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22 청년교회 (나는 주를 섬기는 것에 후회가 없습니다, 함께 지어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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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11:1–9 (NKRV)
1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2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3 이스라엘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신하들의 자손은 유다 여러 성읍에서 각각 자기 성읍 자기 기업에 거주하였느니라 예루살렘에 거주한 그 지방의 지도자들은 이러하니
4 예루살렘에 거주한 자는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몇 명이라 유다 자손 중에는 베레스 자손 아다야이니 그는 웃시야의 아들이요 스가랴의 손자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스바댜의 현손이요 마할랄렐의 오대 손이며
5 또 마아세야니 그는 바룩의 아들이요 골호세의 손자요 하사야의 증손이요 아다야의 현손이요 요야립의 오대 손이요 스가랴의 육대 손이요 실로 사람의 칠대 손이라
6 예루살렘에 거주한 베레스 자손은 모두 사백육십팔 명이니 다 용사였느니라
7 베냐민 자손은 살루이니 그는 므술람의 아들이요 요엣의 손자요 브다야의 증손이요 골라야의 현손이요 마아세야의 오대 손이요 이디엘의 육대 손이요 여사야의 칠대 손이며
8 그 다음은 갑배와 살래 등이니 모두 구백이십팔 명이라
9 시그리의 아들 요엘이 그들의 감독이 되었고 핫스누아의 아들 유다는 버금이 되어 성읍을 다스렸느니라
율법학자인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귀환민들을 대상으로 모세의 율법 책을 낭독한 뒤, 그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에 대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들의 허물과 죄악을 깨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함께 모여 회개의 표시로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면서 머리에 흙먼지를 끼얹었다.
그런 뒤 스스로 이방 사람들과의 잘못된 관계를 모두 끊고, 각자가 제자리에 선 채로 자기들의 죄와 자기 조상들의 죄를 자백하기 시작하였다.
오전 6-9시까지 율법의 말씀을 듣고, 이어 9-12시까지는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자신들의 허물과 죄악을 자백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죄를 고백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나아가 이제는 흔들림 없이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신앙고백인 것이다.
모든 기도가 끝이 나고 이들이 한 것은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로 하나님 앞에서 굳게 언약을 세우고, 그 내용을 문서로 작성했다.
언약의 내용을 정리하면
안식일을 철저히 지킬 것이다.
성전 예배를 유지하기 위해 각종 필요한 예물들을 바칠 것이다. (성전의 원활한 유지와 보수를 위해 성전세를 성실하게 납부할 것, 십일조를 성실하게 납부하여, 성전 봉사자들을 잘 봉양할 것)
우상을 섬기는 이방 사람들과 통혼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주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언약의 문서에 서명을 하였다. 그래서 10장에는 이 언약의 문서에 서명한 사람들을 나열한다.
그리고 성전을 온전히 세우기 위해 구체적으로 헌금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규례로 정하였다. 이것이 너무나 큰 은혜인 것이 스스로 그들이 성전을 위해 기꺼이 헌금 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 다음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이다.
예루살렘은 성전은 1차 귀환자들에 의해 재건되었다. 그러기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왔을 때는 1차 귀환한지 70여년이 지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아하게 백성은 예루살렘이 아닌 유다의 여러 성읍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그 뿐 아니라 성전을 섬기는 제사장, 레위인들도 예루살렘이 아닌 유다의 다른 성읍에 살고 있었다.
이 말은 예루살렘 성전을 섬기기 위해 순번을 정해 예루살렘으로 사람들이 오갔음을 의미한다. (출퇴근)
그러기에 예루살렘 성전이 성전으로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 했을리 없다.
장사로 비유하기는 좀 그렇지만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공감 할 것이다. 가게가 계속해서 영업을 하는 집과, 수시로 영업을 하지 않는 집은 큰 차이가 있다.
그러기에 성전으로써의 역할을 감당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한 것은 예루살렘에 사람들을 거주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당시 예루살렘이 살기가 좋았다면 사람들을 억지로 살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예나 지금이나 좋은 것은 누가 권하지 않아도 알아서 모여지게 되어 있다.
반대로 사람이 안모이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은 살기 쉽지 않았다. 치안이 문제였고,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기에 그 안에 많은 것들이 부족한 상태였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백성의 지도자들이 먼제 예루살렘에 사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백성들 중에 제비를 뽑아 1/10이 예루살렘에 살게 한 것이다.
제비를 뽑는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것인가?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과정에 관여하신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선교를 다녀와 간증자를 선택할 때 늘 제비를 뽑는다. 이것은 그냥 운이 아니다. 뽑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지만, 그것을 주관하는 나는 적어도 이것이 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뽑는다. 때때로 내가 이 사람이 하면 좋겠다… 생각이 나는 사람도 있지만 혹여나 그것이 내 욕심일 수 있기에 더 간절히 기도하며 제비뽑기를 한다.
그렇다고 오늘날 우리가 모든 것을 제비뽑아 결정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늘 여러분에게 말 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일에 대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인상적인 것은 자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기꺼이 예루살렘 성안에 살겠다고 자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제비를 뽑혀 예루살렘 성안에 사는 사람에게는 아무 말이 없었는데, 자원한 사람에게는 모든 백성들이 축복해 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자원하는 사람은 늘 축복을 받는다.
이들이 이렇게 모든 백성에게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결정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을 해보길 바란다. 먼 타국에서 돌아와 정말 어렵게 어렵게 정착해 살고 있었는데, 또 다시 새로운 곳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불편한 곳이 아니라 안전하지 않은 곳에 자신의 가족을 이끌고와 산다는 것은 절말 어려운 결정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렇게 결정한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성전을 온전히 세우기 위함이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잘 따라와야 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듣고 그들의 잘못을 깨달아 회개하며 결단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그저 말뿐만 아니라 성전을 온전히 세우고 섬기는데 자신의 삶을 드리는 것이다. 다시말해 기도한 대로 그들이 결심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행위는 말 그대로 희생이다. 이것을 한다고 더 많은 부와 권력이 생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성전을 온전히 세우고 그들의 공동체를 더 단단히 하기 위해 희생하는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자신의 것들을 희생하며 헌신하는 이유는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성벽 재건을 하고 난 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지금까지 죄 가운데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것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자신들의 의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 자신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자신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제는 내 유익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정확히 말하면 성전을 온전히 세우는데 기꺼이 헌신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도 이러한 헌신자들이 간절히 소망한다. 오늘날 모두가 나만을 위해 살아간다. 이웃이 아닌 나를 위해서 살아간다. 나이가 들수록 내게 유익이 되지 않으면 사람도 안만난다. 사람을 사귀는 것도 점점 내게 유익이 되는 사람을 사귀게 된다. 어린아이처럼 그냥 이 사람이 좋아서 만나는것은 지극히 드물다.
이런 시대에 살아가면서 헌신을 요구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시간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교회는 이러한 헌신자들에 의해 지금까지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헌신자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대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의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기 바란다. 단순히 헌금을 많이 하라는 말이 아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헌신을 하길 바란다.
6절에 보면 예루살렘에 거주한 베레스 자손이 나오는데 468명이 이주하였다. 그런데 다 용사였다. 그렇다면 468명이 다 싸움을 잘 하는 군인을 이야기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용사로 번역된 원의 뜻은 ‘힘의 남자들’ 이란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힘’은 물리적 힘 뿐만 아니라, 재능, 덕행, 재력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486명의 베레스 자손은 모두 싸움을 잘하는 용사가 아니라 예루살렘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으로 예루살렘을 지키겠다는 믿음의 사람들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교회를 세우고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는 것이다. 무엇이 정해져 있지 않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는가? 그러면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교회를 세우길 바란다. 여러분의 시간을 드리고, 여러분의 마음을 드리고, 여러분의 재정을 드리고, 여러분의 열정을 드려 교회를 교회답게 온전히 세우길 바란다.
교회 헌신의 기회가 올 때, 그것을 감사함으로 감당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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