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이 이루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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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지난 주일에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두 번째 간구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히 소망하는, 갈망하는 한 주를 보내셨나요? 아니면,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에는 관심이 없이 보내셨나요? 네. 그렇죠. 우리 모두는 여전히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일상이 너무 크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아갑니다. 그러나, 다시 저와 여러분에게 도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시고, 또 우리 가정과 교회와 직장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갈망하며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와 뜻이 이루어지이다가 다른 간구일까요? 같은 간구일까요?
큰 틀에서 같은 간구라고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일단은 병행본문
누가복음 11:2–3 NKRV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보면,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간구는 생략이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나라가 임하시오며에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세 번째 간구가 포함이 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복음에서는 굳이 이 간구를 포함시켜 두셨으니, 따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는 포괄적인 큰 그림이라면,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간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의무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그 자체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가 무슨 복을 누리고 평강을 누리고 하는 것을 생각하며 간구하는 것이 아니지요.
뜻이 이루어지고 결국 우리가 모두 평강과 행복을 누리며 사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우리의 삶과 기도의 목적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그것은 다른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뜻이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기도와 삶의 목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과의 관계를 갈망하므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 분이 목적이지, 그 분이 베푸시는 은혜들이 목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하나님의 뜻이 가장 가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기도를 가르쳐주신 예수님은 6장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6:33 NKRV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늘에서는 이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죄와 사단이 아직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무능력하셔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속에서 허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장차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온전히 이루어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을 기다리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목적이 되고, 하나님의 뜻이 삶의 목표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이 기도문이 구체적으로 이미 그러나 아직을 사는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 지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24문: 셋째 간구는 무엇입니까?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로 이러한 간구입니다.
1) 우리와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뜻을 버리고
2) 유일하게 선하신 주님의 뜻에 불평 없이 순종하게 하옵소서
3) 그리하여 각 사람이 자신의 직분과 소명을 하늘의 천사들처럼 즐거이 그리고 충성스럽게 수행하게 하옵소서.
1) 우리와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뜻을 버리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우울한 날 지나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으로 다 지나가는 것이며/지난 것은 소중한 것이라네.
알렉산드르 푸시킨(러시아의 시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속인다고 해서 사기치는 느낌이 들지만,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기쁨의 날이 올 것이니, 현재에 매이지 말고 미래에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쁨의 날이 온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슬픔과 분노를 임시로 덮어두는 것입니다. 치유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만이 기쁨의 날을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계획과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뜻이 더 크고 더 귀하고 더 유익하다는 믿음으로 분노하거나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야 하겠지만,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갈등하고 나누어지고 싸우고 미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때문에 그러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자기 뜻을 주장하다가 그렇게 되고 맙니다.
때로는 정말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많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해왔습니다. 어떤 때는 이용해 먹었고, 때로는 몰라서 그렇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한 장애우 성도가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어떤 한국의 큰 교회에서 예배 중에 장애우를 대표기도를 시켰다고 합니다. 말이 어눌하고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기도하고 있는 중에 한 장로님이 나와서 마이크를 빼앗았다고 합니다. 도저히 기다려줄 수 없다. 들어주지 못하겠다. 은혜가 안된다고 예배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그랬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요? 그 장로님의 기준과 장로님의 뜻이었겠지요. 자기가 만족해야 하고 내가 보기에 은혜가 되어야 하는 것이었지요. 자기의 뜻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면 그렇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생각에 옳은 대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교만과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정말 겸손하게 자기를 버리시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로 그는 과거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이제는 주를 위해 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연습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지체들과의 만남에서 목장 모임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의 뜻과 기준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더욱 생각하고 적용하고 순종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 뜻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실망하거나 분노하지 말라.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상심하지 말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삶
2) 유일하게 선하신 주님의 뜻에 불평 없이 순종하게 하옵소서
한 젊은 관원이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 때에 첫 번째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어찌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분이 기준입니다. 그 분이 뜻만이 선한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하나님만이 선하시다고 믿는다면, 그러면 그 분의 뜻에 불평 없이 순종하게 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신학대전”이라는 위대한 기독교 신학서적을 저술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불평 없이 순종하는 것을 의사와 환자의 관계로 설명하였습니다.
의사가 숨을 크게 쉬라고 하거나, 손을 들어보라고 하거나, 앉았다 일어나라고 하거나 무엇을 요구하더라도 환자는 불평 없이 순종하듯이, 바로 하나님께도 불평 없이 순종함이 필요합니다. 그 불평 없는 순종이 죄로 물든 우리의 마음을 고치고 건강한 진정한 인간으로 회복시키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11 NKRV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3) 그리하여 각 사람이 자신의 직분과 소명을 하늘의 천사들처럼 즐거이 그리고 충성스럽게 수행하게 하옵소서.
베드로전서 4:19 NKRV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우리는 고난 받기를 정말 싫어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내 인생에는 고난이 없고 평강이 있기만을 바라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에피쿠로스 철학입니다. 제가 너무 자주 이야기 해서 이제는 여러분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지요. 사도행전 16 장에 등장하는 그리스 철학 학파입니다. 흔히들 쾌락주의자들이라고 말합니다만,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육체적 쾌락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고난이나 고통이 없는 상태를 추구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주의 이름으로 고난 받기를 싫어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고난 받는 것이 무엇입니까? 순교하라는 것입니까? 두 가지 의미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주 적극적인 의미로서, 복음 전하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에 적대적인 세상에서 복음 전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덜 적극적입니다만, 섬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어떤 섬김의 삶을 말합니까? 자신의 comfort zone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나의 시간과 물질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너무 하기 싫은 일인데, 교회와 복음 전파를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목사의 일이 하고 싶은 일일까요? 아닐까요? 둘 다 입니다. 처음에는 하기 싫은 일입니다. 그런데, 순종하면 성령의 은혜로 하고싶은 일이 됩니다.
천사들처럼 즐거이 충성스럽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직분과 소명을 감당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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