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 예배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말라기 3: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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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온전한 예배자로 서면 삶의 문제를 주님께서 해결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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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하나님은 예배자를 아끼신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3장)
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서론 :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기위한 자기 진단
인생에 어려움을 만났을 때, 무의식적으로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일, 그것이 바로 믿고 의지하는 신앙의 대상입니다.
예) 도움을 구할 지인들의 연락처를 찾는 사람은 친구가 신앙의 대상입니다.
은행마다 찾아다니며 도움을 구한다면 돈이 신앙의 대상입니다.
문제해결을 위한 SnS를 검색한다면 지식이 신앙의 대상입니다.
음악이나 예술로써 마음의 위로를 구한다면 마음이 신앙의 대상입니다.
그러면 성도는 문제를 만나면 가장 먼저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을 믿고 의지하는 만큼 예배에 목숨을 걸게 됩니다.
예배는 헬라어로 ‘프로스퀴네오’입니다. ‘땅에 이마를 대고 존경을 표한다’는 뜻입니다.
서양에서 악수의 의미가 “내손에는 무기가 들려 있지 않으며 당신에게 적의가 없습니다”를 뜻하는 것이라며 상대앞에서 ‘땅에 이마를 대고 존경을 표현’하는 행위는 내 머리를, 즉 내 생명을 당신께 의탁합니다라는 의미외에 달리 할 말이 없어 보입니다.
인생의 벼랑끝에서 내가 붙잡을 수 있는 수많은 방편을 내려놓고 내 생명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 앞에 전적인 의탁과 내어맡김이라는 뜻으로 ‘땅에 이마를 대고 존경을 표현’할 수 있다면 내가 나를 낮춘 만큼 나를 높여주시고, 인생의 벼랑끝에 예비하신 생명의 다리를 건너는 특권과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어떻게 하면 문제 앞에도 불구하고 예배의 승리를 통해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지 나누길 원합니다.
먼저 위기의 때,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어렵게 만들어 버린 반론을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본문 14절과 15절 입니다.
14절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 15절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 ‘아바드’ 는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 던진 질문이 아닙니다. 성도가 올려드리는 질문입니다. 예배드림이 무용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교만한 자가 복을 받고, 악한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림이 헛되다 말하는 이유가 충분히 이해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림이 불성실한 자가 아닐 것입니다. 한때,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려고 애썼으며 절기를 지키며 금식을 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자신을 슬프게 하는 거룩한 영적 삶의 모습도 지니었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때, 하나님께 예배했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으나 악한 자들의 형통함을 보며 예배가 소용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이면에 깔린 생각은 이런 겁니다.
거룩한 신앙생활. 예배자의 삶의 모습.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응답과 불신자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역사속에 개입하셔서 일하심예배무용론에 빠진 경우를 봅니다. 평생 예배생활을 해왔는데 남는게 없다는 겁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예배의 실패가 신앙의 실패, 삶의 실패원인이 된다. 예배에 성공하며 하나님의 아낌없는 사랑과 존중받는 삶을 살게된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문제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해야하는 것이 예배라고 하면 뭔가 좀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내 앞에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하나님께 기쁘게 예배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 때문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마음이 정돈되었을때 드리는 것이라는 생각, 또는 내 마음의 상태가 기쁨으로 찬양할 수 있을 때 예배해야 한다는 생각이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배의 무게추는 나에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예배의 중심입니다. 예배는 나의 감정, 나의 상황, 나의 상태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언제가 가장 예배하기 좋을 때입니까? 바로 지금입니다. 우리의 주변이 정돈되고, 마음이 정리된 후에 하나님께 예배하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평생 하나님께 예배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기 좋을 때는 없습니다. 우리가 정리하고 하나님께 예배하기 보다, 예배드릴 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우리의 주변을, 우리의 관계를 , 우리의 마음을 정리해주실 겁니다.
위기의 때에 먼저 예배했던 믿음의 선배들에 관한 예가 많지요.
-야곱은 세겜에서 위급할 때, 벧엘의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다윗은 인구조사의 죄를 범한 후 전염병으로 백성들을 심판하실 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여호사밧은 적들을 향해 싸우러 나갈 때, 찬양대를 세워,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인생의 어려움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성도는 그가 누구인지, 어느 편에 서 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방편이 됩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원하신다면 예배를 가장 앞에 두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내 삶의 문제가 좀 정리되면 예배하겠습니다.’하는 태도는 차라리 하나님을 존중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보이는 반응입니다.
본론1. 예배의 시작 그리고 정체 : 나의 특별한 소유
예배 무용론에 대해서 본문의 대답입니다.
18절 ‘하나님의 백성인지 아닌지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인지, 예배하지 않는 자인지를 따라 나뉘어질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이자 예배는 하나님 자녀의 정체를 보여줍니다.
교회는 결사조직 아닙니다.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은혜의 공동체 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을 애굽인의 압제에서 해방하신 이유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입니다. (출3: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예배는 특권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드릴 수 있는 것.
예배는 죄악으로부터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로부터 주신 선물이다.
따라서 예배는 교회의 얼굴이라고도 말씀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예배를 통해 온 세상앞에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드러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어떻게 구원받았고 하나님과 어떻게 교제하는지를 드러냅니다.
교회 공동체는 예배 공동체이다. 예배를 위해 존재합니다. 봉사, 훈련, 교제, 선교가 다 중요하지만 이 모든 활동이 목적하는 바는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활동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봉사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훈련과 성장하는 일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위해서, 성도가 서로 교제하고 샬롬을 이루는 것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열방이 다 주께 돌아오는 선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배는 하나의 활동이 아니라 전부입니다. 예배는 성도가 마땅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위해 드려야할 삶의 전부, 교회의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성도들은 예배를 존중하지 않습니다.
편리한 예배, 전도를 위한 예배, 구도자를 위한 예배처럼 하나님께 초점이 있지 않고 자신의 은혜받음, 마음의 위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경우도 봅니다.
예배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예배의 중심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예배, 그분이 정하신 목적대로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내 머리에 있는 왕관을 주님 발앞에 던져 버려야 합니다. 예배의 시작에는 주님앞에 내 모든 것을 다 드립니다. 주인되어 살았던 것을 회개합니다. 참회의 고백을 드리고 은혜를 받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배를 마치고 나갈 때는 내려놓았던 왕관을 다시 쓰고 세상으로 나갑니다. 이것은 온전한 예배가 아닙니다.
본론2.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아껴주신다.
17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예배의 승리가 인생의 승리다.
당장에 이뤄지지 않는다. 주님을 섬기며 경외하며 존중히 여기를 자를 여호와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다고 한다.
존중히 여기는 아들처럼 아낄 것이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리라. (삼상2: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지극히 영광가운데 풍성한 대로 너희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립보서
하나님의 은혜의 수로에 연결된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게 하려면 수도꼭지를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풍성함을 알아야 우리 인생에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소망하며 그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미 주어져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수도꼭지를 열기 바란다.
이미 있는데 사용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예배의 삶에 실패하는 성도이다.
결론
하나님이 아껴주심, 하나님이 존중히 여겨주심을 바란다면
예배에 목숨걸자. 생명처럼 예배를 귀하게 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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