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리더와 함께 걷는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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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대한 리더와 함께 걷는 우리들
[서론]
최근 아내와 요즘 핫한 넷플릭스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요리사들이 대결하는 프로그램인데, 그중에는 요리사들끼리 팀전을 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팀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고의 요리사들이 모였지만,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각자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려 한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패배 이유는 상대편보다 맛이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그들이 팀 리더를 온전히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리더를 믿지 못하니 각자 자기 방법을 고집했고, 혼란과 우왕좌왕 속에서 결국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신뢰한다는 것은 단순히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과 방법이 있어도 리더의 지시를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와 비슷합니다.
믿음이란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내 삶의 선택과 방향을 정할 때는 내 방법과 판단을 고집하지는 않습니까?
오늘 말씀은 바로 이 부분에 대한 도전입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을 어떻게 의지해야 할까요?
[본론]
오늘 말씀에는 유다의 아마샤 왕의 아들 아사랴가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 아사랴는 ‘여호와께서 도우셨다’는 뜻입니다.
그는 또 다른 이름인 웃시야로도 불리는데, 이는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름부터 참 귀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아사랴는 남유다의 10대 왕으로, 16살에 왕이 되어 52년 동안 통치했습니다.
이는 므낫세 다음으로 가장 오랜 기간 통치한 왕이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는 참으로 복받은 왕처럼 보입니다.
초기에 아사랴는 아버지 아마샤처럼 주님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행했습니다.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나라를 운영하려고 힘썼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주셔서 유다를 강한 나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물론 그에게도 다른 왕들과 마찬가지로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는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남유다에는 예루살렘 성전 외에도 산 높은 곳에 산당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을 신성하게 여기며 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일이었습니다.
예배는 오직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드려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산당을 금지하신 이유는, 그곳이 자주 우상 숭배의 근거지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사랴 왕에게 계속해서 복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에 대한 이야기가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지만, 역대하 26장에서는 아사랴에 대해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스가랴라는 훌륭한 스승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스가랴는 예언자 스가랴와는 다른 인물입니다.
좋은 스승의 지도 아래 아사랴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가 하는 일마다 잘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남유다를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강한 나라로 세우셨고, 이웃 나라로부터 조공을 받는 강력한 왕국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잘되면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변할까요?
아사랴 역시 점점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역대하 26장 16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힘이 세어지면서 교만하게 되더니, 드디어 악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주님의 성전 안에 있는 분향단에다가 분향을 하려고 그리로 들어간 것이다. 이것은 주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이었다.”
역대하에서는 그가 얼마나 교만해졌는지를 보여줍니다.
율법에는 오직 제사장만이 성전에서 분향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사랴는 이 율법을 깨뜨리며 제사장들이 해야 할 일을 자신이 대신하려고 했습니다.
80명의 제사장들이 그를 말렸지만, 교만해진 그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화를 내며 분향을 계속 진행하려 했습니다.
이로 인해 아사랴는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침범하여 하나님과 성전을 모독한 대가로 나병에 걸렸습니다.
왕이 나병에 걸렸다는 것은 나라에 엄청난 재앙이었습니다.
나병에 걸린 사람은 사회에서 가장 비천한 자로 여겨졌으며, 부정한 상태로 간주되어 격리 대상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아사랴는 죽을 때까지 격리된 별궁에서 홀로 지내야만 했고, 왕의 업무도 볼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의 아들이 대신 통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잘나가던 왕이 어쩌다가 이렇게 나락에 떨어진 것일까요?
가장 존귀했던 자가 왜 가장 비천한 자가 되어 버린 것일까요?
왜 이런 불행한 일이 그에게 벌어졌을까요?
그 이유는 교만함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모든 것이 잘되자 마음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을 자신이 성취했다고 여기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복을 주신 분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힘이 세어지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결국 자신의 분수를 넘어버렸습니다.
그러니 80명의 제사장들이 경고해도 전혀 듣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의 성공은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 되어 버린 셈입니다.
교만한 사람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영적인 눈이 멀어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거나 변화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대신 남을 비판하는데 앞장섭니다.
대표적으로 성경에서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모습은 보지 못하고 남의 모습만 비판했습니다.
자기 의를 추구하며, 자신들이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착각했습니다.
아사랴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직접 분향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실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이처럼 교만이 무서운 이유는 스스로를 착각하게 만든다는 점에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습니다.
교만해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계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유도 그들의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을 낮추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오래된 영국의 한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는 문이 너무 작고 낮아, 머리를 숙이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 작은 문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낮아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겸손한 자일까요?
단순히 자신을 낮추거나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은 아닙니다.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겸손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숨겨진 동기와 마음까지도 보십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진심으로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하나님을 높이는 자입니다.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으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들일까요?
스스로를 돌아보며, 우리의 마음 상태를 점검해보면 좋겠습니다.
이제 다른 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번에는 북이스라엘의 왕들입니다.
스가랴, 살룸, 므나헴이 등장합니다.
먼저, 여로보암 2세의 아들 스가랴입니다.
그는 겨우 여섯 달 동안 통치하다가 살룸의 반역으로 암살당하고 맙니다.
스가랴가 그의 조상들처럼 악을 행하고, 여로보암의 죄, 즉 금송아지 숭배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를 마지막으로 예후 왕조는 막을 내립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 약속하셨던 대로 4대에 걸쳐 왕좌를 유지한 것입니다.
다음은 스가랴를 죽이고 왕이 된 살룸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악한 짓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임신한 여자들의 배를 가르는 잔인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런 악행 때문에, 그 역시 단 한 달 만에 므나헴에게 살해당하고 맙니다.
이처럼 끊임없는 반역과 살육 속에서 백성들만 고통받고 있습니다.
나라의 운명을 바꿀 영적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그렇다면, 역모를 통해 새롭게 왕이 된 므나헴은 달랐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평생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악을 저지르며 삽니다.
나라의 영적 상태가 이렇다 보니, 나라가 위기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반역의 위협이 존재하고, 외부에서는 전쟁과 침략의 위협이 다가옵니다.
앗시리아가 침략하려 하자, 므나헴은 많은 뇌물을 바쳐 위기를 모면하려 했습니다.
그는 은 1,000달란트, 약 34톤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의 은을 앗시리아 왕에게 바칩니다.
이를 마련하기 위해 그는 부자들의 돈을 강제로 징수했습니다.
부자 한 사람당 50세겔씩 내게 하여 약 6만 명에게서 돈을 거둬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이스라엘에 정말로 그렇게 많은 부자들이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서민들의 돈까지 강제로 걷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므나헴의 모습을 보십시오.
앞서 성문을 열지 않았다는 이유로, 임산부들을 잔인하게 죽였던 그가 강한 앗시리아 앞에서는 비굴하게 조공을 바칩니다.
약자에게는 무참히 군림하고, 강자에게는 굴복하는 그런 왕입니다.
이러한 왕이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할 리 없습니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방법, 세상의 방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처럼 북이스라엘에는 반역과 암살, 권력 다툼, 전쟁의 위협이 끊이지 않습니다.
나라 안팎이 이 지경이니, 멸망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므나헴 이후로도 세 명의 왕이 더 있었지만, 그 끝은 결국 앗시리아에 의한 북이스라엘의 멸망이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위기를 만날 때 어떻게 반응합니까?
우리 역시 자신의 방법이나 세상의 방식을 따르려는 유혹에 쉽게 빠지곤 합니다.
눈앞의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은 조급함 때문에, 하나님의 방법을 기다리기보다 세속적인 해결책을 선택할 때가 많습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잠잠히 기다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위기를 만날 때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지 않습니다.
문제에 직면하면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곧바로 행동에 옮기고, 기도하더라도 형식적인 기도에 그칩니다.
마음속에는 이미 자신의 뜻이 자리 잡고 있어,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하지 않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만약 자신의 방법이 실패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탓합니다.
원망과 불평이 쏟아집니다.
문제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며 상황을 탓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에만 의존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입니다.
삶의 문제가 닥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분의 뜻을 찾는 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태도입니다.
진정한 지혜는 우리의 지혜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데 있습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남유다의 아사랴 왕과 북이스라엘의 여러 왕들의 모습을 통해 교만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삶의 위험성을 살펴보았습니다.
아사랴 왕은 처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자신의 성공과 능력을 자만하여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다가 결국 나락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왕들 역시 자신의 방법과 세상의 방식에만 의존하며 끊임없는 반역과 살육, 그리고 멸망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판단에만 의지하며,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 대신 자신의 힘과 세상의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삶의 문제와 위기를 만날 때,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지혜와 방법을 앞세웁니까?
급한 마음에 눈앞의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고 세상의 방법을 택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의 계획이 실패하면, 하나님을 탓하고 원망하는 우리의 모습은 혹시 아사랴와 북이스라엘의 왕들과 닮아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모습은 오늘 서론에서 이야기했던 요리사들의 팀전과 닮아 있습니다.
그들은 각자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려다가 결국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실패한 이유는 최고의 실력을 갖추지 못해서가 아니라, 팀 리더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이란, 단순히 말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리더의 지시를 따르고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내 생각과 방법을 내려놓고 그분의 지시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자신의 방법을 고집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무시하곤 합니다.
그 결과로, 삶의 위기 속에서 방황하고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능력이나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인도하심을 믿고 순종하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위기가 찾아올 때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까?
그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만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와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우리의 지혜와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의 뜻을 찾으며 잠잠히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지혜는 우리의 생각과 방법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답답하게 느껴지더라도, 하나님의 방법이 가장 선하고 완전하다는 것을 신뢰하십시오.
우리의 리더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이 승리의 길입니다.
오늘 이 시간, 삶에서 만나는 모든 위기와 도전 속에서 내 생각과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구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이란 우리 삶의 팀 리더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지시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참된 평강과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의 삶의 리더이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의 지시를 따르는 삶을 다짐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