, 안전한 길이 있었고, 평범한 길이 저에게 있었습니다만 사서 고난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뒤로 말할 수 없는 어려움 고난이 쉬지 않고 일어났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 고난과 어려움을 진행중입니다.
그렇다고 이 길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가하면요 기뻐요, 감사해요. 너무 행복해요.
김디모데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평화나무 기독교회복센타 대표이신데 불이한 교회, 세습, 재정비리, 교회 악행 등을 앞장서서 비판하고 바로 잡으려고 온몸을 불사르는 분입니다. 얼마나 어려움이 많은지 모릅니다. 관계된 권력자들과 힘좀 쓰는 사람들이 협박하고 고발하고 테러합니다.
그렇지만 이 일을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기꺼이 즐거움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럴까요. 왜 예수님은 의를 위해 고난받고 박해받고 조롱당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 기뻐하라고 했을까요.
우리는 이 질문의 답을
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 놓은 보물과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제자리에 숨겨 두고, 기뻐하며 집에 돌아가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산다.”
말씀으로 찾아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처분하고 버렸는데도 기뻐합니다. 절대적인 신뢰가 있으때가능
욥도 이제서야 하나님을 봅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고난을 기쁨으로 변화시킵니다.
절대주권의 하나님! 왕되신 하나님을 발견하는 사람은 모든 고난을 등에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의, 정의, 공의, 주권자가 옳다 여기는 것을 기쁨으로 쫓아가게 됩니다.
즉 절대자 하나님을 깨달아서 그렇습니다. 아주 쉽게 말씀드릴께요.
경찰이 죄를 지은 사람을 무슨수를 써서라도 잡으려고 합니다. 때로는 다치기도하고 목숨을 위협을 받는데도 끝까지 잡아냅니다. 그일에 보람을 느끼고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 이유는 법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데 이 법을 어겼기 때문에 열심히 잡는 것입니다. 만약 이 법이 없으면 잡아도 소용없습니다. 법을 지켜냈다는 보람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과 같습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면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므로 어떤 고난에도 하나님의 의,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경찰처럼 달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주시는 복은 무엇일까요?
그 복은 처음으로 돌아가서 하나님 나라를 주십니다. 또 12절에서 상이 크다라고 말합니다.
정의 쫓는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를 , 하나님의 위로를, 하나님의 유업을, 배부름을, 자비를, 하나님을 보는 복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다 주시는 것입니다.
왜그럴까요. 정의를 쫓는 것은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 때문입니다.
세상과 거스리게 되고, 지금 우리 기독교안에서도 거스리게 되고, 정치속에서도 정의를 쫓으면 거스리게 되고…정의는 사회제도, 도덕, 편견 이 모든 것들에 거스리게 됩니다.
정의를 쫓는 사람들은 세상을 거슬러올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일때문에 정상이 정상으로 보이게 되고, 옳은 것이 옳게 됩니다. 마치 경찰이 수고해야 법이 지켜지는 것처럼, 법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는 세상에 휩싸여 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독교 종교안에서 악습을 침묵하며 휩싸여 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조금 불편과 힘든 무엇인가 속에서 끊임없이 옳은 것, 정의, 공의를 위해 기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