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5-6 평신도는 없다. 충성된 증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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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는 없다. 충성된 증인으로
요한계시록 1장 5-6절
우리가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배짱” 이라는 단어입니다. “그 친구 배짱이 있어” 라고 말할 때는 보통 그 사람이 실력이나 확신을 가지고 패기있게 살아 간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배짱을 부리다”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잘못된 생각 혹은 볼썽사나운 모습을 가리킬 때 사용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 입시가 중요하다 보니 수험생들이 배짱을 부리기도 하고, 문제아들도 배짱을 부리고, 정치인들도 배짱을 부린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 역시 매우 심각한 배짱을 부립니다. 누군가가 “성경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하나님은 어떤 분이야? 예수님은 어떤 분이야?” 질문하면, “난 목사도 아닌데, 내가 어떻게 알아?”하고 답변합니다. “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그렇게 살아도 되니?” 라고 물으면 “내가 목사도 아닌데, 어떻게 나한테 그런 기대를 해?” 하고 반응합니다.
많은 성도들은 성경을 모르는 것에 대해서 배짱을 부립니다. ‘자신은 가르침을 받을 대상이지, 신학도 공부하지 않았는데 성경을 어떻게 알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영적인 문제에서도, ‘내가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도 ‘교회 사역은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는 사역자들이 하는 것이지, 난 안해도 괜찮다’ 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주로 위로와 축복을 받을 대상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축복하거나 기도해 주지 않습니다.
이것은 세상 속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교회에는 교회의 원리가 있고 세상에는 세상의 원리가 있기 때문에, 목사님이니깐... 우리처럼 세상 속에서 살지 않으니까... 그렇게 이야기 하는 거라고... 성경에서 말하는 건 삶에서 적용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러다보니 세상에서는 세상의 법대로 살고, 교회에서도 세상 사는 법대로 사는 현상이 오늘날 교회를 뒤덮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생각들이 생겨나게 된 것 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초대교회에서 가장 중요했던 사상은 “예수 믿으면 모든 사람이 차별이 없다” 였습니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먼저 쓰인 갈라디아서 3장 2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에, 인종적 차별, 사회적 차별, 남녀의 차별까지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중심 사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문화를 살펴볼 때, 이것은 혁명적인 사상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고, 이어서 병합하면서 교회 속으로 권력적인 사고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 중세에 이르러, ‘어떻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똑같을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영적인 그리스도인과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의 개념이 나눠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제와 수도사, 수녀들은 영적인 그리스도인이고, 세상에서 장사하고 농사짓는 사람들은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이원화 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개념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뿐만 아니라 구약에 나오는 제사장과 일반 백성의 역할 구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헌신하는 사람들은 제사장 같이 사제가 되어야 하고, 일반 백성들은 사제의 이끌림을 받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수천년 동안 기독교 역사에 뿌리 깊이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 핵심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기독교 윤리는 성직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된다” 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분명히 우리 모두가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요한계시록 1장 5-6절을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6절은 분명,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나라’(바실레이아)는 단수인데, ‘제사장’(히에류스)은 복수로 쓰여있습니다. 다시말해,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가 되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이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 모두가 제사장이 되었는지 5절 끝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여 주셨기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자기정체감의 핵심이 되는 표현입니다. 오늘 여전도회 연합회 헌신예배를 드리는 여기 모든 모든 자들이 가져야 할 정체성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예수의 피로 인해 죄에서 해방된 사람들입니다. 이전에는 소망이 없던 자들이었는데,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사도요한에 따르면, 이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제사장들이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사도 베드로도 이렇게 증언합니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는 우리 모두가 택함을 받은 백성이며,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19장 5-6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으로 넘쳐나던 세상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특별히 택하셔서 제사장이자 거룩한 민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제사장이 무엇입니까? 제사장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려주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에 하나님을 보여주는 사명을 부여하신다.” 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이스라엘은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한 민족이 무엇입니까? 거룩한 민족은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에 보여주는 민족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을 향한 명칭들을,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이란,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서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그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전에는 어둠 가운데서 있어서 하나님을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며,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부여되었습니다. 믿으십니까?
사도바울 역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사장들, 즉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다”는 사람들이라고 우리를 소개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설 수 있는 딱 한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설 수 있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제사장이 오늘날의 목사라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이단사설입니다.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과 우리 중간에 설 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사상입니다. 우리를 대신한 제사장 같은 존재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하신 것, 우리를 이 은혜의 들어오게 하신 것,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적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샤머니즘이 문화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의 종교적 심성에도 샤머니즘 요소가 깔려있음을 보게 됩니다.
‘샤먼’은 무당을 뜻합니다. 인간과 신 사이를 매개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 우리는 어떤 신령한 은사를 가졌거나, 성직자, 목사님들, 사역자들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하나님의 뜻을 중개하고, 하나님의 복을 끌어오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고, 인간의 뜻을 하나님께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아무런 중보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오직 유일한 중보자의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히브리 기자는 히브리서 10장 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구약에서 지성소는 1년에 한번 대제사장만이 사람들을 대표해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곳에 우리가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합니까? 누구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이서...’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제사장들이 되어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세상에 알리고, 그들을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게 하는 귀한 사명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제사장들입니다. 목사만이 아니라, 특정 은사를 가진 사람들 뿐 아니라, 모든 성도가 제사장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이끄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성도로서, 제사장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알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 5절에 “또 충성된 증인으로...” 여기서 충성은 헬라어 ‘피스토스’ 인데, 믿음, 신실함, 신앙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 충성될 수 있습니까?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충성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은 어떻게 생길까요?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신 예수를 알아가는데서 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 놀라운 일을 하신 분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예수를 따르는 삶을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를 알아갈수록 예수를 따르는 삶이 우리 속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을 통해서만 예수를 알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을 이해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뜻을 우리 삶의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할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바른 교리, 바른 성경관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살아 있는 교회에서 성경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대화하고 토론하는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길 소원합니다. 제대로 순종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시대를 분별하기 위해, 이러한 일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길 소원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수록 우리는 겸손해지고 순종하는 법을 배워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는다면 결코 교만해 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알아갈 때, 충성된 증인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따르게 해야 합니다.
본문 5절에서 “충성된 증인”, 증인, ‘마르티스’는 ‘목격자, 순교자, 확증, 선포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자신이 깨닫고 따르는 예수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다른 사람들도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성도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이 제사장의 역할입니다. 제사장은 자신이 하나님께 예배 드릴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왜? 목사 혼자 전도해야 합니까? 왜? 특정 헌신된 사람만 전도해야 합니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광스런 일입니다. 모든 성도가 해야할 중요한 일입니다. 어떻게 전할지 모른다면, 기독교를 소개하는 다양한 책들을 먼저 읽어보고, 그것들을 소개해 주어야 합니다. 요즘은 제자훈련을 마치 구석기시대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예수로 말미암아 제사장들이 된 자들이 다른 사람이 준비된 시키고, 이끌어주는 일은 시대를 불문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늘 누려왔던 일입니다.
성도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복음을 전하고, 이 복음에 걸맞게 살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입니다. 나를 통해 주변의 하나님의 복음이 선포되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세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세워야 합니다.
증인의 또 다른 의미는 “함께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제사장으로서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을 준비시켜나간다면,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세워집니다. 진정한 성도는 하나님의 공동체를 함께 세우는 것입니다. 함께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공동체는 단순한 조직이 아닙니다. 공동체는 예수를 주인으로 삼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아 사랑의 관계를 맺는 이들이 모인 곳입니다. 조직은 나중에 필요합니다.
사랑이 먼저에요. 그러므로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회장 선출하고, 회계, 서기를 뽑은 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세우는 일입니다. 우리의 전도회가 이와 같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사명이 아니라, 사랑이 먼저다. 베드로와 예수님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교회 공동체는 조직과 행정이 아닙니다. 언제부턴가 교회는 조직과 행정을 만들기 시작하여, 사랑하는 일에는 매우 서투른 조직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진실한 소통이 필요한데, 자신의 속마음을 진실하게 표현하지도, 그런 마음을 잘 경청하고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공동체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서로의 약점을 지켜주는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공동체를 위해, 서로 배우고, 가르치고, 용납하고 용서하는 공동체가 만들져야 합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차별 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예수님이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그렇게 사랑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사랑한다면, 우리 안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여전도회가 이와 같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사역에 동참해야 합니다.
배짱으로 잃어버린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예수님은 지금도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하기를 원하시고, 허무에 굴복하고 있는 만물을 교회를 통해서 충만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까요? 먼저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어떻게 이 제사장 역할을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 자신의 직업이 세상을 회복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어떻게 적용될까?’ 질문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속적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일주일 내내 보내는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살지 고민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더 나아가 이런 제사장들이 모여, 하나님 없이 깨어진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더 구체적으로 우리 공동체가 뿌리 내리고 있는 지역에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우리 지역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을지’ 질문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들이 스스로 제사장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그들로 이루어지고 이끌어지는 공동체가 그들이 위치한 지역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모습을, 그래서 제사장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하나님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도이다. 믿습니까?
한 두사람 때문에 흔들리는 교회가 아니라, 성도들이 중심에 자리를 잡고 누구도 흔들 수 없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도만 있을 뿐입니다. 성도들이 성도가 되는 날, 하나님의 교회는 교회로서의 풍모를 되찾게 될 것입니다.
<축복기도>
지금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감화 감동 교통하심이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충성된 증인으로 그리스도를 따라가고, 알아가고, 증인된 삶을 삶아감으로 공동체를 세워가기를 소원하는 사랑하는 여전도회 회원들 머리위에, 각 가정과 삶의 모든 영역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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