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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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예루살렘

11,18장 바벨론 멸망
음녀 바벨론
19장 전반부는 그것에 대한 하늘의 찬송, 이땅의 성도들이 참여
최후심판을 이야기하고 나서
본문 21장 1-8절
이후 새로운 여성도시가 등장한다. “새 예루살렘”이다.
도시를 여성으로 표현하는 것은 구약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본문은 새 예루살렘을 잠시 소개하고, 이후 부터 본격적인 내용이 9절부터 나온다.
오늘 생각해 볼 점은?
전체적으로 바벨론을 묘사하고, 대조되는 새 예루살렘을 묘사하는 의도가 무엇인가? 이다.
바벨론을 ‘선택’할 것인가? 바벨론과 함께 있으면서 포도주(경제적 부)를 먹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18장에서 그 곳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신다.
바벨론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린양을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경제적 부를 얻기 위해서 실제로 짐승을 따라야 한다. 로마가 주는 사치를 누릴 수 있었음.
바벨론이 멸망할 떄, 바벨론의 사치를 꿈꾸며 살았던 상인들이 다 망한다. 운송통로가 가장 먼저 폭격을 받는 것 묘사 됨.
바벨론을 선택하는 길이 망하는 길이라고 말씀하심.
교회가 하는 프로그램이 사람들로 하여금, ‘저렇게 되고 싶다’라는 부러움을 심고, 일으키는 것은 문제이다. 그것은 복음이 아니다.
교회는 적어도 바벨론의 사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길을 가도록 인도하는 통로이다.
신부로서 단장을 해야 한다. 구별된 도성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도성이어야 한다.
바벨론의 사치의 도구의 역할을 하는 교회는 망한다. 바벨론의 사치를 대행하면, 촛대는 있지만 등불이 없는 것이다.
교회는 촛대이다. 등불이 없으면 증언을 못 한다.
사자가 인을 열것이라고 들었는데, 실체는 어린 양이었다.
요한계시록의 패턴
: 똑같은 실체인데 두 이미지를 보여준다.
새 하늘과 새땅이 어떻게 처소가 되는가?
한 실체가 두 가지의 이미지가 될 수 있다.
-교회의 정체성은 신부이면서 손님이 된다. 상징언어가 자유롭게 사용된다.
-성전이면서, 도시이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함께 거하시는 도시(처소)
새 하늘과 새 땅이 곧 새 예루살렘이다.
새 예루살렘은 선택의 문제를 다룬다. 바벨론vs새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같은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새 예루살렘의 초점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 “함께” (언약공식: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모든 예언이 절정에 이른다. “악이 없다” 바다가 없다로 묘사 된다. 상징적 요소.
미래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의도는 무엇인가? 독자들이 바벨론을 선택할 것인가? 새 예루살렘을 선택할 것인가?
미래를 미리 보면서, 교회가 새 예루살렘을 미리 보여주는 공동체로서,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로서 거룩한 도성이다. 거룩한 신부로 자기 정체성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 하나님의 첫번째 관심사이다.
계시록은 끊임없이,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지금 계신다를 강조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재를 믿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시대에 요한계시록이 기록되었다.
가장 힘든 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것이다.
언약의 절정의 장면을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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