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얻기위해 아들을 버리신 예수님
2023 고난주간 새벽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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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성도 여러분! 혹시 왕따 당해보셨습니까? 저는 군대에서 딱 한 달 정도 당해본 것 같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제가 청년 때 쓸데 없는 고집이 좀 있었던 거 같아요. 아닌 건 아닌거라 꼭 말을 하고, 바꿔야 직성이 풀렀던 때가 있었어요. 아니 그런데 군대 문화가 어디 아닌게 한두 가지입니까? 제가 다 알고 참아야지! 잘 견뎌야지 하면서 갔는데 와~ 진짜 아닌게 너무 많은 거에요. 차라리 구타 같은게 있으면 찍소리도 못하고 그냥 있었을텐데, 구타가 좋다는건 아니에요! 그런 험상굿은 분위기가 있었으면 제 똥고집이 안나왔을거라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오해 마세요. 구타는 없어져야 합니다. 암튼 제가 근무한 곳이 GOP부대라서 휴전선 앞에서 실탄들고 있는 곳이라 구타 같은게 있으면 큰일 나거든요. 그래서 좀 분위기가 말랑말랑했어요.
그러니까 아이고 몹쓸 제 성격이 나왔던 거에요. 아닌 건 아니다. 이건 고쳐야 된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온 거에요. 아니 똑같이 밤새서 근무하고, 다 같이 힘들게 일하는데 이등병들만 죽어나는거에요. 그래요. 짬이 안되서 그렇다. 꼬우면 군대 일찍 왔어야지 라는 말로 스스로 잘 참고는 있는데 이해는 안됐죠.
이게 점점 쌓여가던 중에 일이 터지고 맙니다. 평소 저를 너무 놀리고, 괴롭히는 선임이 있어요. 밤새 근무를 서고 다들 피곤한 상황인데 그 선임이 야! 물 좀 떠와 그러는데… 저도 모르게 싫습니다! 다들 피곤한데 물은 좀 떠다 드시면 좋겠습니다. 그런 거에요.
네! 압니다. 정신이 잠깐 나갔었습니다. 지금이야 당연히 물은 셀프인데, 그때 군대에서는 그러면 안되는거였죠. 제가요! 한달 동안 엄청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할말은 하는 성격이었거든요. 한 2주 동안은 엄청 싸우기도 했어요. 밤새 근무서면서 세상이 이런 욕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별의별 욕을 다 먹는데도, 제가 아니다 싶은 것은 조목조목 이야기하며, 좀 건강한 군대문화를 만들기 위해 이런 건 서로 좀 노력하면 좋지 않겠냐고, 저도 참 열심히 설득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미 군대 문화에 익숙해져버린 사람들한테 제 말은 그저 정신 나간 소리로 밖에 안들리는 겁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제가 힘들었던 것은, 원래 싫었고, 대화도 나누기 싫은 사람하고 척지는 것은 견딜만 했어요. 그런데 제가 평소에 좋아하고, 잘 지냈던 동기, 선임분들까지 대화가 끊어지고, 서먹서먹해지니까 마음이 진짜 힘들더라구요. 왕따가 왜 힘든지 그 때 알게 된거에요. 다른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을 나누었던 사람들에게 조차 외면받는 게 진짜 힘든 거에요. 더 이상 의지할데도 기댈 곳도 없는 그 끔찌한 시간들을 혼자서 견디는 것이 생각보다 너무너무 힘듭니다.
결국 한 달 뒤에 제가 먼저 죄송했다고 잘하겠다 그러니까 그제서야 다들 눈녹듯 녹아서 다시 좋아졌는데요, 한달 동안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좋은 것도 있죠. 한달 뒤에 확실히 내무반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어요. 동기들도 저한테 고맙다고 하더라구요. 자기들도 눈치보느라 못도와줘서 미안하다면서요.
제가 이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는,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바로 직전에 하신 말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바리새인, 사두개파, 대제사장 무리들 이런 악한 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고, 못박는 것도 참 마음 아픈 일이죠. 그런데 그를 따르던 무리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며 열광하던 무리들이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라며 외쳐대는 그 모습,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심지어 3년동안 예수를 따라다닌 제자들마저 떠나는 이 기가막힌 상황에 여러분이 처한다면 어떠실 것 같아요? 그런데요, 가장 심각한 상황은 그의 아버지 하나님마저도 예수님을 외면하며 저주하고 계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버리셨습니다. 세상에 어떤 아버지가 아들을 버립니까? 아들 대신 내가 못박히겠다고 말해도 쉬언찮을 마당에 그 아들을 철저히 외면합니다. 아들이 십자가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 이제 곧 죽을 것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우리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십니다.
하늘은 온통 시꺼멓습니다. 새도 날지 않고, 짐승들도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마치 모든 만물이 예수의 죽음을 외면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에 가장 고통스럽고 저주스러운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만은 왜 그렇셨던 걸까요? 아버지라면, 다른 이들은 몰라도 아버지는 그 곁에 계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손을 잡아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늘의 열두 군단을 명령해서 그 십자가를 파하시고, 아들을 구해내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왜 하나님은 그 모든 시간들을 침묵하셨던 걸까요?
아들을 버려야 죄인된 우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죽여야 우리를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얻기 위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의 아픔을 외면하시고, 버리셨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에서 울부짖으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모든 것들로부터 철저히 외면 당하신 예수님의 그 울부짖음 속에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영상 하나 보시면서 말씀을 이어가겠습니다.
(영상 시청)
우리는 이런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그 침묵은 예수님께는 저주였지만, 우리에게는 사랑이요, 회복의 사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사랑에 빚진 자로서의 삶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삶을 위해 우리가 2가지 교훈을 함께 나누길 원하는데요, 첫째는 하나님의 침묵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인도하실 때 때로는 침묵하실 때가 있어요. 기도해도 응답하시지 않고, 말씀을 읽어도 뭔가 특별한 깨달음이 있는 것도아니고, 그저 견디며 살아가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침묵만 흐르는 그 시간… 우리가 생각할 때 참 힘들고,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그 시간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역사하시며 은혜를 더하고 계신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침묵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침묵을 통해서도 여전히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모세는 40세까지 왕자로 있을 때 소위 잘 나갈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80세가 되어 그의 인생에 끝자락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때 하나님이 부르십니다. 그것도 40년 동안 미디안에서 긴 침묵의 시간을 통과하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가요? 430년 동안의 긴 침묵 속에 애굽의 종살이를 견뎌야만 했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 시간 속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네 씨로 말미암아 큰 민족을 이루리라는 그 말씀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셨습니다. 이처럼 침묵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의 일을 실행하고 계신 것이죠.
그런데 이런 침묵 가운데서 우리는 나의 진짜 마음과 믿음의 상태가 어떤지를 발견할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애굽의 철병거가 홍해에 수장되는 것을 보면서 다들 의기양양하며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해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만 따르겠다고, 모세가 가는 길이면 어디든 함께 가겠다고 그렇게 다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가요? 기다리면 내려올 줄 알았는데 너무 늦는거에요. 한참의 침묵이 흐르니까 사람들이 기다리지 못하고 뭘해요?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여호와를 대신할 신을 자기들이 만들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그동안 감추어왔던 그들 내면이 밖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침묵하실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답답하죠.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데 힘도 안나고, 이게 맞는건지도 확신할 수 없는 그런 시간이 흐를 때, 우리 자신도 모르는 우리의 참 모습을 발견하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붙잡기도 하고, 기도해야하는 줄 알면서도 기도는 안하고 다른 것을 쫓아 행하고, 그러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우리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며 하나님이 침묵하셨어요.
끝까지 순종하신 주님의 그 마음… 그 본심…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 때문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깨달을 때 진정한 순종과 헌신이 나아올 수 있죠. 오늘은요, 이런 사랑을 좀 깊이 묵상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