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6:13- 20 우리가 꿈꾸는 교회(교회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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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꿈꾸는 교회(교회란 무엇인가?)
마 16:13-20, 엡 1:15-23
2022년 새해가 벌써 두 주가 지나갑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올 해는 작년보다 좋아질 거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19 여파를 딛고 수출이 증가할 거라는 전망도 있지만, 코로나 재 확산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그로 인해 서민 물가는 점점 높아질거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세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작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발언했다고 합니다.
“직장을 잃고 재취업의 길을 못 찾는 실직자들, 고용 불안과 소득 감소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코로나의 직격탄 속에 월세 내기도 버거운 자영업자들, 알바 일을 찾기도 힘든 대학생들과 청년들, 무거워진 육아 부담으로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들,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많은 국민들이 아직도 코로나의 어두운 터널 속에 힘겹게 서 있습니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어려운 것은 사실인거 같아 보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교회마저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언론에서 연일 보도되는 일들을 들을 때면 우리는 더욱더 혼란스럽습니다. 최근 종교 신뢰도 조사에서 교회 안 나가는 신자가 100만 명이 된다고 보도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종교 이탈률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시에 그 집단에 불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지난 10년간 기독교인의 숫자는 내리막이었습니다. 예장합동, 예장통합, 예장고신, 감리회, 기장, 기성 6개 교단이 지난 10년 동안 감소하기 시작하여, 2021년과 2020년 대비 39만 명이 줄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 수치는 올해 들어 더 빠르게 진행될 거라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입니다. 이러한 통계는 현재의 교회가 어떤 모습인지 우리에게 잘 알려줍니다.
게다가 언제부터인지 한국에서 기독교와 목사는 세상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더욱이 코로나 시기 교회의 대처반응을 보며 실망하는 모습들을 여기저기에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참으로 불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합니다. “내가 믿는 이 종교가 과연 맞는 것일까?”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교회의 무용론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지금 교회는 심각한 위기 가운데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저기에서 교회를 향한 좋지 않는 소문과 모습이 보인다 할지라도 세상의 소망은 교회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이유는 주님이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우리가 정말 바라고 꿈꾸는, 기대하는 교회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우선, 이러한 질문을 해결하려면, 교회 안에 있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 주고 있습니다. 레위기 18장 2-4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함께 찾아서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내 법도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 18:2-4
언뜻 보기에도 반복적으로 나오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따르지 말며, 행하지 말며”입니다. 인간은 무엇을 따라 사는 존재들입니다. 어떤 이들은 교육을 통해, 어떤 이들은 의식적으로, 어떤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선택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진 긴 여정에 초대하시면서, 그들에게 애굽과 가나안의 풍습을 따라 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애굽과 가나안의 풍습이 무엇입니까? 당시 고대의 이집트는 다신교로, 그 중에서도 태양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은 물질과 풍요의 신 바알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애굽과 가나안의 신들을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애굽과 가나안 신들은 얼마든지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 신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기쁨을 유지할까? 어디에 행복이 있을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결국 그들은 자기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종교를 의지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애굽과 가나안 종교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따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신을 조작해 물질적인 축복을 받아 내지 말고, 세상의 통치권 밑에서 안전과 번영을 누리지 말고, 세상의 길 대신,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따라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장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특별한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민족보다 규모도 작고, 남다른 자질을 가진 것도 아니고, 역사적으로 뿌리도 깊지 않았습니다. 문화유산도 없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민족, 어떻게 보면 열등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이 세상 대신 하나님을 따라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특별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이 특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믿으십니까? 이에 성경은 계속해서 이것을 강조하고 반복합니다. 레위기 18장 2,4절에서도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라고 하셨고, 19장 2절에서도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10장 2절에서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여러 나라의 길을 배우지 말라 이방 사람들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항하여 “너희는 누구인지” 계속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를 따라야 할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신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이 백성이고 자녀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을 부르신 하나님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동일한 말씀으로 부르십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인 “너희가” 가 “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세상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새 시대가 왔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4장 17절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복음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실 때와 동일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역시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 평민 이하인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온 우주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약하고 어리석고 보잘 것 없는 우리들에게 주님이 오셨고, 주님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이제는 더 이상 세상을 따라가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신을 조작해 물질적인 축복을 받아 내지 말고, 세상의 통치권 밑에서 안전과 번영을 누리지 말고, 세상의 길 대신 하나님을 따르는 자” 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참 모습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이러한 자들이 모인 곳, 세상을 따르지 않고 주님을 섬기겠다고 모인 그 곳, 그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교회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간다. 교회에 다닌다.’ 하고 이야기 할 때, 그 교회는 건물을 의미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성전이라 표현합니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를 이야기할 때, 헬라어로 교회를 ‘에클레시아’(ejkklhsiva) 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신약에 114번 나옵니다. 그러나 이 교회인 ‘에클레시아’를 이야기할 때, 단 한 번도 건물을 지칭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 단어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들의 모임이나 집회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모임을 이야기합니다. 더 정확히는 주일에 모여 예배드리는 사람들, 또는 주일예배 집단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이후,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여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는 오합지졸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모두 도망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고, 성령님을 만나고, 목숨을 바쳐서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받아드리는 공동체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교회들은 고린도교회, 갈라디아교회, 에베소교회들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탄생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분의 죽음, 그리고 부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 하신 주님은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기다리며, 주님 다시오실 때까지 예수를 주로 고백한 사람들의 모임,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시작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입니다.
우리가 이같은 사실을 믿는다면, 받아들인다면, 보잘 것 없는 우리들을 인도하시고, 특별한 존재로 우리를 부르신 주님을 어떻게 따라야 할까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에베소서 1장 15-16절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면서, 감사내용을 적어 보냈습니다. 사실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도 거의 동일한 방법으로 감사내용을 적어 보냈습니다. 이 감사 내용의 핵심은 복잡해 보이는 것 같지만, 너무나 간단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모습들을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 구원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죽고 난 다음 영생을 얻게 되는 나중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예수를 따라가며,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다가, 우리 인생이 끝나는 그 날, 부활하신 주님이 계신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우리 속에서 이루어져가는 현재진행형인 것입니다. 예수를 따라가며, 예수를 닮은 것입니다. 무언가를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 활동을 하고 봉사를 하고 선교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존재, 성품, 성격, 가치관, 내면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닮아가면서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세우신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존재와 행함 모두를 예수님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우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것이 교회 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와 같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럼 우리가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에 대해 배워야합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에 집중해야 합니다. 어떻게 집중합니까?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사복음서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는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자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우리 주님이 누구를 만났으며, 어떠한 일들을 하셨는지,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기록해 놓았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세요.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세요.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2천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왔던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를 닮아 갈 것인가?’ 였습니다. 그들은 이 질문을 수없이 고민하며 살았던 자들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닮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님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님 앞에서 설 수 있을까?’ 자기 성찰과 깨어짐이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내 인격에서, 내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조금이라도 드러나야 합니다.’ 이것을 고민하고 묵상하길 소원합니다. “예수 닮기를, 예수 보기를 예수만 높이길 내가 원하네. 내 평생 소원, 예수 닮기를 예수만 닮기를 내가 원하네”(찬양) 그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며,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길 소원합니다.
교회는 이런 곳이어야 합니다.
둘째는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충성해야 합니다.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에베소서 1장 22-23절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이니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몸의 머리라 말씀합니다. 머리의 지시를 받지 않고 손발이 마음대로 움직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합지졸이 될 것입니다. 머리 따로, 몸 따로 논다고 한다면, 그건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는 유기적이고 생명적인 연합입니다. 결코 나뉠 수 없고, 분리되어서는 안 되는 공동체입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ㅇ,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결국 우리는 예수님과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모든 에너지와 힘을 공급받는 연합의 관계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지체이고 주님과 우리는 결코 분리 될 수 없는 존재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갈 뿐 아니라, 머리이신 그분께 충성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충성이 무엇입니까? 충성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해야 따라 갈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좋아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르고, 흠이 있고,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그들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흠이 있어도 그 흠을 품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 함께 이룬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원래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자라가는 곳입니다. 예수님도 흠 많은 자들을 사랑해주셨습니다. 우리도 교회에서 그것을 배우고 사랑의 훈련으로 교회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교회는 서로 지체된 자들을 사랑할 뿐 아니라,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계신 뜻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교회가 하나님 뜻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묻고, 또한 그 뜻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교회 공동체 속에 드러낼 것인지 고민해야합니다. 교회가 의사 결정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과정을 가질 것인가?’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 교단에 유명한 한 목사님은 교회의 많은 회의를 시작할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회의를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 모인 이 모임은 회의가 아닙니다. 회의라는 성격과 모양은 갖추고 있지만, 이것은 회의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고민하는 모임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다같이 통성기도 후 모임을 진행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몇몇 사람들이 또는 한 개인이 하나님의 뜻을 대행하기도 하고, 다수결에 따라 움직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함께 기도하면서 울며 고민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셋째는 교회는 주님의 사랑을 나눠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는 그 사랑을 받은 자녀답게 우리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해서 그 사랑을 보여 주신 것처럼, 우리 역시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상황 속에서 나눌 것들, 본을 보일 것들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를 만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경험했다면, 내가 만난 하나님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자신이 방법을 터득하고, 어떤 위치에 오를 때까지 기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있는 위치에서 나누기 시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이렇게 할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좋은 대물림이 끊임없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청년들은 장년에게서 배우고, 구역장들은 또 다른 구역장들을 보면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청년들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을 때, 그들보다 어린 청년들은 지금의 청년들의 수준보다 더 높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바뀔수록,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이 깊어지고, 더 온전해지고 더 분명해 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말과 혀만의 고백이 아니라 진실한 삶의 고백으로 우리의 공동체 가운데 녹아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한 것처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여러분도 나를 본받는 자가 되십시오.” 라고 말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험담하고 갈등을 일으키며, 세상에서 풀어가는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교회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게 싫어서 주일 예배 드리는 것이 전부이고, 혹은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거나, 너무 멀리도 너무 가까이도 하지 않는 교회 생활을 하기도 하고, 아예 교회를 떠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에서 교회는 소망이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내가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실 때, 이 반석은 흔들림 없는 견고한 교회를 이야기 합니다. 넘어지거나 쓰러지는 않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최악의 상황, 최악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주님의 복음을 들었을 때, 받아들였을 때, 그들은 결코 소망이 없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주시는 사랑을 전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며,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헌신한 자들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교회를 통해 하늘의 영광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와 다릅니다.
우리는 하늘의 영광을 맛본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도 주님의 제자처럼,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주님의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함께 울고, 함께 고민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 기쁨이 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말씀을 생각하면서 생각나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찬양 부르신 후, 함께 기도하고 마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겐 소원이 하나 있네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우리 가슴에 새긴 주의 십자가 사랑 나의 교회를 사랑케 하네
주의 교회를 향한 우리 마음 희생과 포기와 가난과 고난
하물며 죽음조차 우릴 막을 수 없네 우리 교회는 이 땅의 희망
(chorus)
교회를 교회되게 예배를 예배되게 우릴 사용하소서
진정한 부흥의 날 오늘 임하도록 우릴 사용하소서
(bridge)
성령안에 예배하리라 자유의 마음으로
사랑으로 사역하리라 교회는 생명이니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교회를 사랑하게 하옵소서.
주님이 세우신 금곡교회가 희망이 되게 하옵소서.
<축복기도>
지금은 세상 끝날 까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함께하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감화, 감동, 교통하심이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주님의 공동체를 위해 함께 울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꿈꾸길 원하는 주의 자녀들 머리위에, 가정과 직장과 삶의 영역위에, 나라와 이 민족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계실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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