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5:11-32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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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누가복음 15장 11-32절, 로마서 8장 15절
그리스도인에 대한 시리즈 설교를 한지 벌써 몇 달이 지나갔습니다. 저는 오후예배 시간에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우리가 받는 복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기억하십니까?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받아들이셨다”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셔서 우리 죄의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선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그 이름을 믿는 사람’이란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 즉 그분이 어떤 분이시고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 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특권입니다. 왜? 엄청난 특권입니까? 이것을 로마서 8장 15절은 우리에게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이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입양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양자의 영”을 다르게 표현하면 “입양해주는 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입양되어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원래 고아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고아 같은 우리를 입양하셨습니다. 그냥 입양한 것이 아니라, 아주 모진 대가를 지불하시고 우리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20장 17절에서 부활의 사건을 목격한 막달라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내 형제들에게로 가서 이르기를 내가 나의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하여라”
예수님이 “나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던 그 하나님을 우리도 “우리 아버지, 우리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고아였던, 버림받았던 노예와 같았던 우리를 불러 감히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것,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신 것, 이것이 바로 놀라운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기를 소원합니다. 여기까지가 지난 시간 나누었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두 번째 축복은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특별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별 볼일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더 이상 평범한 사람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셨고, 그 의미 때문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다 특별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원래 우리는 그저 나뭇가지 같은 별 볼일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별 의미가 없는 가지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포도나무에 붙은 존재가 되었기에 연약해 보이는 가지에서 포도 열매가 맺힙니다. 무슨 말입니까?
가지 혼자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지만 포도나무에 붙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람은 우리의 수액도 아니고, 우리의 영양분도 아닙니다. 뿌리에서 공급해 주는 수액과 영양분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원래 우리는 지혜도, 명철도, 용기도, 순수함도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지혜와 명철과 용기와 순수함을 얻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그분으로부터 오는 이런 것들이 우리 것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믿습니까?
이 사실을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을 쉬운 성경으로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하게 그분의 손으로 빚으신 작품입니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를 진정으로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으로 바라보고,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을 정말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으로 보기 시작한다면, 우리 인생은 바뀌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스스로를 불량품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너는 나와 특별한 관계에고 내가 특별히 만든 작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할까?, 왜 저 사람은 저렇게 말할까?”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상처를 주는 줄도 모르고 상처를 줍니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지금도 완성되고 있는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삶을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맥스 루케이도의 [너는 특별하단다] 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아주 잘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종교를 뛰어넘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책입니다.
여기에 작은 나무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잘 생기거나 멋있는 사람에게는 별점을, 재주가 없는 사람에게는 점표를 붙어주며 살고 있었습니다. 주인공 펀치넬로는 아무런 재주가 없어 온 몸에는 점표만 가득했고,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엘리 아저씨를 만납니다. 엘리 아저씨는 그들을 만난 분입니다. 그 엘리 아저씨가 주인공 펀치넬로의 상황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를 만들었고, 너는 아주 특별하단다. 나는 결코 좋지 못한 나무 사람을 만든 적이 없어” 그리고 펀치넬로에게 붙어 있는 점표가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상처 때문에 고통당하고 계십니까?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괴로움이 찾아오십니까? 하나님께서 그 모든 상황을 사용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특별한 존재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입니다. 깨진 인생, 회복되기 힘들어 보이는 인생을 하나님이 만지십니다. 하나님이 고치십니다. 하나님이 놀랍게 회복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알았던 사도바울은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도 바울에게는 어떤 과거가 있었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작은 일로 여길지 모르지만, 사도 바울에게는 예수님을 핍박했던 과거가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그리스도인을 핍박했고, 그의 손에 사람들이 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기독교 역사상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바꾸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곳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딤전 1:12-13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쉬운성경에서는 “나는 핍박자요, 훼방자였지만,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를 일꾼 삼아주셨습니다”
더군다나, 바울은 이 편지를 쓰고 있는 현재,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는 매여 있는 상태였지만, 그가 현재 겪고 있는 어떤 상황도 “나에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께 특별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과거가 있습니까? 어떤 슬픔과 실패가 있는지, 좌절해서 다시 일어설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어떤 어려움들이 있습니까? 저는 알지 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과거가 됐든 현재가 됐든 그런 어려움과 아픔들로 작품을 만드시는 분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특별한 존재임을 기억하시 바랍니다. 그래서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받는 세 번째 축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공동체에 속했다”는 것입니다. 고아와 같이 버려진 존재였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속했음을 발견하고 난 다음 우리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만나고 함께 신앙생활하고 교제하는 그 모든 사람들 역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사람들입니다. 이전에 우리는 다 고아처럼 아버지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고아들이 모여 사는 보육원 같은 곳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원장이 되셔서 우리를 입양하셨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19절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본문은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족으로 살아가도록 만드셨습니다. 가족이 되었다는 것은 서로 보살피고 사랑하는 특권을 누리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밖에서 거칠게 구르던 사람들이 이 가족으로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된 아이들은 심상치 않습니다. 과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이 안에 들어와서도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취미가 다르고,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식습관이 다르고, 어쩌면 나와 맞는 부분이 하나도 없을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을 볼 때마다, “어떻게 교회에서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어!” 라고 생각하지 말고, ‘저 사람, 참 힘든 과거가 있구나’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아였다가 하나님의 가족이 된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형편없이 살았지만 아버지 덕에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 사람들이 모인곳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가족의 특징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7절은 교회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가족이 사랑하고 보살피는 관계라면 그리스도의 몸은 유기체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몸의 한쪽 부분이 떨어져 나가면 심각한 어려움을 겼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가 함께 속해서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같이 움직여나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어떤 사명과 목적을 향해서 함께 걸어가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개인주의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개인주의적 영성을 갖습니다.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이렇게 홀로 싸우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몸’의 소중함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각 지체는 다른 모양과 다른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안을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는 온갖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온갖 다양한 사람들이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시를 받고 살아갈 때, 우리는 주님이 이끄시는 뜻에 따라, 각각 다른 역할을 감당하면서 그 사명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것이 몸이 갖는 비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은 죽은 고깃덩어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서로 연결되어 함께 일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유기체를 뜻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가족, 그리스도의 몸인 하나님의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까? 에베소서 2장 21-22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우리를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거하실 처소’가 된다는 말입니다. 주님 안에서 함께 자라서 성전이 된다고 합니다. 성전이 어떤 곳입니까? 구약에 성전은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제사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전’이라 할 때, 이것은 ‘예배 하는 공동체’를 말합니다.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정말 그분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예배하는 공동체를 말합니다.
진정한 예배가 무엇입니까?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흠모하는 것, 그분께 집중하는 것, 그분에게 몰입하는 것입니다.
이 공동체는 다 하나님이 너무 좋아서 모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애기라면 너무 좋아서, 하나님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함께 바라보고, 함께 즐거워하고, 그분의 덕을 기리는 사람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 것을 사모하고 누리는 사람들,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할 뿐 아니라, 날마다 그 임재가 온전하게 나타날 날을 사모하는 사람들이입니다. 이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우리는 이런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런 존재가 되기 위해서, ‘함께 지어져가고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우리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되고 함께 지어져 영원에까지 함께 가도록 하셨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을 우러르고, 바라보고, 사모하고, 사랑하고, 나중에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구나’ 하면서 그분의 아름다움을 감탄하는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하나님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며 기뻐하고 예배하며 살도록 하나님이 만들어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받는 축복, 즉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특별한 존재가 되었고,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고,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령의 전이라는 것, 이 모든 것은 이미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언제 이루어졌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께 속할 때, 우리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때 이루어졌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을 알았던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제 사도바울은 감격합니다. ‘이전 것은 다 지나갔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구나.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받아들여졌구나. 이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특별한 존재구나.
사도바울은 이것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한마디로 요약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말한 이 피조물을 영어로 하면 new creation입니다. 이것은 새 창조에 가깝습니다. 즉, 각각의 피조물을 뜻하기보다는 새롭게 창조된 만물 전체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놀라운 것은 성경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 안에 있게 된다면, 더 이상 지나가버린 옛 시대에 속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에 속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에 속하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을 진심으로 믿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속하게 되었고, 이미 임한 그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고린도후서 5장의 말씀입니다.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렇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은 얼마나 큰 불행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받아들이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미워하실 것야’ 라고 믿습니다. ‘난 그리스도 안에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난 별볼일 없는 존재야’ 라고 믿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에 속했다’가 아니라 ‘나는 혼자야’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해했든 하지 않았든, 느끼든 느끼지 않든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버리시는 모진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그의 백성이고 그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함께 하심을 경험하기를 소원합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이 받는 축복을 누리며 사시길 소원합니다.
함께 찬양하기를 소원합니다.
<주 안에 우린 하나>
주 안에 우린 하나 모습은 달라도 예수님 한 분만 바라네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를 격려해 따스함으로 보듬어 가리
주님 우리 안에 함께하시니 형제 자매의 기쁨과 슬픔 느끼네
내 안에 있는 주님 모습 보네 그분 기뻐하시네
주님 우릴 통해 계획하신 일 부족한 입술로 찬양하게 하신 일
주님 우릴 통해 계획하신 일 너를 통해 하실 일 기대해
주님 우리 안에 함께하시니 형제 자매의 기쁨과 슬픔 느끼네
내 안에 있는 주님 모습 보네 그분 기뻐하시네
주님 우릴 통해 계획하신 일 부족한 입술로 찬양하게 하신 일
주님 우릴 통해 계획하신 일 너를 통해 하실 일 기대해
<요약>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받은 축복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다는 것
<축복기도>
지금은 세상 끝날 까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함께하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감화, 감동, 교통하심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특별한 존재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에 속하게 하셨다는 이 놀라운 축복을 깨닫고 경험하기를 원하는 사랑하는 주의 자녀들 머리위에, 가정과 직장과 삶의 영역위에, 나라와 이 민족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계실 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