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광야에서 주시는 트레이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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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스톱 기도회
논스톱 기도회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사랑합니다! 논스톱 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나는 교회에서 찬양인도를 10년 정도 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청년부에서 싱어로 섬기던 보컬 전공 동생이 나에게 왔다. 그러더니 대뜸 소리를 내보라고 하는 것이다. 왜 갑자기 나를 불러서 이것저것 시키냐고 물어봤더니, 이대로 노래부르다가 나중에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지경이 금방올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노래를 배우면서 수치스러운 표정을 보여주기도 하고, 이상한 음이나 삑사리가 나올 때마다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이 힘든 것을 왜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을 배우다보니 점점 목의 힘으로 노래를 부르지 않게 되면서 발성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여러 사역을 하다가 목이 쉬더라도 다시 빠르게 회복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또 노래 실력도 들어줄만한 정도로 많이 늘었던 것 같다. 트레이닝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단순히 그냥 힘들라고 주어진 것도 아니고, 수치를 당하라고 주어진게 아니다. 그렇게 배우게 될 때 더 오래 자유롭게 멋진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가르치는 동안에 목 관리도 잘하라고 신신당부하고, 미지근한 물을 마시거나, 에어컨 바람 맞지말고, 잘 때 마스크 끼고 자는 것이 좋다 등등 여러 가지를 조언해준다.
오늘 말씀을 보게 되면, 하나님이 명령을 지키는데 주의할 것을 당부한다. 모세가 출애굽 후세대에게 모압 광야에서 설교하는 말씀이다. 8장 1절에서 “너희는 지켜 행하라”와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땅을 차지하고 정복하는 것은 이전에 아브라함부터 하나님이 맹세하셨던 그 약속의 땅을 점령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목적이 있다. 첫째로 사람이 살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은 인간에게 생명을 가져다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을 살리는 생명력과 능력이 있다. 둘째로는 숫자가 많아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킬 때 이스라엘은 자녀의 복을 받아 번성하게 된다. 셋째,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출애굽 세대의 실패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게 해준다. 넷째, 약속의 땅을 점령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점령한다. 그 땅에서 잘 정착하고 살게 되는 복을 누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 이스라엘이 삶을 유지하고 후손이 번창하며 삶의 터전인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굳이 좋은 땅도 아닌 힘들고 불편한 광야에서 생활하게 하셨을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락하신 광야 생활은 “겸손하게 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는 겸손한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세는 광야 사십 년의 생활이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낮추기 위한 훈련이었다고 말한다. “겸손하다”의 히브리어 동사에서는 ‘괴롭히다’라는 뜻도 있다. ‘괴롭히’는 것은 훈련으로 괴로움을 당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 사십 년 동안 괴롭히셨는데 이는 이스라엘을 훈련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제 출애굽 후세대에게 광야 사십 년의 기간은 훈련의 기간이다. 이러한 훈련과 연단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마음이 낮아져 겸손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시험하기 위하여” 광야 생할을 하게 하셨다. 사실 광야 생활은 출애굽 세대의 불순종으로 시작됐다. 광야 생활 동안에 출애굽 세대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광야에서 삶을 끝내게 되었다. 그리고 출애굽 후세대가 광야에서 성장했다. 따라서 광야 생활은 심판과 시험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출애굽 세대에게는 심판의 기간이며 출애굽 후세대에게는 하나님의 시험과 연단의 기간이다. 하나님의 시험은 인간을 파멸에 몰아넣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시험과 연단은 인간에게 복을 주기 위한 것이다.
출애굽 세대와 출애굽 후세대 사이의 차이점을 보게 된다. 출애굽 후세대는 약속의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훈련을 받았던 것이다. 출애굽 세대는 하나님의 많은 기적을 경험했지만 이러한 훈련 기간이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훈련을 받은 출애굽 후세대는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시험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바로 알 수 있는 구절이 있다.
신명기 8:2b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알기 원하셨다. 즉 마음속의 생각을 뜻한다. 이 마음속 생각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로 알 수 있다. 오늘 이 자리에 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금요일 비까지 오는 힘든 이 밤에 예배에 갈 때의 마음이 어떠한지 바로 알 수 있다. 당연히 피곤하고, 이곳까지 오기까지 수많은 고민을 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예배에 대해서 고민이 들게 될 때 바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다. “역시 나는 연약한 존재이구나, 하나님이 필요하다”라고 말이다. 나 또한 새벽기도에 갈까말까 고민될 때 드는 마음은 “여전히 죄악된 자아가 내 안에 살아있구나”라고 얼마나 기도하는지 모른다. 그렇게 무겁고 피곤한 발걸음으로 기도모임에 갔다가 다녀올 때 내 영혼에 기쁨이 살아숨쉬는 것을 느끼게 된다. 네덜란드 신학자인 아브라함 카이퍼가 말하길 ‘모든 인간은 욕망 속에서 살아간다’고 한다. 마음속에 어떤 욕망이 있는지에 따라서 행동이 이어진다고 한다. 그리하여 칼빈 선생님은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고 부패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죄 짓는 것을 좋아하게 되어 결국 인간은 죄를 찍어내는 공장과도 같다고 말했다.
예전에 나는 군대에 가기 전에 장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걸 위해서 열심히 운동도 시작하면서 장교 시험 준비를 했었다. 그렇게 열심히 운동장 1000m를 3번 돌면서 12분 안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부단히 스스로 트레이닝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푸쉬업을 하던 도중에 뭔가 마음속에서 이걸 무슨 이유인지, 왜 하는 것인지 스스로 질문하게 되었다. 뭔가 하나님의 음성 같았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너가 지금까지 열심히 준비한게 완전히 망해도 괜찮아?’라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순간 내 마음속 깊이 들었던 생각은 “하나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망하게 하는거는 너무하시네요. 내가 준비도 열심히하고 신앙생활 열심히 했는데 어떻게 그러실 수 있으세요?”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까지 신앙생활 했던 것이 얼마나 앞뒤가 다른 신앙의 모습이었는지 깨달았다. 입술로는 “나의 삶은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라고 말하면서 정작 내가 준비한 일은 반드시 내 뜻을 하나님이 이뤄주셔야하는 주종관계가 이상한 관계가 된 것 같았다.
그렇다. 우리는 각자 가지고 있는 욕구 속에 내가 인정받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 우리는 누구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옳은가? 당연히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들은 아시다시피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과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저를 포함해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것을 바로 허영심이라고 말한다. 나도 중고등부 사역을 하면서 사람이 많아지고 부흥하는 것이 사역을 잘한다고 목사님과 주변 전도사님들에게 칭찬받으려고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될 때 비로소 더 이상 숫자가 많아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이라도 하나님께 돌아올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고백하게 되었다. 뭔가 숫자적인 욕심이 내 안에 있을 때 그렇게 되지 않는 상황을 보면서 숨막히게 조여오는 괴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보니 진정한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그러한 갈망을 ‘모방된 갈망’이라고 말한다. 뭔가 유명해지고 셀럽이 되어야 하나님을 전할 수 있고 나타낼 수 있다는 생각이 ‘모방된 갈망’이다. 성경에서 단 한번도 유명해지고 똑똑해지고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은 내가 약할 때 강함이, 능력이 되어주시겠다고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경 역사상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언제였는지 아는가? 출애굽을 하고 광야생활 할 때이다. 당연히 사람은 광야에 가면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잠을 잘만한 곳이 없기 때문에 어느 곳보다 최악의 환경이 광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광야로 갔을 때 끼니를 굶거나, 물을 못마시거나, 잠을 못자지 않았다. 오히려 옷도 헤어지지 않았고 발도 뽀송뽀송하게 40년을 살았다고 기록한다. 그래서 모세가 고백하길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을 누가 하셨는가? 예수님이 40일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도를 마치신 후에 사탄과의 만남에서 먹을 것으로 유혹할 때 사탄을 향해 선포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을 갈망하고 따라가는 사람은 절대로 부족함이 없이 섬세하게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심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자꾸 세상의 것을 갈망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채움을 경험하지 못하고 손에 모래를 쥐는 것처럼 허탈한 마음이 들게 된다. 공허함을 느껴본적이 있는가? 공허함이 느껴지는 것은 하나님으로 내 마음에 채우지 못하면 느껴지는 감정이 바로 공허함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세상에서 주는 물은 계속 마시고 마셔도 우리를 채울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주시는 물, 즉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목마름에서 벗어나 평안함 가득 채우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누구를 갈망해야 평안하겠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아직도 무엇을 달라고만 하는 미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봅시다. 여기있는 저와 여러분은 오직 하나님만을 구하고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때 우리는 진정한 평안함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왜’하는지 날마다 돌아보며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