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것 2024 0926 민18: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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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42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 42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민수기 18:21–32 (NKRV)
21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22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하지 말 것이라 죄값으로 죽을까 하노라
23 그러나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2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2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6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27 내가 너희의 거제물을 타작 마당에서 드리는 곡물과 포도즙 틀에서 드리는 즙 같이 여기리니 28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
29 너희가 받은 모든 헌물 중에서 너희는 그 아름다운 것 곧 거룩하게 한 부분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 30 이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그 중에서 아름다운 것을 가져다가 드리고 남은 것은 너희 레위인에게는 타작 마당의 소출과 포도즙 틀의 소출 같이 되리니
31 너희와 너희의 권속이 어디서든지 이것을 먹을 수 있음은 이는 회막에서 일한 너희의 보수임이니라 32 너희가 그 중 아름다운 것을 받들어 드린즉 이로 말미암아 죄를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성물을 더럽히지 말라 그리하여야 죽지 아니하리라
가장 아름다운 것을 드리는 즐거움을 사모합시다.
레위지파, 제사장 가문의 분깃은 분명하게 하나님 그 자체다.
민수기 18:20 “20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하나님이 나의 분깃, 나의 기업이라는 사상은 다른 성경에서도 발견 됨. 모든 기도하는 자들에게 위로 주시는 말씀이다.
시편 73:26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온 이스라엘은 땅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으로 먹고 살지만, 레위지파는 그보다 더 직접적으로 하나님 덕분에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고백도 이와 같아야 한다. 우리의 삶도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물질의 필요가 무의미 하다는 것이 아님. 물질을 부정하는 것이 아님. 어떤 것이 나를 진정으로 만족시키는가를 기억하자는 것임. 결국 모든 물질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얻어질 수 없다고 고백하는 우리 신앙이 되어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드려지는 헌금이 십일조이다. 십일조의 정신은 내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하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그것이 감사인 이유는 원래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인데, 하나님이 그저 10개 중에 9개를 내게 주시고, 1개를 달라고 하신 것이다. 원래 하나님 것이면 하나님이 9개를 갖고, 내가 1개를 갖든지 할법도 한데, 하나님은 9개를 내게 다 주신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깨닫는다면, 내게 주신 것 중 십의 일을 떼어 하나님께 드릴 때,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더 큰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주신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그 감사의 삶이 오늘의 내가 또 하루를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는 신앙을 관념적으로 생각할 때가 있다. 그냥 내 기도를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 들어주길 어렴풋이 믿고 기도하는 것. 비나이다 비나이다와 별 다를 바 없는 신앙. 그러나 십일조와 같은 헌신과 그에 따른 감사를 하나님께 드릴 때, 우리 삶에 하나님의 동행이 유형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유형적 헌신의 즐거움이라고 새벽에 설교한 적 있다. 그 즐거움이 내 삶에 실제적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들의 삶이 땅을 바라보는 삶이 아니라 하늘을 여전히 바라봐야 하는 삶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여전히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레위인은 소득이 없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레위인의 몫은 이스라엘 지파의 십일조다. 그래서 여기서 나오는 십일조는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나눔이라는 이중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면 레위인의 십일조를 안 냈을까? 레위인도 역시 그 의무를 다해야 했다. 받은 십일조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림 (26절). 그것을 제사장에게 드림. 회막에 전념하게 일하는 제사장들이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그래서 다시 말해서 이 십일조의 성격은,
첫째로, 하나님께 바쳐지는 감사와 헌신의 예물
둘째로, 이웃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사랑과 나눔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십일조는 가장 좋은 것, 아름다운 것으로 바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드렸다. 받은 것 중에서도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 가장 좋고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일까?
실제 물질적으로 가장 좋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분명히 우리 눈에 좋고 나쁜 것이 구별이 될 것이다. 그 중에서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귀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것을 선별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우리의 온 마음을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드리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바리새인의 헌금과 과부의 두 렙돈 이야기를 잘 알지 않는가. 바리새인은 자신이 헌금을 많이 낸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일부러 헌금을 동전으로 바꾸어서 철커덩 소리가 크게 나게 했다. 그에 반해 과부는 자신의 전부였던 두 렙돈을 드렸을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과부의 헌금이 바리새인의 것보다 더 크고 온전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가 가장 아름다운 것이 될 것이다.
오병이어 사건의 중심이 되었던 아이의 그 도시락이 작은 것이었지만, 소중한 우리들의 것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고 우리의 그 마음을 아시고, 진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큰 축복과 은혜가 임할 것이다. 오병이어 아이는 12광주리가 남을 것을 기대하고 예수님께 내놓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아이의 드리는 마음을 아셨을 것이다. (주기 싫었는데, 제자들이 가서 뺏어온 것은 아니었을것) 그리고 축사하시고 많은 사람들이 먹고 남는 기적을 베푸셨다. 그 아이의 헌신은 예수님께 드리는 것이었지만, 주님은 그것을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게 하셨다.
우리의 헌금, 헌신 등을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으로 드리고자 할 때, 우리는 이웃과 사랑과 나눔의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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