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7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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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 지휘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행한 모든 악을 듣고
12 모든 사람을 데리고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싸우러 가다가 기브온 큰 물 가에서 그를 만나매
13 이스마엘과 함께 있던 모든 백성이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던 모든 군 지휘관을 보고 기뻐한지라
14 이에 미스바에서 이스마엘이 사로잡은 그 모든 백성이 돌이켜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로 돌아가니
15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여덟 사람과 함께 요하난을 피하여 암몬 자손에게로 가니라
16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던 모든 군 지휘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이고 미스바에서 잡아간 모든 남은 백성 곧 군사와 여자와 유아와 내시를 기브온에서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서
17 애굽으로 가려고 떠나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물렀으니
18 이는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바벨론의 왕이 그 땅을 위임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였으므로 그들이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
* 본문요약
요하난이 이스마엘을 추적하자 이스마엘과 그의 심복들이 암몬으로 도망합니다.
요하난은 이스마엘이 유다 총독 그다랴를 죽인 일로 바벨론을 두려워하여
이스마엘에게 포로로 잡혀가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가려 합니다.
요하난은 왜 바벨론을 두려워했을까요?
그것은 그다랴의 암살 사건이 바벨론의 보복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다랴의 암살이 바벨론의 보복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컸던 이유는 그다랴가 바벨론 제국의 신임을 받아 유다 지역을 통치하는 총독으로 임명된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다랴는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유다를 점령한 후, 남아 있는 유다 백성을 통제하기 위해 세운 지도자였습니다. 따라서 그다랴의 통치는 바벨론의 직접적인 통치 권위를 상징했습니다.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암살한 것은 단순한 정치적 암살을 넘어, 바벨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을 수 있습니다. 당시 바벨론 제국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정복한 지역을 엄격하게 통제하려 했고, 그다랴의 암살은 바벨론 통치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바벨론이 유다에서 자신들이 임명한 총독이 암살당하는 것을 좌시한다면, 그들의 권위가 약화되고 다른 지역에서도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찬 양 : 497장(새 440)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
502장(새 445)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 본문해설
1. 요나단의 추적(11~15절)
11)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 지휘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행한 모든 악한 일을 전해 듣고
12) 모든 사람(그의 부하들)을 데리고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싸우러 가다가
기브온 큰 연못 가에서 그를 만나매
13) 이스마엘과 함께 있던 모든 백성이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지휘관을 보고 기뻐한지라.
14) 이에 미스바에서 이스마엘에게 포로 되었던 그 모든 백성이 돌이켜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로 돌아가니
15)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8명과 함께 요하난을 피하여 암몬 자손에게로 가니라.
2. 애굽으로 가려는 요하난(16~18절)
16)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하는 모든 군 지휘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이고
미스바에서 잡아간 그 모든 남은 백성,
곧 군사와 여인과 유아와 환관을 기브온에서 데리고 돌아와서
17) 애굽으로 가려고 그곳을 떠나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물렀으니
18) 이는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바벨론 왕이 그 땅 총독으로 세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였으므로
그들이 갈대아(바벨론) 사람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더라.
- 게롯김함(17절) :
‘게롯’은 ‘여관, 천막, 임시 거주지’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게롯김함은 ‘김함의 여관, 혹은 김함의 객주’를 뜻합니다.
김함은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에게 피하여 도망할 때
다윗을 도왔던 바르실래의 아들로,
그 일로 김함이 그의 아버지 바르실래의 영예를 이어받아
베들레헴 근처의 대토지를 얻게 되었는데,
김함이 그곳에 여행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지은 숙소로 여겨집니다.
* 묵상 point
1. 사악한 이스마엘에게서 백성들을 구한 요하난(11~15절)
요하난은 이스마엘의 악행을 듣자마자 곧바로 그를 추적하여
미스바에서 불과 5km쯤 떨어진 기브온에서 만납니다.
그러자 포로로 잡혀가던 백성들이 기뻐하며 그를 크게 환영하고,
이스마엘은 그의 심복 8명과 함께 암몬으로 도망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들은
백성들이 악한 무리에게 붙잡혀 있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합니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이미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모든 사역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삶이 보장된 바벨론으로 가기보다
아무것도 보장된 것이 없는 유다로 다시 돌아온 것과 같은 마음입니다.
요하난 역시 이스마엘에게 사로잡힌 유다 백성들이 불쌍하여
이스마엘을 추격하여 그에게 사로잡힌 유다 백성들을 구해냅니다.
믿음의 사람은 악한 무리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불쌍히 여깁니다.
2. 갈 방향을 알지 못하는 요하난
1) 전쟁의 두려움에 분별력을 잃어버린 요하난
바벨론이 세운 유다 총독 그다랴를 죽인 사람은 이스마엘이고,
요하난은 그다랴를 죽인 범인 이스마엘을 암몬으로 내쫓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요하난이 바벨론 사람들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의해 유다와 예루살렘이 참혹하게 멸망하는 장면을 지켜본 요하난은
전쟁의 두려움에 빠져 분별력을 잃어버립니다.
사악한 이스마엘에게서 백성들을 구할 정도의 신실함을 가진 사람도
이렇게 두려움에 빠질 수 있습니다.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도 이세벨의 악독한 말을 두려워하여 하루를 꼬박 도망하여
로뎀나무 아래서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던 것처럼,
믿음의 사람들도 때로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두려움에 빠져 거짓된 길, 죽음의 길로 가려 하는 요하난(16~18절)
그다랴를 자기가 죽이지 않았음에도
바벨론의 인정을 받고 있던 유다 총독 그다랴가 암살된 것의 책임을
바벨론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물을 것을 두려워하여
백성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데리고 가려 합니다.
그러나 상황을 조금 더 살피기 위해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이라는 여관에 머물렀습니다.
3) 지금 보기에는 안전해 보이나 곧 멸망할 자리, 거짓된 죽음의 길 애굽
일단 애굽은 아직은 평안해 보이고, 양식도 넉넉하니
살기 좋은 곳이라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에 적절하지 않은 곳이어서
예레미야가 그곳으로 가는 자는 모두 멸망 당할 것이라 경고했던 곳입니다.
요하난이 예레미야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애굽으로 가려고 했던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에 대한 두려움
요하난과 유다 백성은 그다랴의 암살 사건이 바벨론의 강력한 보복을 불러올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제국의 군사력이 강력했기 때문에, 그다랴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자신들에게 돌아올까 봐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이들은 예레미야의 경고를 듣기보다는 바벨론의 보복을 피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유다 땅에 머물도록 보호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요하난과 그 무리는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하신다는 약속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군사적 힘과 위협을 더 무겁게 여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예언자의 말을 믿기 어려워했습니다.
요하난은 두려움에 빠져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거짓된 길, 죽음의 길이라 경고하신 애굽으로 가려합니다.
시드기야 왕이 이미 바벨론에 항복한 동족 유다인들의 조롱하는 소리를 두려워하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예루살렘 폐망의 참담한 비극을 당하게 된 것처럼,
요하난도 바벨론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결단하지 못하고 비극의 현장인 애굽으로 가려 합니다.
● 묵상 :
아무리 신실하게 행동하며, 선한 행실을 하는 것 같은 사람들도 이 세상의 문제를 두려워하여 하나님과의 만남을 결단하지 못하고 머뭇거립니다.
우리에게도 요하난과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어려움을 경험하는 자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자들입니다.
그렇게 강인해보이고 신실해보일지라도 실제 자신의 삶 앞에 놓이게 된 두려움의 문제로 인하여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죠.
우리는 어떤 사람의 모습이나 행동으로 신실함을 판단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결정적인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자들을 신실하다고 얘기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판단이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판단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도록 지금 당신을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은 무엇에 방해를 받습니까?
머뭇거리다가는 시드기야나 요하난처럼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