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3:1-3 하나되는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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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되는 공동체
사도행전 13장 1-3절
텔레비전을 보게 되면,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여운을 남기는 영화나 드라마들을 가끔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서 여러 다른 주제로 표현되지만 실력도 없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무엇인가를 이루는 이야기들을 듣게 됩니다. 그것이 스포츠이든, 음악이든 혹은 전쟁이야기이든지 각각 독특한 사람들, 결코 한 팀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룰 수 없는 그 무엇을 해 내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우리는 감동을 받게 됩니다.
예전에 개봉했던 영화 중 “국가대표”라는 영화를 아십니까? 2009년에 스키점프 대표선수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흥행을 이루고, 그 두 번째 이야기로 아이스하키 여성 대표팀을 소재로 다시 만든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각각의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모여서 불가능한 일들을 해내는 영화입니다. 이런 영화들을 보면 우리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거나 마음이 흐믓해 집니다. 왜냐하면,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서 한 공동체를 이루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로 인해 힘겨워합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방식과 말하는 방식이 다르고, 일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필수적이고 단순하다고 하는 먹는 것만 보아도 어떤 사람은 고기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채소를 좋아하고 또 어떤 사람은 생선을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은 짠 걸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단 걸 좋아하고, 또 어떤 사람은 싱거운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만나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제일 힘든것이 바로 점심식사 고르기 입니다. 정말 사람들은 너무 다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각기 제 소리와 목소리를 낸다면 아름다운 팀을 이루지 못하고 다른 길로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처럼 함께 아름다운 그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어차피 가정이건, 교회건, 직장이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은 문제가 있을 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러니 적당히 체념하고 살아가는 것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안디옥 교회를 보면, 그들은 오히려 서로 달라서 팀을 이룬 것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만났는데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저렇게 다른데도 오히려 하나가 되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 어떤 일들을 이루어내고 있었을까요? 사도행전 13장 1-3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이 구절을 보면, 바나바,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 사울이라는 다섯 명의 지도자가 나옵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또 얼마나 다른 사람들이었을까요? 먼저 바나바는 구브로라는 섬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시므온은 북아프리카 쪽에서 온 사람이며, 루기오 역시 구레네 사람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북아프리카 쪽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나엔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이라고 하니, 정통 유대지역 사람이며, 사울은 다소 출신입니다.
안디옥이라는 교회가 세워졌는데 이 교회 지도자들의 출신은 너무나 다양합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면, 경상도 출신, 제주도 출신, 전라도 출신, 강원도 출신 쯤이 모여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출신만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나바는 구브로 출신으로 유대인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니게르’라는 표현을 ‘니그로’로 추측하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해방된 노예 흑인 정도로 추측하기도 합니다. 루기오는 북아프리카 출신으로 헬라화된 유대인으로 봅니다. 마나엔은 좀 독특한 데,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으로 헤롯과 어릴 때 함께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란 아이 즉 헤롯왕가와 아주 가깝게 지낼 가능성이 많은 인물입니다. 마지막 사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인물입니다.
이렇게 문화적 차이, 인종적 차이, 과거로부터 오는 차이, 학력의 차이, 경제적 계급의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 모든 다양한 차이를 떠나서 하나의 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어디에도 하나가 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들은 하나가 되었고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냈습니다.
저는 남전도회 헌신예배가 그런 의미라 생각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생각하는 것도 다 다릅니다. 하지만, 하나가 될 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가 오늘 우리 가운데 일어나길 소원합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안디옥 교회는 주후 47년에서 주후 57년에 이르기까지 10여 년 동안 바울의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후원했던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의 이야기는 사도행전 18장 22절에 기록되고 나서, 바울서시인 갈라디아서에 언급된 다음, 더 이상 나오지 않아서 별로 유명한 교회가 아닐 것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이 교회는 기독교회 역사에 매우 중요한 교회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안디옥에서 마태복음이 쓰여졌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이곳에서 누가복음과 갈라디아서가 쓰여 졌을 가능성이 많은 교회이기도 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앞에서 다루었듯,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 몇 사람이 와서 복음을 전함으로 안디옥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서너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시작한 것입니다. 그 후 다섯 명의 지도자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나중에서 중요한 성경들이 쓰여지는 장소가 되었고, 이방인 전도의 전초기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안디옥 교회는 순교의 중심지가 됩니다. 주후 200년 경 사도요한의 제자였던 ‘이그나시우스’가 40년간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안디옥 학파가 이 지역에서 나왔으며, 이 학파에서 교부였던 ‘요한 크리소스톰’과 ‘데오도르’ 같은 유명한 교부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주후 390년 쯤 이르러서는 안디옥이라는 도시는 거의 기독교화 됐습니다.
주후 45년 경에 세워진 교회가 주후 390년이 되었을 때는 역사에 이런 엄청난 흔적을 남겨놓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초기에 이 교회에 있었던 다른 다섯명의 지도자가 하나가 되지 않았다면 이런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서로 달라서 정말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명제를 실증하는 역사적인 교회를 발견합니다. 이 사람들 사이에 있었던 엄청난 차이점과 갈등이 있었음에도 오히려 그들은 화합을 이루어 조화롭고 하나되는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과 교회들이 고민합니다. 어떻게 하면 조화로운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화로운 직장을 이룰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화로운 교회의 하나됨을 이룰까? 고민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합니다. 먼저 예의를 갖추고 서로 존중해 주라고 이야기 합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 우리는 같은 가족이라고 혈육에 호소합니다. 그러나 그 역시 별 효과가 없습니다. 또 사명문이나 표어를 걸어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근본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전도회가 될 수 있을까요?
이런 상황에 있는 우리에게 안디옥 교회가 주는 조언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13장 2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그들이 서로 다른데도 불구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안디옥 교회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주를 섬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쉽게 표현하면, 주님을 위한 펜클럽이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펜클럽에 들어가 있으면 그 사람의 뜻에 따라 그 사람을 위해서 모든 걸 하지 않습니까? 공연이 있으면 며칠 전부터 공연장에 가서 줄을 서고, 몰려가서 환영하고 격려해 줍니다. 안디옥 교회는 어떤 면에서 팬클럽이었습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는 중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공통분모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팬이었습니다. 성경적으로 이야기하면 ‘우리는 그의 종입니다. 그의 뜻이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라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누가 주인인지 알았습니다.
이러한 의식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소원합니다. 이러한 의식이 있을 때, 우리는 변화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결혼한 남녀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배경의 차이, 성격의 차이, 의사소통의 방식의 차이 등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니 두 사람의 다른 것들을 조정해 줄 수 있는 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 가정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문제가 터졌을 때,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목적을 제시해 주시고 인생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분이십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방식을 이야기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저 어떤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과 아내가 그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되는 것입니다. 갈등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교회 안에서 자꾸 싸움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그것은 누구가가 주인 행세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한 분 뿐이십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그 문제는 언제든지 해결 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르지만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팬클럽이 되어 한 주인을 섬기는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그 다음엔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이렇게 다른 우리가 모인 이유가 뭘까? 이렇게 다른데 우리가 왜 모였을까?’ 하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조언은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있는 것에는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주를 모시고 모인 우리는 그 뜻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다섯 명의 지도자는 2절에 보니깐 “주를 섬겨 금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왜 금식했을까요?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찾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정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가정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부모면 부모로서 가정을 생각해보고, 자녀라면 자녀로서 가정에 대해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우리 가정이 왜 있습니까? “그냥 뭐, 아파트 평수 좀 늘려나가고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입니까?” 여러분의 가정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어떤 삶을 추구하고 있으며,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우리 가정이 어떤 가정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 그 목적을 안다면 그 목적에 따라 맞추어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가정은 역사나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는 왜 모였을까요? 도대체 우리는 왜 매주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까? 우리 교회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함께 모이면 그리고 한 주인을 섬기면 반드시 우리는 이것을 질문해야 합니다. “왜 이렇게 다른 사람이 모였는가? 그 뜻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뜻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일 할 수 있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이러한 진지하고 깊은 고민을 한다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신 이유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늘 우리의 시각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뜻이 있기에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같이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주인이 주신 다양한 특성들을 어떻게 살려낼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우리 교회는 독특한 은사들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교회입니다. 다양한 성격과 다양한 은사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교회입니다. 왜 하나님은 여기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모이게 하셨을까요? 하나의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됨은 가능합니다. 하나의 분명한 목적이 있다면 여러 다른 사람들이 모일수록 그 공동체는 풍성해 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안디옥 교회를 보면서 많은 도전을 받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사회학적으로도, 심리학적으로도, 인류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성립할 수 없는 집단입니다. 경영학적으로 보아도 그럴 것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환경에서 온 사람들이 무슨 일을 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가 주후 70년이 지나 사라져버린 이후에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끼쳤던 교회로 교회사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가정 안에서 수많은 갈등으로 고민하기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또 교회에서 많은 어려움을 경험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필요한 조언은 예의나 갖추라거나 또 어떤 배타주의를 가지고 서로 연결시켜보라거나 또 사명 선언문 같은 것을 써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방식은 약간의 도움은 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 중심에는 “주”라는 단어가 있어야 합니다. ‘그 분을 정말 섬기고 있는가, 그 분의 뜻을 정말 찾고 있는가, 그분의 뜻을 함께 이루고 있는가’를 이것을 늘 고민하고, 늘 생각하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남전도회 임원과 회원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축복기도>
지금은 세상 끝날 까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함께하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감화, 감동, 교통하심이 안디옥교회처럼 주님을 섬기며, 주님과 함께 하나되고 주님과 함께 살아가기 원하는 사랑하는 주의 자녀들 머리위에, 가정과 직장과 삶의 모든 영역위에, 특별히 남전도회 위에 삶과 가정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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