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과 예수가 이루신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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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사실 대단히 간단하고 쉬운 것 같으면서도 엄청나게 어렵고 난해한 일입니다.
엊그제 가족과 함께 수영장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4살인 첫째 아이가 처음으로 깊은 물에서 제 손을 놓았습니다. 손을 놓고 금새 무서워하며 저에게 안아달라고 했지만 그래도 물에 뜨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아이가 잡고 있던 것이 바로 ‘세상’인데 그것을 놓으면 우리는 금새 물에 빠져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놓아도 괜찮다고 하시니까 놓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 놓으면 죽는데 아버지가 괜찮다고 하니까 믿고 놓았습니다.
그러나 물에 빠지면 세상에 빠지면 죽게 내버려두는게 아니라 건져주시는 아버지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물에 자꾸 뜨는 훈련을 하듯이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물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수영하는 법을 배우듯이 신앙생활을 하는 법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수영장이 아니라 큰 태풍이나 홍수로 인하여 세상이 물에 잠길 때 비로소 물에 뜨는 법을 아는 사람 그리고 물에서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는 사람들만이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난 것
사람에게서 난 것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복음을 구별하기 위해 먼저 사람에게서 난 것과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을 분별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사도직을 가지고 그것을 설명하는데 이는 다른 사람들이 바울의 사도권을 빌미로 복음을 흐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제가 어떤 메시지를 전했는데 큰교회의 목사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그 목사가 이제 개척하고 나이가 어려서 잘모르나본데 그 말씀을 그런 뜻이 아니고 이런 뜻입니다.’라고 했을 때 성도들이 그것을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허무하게 그 말에 흔들려버리는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그 메시지에 담긴 진리를 보고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개척교회 목사와 대형교회 목사라는 직분을 놓고 판단하는 것을 사람에게서 난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사도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목사’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목사로 인정하십니까?
얼마전에 제가 친구들을 만났는데 저한테 목사자격증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목사안수를 받았기때문에 그렇다고 말했지만 목사의 자격은 그것이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부름을 받아 목사가 된 것입니다.
시험을 보고 학위를 받고 이런 것은 모두 사람에게서 난 것입니다. 그런 것으로 판단하거나 평가한다면 은혜의 복음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세상에 깊이 묶여있는지 스스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 대하여 생각할 때 그것이 사람에게서 난 것인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분별하세요.
이것이 매우 간단하지 않은 일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 매일매일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예배도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사람으로부터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부터 난 것으로 우리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10월부터 북스터디를 하는데 꼭 모두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아주 최소한에 영적인 노력입니다.
은혜와 평강
은혜와 평강
바른 복음을 가져야 은혜와 평강이 있을텐데 다른 복음을 가지니 삶에 은혜와 평강이 사라집니다. 또 잘못된 평화를 평안으로 오해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바른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결코 사람이나 사람으로부터 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읽는 설교 갈라디아서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갈라디아서는 오늘날 후대에게 “바른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른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바울이 전한 구원의 복음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은혜와 평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절을 봅시다.
3절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사도행전 20장 24절에는 바울이 복음을 가리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라고 표현한 내용이 나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를 담고 있는 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이 하는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그분의 은혜를 우리가 누리게 하고, 그분의 은혜 속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이 하나님의 은혜를 결정적으로 좌우하기 때문에 이 복음을 바르게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은혜는 매우 중요합니다. 은혜는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거저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넘치는 호의입니다. 그래서 이 은혜를 “선물”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은혜가 아니라 자격과 조건이라는 틀 속에서 움직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자라면서 평생을 걸쳐 습득하게 되는 삶의 방식 중에 자격과 조건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자격과 조건을 얻기 위해 죽자고 공부하고 일합니다. 왜냐하면 좋은 자격과 조건을 구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격과 조건을 구비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돈과 지위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돈과 지위를 얻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 대부분을 허비합니다. 자녀들과 함께 지내는 것보다 직장에 나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어오는 것이 당연한 인생살이며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외모도 굉장히 중요한 자격과 조건이 되었습니다. 예쁜 사람만 대우해 주기 때문에 더 예뻐지려고 합니다.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설계 도면을 직접 그려 하나님께 주문 제작해서 나온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이 주신 대로 받은 우리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외모를 다른 사람과 비교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살이는 끝없는 수고의 연속입니다. 자신을 가치 있고, 존경받고, 인정받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삶의 긴장만을 붙들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다르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시되 우리의 자격과 조건에 근거해서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쁘기 때문에,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구원해 놓으면 하나님께 큰 유익을 끼칠 것 같기 때문에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가능성이나 기대를 가지고 우리를 선택하시지 않았습니다. 많은 자격과 조건을 구비했기 때문에 우리를 선대하고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 선하기 때문에 자격 없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 내용이 은혜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어하는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
이어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복음이 은혜의 복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 은혜를 누구에게 주실 것인가 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무분별하게 주시는 은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 은혜를 주시는가에 대하여 말할 때 다른 복음을 전한 사람들은 유대교의 전통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종교적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종교적 행위는 예를 들자면 음식을 담는 그릇과 같습니다. 그릇은 음식을 담기 위해 필요하지만 그릇만 있다고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본질은 음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라는 본질인데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자꾸 그릇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신앙을 따른 성도들은 그릇만 잔뜩 쌓아놓고 배가 고프다면 굶주림에 신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사람들에게서 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은 종교생활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른 종교들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사람들이 이것을 놓쳐버리게 되면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꾸 사람들이 만든 종교생활과 같은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도 이러한 오류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악한 세대라는 것은 사람들에게서 난 것으로 완전히 몰입된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지워지고 잊혀져가는 세대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스스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구원을 얻는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서 난 것들은 자꾸 그런것이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헛된 노력을 하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그것을 잘하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도 하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도 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다 거짓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우리를 건져주셔야지만이 우리는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나님을 만날 수도 있고, 닮을 수도 있고, 구원을 얻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인류는 이러한 죄의 문제에 관하여 태초부터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무진장 노력을 했습니다. 그 죄를 없애는 것은 ‘속죄’라고 하는데 이 속죄의 방법이 매우 제각각입니다.
이 죄을 속하는 방법으로 공통적인 것은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모양이 있지만 그 내용의 뿌리가 같습니다.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속죄를 위하여 ‘고행’을 합니다. 스스로 고통스러운 경험을 참고 견디면 자기의 죄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몸을 찌르고 자르고 구멍을 내거나 피를 흘리며 자기의 죄롤 씻기를 원합니다.
또 다른 유형은 자기의 죄를 대신할 제물을 신에게 바치는 행동입니다. 대부분 짐승들을 죽이는 것으로 희생의 제사를 드립니다. 구약성경에서도 이러한 희생제사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자녀를 드리는 인신제사도 있고,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를 제물로 바치는 풍습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으로는 자기의 죄를 어찌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전해진 다른 복음의 대표적인 내용은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할례는 남자의 성기의 포피를 베는 행위인데 이것도 일종의 고행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닌데 사람들은 먼가 자기의 희생이 있었을 때에 죄에 사하여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그것을 사실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오직 기독교의 진리는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해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희생하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의 죄는 우리의 은혜와 평강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죗값을 치러야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고행이나 다른 제물들의 희생제사로 치뤄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몸을 드리는 희생의 제사로 인하여 우리의 죄를 대신 속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이 대속에 참여하게 됩니다.
결론
결론
갈라디아서를 묵상하는데 지금 바울은 이전에 갈라디아 지역에 교회를 개척해서 열심으로 그들을 섬기고 가르치고 이제 든든해졌다고 생각될 때쯤에 다른 지역으로 가서 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이 워낙에 든든했기에 자기가 없어도 신앙생활을 잘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들려오는 말이 엉뚱한 복음을 따르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을까요?
바울이 이 복음에 대하여 이토록 확신을 갖는 이유에 대해서 우리가 알게 된다면 바울의 마음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길리기아 지방의 다소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다소는 그 당시에 세계적인 핫플레이스였습니다.
아테네와 콘스탄티노플에 이어 삼대 교육도시로 대학교육이 성행하던 대도시였습니다.
이곳에서 상류층으로 살던 바울은 그리스로마의 고등학문과 유대교육을 모두 최고의 엘리트 코스로 마쳤습니다.
그리스로마에서는 글을 쓰고 읽는 법을 통하여 편지를 쓰는 법을 배우고 수학과 철학, 수사학, 기하학, 고전 및 음악 등을 배웠씁니다.
유대교 교육은 5세부터 12세까지 성경을 가르치고 그 이후로는 법을 가르쳤다.
바울이 왜 성도들에게 편지를 많이 쓰고, 그가 법적인 내용 등에 능숙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바울 서신 연구: 사도 바울의 생애와 사상 4. 바울의 양육과 교육
그리스-로마 도시로서 다소는 그리스-로마의 교육 시스템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이 시스템은 두 과정으로 구성되었는데, 사회적 계통에 따라 조직되어 있었다. 첫 번째 과정은 초등학교로 구성되며 노예를 포함한 낮은 사회 계층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두 번째 과정은 문법 수업과 수사학 훈련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상위 계층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후자의 사람들은 초등 교육을 가정이나 문법 교육의 처음 단계에서 받았다. 초등 교육은 학생들에게 읽는 법, 쓰는 법(기본적인 편지 쓰기를 포함하여) 그리고 기본적인 수학을 가르쳤다. 교육의 두 번째 과정은 문법 교사(grammaticus)와 함께 시작하여 기본적인 읽기와 쓰기를 터득하게 하고, 이후에는 주요 고전 작가들, 특히 호메로스(Homer)와 에우리피데스(Euripides)를 암기하게 했다. 이 단계에서 학생은 기하학과 음악 등 다른 과목들을 공부하는 데 더하여 문법을 배우고 에세이와 편지를 쓰는 방법을 배웠을 것이다. 이 두 번째 단계의 엘리트 교육은 김나지움에서 실시되는데, 그곳에서 학생은 철학자-교사들의 인도를 따라 수사학을 배웠으며, 그 목적은 좋은 시민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철저하게 학문을 했던 그의 신념과 확신으로 가득찬 청년의 때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무리는 그야말로 사회의 악이고 강력한 이단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를 믿는 무리를 핍박하고 죽이는 일이 하나님의 정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매우 헌신하였다.
그러다 예루살렘에서 도망친 사람들을 잡기 위해 다메섹까지 쫓아가던 중에 예수님을 만나고 마음과 생각이 완전히 변화했다.
그리고 그는 이후로 곧장 자신이 경험한 예수를 전한 것이 아니라 10년 이상 복음에 대하여 깊이 사유하고 그것을 정리한 이후에 비로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자신이 모든 학문과 신앙적 체험과 영적인 묵상으로 인하여 검증하고 확인하고 경험한 이 복음을 성도들에게 생생하게 전해주었는데 자신이 떠난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성도들이 다른 복음을 받아들였다니 정말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을 책망하거나 지적하지 않고 다시 ‘복음’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행동을 하나하나 지적하며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율법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값없이 받는 것으로부터 얻는 구원입니다. 예배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통로인 예배는 큰 은혜입니다. 예배는 책임감이나 의무감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모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만나고 싶고, 예배가 드리고 싶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우리 성도들이 바른 복음을 알고 확실한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삶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시기를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