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잘 건축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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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들음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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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
우리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말씀으로 충분합니다. 복음으로 충분합니다. 예수님으로 충분합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 복음인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아름답게 일하시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긴 연휴를 잘 쉬다가 오셨습니까? 연휴가 되면 기쁘기도 하지만, 안타까운 일도 있습니다. 이번에도 사고로 인해 생명을 잃은 분들이 있고, 다친 분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의 유가족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우리 모두가 법과 질서를 잘 지켜서 이런 일이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님의 평지설교를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설교의 맺음말을 나누면서 평지설교 강해를 마치려 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평지설교를 조금 정리해볼까요? 예수님은 사도적 삶으로 나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하늘을 바라보며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용서, 살리는 행동, 사랑의 마음이 나타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어떤 믿음이 있어야 할까요? 죄사함의 믿음, 허물과 죄를 보는 믿음, 선한 것을 내어놓을 수 있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마치면서 우리가 들은 말씀을 행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누가복음 6장 46절입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여기서 '너희'는 사도들을 의미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며 따랐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주여 주여 하면서 왜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사도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이라고 고백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 21-23절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다면 반드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최근에 역사 다큐멘터리를 하나 보았습니다. 내용은 징기스칸의 조력자 수부타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징기스칸은 몽골 초원에서 시작해 중앙아시아, 동유럽, 중국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토를 정복했습니다. 징기스칸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혼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4구 4준이 있었습니다. 4마리의 개와 4마리의 말로 표현되는 장수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4마리의 개는 수부타이, 제베, 젤메, 쿠빌라이 칸입니다. 4마리의 말로 표현된 사람은 티라운, 보로클, 보오르추, 무칼리입니다. 몽골에서 개는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존재로 인식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으뜸은 수부타이입니다. 이 사람은 징기스칸이 명령하면 반드시 그 명령을 따랐습니다. 수부타이가 처음 징기스칸 앞에 갔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쥐가 되어 거두어들이겠습니다. 검은 까마귀가 되어 밖에 있는 것을 모아 들이겠습니다. 부드러운 덮개가 되어 덮어드리겠습니다. 두툼한 바람막이가 되어 집을 가려드리겠습니다."
한 나라의 장수가 왕을 따르는 모습이 이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무엇이든 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고 살고 있을까요? 이 이야기를 듣는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행할 수 있을지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말씀을 깊게 새겨야 합니다.
오늘 건축의 두 번째 단계는 무엇입니까? 단순히 집을 지어야겠다는 결심만으로는 집이 지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집을 짓기 위해 공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첫 번째 공사는 무엇일까요? 48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왜 집을 지을 때 땅을 팔까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표층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표층이란 건물을 지으려는 땅에 자라난 식물의 뿌리로 인해 비가 오면 땅이 팽창하고 가라앉아 건물이 침하되거나 균열이 생길 수 있습니다. 둘째, 안정적인 지반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표층 아래의 흙은 더 단단하고 안전합니다. 셋째, 추운 지역에서는 땅이 얼고 녹기를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유대인들은 집을 지을 때 바위 위에 짓는다고 들었을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바위가 없는 지역에서는 어떻게 집을 지을까요? 유력한 자들은 바위 위에 집을 짓지만, 바위가 없는 서민들은 어떻게 집을 지을까요? 예수님의 이 설교가 바위 위에만 집을 지으라는 말이라면, 예수님은 서민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분이 됩니다. 여기에 오해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6장 48절입니다.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누가라는 저자가 얼마나 세밀한지 놀랍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았다고 합니다. 즉, 반석이 있는 곳만 찾아서 집을 짓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단단한 돌을 기초로 삼아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석이 있는 곳을 찾든, 아니면 반석을 땅에 묻어서 짓든 해야 합니다. 유력한 자들은 반석이 있는 곳을 찾아 짓고, 서민들은 단단한 반석을 묻거나 쌓아서 그 위에 집을 짓습니다. 이 모든 것을 통틀어 주추를 반석 위에 놓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단단한 돌을 땅에 놓기 위해서는 먼저 땅을 깊이 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땅이 침하되거나 균열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라는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땅 파기는 무엇일까요? 마음에 예수를 깊이 새기는 것입니다. 예수를 깊이 새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끊임없이 예수님을 생각하고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생각하고 바라보는 일이 결코 관념적으로 나는 예수를 생각해야지, 바라보아야지, 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이 일은 아주 구체적으로 우리의 신앙생활로 나타나게 되는데 제일먼저는 우리의 마음에 더러운 것이 들어올때 정화하는 회개를 합니다. 회개 후에 비워진 마음에는 말씀이라는 것을 채워 넣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들어가면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생기는데 그것을 위해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말씀과 기도 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예수님을 생각하고 바라보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보고 기도하는 일을 매일 해야 할까요? 성경은 우리의 본성의 마음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본성의 마음으로 살면 우리는 육체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향한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말씀을 통해 예수를 배우고, 기도를 통해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 은혜의 수단을 다 사용해서 예수님을 깊이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질대로 일하십니다. 어떤 분은 찬양을 통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눈을 감고 앉아서 예수님을 생각하며 만날 수 있습니다. 방법은 제한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으로 내 마음이 충만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가 충만해질 때 나타나는 한 가지 현상이 있습니다. 바로 평안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나 말씀을 볼 때 평안함이 주어질 때까지 합니다. 이렇게 예수를 마음에 깊게 새기면 어떤 마음이 들기 시작할까요?
셋째로, 예수님이 삶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오늘 건축의 마지막 단계는 '놓는 것’입니다. '놓다’라는 말은 '세우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깊이 마음에 새기는 이유는 예수의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입니다.
누가복음 6장 49절 전반절입니다.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아주 놀라운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이 기초 공사로 깊이 땅을 파고, 그곳에 암석을 묻고 집을 지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탁류가 흘러보면 됩니다. 우리가 보통 이것을 홍수라고 알고 있는데, 여기에서 탁류는 그냥 흐르는 물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보통 집 앞에 물이 흐르는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이것이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유대 지형은 산악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더욱이 고도 차가 심합니다. 산지 중 가장 높은 곳은 해발 1,020미터입니다. 반면 낮은 곳은 해수면보다 400미터가 낮습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되어 있으니 유속이 무척 빠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다 보니 조금만 비가 많이 와도 강우량이 많아 건기 때는 그냥 땅이 강이 되는 것입니다. 이 우기는 11월부터 3월까지 지속되기에 어떤 누구도 이런 상황을 피해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이 당시 유대인들은 정말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면 반석을 밑에 깔고 집을 올렸습니다. 더욱이 이 당시 예수님 시대의 집은 벽을 돌로 쌓아 만들고 나무와 흙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니 만약 밑에 기초 공사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돌은 다 떨어져 나가고, 나무와 흙으로 지은 것은 다 쓸려 내려가 집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비유로 예수님이 강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심정으로 그대로 전하면, 너희들이 나에게 이렇게 좋은 말을 듣는다고 해도 행하지 않는다면, 너희들이 나에게 들은 말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즉, 이 말은 믿음도 헛것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깊이 생각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세상에 어떻게 보일 것입니까? 마치 오늘의 말씀과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것을 세상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당연히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길거리에 나가서 예수를 전하면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줄까요? 분명 그 모습을 보면서 '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구나’까지는 알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전하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려줄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이 한계를 예수님도 알았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직접 전할 것을 이야기하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경우는 우리가 삶을 통해 예수님이 전해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14~16절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추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그 빛은 어떻게 나타난다고 이야기합니까? 착한 행실로 나타난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착한 행실이라는 것은 착한 일을 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착하다는 말은 선하다는 말입니다. 이 땅의 완전한 선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삶을 통해 예수를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언제 세상 사람들 앞에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보일 수 있을까요?
누가복음 6장 49절 후반절입니다.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살아간다는 것을 세상에 가장 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시간은 재난의 때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두 가지 단어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무너지다’이며 또 하나는 '파괴되다’라는 단어입니다. 먼저 '무너진다’는 말의 뜻은 그 사람의 집과 함께 쓸려 내려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재난이나 역경이 찾아오면 그곳에 쓸려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이런 안타까운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세상에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비난을 당하면 그 비난에 세상 사람들은 함께 휩쓸려갑니다. 그래서 때로는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깊이 새기고 예수님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 이런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전도가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깊이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역경을 이겨내는 그리스도인을 심심찮게 만났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예수를 안 믿는 사람에게 ‘왜? 어떻게 그게 가능해?’ 하는 의문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같아졌습니다. 이제는 환란과 역경이 오면 함께 휩쓸려 내려갑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예수를 마음에 깊게 새기고 반석이신 예수님께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떻게 고난과 역경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그 모습이 바로 우리가 예수를 기초로 삼았는가를 점검하는 지표가 됩니다.
또 하나는 '파괴되다’입니다. 이 말은 완전히 부서져 나가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을 깊이 새기지 않을 때 우리는 완전히 부서져 나갑니다. 마귀가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우리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일입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낙심’입니다. 낙심이라는 뜻은 쉽게 이야기하면 권투 선수가 상대의 공격을 막는 가드를 내리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낙심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사탄의 공격에 무방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제일 먼저 우리의 마음에 낙심을 주려고 합니다. 방어가 해제되면 자신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정말 이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낙심하는 일이 생겼다는 것은 다른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의 기초로 삼고, 예수를 새기는 일을 더 해야 한다는 사인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2008년 9월 8일,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개그우먼 정선희의 남편인 연예인 안재환이 주택가에 주차된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입니다. 결혼한 지 10개월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죽음은 큰 충격을 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대해 과도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로 인해 정선희는 많은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시달리며 밖에 나가지 못하는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08년 10월 2일, 정선희의 친구이자 유명 배우인 최진실이 자택에서 자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소문에 따르면, 안재환이 최진실에게 돈을 빌렸고 갚지 못해 최진실이 협박했다는 내용이 퍼졌습니다. 이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정선희는 남편과 가장 친한 친구를 잃게 되었습니다.
정선희는 신앙생활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녀의 불우한 삶, 특히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와의 갈등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겼습니다. 시간이 지나 남편이 생기면서 정선희는 남편을 하나님처럼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그녀는 큰 배신감을 느꼈고, 예배조차 드릴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했습니다. 수면제와 알코올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조용히 기도하며 정선희를 위해 힘썼습니다. 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정선희는 하나님이 자신을 결코 혼자 두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이를 통해 회복되었습니다. 이제는 상처로 힘들어하는 것이 아닌, 상처받은 사람들을 품어주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무시했지만, 이제는 그런 사람들에게 말없이 기도하고 품을 내어주고 싶다고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복이며,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에는 예수님이라는 집을 잘 지어야겠습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첫째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 계속해서 살아계신 예수님이 드러나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인도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도된 삶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결론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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