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과 종 그리고 거룩한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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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3:1–6 NKRV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서론
히브리서는 그리스도를 믿게 된 유대인들을 예상 독자로 쓴 편지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당시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인들의 문화와 사상이 배경이 되어 쓰인 편지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유대인들의 문화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믿는데 방해가 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화나 사상이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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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에 걸쳐 2장까지 “천사 숭배 사상”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의 기독교 신앙에 악영향을 미치던 사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천사보다 뛰어난 그리스도”를 말하며, 그들이 가지고 있던 천사 숭배 사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 변증하고 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에서는 천사 숭배 사상이 아닌 다른 잘못된 사상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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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직접 나타나지 않지만 정황상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잘못된 사상은 율법주의적인 신앙 방식입니다.
유대인들은 기본적으로 율법에 대하여 교육받으며 자라난 자들입니다.
그들의 사고 구조 자체가 율법적이고, 또한 그들의 가치관도 율법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적 신앙을 넘어서 율법주의적 신앙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죠.
예수님은 율법주의적 유대교 신앙을 계속해서 경고하셨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죠.
오늘 본문은 이러한 율법주의적 신앙이라는 잘못된 사상이 당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상황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적 배경 안에서 오늘 본문을 나누기 소망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을 통해 몇 가지 메시지를 통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우리는 한 집 안의 한 가족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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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특이하게도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말하면서 어떤 이미지를 비유적으로 사용하냐면, “집”, “가족”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시면
히브리서 3:1 (NKRV)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브리서 기자가 독자들에게 “거룩한 형제들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다고 얘기합니다.
히브리서 3:2 (NKRV)
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NKRV)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왜 그러냐면 4절에서 말하듯이 지금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집”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만물 가운데 한 일들이 예수님이 하신 일들과 같은 일을 했다는 말이죠.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님도 마찬가지고, 바울도, 그리고 이외에 서신서들에서도 계속해서 나타나는 이미지가 바로 집, 가족의 이미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 비유를 적절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모두는 한 형제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집에서 무엇입니까? 집주인의 아들입니다.
히브리서 3:6 NKRV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또한 모세는 신실한 종입니다.
히브리서 3:5 NKRV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여러분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집을 만들시고 영원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집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함께 온 집을 통치하십니다.
거기서 모세는 훌륭한 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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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집”이라는 단어는 oikos 라고 하는 헬라어 단어인데, 이 단어를 통해 우리가 한 가지 더 얘기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oikonomia라고 하는 헬라어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의 뜻이 뭐냐면 “경륜”입니다.
이 집이라는 단어에서 oikonomia 라는 경륜이라는 단어가 파생돼서 나옵니다.
이 경륜이라는 단어를 우리가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에베소서에 보면 이 경륜이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에베소서 3:2 NKRV
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이 경륜이라는 말의 원래 뜻이 뭐냐면 “경영”의 의미입니다.
이 말이 보통 쓰이던 곳이 바로 집이나 단체입니다.
집에서 경륜이라고 한다면, 가장과 가족원들이 집과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을 경륜이라고 얘기하는 것이죠.
그런데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특별히 이 경륜을 어떨 때 쓰냐면, 구원을 주시기 위해 하셨던 사역의 경영을 얘기할 때 씁니다.
즉 구원의 경륜이라고 한다면, 구원 사역을 해나가시는 하나님의 일들을 말하는 것이죠.
집이라는 단어가 oikos고, 경륜이 집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oikonomia라는 의미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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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 경륜은 하나님의 집을 꾸려나가기 위한 일인 것입니다.
구원에 대하여 우리가 내세를 보장받고, 성도 개인의 구원으로 좁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그 생각보다 훨씬 범위가 넓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은 성도의 구원뿐만 아니라 온 세계를 하나님의 집으로 만드시기 위한 그 모든 사역들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계를 하나님의 집으로 만드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렵게 만들었던 죄라는 벽이 있는 것이죠. 그것을 해결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구속 사역을 성취하십니다. 그리고 온 세계를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집으로 만들어가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구원 경륜, 오이코노미아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나라는 작은 범위로 제한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집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만약 구원을 우리와 세계라는 큰 범위로 넓히게 되면 우리는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집으로 되어가고 있다는 커다란 구원 경륜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집을 만들어나가는데 쓰임받았던 신실한 종이 모세이고요, 그 집의 주인의 아들은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인해 한 거룩한 형제들이 되어서 그 집을 꾸려나가는데 함께 쓰임받게 되는 것이죠.
2. 예수님의 집 주인의 아들이고, 모세는 신실한 종이었다.
그 가운데 우리는 두 번째 메시지를 강력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모세의 신분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구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히브리서 3:6 NKRV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모세는 어떤 사람인가요?
히브리서 3:5 NKRV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온 세계라는 집을 하나님께서 구원의 경륜으로 이끌어나가시는 가운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이고
모세는 신실한 종이었습니다.
모세는 유대인들에게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리더였습니다.
모세는 구약의 율법을 하나님께 받은 선지자였습니다.
동시에 모세는 상당히 독특하게도 대제사장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당시 아론이라는 정식 대제사장이 있었지만, 사실상 하나님을 독대하고,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를 나눴던 역할을 했던 본질적인 의미의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모세였죠.
그래서 모세는 선지자의 직분을 맡으면서도 실질적인 대제세장으로서 상당히 독특하면서도 존경받는 믿음의 조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모세는 아주 큰 관점에서는 그 하나님의 집을 꾸려나가는데 쓰임받은 종이었을 뿐입니다.
그 모세보다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왜 뛰어나십니까? 그리스도는 온 집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한번 더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3 NKRV
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예수님은 모세보다 더 영광을 받을 분이죠.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 집의 주인의 아들로서 주인과 같은 권세를 가지신 분이고, 그 집을 세우는 사역, 그 경륜을 성취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그 세워진 집 안에서 종의 역할을 감당한 것이고요.
여기서 우리는 서론에 말했듯 이 본문이 왜 율법주의적인 사상에 대한 경고를 하는 본문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모세를 존경하였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지나치게 존경한 나머지 모세와 모세가 받은 그 율법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됩니까?
극단적으로 쉽게 얘기하면 예수님을 배척하려했던 율법주의자들의 모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항상 그런 위험 속에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율법주의적인 신앙은 위험 요인입니다.
왜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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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안에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율법주의적 신앙이 위험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성취하신 구원 경륜의 가치를 훼손시킵니다.
예수님이 집 주인의 아들로서 구원의 경륜을 완성시키시고 하나님의 온 집을 직접 꾸리신 그 예수님의 경륜의 사역의 가치를 훼손시킵니다.
율법주의적 신앙은 율법의 행위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열게 됩니다.
그 순간 예수님의 구원 경륜만이 구원을 주는 것인데 그 자리를 율법주의적 행위가 뺏는 것이죠.
둘째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훼손시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이 완성되고, 모든 집이 완성되는 것인데, 종인 모세가 준 율법을 드높이면서 그 은혜가 훼손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결국 유대인들에게 바라면서 강력하게 권고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모든 구원의 경륜을 성취하시고 집을 지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낮추지 말라는 것이죠.
만약 그 사역을 율법의 수준으로 낮춰서 모세를 그리스도보다 높게 생각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종 모세의 사역보다 가치가 훼손되는 것입니다.
모세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려질 때 종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죠. 모세의 사역 독단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구원의 경륜 가운데 온전히 성취하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적용)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가 그리스도와 모세를 비교하면서 그 존재와 역할의 구분을 날카롭게 해나가고 있습니다.
모세의 종으로서의 역할에서는 “신실하다”라는 표현으로 그를 높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비해서는 “아들”과 “종”이라는 표현으로 확연하게 구분짓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을 섬기기 위해 부르심 받은 종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부르심 받은 것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만약에 우리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부르심을 받았다면, 구원은 우리를 통해 이루어졌거나, 일부라도 우리가 이룬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한 것은 하나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은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먼저는 종으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모세와 같이 부르심 받고 우리는 하나님의 집 안에서 신실한 종으로서 사역해나가길 부르심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역할 때 우리가 집 주인인 것처럼, 혹은 집 주인의 아들인 것처럼 행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떻게 할 때인가요? 교회 안에서 사역할 때 내가 한 것에 대한 공로를 앞세울 때겠죠.
여러분 우리가 교회 사역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신실한 종으로 부르셔서 그렇게 순종하길 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가 한 사역이 우리의 공로가 되어서, 우리가 그것들을 우리의 자랑으로 혹은 우리가 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어 교만한 마음을 가지게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한 것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셨다는 은혜를 잊는 순간 우리는 율법주의적인 공로의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예화
한 목사님이 해주신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부목사님으로 교회에서 열심히 사역을 하시고, 섬기셨어요.
사역도 잘 해서 인정도 받으시고, 꽤 오랜 시간 부목사 사역을 하셨더랍니다.
근데 이제 그분이 청년부를 맡고 청년부에서 팀 사역으로 리더들을 잘 세우시고 한 거에요.
그런데 이제 목사님들이 부목사 사역은 정말 아쉽지만 사역지를 옮겨야 할 때가 자연스레 오게 되더라고요.
이 목사님도 교회를 옮기실 때가 된 겁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는거에요.
‘내가 이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청년부 부서 리더 양육, 팀 양육 잘해놔서 이렇게 가꿔놨는데, 이걸 내가 포기해야 한다고?’
‘이거 내가 다 땅 갈고, 씨 심고, 양육해서, 열매 맺어놨는데 이걸 다 놓고 가야한다고?’
하면서 이게 순간적으로 확 생각이 든거에요.
그러면서 나중에 정신을 차리신거죠.
‘아 내가 주님의 종으로서 사역한거지, 내가 주인이 아닌데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깊이 회개하신거죠.
그리고 그분은 비록 사역지를 옮기면서 아쉬운 마음은 있었겠지만 그분의 사역 가운데 그 경험이 하나님의 사역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라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된 기회였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런 경우가 생길 수 있죠.
교회 안에서 우리가 성도로 사역하고 섬기다보면, 우리는 교회 사역에 대해 내가 주인이라는 욕심을 가지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는 깨달아야죠.
나는 종이고, 그리스도가 주인이다!
사역에 있어서도 나는 종이고, 그리스도가 주인이다!
여러분 사실 이것을 인정할 때 놀라운 은혜가 우리에게 한번 더 주어지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종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정할 때, 사실 하나님은 그 집 안에서 우리가 종이었지만 예수님과 같이 한 형제로 부르시는 은혜를 허락하시는 것이죠.
히브리서 3:1 NKRV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우리가 거룩한 형제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그 주인의 아들과 같이 형제라고 불릴 수 있게 된 은헤를 허락하시는 분이 또 주님이시죠.
여러분 우리가 주인의 신분으로 우리의 공로로 올라가려고 하는 모든 시도는 멸망으로 치닫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신분을 인정하고 하나님만이 모든 사역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믿고 인정할 때 우리가 거룩한 형제들이라는 신분을 덧입혀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노력으로 주인이 되시겠습니까? 그것은 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히려 종으로서 신분을 인정할 때 하나님은 자녀로서, 거룩한 형제 자매로서 신분을 회복시키시는 은혜의 주님이십니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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