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8:18-27 구원이란 무엇인가?(삭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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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란 무엇인가?
누가복음 18장 18-27절 / 누가복음 19장 8-10절
2020년 9월 미국 퓨리서치 센터는 미국 성인 6,485명을 대상으로 내세관에 설문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73%가 천국이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그 중 재미있는 것은 34%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답변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선행을 통해 내세가 보장되며,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오늘날 흔히 이단이라 불리는 구원파에서는 구원은 회개와 믿음이 빠진 “깨달음과 행위”를 통해서 구원받는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알미니안 주의자들, 카톨릭, 이단들의 교리는 철저한 “행위 구원론”입니다. 구원은 죽음 이후에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 “선한 행위, 착한 일”을 많이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사람의 행위에 따라 얼마든지 취소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이죠.
이러한 생각은 놀랍게도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은 평생 율법을 열심히 지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탈무드에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세기에 활동했던 유대교의 한 랍비는 제자들에게 늘 이렇게 강조했다고 합니다. ‘죽기 하루전에 회개해야 한다.’ 스승의 거듭된 가르침에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죽을 날을 알아야 회개할게 아닙니까?’ 그 때 그는 유명한 대답을 합니다. “죽을 날이 언제인지 모른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므로 오늘 회개해야 한다. 그리하여 전 생애를 매일 같이 회개하며 살아야 한다.” 라고 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회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회개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회개였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유대인 세리장같은 직업을 가진자가 진정한 회개를 하려면, 직업을 버려야 할 뿐 아니라,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이자를 원금과 함께 보상해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세리가 온전한 회개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바로 이 세리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삭개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두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하나는 평생을 말씀대로 살았던 어떤 부자 관리이고, 다른 하나는 세리장 삭개오입니다.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당연히 부자관리가 구원을 받을 것이고, 세리장이었던 삭개오는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부자 관리는 주님을 따르지 아니하였고, 삭개오는 주님을 따랐고 구원을 받았다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가져다 준 것일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이 무엇입니까?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구원을 주체는 누구십니까?
먼저 부자청년 이야기입니다. 18장을 보면 어떤 관리가 예수님께 나아와 이렇게 질문합니다. “예수님,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그는 의도를 가지고 예수님께 질문하고 있습니다. 그는 당연히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질문 했던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이 관리에게 이미 영생을 얻었다고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기는커녕,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모든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와서 나를 쫓으라” 이 말을 듣고 관리가 크게 근심하자, 예수님은 크게 화를 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4-25절에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 한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돈이 있어야 제사도 드리고, 구제도 할 수 있는거 아닙니까? 그 당시 부자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이 관리는 어려서부터 계명을 다 지켰던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지켰던 자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같은 내용이 적힌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주님께 질문합니다. 마태복음 19장 26절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이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7절에 “무릇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것입니다. 구원은 몇 가지 삶의 변화가 아닙니다. 구원은 계명을 지켰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구원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하시는 것,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에 존 칼빈은 「기독교 강요 제2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구원이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자랑할 점이 추호도 없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의 사역은 인간의 노력이나 어떤 업적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사실을 예수님은 삭개오의 만남을 통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19장에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여리고에 사는 세리장 삭개오가 등장합니다. 당시 세리들은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있는 로마제국에 협력하여 정당하게 세금을 징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부의 축적을 위해 부당한 세금을 징수하여 자신의 재산을 불리면서 살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민중들의 원성과 미움을 받아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에 세금업자들은 부정적하고, 비호감이었습니다. 이것이 유대사회에서 바라보는 세리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세리를 죄인의 대표로 취급했던 것입니다..
그 중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고난 받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셔야 하는데, 여리고를 지나가셔야 합니다. 이 때 삭개오가 예수님께서 이 지역을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한번 보고 싶어서 길 목에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키가 너무 작은 사람이었고, 거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길이 빼곡히 매우고 있어서 도저히 그 대열에 끼어서는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 달려가서 길가에 있는 돌무화과 나무, 예전에는 뽕나무라고 했는데, 그 나무 위로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래로 지나가시던 예수님이 나무 아래에 멈추어 서서 그를 부르시면서, 사람들의 귀를 의심할 만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전혀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삭개오가 초청한 것이 아니라, 당시 죄인의 대표적 상징인 세리의 집에 예수님께서 묵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에 삭개오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뭐라고 말합니까? 8절입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어려서부터 계명을 지킨 부자가 할 수 없었던 일을 그것도 회개와 구원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세리장 삭개오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선언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누구입니까? 어려서부터 계명을 지켰으나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어 바늘귀 앞에서 절망하는 부자 관리입니까? 아니면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임하였다고 선언한 삭개오처럼, 구원의 능력을 우리 삶에 드러내는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회개하고 구원을 받은 삭개오와는 달리 어려서부터 계명을 지켜온 부자 관리는 왜 구원을 받지 못한 것입니까? 왜? 예수님은 관리를 낙타에 비유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선 18절에 어떤 부자관리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 질문의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이 청년을 너무나 당황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9절에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하나님 한 분 외는 선한 분이 없느니라” 그러면서 예수님은 십계명 중에 5계명부터 9계명까지 언급하셨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덕질 하지 말라. 거짓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말씀하셨고, 이에 청년은 21절에 ‘어려서부터 모든 계명을 지켰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이 부자 관리는 거짓말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마가복음 10장 21절을 보면, 예수님이 그의 대답을 듣고 사랑스럽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관리의 말은 진실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18장 22절입니다. “네가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가 가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게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나를 따라오라” 지금껏 열심히 계명을 지키며 살아왔는데, 예수님의 답변은 우리를 당황하게 합니다. 예수님이 ‘네게 부족한 것이 한 가지 있다’ 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네가 다섯 번째부터 아홉 번째 계명까지 다 지켰다고 한다면, 그렇게 영생을 얻고자 한다면 십계명 나머지 계명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다섯가지 계명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우상과 탐심입니다.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3절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으니라“ 이것이 부자청년에게 부족한 한가지 계명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계명을 다 지켰다는 부자관리는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성경은 그가 ‘크게 근심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큰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이 사람을 정죄하지만, 사실상 성실하게 살아온 중상층 사람들은 이 관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이 사람을 재물이 많은 청년으로 소개하였습니다. 누가의 증언에 따르면, 유대 관원이라 하는데, 당시 유대 관원은 30세가 넘어야 관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30-40대 사이 정도로 보입니다. 또한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적어도 성실하게 정직하게 돈을 모은 깨끗한 부자인거 같습니다. 또한 젊은 나이에 관리였다고 한다면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그를 낙타에 비유하신 것을 보면 그는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고 철저하게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낙타처럼 살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낙타가 어떤 동물입니까? 낙타는 물이 없는 사막에서 450kg의 짐을 지고 447km를 물도 없이 16일간 이동하고, 하루 쉬고 240km 이동했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인내심이 강한 동물입니다.
아무리 낙타처럼 성실하게 살아온 부자 청년은 주님의 말씀 앞에 결국 영생이라는 바늘을 뚫고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영생은 몇 가지 가시적인 계명만 지키면 사회적 지위와 함께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때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위와 명예를 다 팔아야 얻을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보화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젊은 부자 관리는 크게 근심만했지, 끝끝내 회개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세리장이었던 삭개오는 세리지만 바리새인보다, 부자관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삭개오가 회개하고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선 우리는 회개는 아무리 의지가 강하다 할지라도, 쉽게 회개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남에게 회개해야 한다고 말하고, 나부터 회개해야 한다고 하지만, 회개는 누구에게도 결코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쉬운게 아닙니다. 회개는 내가 회개하겠다는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회개의 능력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그것은 이 땅에 잃어버린 자를 찾아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만이 회개의 자유와 능력을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삭개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회개가 불가능한 자로 낙인 찍인 세리장 삭개오는 부자관리와 동일하게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 절반도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배로 값겠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를 보시면서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먼저 회개를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삭개오가 내려오기 전에 먼저 네 집에 유하겠다고 선언하시고 제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삭개오에게 회개의 능력을 주었던 것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끊임없이 회개하라는 정죄하였지만, 삭개오를 회개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용납하고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자, 삭개오는 회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용서하시는 예수님을 경험한 삭개오는 뽕나무에 앉아 있을 수 없어서 기쁨으로 내려왔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삭개오의 회개는 기쁨으로 드리는 회개였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준다고 했을 때, 삭개오는 근심으로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기쁨으로 드려진 회개였습니다.
이것을 우리 주님은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를 통해 자세히 알려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 땅속에 묻힌 아무도 모르는 보석, 그 보석 발견한 사람은 기뻐뛰며 집에 돌아가, 집팔고, 땅팔고 냉장고 팔아 그 밭은 기여히 사고 말거야”
핵심적인 단어가 무엇입니까? “기쁨으로”입니다. 기쁨이라는 명사 “카라”는 “은혜, 감사, 탕감, 선물” 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천국의 보화를 발견한 기쁨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이것이 은혜이기 때문에, 선물이기 때문에 29절에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를 버리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소유를 다 팔아 보화가 감추인 밭을 샀다는 이야기는 일정한 액수 이상을 팔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자도 다 팔아야 하고 가난한 사람도 다 팔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소유하고 있는 것을 다 팔아야만 하나님 나라의 보화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우리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것입니다. 나의 우선순위의 전환입니다.
이 말씀은 모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의 말씀이 아닙니다. 또한 모두가 부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의 말씀도 아닙니다. 이것은 우선순위에 관한 말씀이고, 구원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 역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유권을 이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유권을 이전할 때, 어떤일이 찾아옵니까? 이어지는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답을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장 29절
우리 주님은 우리가 버린 만큼, 버린 것 보다 몇 배나 더 많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씨뿌리는 비유에서도 주님은 30배, 60배, 100배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누가복음은 “여러 배로 받는다” 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은 100배로 나와 있습니다. 인간적인 집착을 포기하면 현재 세상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100배나 얻게 되고, 내세에서 영생을 받지 않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부자되기 위해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천국의 증인되기 위해 살고 있습니까? 어려서부터 계명을 잘 지켜 이 땅에서 지위와 부를 얻은 종교인으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하게 하시는 구원을 능력을 보여주며 살고 있습니까? 만약 부자가 되는 것이 목표라면 아무리 성실하게 계명을 지키며 살았다 하더라도 바늘귀 앞에 있는 낙타처럼 언젠가 우리는 절망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는 무너짐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는 우리는 삭개오처럼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입니까? 부자 관리는 주님께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 때 주님이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오직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하신 분이 없느니라”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직 선하신 주님 앞에 우리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면, 우리를 찾아오시는 구원의 주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구원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삭개오는 너무나 외소해서 뽕나무로 올라가지 않으면 주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외소한 자였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 자인지 알았습니다. 그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공허함이 찾아왔습니다. 자신의 상황이 어떤지를 바로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의를 이를 수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우리는 소망이 없던 자들입니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무능력하고 절망속에 있던 자들입니다. 이런 소망없는 자인 우리들에게 오늘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절망가운데 소망없이 살아갈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필요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바로 깨달을 때, 나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삭개오처럼 돌감람나무, 뽕나무 위로 올라가 주님을 찾았던 것처럼 나도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3절에 보면 “삭개오가 예수를 보고자 하였다”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보고자” 라는 단어가 헬라어, “제데오”라는 단어입니다. 그 뜻은 “탐구하다, 노력하다, 갈망하다” 라는 뜻입니다. 10절에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와 같은 단어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자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여리고로 오셨고, 여리고에 살았던 잃어버린 자인 삭개오는 예수를 보려고 지속적으로 찾아 다닌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을 날마다 찾고 계십니까? 어떻게 주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말씀속에서 예수님의 흔적을 우리는 찾을 수 있습니다. 읽는 것이 어렵고 힘들더라고 읽어야 합니다. 날씨가 더워 지친다 할지라도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찾고 나아가지 않는 한 우리는 진정한 구원의 능력과 회개의 역사를 경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찾지 아니하면, 우리 역시 부자청년처럼 바늘귀 앞에서 선 낙타처럼 절망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삭개오처럼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주님을 향해 갈망한다면, 절망과 외소함 가운데 찾아오시는 구원의 주님, 늘 나에게 만족을 주시는 주님,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하게 하시는 구원의 능력을 날마다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능력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말씀 후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동행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부자청년처럼 바늘귀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게 하시고, 삭개오처럼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며, 오직 구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에게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게 하시고, 나의 인생의 삶에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날마다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어떤 어려움이 찾아 온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 나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 경험하며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헌금기도>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난 시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지켜주시고 오오늘을 살게 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거룩주일 주님 앞에 나올 때에, 우리의 고백을 담아 정성어린 예물을 드립니다. 십일조와 감사헌금, 생일감사, 선교, 장학, 건축, 선한사마리아, 통일과 성미로 드립니다. 드려지는 손길이 복되게 하시고, 간구하는 기도들이 응답받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아래 있음을 고백하게 하시고, 삶 속에서 기쁨과 감사와 감격과 소망과 은혜를 경험하며 살게 하옵소서. 특별히 이 시간 헌화하는 가정 있습니다. 김성규, 이은정 집사님 가정에 귀한 자녀 주심에 감사하여 헌화합니다. 온유, 소유, 예성이, 예원이 이 아이들이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선한 영향을 끼치는 주님의 자녀로 자라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소망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복기도>
지금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감화 감동 교통하심이 오직 구원의 능력이 우리 주님께 있음을 고백하고 우리의 삶 가운데 찾아오시는 능력의 주님을 경험하기 원하는 믿음의 자녀들 머리 머리 위에, 가정과 직장과 삶의 영역위에, 나라와 이 민족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계실 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