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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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기도]
기도하시겠습니다.
[찬송가1]
찬송가 96장 통 94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통성기도]
우리 이시간 예배를 위해서
선포될 말씀을 위해서
우리 마음 밭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코로나 전염병과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전쟁 속히 종식시켜달라고 기도하시고
몸이 불편한 우리 산성 식구들과 장기 결석하는 식구들 위해서 우리 나라를 위해서
주여 한번 부르짖고 기도합니다.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유럽의 발칸반도 중북부 지역인 마게도냐(빌립보로 추정)에 있을 때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들 중 신약성경으로 정경이 된 두 번째 서신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가 고린도전후서 이외에도 전승되지 않는 두 개가 더 있는데 바울이 고린도전후서에 각각 밝히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고린도 교회의 영적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권면, 그리고 교회 내 발생한 문제들에 대한 고린도 교회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면,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도 직분과 권위를 변호하고 나아가 교인들과 화목을 도모하고, 또한 교회의 질서를 확립하고자 기록한 서신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하고 약 6개월 이후에 고린도후서를 쓰게 된 배경은 고린도전서를 쓰게 된 배경에 비해 좀 더 복잡한 과정이 있습니다.
바울이 발송한 고린도전서가 고린도 교회에 도착한 이후 디모데가 고린도에 도착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파송으로 고린도를 방문했던 디모데가 고린도 교회의 심각한 상황을 에베소로 돌아와 바울에게 전하였습니다.
디모데의 보고를 들은 바울은 급하게 배를 타고 고린도에 깜짝방문을 하게 됩니다. 이를 소위 ‘근심의 방문’이라고 부릅니다. 이 방문은 3차 전도 일정 계획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오래 머물지 않고 다시 에베소로 빨리 돌아간 이유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습니다.
에베소에 도착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3차 편지인 소위 ‘눈물의 편지’를 작성하여 보냅니다. 고린도후서 2장에 눈물로 편지를 보냈다는 표현이 있을 뿐 그 편지의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정에 없던 고린도 깜짝방문을 마친 후 원래 일정대로 오늘날 터키 서부 지역인 소아시아에서 육로로 유럽의 발칸반도로 넘어갔습니다. 북쪽 지역인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가 있는 남쪽 지역인 아가야로 가는 경로였습니다. 바울은 남쪽 고린도로 가기 전 마게도냐에서 전도를 하고 있을 때 디도로부터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듣고 고린도 교회에 보낸 4차 편지이자 정경이 된 둘째 편지인 고린도후서를 써서 디도편으로 발송합니다.
고린도후서는 서신 양식으로 구분하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눕니다. 오늘 본문인 도입부와 1장 12절부터 13장 10절까지 본론부와 마지막 3개 구절인 종결부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바울이 사도로서 교회에 대한 축도, 그리고 위로와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입니다.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고린도전서의 인사말처럼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와 다른 점은 발신자로 바울 자신 이외 디모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파송으로 고린도에 갔다 왔던 디모데를 언급한 이유는 디모데의 권위를 지지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성경의 바울 서신 여러 곳에서 목회자 디모데가 그의 연소함으로 인해 교인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받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하나님의 교회라고 표현한 이유는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많았고 공명심을 드러내는 교인들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여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명확하게 밝힘으로써 고린도 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잃지 않도록 권하고자 함입니다. 또한 수신자로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라고 언급한 것은 고린도후서가 발칸반도 남부 지역 아가야의 수도인 고린도 교인들뿐만 아니라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읽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의 서신서에 자주 나오는 축도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은 성도의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 없이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사도 바울의 축도가 서로를 위한 우리의 축도가 되길 원합니다.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바울이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께서 찬송을 받으셔야 하는 이유 3가지를 말합니다.
첫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던 유대인들이 여전히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었던 시대에, 바울이 하나님은 예수님의 아버지이심을 찬송함으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알리고 있습니다.
둘째는 ‘자비의 아버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쌍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셋째는 ‘위로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내적 속성인 자비가 외적으로 나타나심이 위로입니다. ‘위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형의 뜻은 ‘곁에서 부름’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한 사람의 곁에서 그 사람을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곁에서 부르신다면 그것만큼 더 큰 위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언제나 곁에서 부르시며 위로를 베푸시는 자비의 하나님을 인지하시는 은총이 있으시길 원합니다. 4절은 위로를 받을 불쌍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줍니다.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사람을 위로하시는 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입니다.
‘환난’으로 번역한 단어의 원형은 ‘들립시스’인데 그 뜻은 ‘위에서 누르는 압착’이며 견디기 힘든 극심한 고난을 상징합니다. 견디기 힘든 극심한 고난 중에 있을 때 누가 위로의 말을 건네더라도 위로를 받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위로는 사람의 위로와 다름을 강조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능히 우리의 고난을 위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는 무엇이겠습니까? 특별한 무언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이 소개한 위로는 고난을 제거해 주심으로 주시는 위로가 아님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그리스도인에게 넘쳤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가신 고난의 길을 가야 하는 존재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겪은 고난은 복음을 전할 때 받았던 고난을 뜻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숱한 고난을 겪었습니다. 고난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고난만 있었더라면 바울이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고난이 넘친 것 같이 하나님의 위로도 넘쳤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받지만, 예수님 때문에 위로를 받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의 길을 걸어가라고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위로도 주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당하는 환난이 어떻게 고린도 교인들에게 위로와 구원으로 이르겠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예수님과 연합한 사람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 안에서 고린도 교인들과 연합한 공동체임을 밝힌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이 연합하여 있기에 주님의 고난이 바울의 고난이고 또한 고린도 교인들의 고난입니다.
또한 주님 안에서 받은 위로가 바울에게 있듯이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위로가 있습니다. 환난이 구원으로 이르게 됨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 5장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룹니다.
소망은 구원과 불가분 관계에 있듯이 환난이 구원과 관계가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함으로 당한 환난이 믿지 않는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또한 환난이 주님을 영접한 사람에게는 신앙의 위기를 성숙으로 이끌기에 성화의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즉 환난은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합니다. 바울은 고난이 사라지는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를 받음으로써 고난을 이길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피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음으로 고난을 이겨야 합니다.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바울 전도팀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지는 견고한 소망이란 고난 중에 있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위로가 넘쳐 고린도 교인들이 고난을 잘 이기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교회 내 발생한 문제들을 믿음으로 잘 풀어가는 것입니다.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8절부터 10절까지는 오늘날 터키 서부 지역을 가리키는 아시아에서 바울이 당한 환난에 대한 간증입니다. 바울이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떻게 환난 당했는지를 알 수 없으나 고린도전서 15장 32절에서 맹수의 위협을 언급한 점과 사도행전 19장에서 아데미 신상을 만드는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위협을 고려하면 에베소에서 당한 환난을 언급한 것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다른 곳에서 더 심각한 환난을 겪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바울이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된 일에 대해 간증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고린도 교인들에게 ‘나를 좀 불쌍히 여겨 달라’는 이유이겠습니까? 그래서 ‘제발 나를 사도로 좀 인정해 달라’는 의도이겠습니까? 바울이 그 이유를 하나님의 섭리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에게 환난을 주시고, 그 환난을 통해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고자 하십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십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믿도록 하시고, 그 믿음으로 죽음의 위협과 환난을 이기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환난 중에 누구를 의지해야 하겠습니까? 바울은 ‘자기를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이 환난 당할 때 본능적으로 자기 힘을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바울의 간증의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이 환난 당한 것을 자랑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환난 당해 보았지만, 환난이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들었고, 환난이 구원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인도하였고, 또한 환난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가 넘쳤음을 경험하였기에, ‘고린도 교인들이여 너희도 환난 중에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메시지입니다. 10절은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면 어떻게 될지를 알려줍니다. 그리고 바울의 소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하나님께서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을 과거 사망에서 ‘건지셨고’ 또한 미래에 큰 사망의 위협이 있을지라도 ‘건지실 것’이라는 고백과 소망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 건지실 것이라는 소망을 주고자 함입니다.
과거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만이 현재와 미래에 하나님께서 또 다른 은혜를 베푸실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받았지만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깊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일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합니다.
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간증을 마친 바울이 서신의 도입부 마지막 11절에서 중보 기도를 요청합니다. 바울이 중보기도를 요청한 이유는 중보 기도의 힘으로 바울 전도팀이 환난에서 건짐 받기를 원했고 이후 환난에서 건짐을 받게 되면 이를 본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이해하는데 새번역 성경이 도움이 됩니다.
[새번역]
11 여러분도 기도로 우리에게 협력하여 주십시오. 많은 사람의 기도로 우리가 받게 된 은총을 두고, 많은 사람이 우리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개역개정 성경에서 은사로 번역한 것을 새번역 성경에는 은총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원어는 ‘카리스마’입니다. ‘카리스마’,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데 여기서는 성도의 중보 기도로 환난에서 건짐을 받는 은총을 가리킵니다. 우리 교회도 중보 기도를 권합니다. 중보기도회가 있습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는 교우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해 보면, 자신의 어려움도 잊게 되고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자신이 기도했던 교우가 어려움에서 벗어난 소식을 듣게 되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누구 때문에 감사하겠습니까? 나 때문에 감사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어려움에서 건짐을 받은 그 교우님 때문에 중보 기도한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 교회 교우님들도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많이 어렵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구역 식구들과 봉사팀원과 중보기도를 요청하신 분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다.
중보 기도 역시 주님의 손과 발이 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지금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가진 것 중 어떤 것이라도 주님이 쓰시겠다고 말씀하실 때 기꺼이 내어드리길 원하신다면, 그리고 비록 가진 것이 없어 무엇을 드릴지 고민하고 있으시다면 중보 기도의 마음을 주님께 드리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그 중보 기도로 환난 중에 있는 성도님이 회복되는 은총이 임할 줄 믿습니다.
[설교후 마침 기도]
[찬송가2]
찬송가 375장(통 421장) 나는 갈 길 모르니
[기도제목] 후
“오늘은 특별히 안하임 사모님을 위해서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 이시간 주여 한번 더 부르짖고 각자 주신 은혜 붙잡고 기도하시다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