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에서 빛을 발하는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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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은 복음을 전하다 밧모섬에 유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소아시아 옆에 떨어진 외딴 섬이었습니다.
그 당시 복음을 전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외부 세계와 단절된 곳으로 보내졌습니다. 사도요한은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천사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듣고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밧모섬 사도 요한 사진)
일곱 교회는 성경에 나오는 순서대로 이야기 하면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오늘 함께 말씀을 나눌 교회는 사데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각 교회에 전하시는 편지를 보면 편지의 첫 구절에 예수님께서 각 교회에 전하고자 하시는 핵심 메세지가 있습니다.
사데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첫 구절은 요한계시록 3장 1절 입니다. 이 구절에 예수님께서 사데 교회에 전하시고자 하는 말씀의 핵심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예수님은 여기에서 “일곱 영을 가지신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일곱 영은 ‘성령’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일곱 영 곧 성령과 함께 계심을 말씀하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성령과 함께 계시며 성령의 능력으로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세워 가시는 분신데 사데 교회가 이러한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편지의 서두에 이것을 기록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이 사실을 깨달아 알도록 강조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자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에서 “그들의 행위를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지 않는 그들의 잘못된 행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맨 마지막 구절 말씀을 통해서 그들이 하나님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함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인하다’의 뜻은 어떤 내용이나 사실이 옳거나 그러하다고 인정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곧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옳다, 인정한다”라고 하나님께서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런 상황 가운데 놓인 이유는 그들이 사람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이 옳다, 인정한다”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전하여 질 때 성령의 능력이 개인의 삶과 가정과 사회에 나타나게 되어 집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아지고 영광을 받을 때 마귀의 세력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이루어 지게 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전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세상과 동화 되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과 동화 되어져 복음의 빛을 잃어 버렸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교회는 일곱 촛대에 비유되어 집니다. 이는 교회가 세상 속에서 빛을 비추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촛대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합니다. 빛은 어둠속에서 사람들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줍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세상속에서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죄로 어두워진 세상속에서 참된 빛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전함으로 그들이 빛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해야했습니다.
하지만 사데 교회는 이 사명을 감당하지 않았습니다. 세상과 동화 되어져 가며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말씀대로 이기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이 “이기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이기게 되면 흰옷을 입을 것이며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지며 그들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말씀을 통해 그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전하시며 그들이 깨어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1-2 을 새번역 말씀으로 읽어 보면
성경전서 새번역 (3장)
1 “사데 교회의 심부름꾼에게 이렇게 써 보내어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분이 말씀하신다.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살아 있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다.
2 깨어나라. 그리고 아직 남아 있지만 막 죽어 가는 자들을 굳건하게 하여라. 나는 네 행위가 나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데 교회가 세상과 동화되어진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데지역에서 경제활동을 해 나가며 삶에 필요한 것들을 얻고 부와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 수 없었습니다.
사데는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왜냐하면 금이 생산되는 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금 사업이 엄청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모직과 같은 섬유와 염색 산업이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사데는 지리적으로 상업의 중심지에 있었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길드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길드는 동업 조합이었는데 길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길드가 섬기는 신을 섬겨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최정점에는 로마 황제가 신으로 등극해 있었습니다.
사데 지역은 로마가 점령하여 로마의 통치하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AD 17세기에 사데 지역에 큰 지진이 있었습니다. 이 지진으로 사데 지역은 초토화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최악의 재앙 후에 도움이 절실했던 사데는 로마 제국 황제인 티베리우스의 지원을 받아 신속하게 재건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데는 로마제국과 밀착된 관계를 형성하게 되어집니다. 그들의 로마 황제에 대한 충성은 AD 26년 소아시아에 로마 황제를 위한 신전을 지으려고 했는데 사데 지역은 다른 열개의 도시와 경재아는 방식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로마의 관료들은 로마 황제에게 충성하기 위해서 유일신 사상을 내세우며 로마 황제의 자리를 위협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도 기독교인들이 유대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오해해서 엉뚱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며 살아가는 삶은 경제적인 활동을 포기하는 것이며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는 삶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복음을 전하다 밧모섬으로 유배를 간 이유가 그것입니다.
역사서를 보면 사데 교회는 믿지 않는 사람들 곧 교회 외부에 있는 자들에게 평판이 좋은 교회였다고 합니다. 평판이 좋았다는 것은 좋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교회가 외부와 갈등이 없었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데 교회에 경고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그들이 깨어나지 않으면 도적같이 그들에게 임하여 그들을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도적의 비유를 든 것은 사데 지역이 도적같이 임한 적군에 의해서 두번 패배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데는 상부 도시와 하부 도시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상부 도시는 가파른 지형에 있기 때문에 왕족과 귀족이 성을 짓고 살았고 하부 도시는 상업이 발전했습니다.
상부지역은 가파른 지평에 있었기 때문에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그들은 경제적 부요함과 난공불락이 성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다른 나라에게 점령 당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성에는 작은 문이 있었습니다. 그 문을 지키는 문지기는 오랜시간 그 성을 공격하는 적군이 없기 때문에 긴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문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BC 6세기에 페리시아의 키루스는 그 성의 작은 문이 수비 되지 않은 것을 알고 그 문으로 군대를 몰래 투입하여 사데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또 한 번 있었는데 그 때도 성의 작은 문을 지키는 군인이 그 작은 문은 제대로 지키지 않아 동일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BC 214년에 안디오쿠스 3세가 페르시아 군대의 승전 기록을 읽고 그대로 공격하여 승리를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게 하며 그들이 깨어 있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도적같이 오셔서 그들을 심판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사데 교회가 사라지고 없어졌던거와 같이 그들이 깨어있지 않아 교회가 사라진거와 같이 예수님은 역사속에도 역사하셔서 교회를 심판하십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도 세상과 동화되어져 먹고 살기 위해서 혹은 부와 명예를 쌓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성령으로 세워가는 일을 하고 있지 않으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봉사를 안하려고 합니다. 교회에서 예배만 드리고 가려고 합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하나님은 살아 있으나 죽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성령의 능력으로 세워가지 않는 자들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흰옷은 거룩한 옷입니다. 곧 세상과 구별된 자들이 입는 옷입니다. 우리가 세상과 동화 되어져 세상이 가는 길로 간다면 우리들고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함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곧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들도 하나님께 대한 첫 사랑이 어디에서 떨어졌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을 향하도록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하는 교회로써 온전한 사명을 감당하기를 소망합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