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설교

새벽예배 - 공동체 성경읽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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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한때 제가 관심을
많이 가졌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면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어요.
20대 초반일떄였던 것 같아요.
그때 당시는
나도 이제 어른인데,
성숙해져야지!
라고 생각하며
사람이 성숙하다는 건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해보았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무엇이었냐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생각을 올바르게 하고,
그 생각을 누군가에게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성숙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생각을 성숙하게 해야겠구나!
그리고 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니까
생각보다 제법 성숙한거에요.
내가 보기에도, 남들이 보기에도
뭔가 인품도 좋아보이고,
바른말 잘 하는 모습이
상당히 성숙해보이는 겁니다.
그렇게 자기 의에 취해 있던 저는
어느 날 큰 실수를 하고 말았어요.
저희 집안은 4형제 가정입니다.
그리고 저를 키워주신 부모님은
고모와 고모부였고, 늦은 나이에
목회의 길을 걸어가시는 목사님이셨습니다.
아이 한 명 키우는 것도 쉽지 않은데,
4명을 키운다니 사실 말 다했죠.
더구나 목회를 하고 있으니
돈이 부족한 건 말할 것도 없죠.
그러던 어느 날 고모가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이렇게 기도하시더라고요.
“하나님 돈 주세요.”, “돈 좀 주세요.”
굉장히 간절하게 기도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그 기도가 너무 이해가 안 되는거에요.
그래서 고모에게 가서 얘기했죠.
하나님을 정말 믿는다면,
지금 이 기도의 내용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고작 우리들의 생활이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서
돈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일까요?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가기 위해서
물질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아니고,
생활 형편때문에 하나님께 돈달라고
울부짖으며 기도하는게 맞나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면요.
예수님께서 성경에서 말씀하셨어요.
공중 나는 새를 보라, 곡식을 거둬 창고에 들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알아서 어련히 기르신다.
즉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는다면,
헤아릴 수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신다는 걸 진정으로 믿는다면,
이렇게 기도할 수 없습니다.
올바른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도 보세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했지,
우리가 조금 더 편안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나요?
우리가 일용할 양식이 없나요?
그때 고모가 많은 생각에 잠기신 것 같았어요.
그때 고모의 얼굴을 보고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역시 내 말은 틀리지 않았어.
나는 성경에 있는대로 말했거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확하게 선포했거든.
그래 고모가 정신을 차리셨을거야.
그때 고모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들, 인생을 조금 더 살아보고 그때 얘기하자”
이 말을 들은 저는 갑자기
자존심이 긁혀서
고모한테 다시 따지기 시작했어요.
“지금 인생을 더 살고 덜 살고가 중요한가요?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는게 중요한거죠.
자꾸 이런 식으로 회피만 하지 마세요.
때로는 아들의 입술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그 뒤로 고모는 더 말을 안 하셨고,
고모는 더 깊은 고통에 잠겨 기도하셨으며,
저는 더 깊은 분노와 긁혀버린 자존심으로 인해
고모를 이해할 수 없다며,
그 뒤로도 고모가 돈 얘기만 하면
정죄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고
깨달았어요.
진짜 미숙한 사람이었구나
진짜 큰 잘못을 했구나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이라면,
사람에게는 생각만이 아니라,
마음도 있다는 걸 생각해서
할 말과 안 할 말,
그리고 그 말을 해야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고통과 아픔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마음이 회복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마음이 무너져 있는 사람에게
충분한 공감과 위로의 말을 건네주지는 못할망정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의 검으로
사람의 마음을 더 깊게 베어버렸습니다.
제가 했던 이 행동이
욥의 친구들과 꼭 닮아있더라고요.
욥의 친구인
소발, 엘리바스, 빌닷은
고통 중에서 신음하며 괴로워하는 욥에게
조언을 한 마디씩 했습니다.
이 세 사람 중에서
빌닷이 욥을 비난했던 이야기입니다.
25장 말씀을 저와 여러분이 한 절씩
교독하겠습니다.
Job 25:1–6 NKSV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였다. 하나님께는 주권과 위엄이 있으시다. 그분은 하늘 나라에서 평화를 이루셨다. 그분이 거느리시는 군대를 헤아릴 자가 누구냐? 하나님의 빛이 가서 닿지 않는 곳이 어디에 있느냐? 그러니 어찌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하겠으며,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어찌 깨끗하다고 하겠는가? 비록 달이라도 하나님에게는 밝은 것이 아니며, 별들마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청명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간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빌닷은 이 세상의 지혜로
조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빌닷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있었고요.
신앙이 있는 인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말하며
너의 삶을 다시 똑바로 점검하라고
조언을 빙자한 비난을 쏟아부었습니다.
빌닷은 아마
머릿속으로 이런 그림을
그렸을겁니다.
아 내가 이렇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강하게 선포하면,
내 친구녀석이 정신을 차리겠지?!
욥이 이렇게 느낄거야
“아! 그렇지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이신데,
내가 감히 불평하고 불만했구나,
복음으로 무장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서
이겨내야지!”
그때 욥이 오늘 본문 말씀처럼
대답을 합니다.
Job 26:1–4 NKSV
욥이 대답하였다. 나를 그렇게까지 생각하여 주니, 고맙다. 나처럼 가난하고 힘없는 자를 도와주다니! 너는 우둔한 나를 잘 깨우쳐 주었고, 네 지혜를 내게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누가, 네가 한 그런 말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너는 누구에게 영감을 받아서 그런 말을 하는거냐?
우리가 알고 있는
욥의 이미지가 어떻습니까?
인내의 사람, 욥
고통 중에 있을 때,
욥처럼 인내하라는 조언을
많이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욥기를 잘 읽어보시면,
욥은 참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고요,
고통과 신음 중에
그의 마음은 찢길대로 찢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닷의 말이
되려 욥에게 더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빌닷이 틀린 말을 했을까요?
아니요.
빌닷의 말처럼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인간이 어찌 감히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전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그 섭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가야합니다.
인생의 고통과 아픔 중에 있다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리까지
나아가야합니다.
그러나,
인생이 어디 결과만이 중요하겠습니까
과정을 잘 지나야 결과도 의미가 있고
빛을 발할 수 있죠.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을때,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던가요?
기도가 입 밖으로 나오던가요?
우리는 살아가다보면 분명히
기도조차 나오지 않고,
눈물조차 나오지 않으며
깊은 한숨만 되뇌이는 순간들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내 옆에서 누군가가
고통을 받고 힘들어 하고 있다고 하면
내가 뭐라도 해줘야할 것만 같고,
뭐 한 마디라도 거들어야 할 것 같고,
내가 위로가 되어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어서
꼭 한 마디씩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고통의 터널을 지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어둠 속에서 나와 함께 걷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에게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적절한 위로를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신앙으로, 믿음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그 아픔에 동참하며
침묵으로 동행해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은 어떤가요?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든 한 마디 하고 싶어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말할 수 없는 깊은 공감과 탄식으로
그 아픔을 말없이 함께 짊어지는 사람인가요?
정말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치유해주시리라고 믿고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입니다.
내가 어떻게든 그 사람을
고통의 터널에서 끄집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좋은 말로, 믿음으로 신앙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더 깊게
베고 찌르는 사람은
결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Romans 12:15–16 NKSV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 서로 한 마음이 되고,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사귀고, 스스로 지혜가 있는 체하지 마십시오.
정말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목회를 하며 자녀를 4명이나
키우느라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던
고모에게 믿음으로 폭력을 가했던
저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유 없이 찾아온 고통 속에서
아파하는 욥에게
신앙으로 폭행을 가했던
빌닷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할 줄 알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 줄 알며,
스스로 지혜가 있는 체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는 인생이 되길 소망합니다.
한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인생에 하실 일이라고 믿고,
그저 말 없이 기도함으로써 나의 이웃들의
아픔에 함께 있어주는 것이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야할 이유입니다.
그런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첫 번째)
가장 먼저 기도할 것은
우리 안에 우리도 모르게 자리잡은
믿음의 교만, 신앙의 교만이 있지는 않은지
주님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의 빛이 내 마음에 비춰지지 않으면
우리는 꽤나 괜찮은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거의 완성된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주님,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빛으로 비추시어
나의 더러운 죄악을 볼 수 있게 하여주시고
하나님께서 그 더러운 죄악을 깨끗하게
씻어주시옵소서라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짖고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기도하겠습니다. (두 번째)
주님, 우리 안에 굳어져버린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주시옵소서.
돌같이 굳어버려서 다른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아파하지 못하는
마음을 제거하여주시고,
새살결과 같은 부드러운 마음을 허락하사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 사랑으로
나의 이웃들을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바른 말이 아니라, 바른 복음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회복될 수 있도록
말 없이 따뜻하게 끌어안아줄 수 있는
사람으로써 세워주시옵소서라고
함께 주님의 이름을 부르짖고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기도하겠습니다. (세 번째)
세 번째로 함께 기도제목 나눈 후에
자유롭게 기도하시고 집으로 돌아가시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현재 고통 가운데 있는 분들을
떠올리며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육체의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
마음이 무너져서 회복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들,
관계가 깨어져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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