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랴의 교훈

사도행전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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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이사랴의 교훈 본문: 사도행전 12:19b-25 찬송: 446장 주 음성 외에는

오늘 우리는 가이사랴라는 도시와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본문의 가이사랴는 주일에 말씀을 나눴던 가이사랴 빌립보와 전혀 다른 도시입니다. 하지만 이곳 역시 헤롯 대왕에 의해 건설된 도시입니다. 헤롯 대왕은 이곳을 12년에 걸쳐 건설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104km 떨어진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가이사랴는 항구도시로서 로마 제국의 권력과 영광을 상징했습니다.
헤롯은 36.6m 깊이의 바다를 돌로 메워 61m 길이의 대규모 항구를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바닷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돌들 중 큰 것은 가로 15m, 세로 3m, 높이 2.7m에 이릅니다. 이 도시는 수로, 극장, 원형경기장을 갖춘 웅장한 모습을 자랑했습니다.
가이사랴라는 이름은 로마 황제를 뜻하는 '카이사르'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헤롯이 로마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함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로마 제국 내에서 황제의 이름을 도시에 붙이려면 일정 규모 이상이어야 했고, 도시 중심에 황제를 위한 신전이 있어야 했습니다.
가이사랴는 곧 팔레스타인 내 로마 제국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고, 로마 총독의 관저와 헤롯의 왕궁도 자리 잡았습니다. 이곳은 황제 숭배의 중심지였으며, 결국 인간의 욕망과 교만이 극대화된 '욕망의 도시'였습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신격화하고, 자신의 욕망만을 좇는 곳이었죠.
바로 이 가이사랴에서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비극적인 최후가 펼쳐집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교만이 얼마나 허망한지,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배우게 될 것입니다.
헤롯 아그립바 1세는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의 영국 원정 승리를 축하하는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가이사랴로 갔습니다.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에 따르면, 이는 헤롯의 주요 업무 중 하나였습니다. 한편 당시 아그립바 1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두로와 시돈에 대한 식량 공급을 중단해 갈등 관계에 있었습니다. 이 두 도시는 무역 항구도시로, 식량을 전적으로 이스라엘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식량난의 위기에 봉착한 두로와 시돈의 지도자들은 헤롯의 내실 집사인 블라스도를 매수하여 관계 회복을 시도했습니다. 그들은 헤롯이 가이사랴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축제 둘째 날인 주후 44년 8월 1일, 헤롯은 화려한 은빛 왕복을 입고 연설을 했습니다. 원형극장의 무대 위에 선 그의 모습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군중들, 특히 두로와 시돈에서 온 이들은 그를 신과 같이 추켜세웠고, 헤롯은 이를 즐겼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그는 복통을 일으키며 쓰러졌고, 왕궁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닷새 만에 사망했습니다. 누가의 기록에 따르면, 헤롯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아 주의 사자가 쳐서 벌레에게 먹혀 죽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벌레'는 헬라어 '스콜렉스'로, 성경에서 유일하게 사용된 단어이며 현대적 의미로는 세균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요세푸스의 당시 사건에 관한 기록을 보면 올빼미의 출현을 언급하며, 올빼미는 유대인들에게 불긴한 징조로 여겼다고 덧붙입니다. 두 기록 모두 헤롯의 갑작스러운 발병과 비참한 최후를 유사하게 묘사하고 있어, 역사적 사실성을 뒷받침합니다.
우리가 사도행전 12 를 시작하면서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어떻게 권력을 사용했는지 말씀을 나눴습니다. 그 시작이 무교절이 시작될 때쯤이었습니다. 무교절은 애굽의 노예살이가 끝났음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유월절 저녁부터 시작되어 7일동안 계속되는 절기입니다. 우리도 명절이면 흩어졌던 가족들이 고향을 찾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이 무교절이 최대의 명절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이는 곳은 고향이 아니라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고 최대 100만 명에 가까운 인파가 예루살렘으로 모였습니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무교절에 혹시라도 사소한 시비거리가 민란으로 번지지는 않을까 염려했습니다.
때문에 빌라도 총독도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민란이 두려워 바나바를 풀어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헤롯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헤롯은 이두매인으로서 유대인들의 반란을 우려하여 그들의 환심을 사고자 야고보 사도를 참수하고 베드로를 투옥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유대인들의 호응을 얻어 헤롯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처형되기 직전 사라지자, 무고한 파수꾼들을 죽였습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두로와 시돈에 공급하던 식량을 끊어 버렸습니다. 헤롯은 진리와 정의, 이런 옳음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욕망에 따라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헤롯에게 있어서 선과 악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의 마음에 들면 그것이 진리와 정의가 되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에 취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어리석음도 범하였습니다. 마음 먹은 것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믿었습니다. 천년이고 만년이고 그렇게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며 살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벌레 한 마리도 막지 못했습니다. 누가는 그것을 가리켜 하나님이 그를 치셨기 때문이라고 23절에서 말합니다.
자기 욕망에 눈이 어두워 자신의 권력을 맹신하며 스스로 하나님처럼 살았던 헤롯의 일생은, 욕망과 논리가 판을 치는 황제의 도시 가이사랴에서 아주 비참하고 허무하게 막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헤롯의 비참한 죽음 이후 누가는 2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12:24 NKRV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가이사랴는 욕망의 논리가 지배하는 황제의 도시였으며, 헤롯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그러나 헤롯이 벌레에 먹혀 비참하게 죽은 사건과 하나님 말씀의 흥왕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는 헤롯의 죽음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작용한 결과임을 보여줍니다. 욕망에 눈먼 인간의 교만한 결말과 하나님 말씀의 승리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하나님의 주권과 심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인간의 욕망과 자만이 얼마나 허무한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강력하고 영원한지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속이며 살아갑니다. 욕망에 눈이 어두워, 지금 걷는 길이 멸망으로 가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모른척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심는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7–8 에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고 말했습니다.
진리와 정의를 심은 자들에게는 영생과 평화의 열매를 주시고, 탐욕과 거짓을 심는 자들에게는 멸망과 죽음의 열매을 거두게 하십니다. 욕망의 도시 가이사랴에서 욕망에 눈이 멀어 스스로 하나님이 되었다가 어이없이 벌레에 먹혀 죽은 헤롯의 최후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서 분명하게 성취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은 교만한 사람과, 자신의 욕망을 위해 온갖 불의를 서슴치 않는 악한 사람을, 용광로의 불이 지푸라기를 태워버리듯이 뿌리째 쓸어버리십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에 취해 자기 욕망의 노예로 살았던 헤롯이 욕망의 도시 가이사랴에서 벌레에 먹혀 죽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헤롯이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외면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삶에서도 예외 없이 흥왕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하나님 말씀을 믿는 이의 삶에서는 생명의 말씀으로, 외면한 헤롯의 삶에서는 저주와 심판의 말씀으로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가이사랴는 인간이 스스로를 신격화하고 욕망을 좇는 도시로, 언뜻 하나님의 말씀이 통하지 않는 곳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인간의 착각일 뿐이었고,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은 그곳에서도 어김없이 흥왕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기에, 이 세상 어디에서나 그 말씀은 흥왕합니다. 단지 그 말씀이 생명으로 흥왕하느냐, 아니면 심판으로 흥왕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결국 이 차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이 어떤 삶의 태도를 취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욕망과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현대판 가이사랴와 다름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헤롯처럼 자신의 욕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가며,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의 삶도 세속에 물들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인간을 외면하지 않으며 모든 이의 삶 속에서 반드시 흥왕합니다.
우리는 이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욕망을 좇아 살다 결국 벌레의 먹이가 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인가?
이 두 길 가운데 우리가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인지는 역설적이게도, 욕망에 눈이 멀어 스스로 하나님이 되었다가 욕망의 도시 가이사랴에서 비참하게 벌레에 먹혀 죽은 헤롯이, 그 바른 해답을 우리에게 친절하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헤롯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경고이자 교훈입니다. 우리의 삶이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바르게 서 있는지 늘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 속에서 언제나 역사하고 계십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과 축복의 말씀으로 흥왕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 욕망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헤롯의 비극적인 최후를 교훈 삼아,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시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님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가이사랴의 교훈을 통해 우리에게 귀한 말씀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교만함과 욕망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도 때때로 헤롯처럼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갈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세상의 욕망을 좇을 때가 있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게 하시고, 그 말씀이 우리 안에서 생명의 말씀으로 흥왕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겸손함으로 주님을 섬기며, 이웃을 사랑하고,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날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 시대의 욕망과 유혹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우리 중앙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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