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당한 임무

산상수훈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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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임무 곧 사명
마태복음 5:13–16 (NKSV)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짠 맛을 되찾게 하겠느냐?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려서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숨길 수 없다.
15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 내려놓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다 놓아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16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너무도 잘 알려진 말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 어김없이 이 말씀이 답으로 대신하다.
말씀에서 요구하는 소금과 빛으로 사는 것은 각각의 기능처럼 세상속에서 그렇게 살아라, 영향력을 끼쳐라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뜻을 이 땅에 실현시켜야 하는 대리자의 역할,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이다.
이 땅에 가장먼저 아담과 하와에게 임무을 맡기셨다. 다음에는 아브라함에게, 또 이스라엘에게, 결국 예수님께 맡기셨다. 그리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교회에 이 임무를 부여했다.
팔복이 끝나면서 예수님은 “너희는 ~이다”로 이야기를 전환하신다.
너희는~ 유대인, 따르는 군중들이 아니라, 제자들이다. 또 팔복에서 복있는 자들이다.
구별이 되어 있는 자들의 임무이다.
여러분은 소금이 언제 제일 필요한가? 삶은 계란을 먹을때 아닌가.
욥도 소금없이는 계란을 못먹었나 보다. 욥기6:6
욥기 6:6 (NKSV)
6 싱거운 음식을 양념도 치지 않고 먹을 수 있겠느냐? 달걀 흰자위를 무슨 맛으로 먹겠느냐?
소금의 중요도와 활용도는 뭐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알것이다 .의료용으로, 음식보관용으로(생선에 소금을 쳐서 보관), 제사때에도 소금을 사용했다.
소금을 최초로 생산한 민족은 페니키아인들이다. 가나안 북쪽에 있던 민족으로 스스로 가나안이라고 불렀다. 이들이 지중해일대의 해상무역을 장악했고 이 소금이 큰 원동력이 되었다.
이후로 소금의 중요생산지는 사해가 되었고 이 사해일대를 놓고 힘겨루기가 치열했다. 삼하8:13
사무엘하 8:13 (NKSV)
13 다윗은 돌아오는 길에 ‘소금 골짜기’ 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이름을 떨쳤다.
에돔왕국은 사해일대인 소금골짜기라고 불리는 곳을 지키기다가 다윗의 의해 전멸되고 만다.
로마초기에는 소금이 화폐처럼 사용도기도 했고, 월급받는 사람을 “샐러리맨”라고 부르는데, 소금의 라틴어로 “살라리우스”에서 유래를 했다. 군인 soldier도 소금 sal에 어원을 두고 있다
성경에서는 다양한 의미로 소금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소금이 가진 핵심적인 의미는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맛을 내고, 치료를 하고, 가치있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또 빛은 어떤것인가?
과학적으로 빛은 전자파인데 눈에 보이는 빛이 가시광선이다. 인간은 가시광선을 통해 사물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벌은 자외선을 본다.
밝고 어두움을 구분하게 하는 그런 빛도 있다.
성경에서 빛은 요한복음 1:9
요한복음 1:9 (NKSV)
9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예수님 자체였다.
빛은 하나님, 예수그리스도, 진리를 말한다.
이제 말씀으로 들어가 보자.
13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은 예나 지금, 방부제, 음식에, 땅에 사용된다. 소금기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존재의 역할이 없어진 것도 있지만 영향력을 발휘하는 방법도 없어지게 된다.
영향력의 방법이 무엇인가? 팔복의 내용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한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 의를 위해 고난받는 사람
소금기가 없어지는 것은 아무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 그저 모레와 같다.
마가복음 9:50 (NKSV)
50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너희는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겠느냐? 너희는 너희 가운데 소금을 쳐 두어서, 서로 화목하게 지내어라.”
제자들이 소금기가 없이는 제자도의 삶을 살지 못한다. 교회가 소금기를 잃어버리면 교회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 존재의 존재스러움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교회다움을 잃어버리고, 그리스도인다움을 잃어버리는 것.
제자들에게 지금 살고 있는 유대땅에서의 예수그리스도 제자로서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살아 됨을 강조한다. 그 영향력을 넘어서서 선교대상이 바로 유대땅,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자, 소금기가 있는가
소금의 역할 중 썩지 않도록 하고 맛을 내는 것이다.
소금은 우아하지도 않고, 사람들이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것도 아니다. 그저 반드시 필요할 뿐이다.
루터는 소금을 치면 쓰라리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회도 이땅에 죄와 썩을 것을 향해 쓰라림을 주는 존재라고 했다. 틸리케는 어떤 기독교인들은 세상에서 꿀단지가 되려고 한다라고 비판했다.
우리는 이 도시, 이마을 이공동체안에서 소금이 되어야 한다. 어떤 악, 어떤 죄, 어떤 부패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 소금기를 간직한 교회가 있어야 공동체가 건강해지고, 이 도시, 마을, 사회가 건강해진다.
소금기 잃은 교회, 성도 존스토트 목사의 말처럼 거리의 먼지가 되어서 치워버려야 될 존재.
14 , 15절을 보자.
빛은 어두운 것에 영향을 미친다.
세가지로 구분된다. 1.산위의 도시-동네를 숨기지 못하게 함, 2. 등불-자기 발앞을 비추고, 집안을 비춤, 3.착한 행실-사람앞에 비추는 것
교회의 존재, 기독교인의 존재가 다른 이들이 볼수 있는 존재로 비춰져야 한다.
소금보다 더 확장성이 있다. 말씀에서 소금이 유대땅에서의 영향력이라면 빛은 이방까지도 미치는 복음의 영향력을 말한다. 유대문화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세상의 빛으로 인식했다.
이사야 42:6 (NKSV)
6 “나 주가 의를 이루려고 너를 불렀다. 내가 너의 손을 붙들어 주고, 너를 지켜 주어서, 너를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할 것이니,
이사야 49:6 (NKSV)
6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내 종이 되어서,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고 이스라엘 가운데 살아 남은 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은, 네게 오히려 가벼운 일이다. 땅 끝까지 나의 구원이 미치게 하려고, 내가 너를 ‘뭇 민족의 빛’ 으로 삼았다.”
사도행전 13:47 (NKSV)
47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내가 너를 뭇 민족의 빛으로 삼았으니, 그것은 네가 땅 끝까지 구원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빛되신 주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 빛을 위임하셨다.
팔복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태도이고, 세계관이라고 했다. 우리의 이런 삶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은
마을을 향해 환하게 비출뿐 아니라 빛의 역할처럼 볼 수 있도록 만드는데 무엇을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만든다. 우리의 빛된 삶을 통해 세상이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빛은 점점 번져간다.
이사야 9:2 (NKSV)
2 어둠 속에서 헤매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쳤다.
팔복의 삶을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 드러나게 살아야 한다. 우리의 행동이 곧 빛을 비추는 것이다.
우리의 선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한다.
우리의 선한 행실이 그분이 비치는 빛이고, 하나님의 은혜이고, 우리의 행실이 곧 하나님의 행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16절에서 착한행실은 빛의 빛나는 현상을 말한다. 빛이 빛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오늘 우리는 선한 행실을 통해 끊임없이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구나,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계속 알려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해야한다.
숨어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의식해서 사람들앞에서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위선적인 삶을 싫어하신다.
여기서의 빛은 진리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역, 영적인 공간을 말한다. 빛을 통해 환해진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결론, 소금과 빛은 내어주고 사라지는 특징이 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다 내어주시고 소금이 되시고 빛이 되셨다. 기독교인은 자기중심적 삶을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소금의 역할-공동체, 교회, 사회가 정결해지도록 한다. 죄와 싸우는 것, 악과 싸우는 것이다.소금절인다. 문질러서 베어들어가게 하는 것.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계속 발휘하는 것, 문화에 대항하고 하나님의 문화를 세워나감
빛의 역할-하나님의 진리, 아름다움, 선함이 퍼져나가게 하는 것이다.
교회가 악하고 선하지 못했던 것-순식간에 한국땅에 퍼져나갔다. 하나님의 빛이 아니다.
예수의 이름이 우리의 선한 행실과 함께 우리는 배민이 되고, 쿠팡로켓배송이 되어야한다.
계속 퍼져나가게 해야하고, 다른 교회가 다른 공동체가 다른 일터목회사역들이 또 영향을 받아서 이와 같이 하도록 해야한다.
결국 하나님 나라를 사는 백성의 정체성은 삶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어떻게 살것인가? 아니다, 어떤 존재가 될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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