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 비유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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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란트 비유가 주는 교훈
(마태복음 25장 14-30절)
오늘 본문은 어릴 적부터 많이 들어왔던 내용이죠? 바로 달란트 비유입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각각 종들에게 나눠주고, 주인이 다시 돌아왔을 때 결산을 하잖아요?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다섯 달란트를 남겨서, 또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두 달란트를 남겨서 주인에게 칭찬받고,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 돈을 땅 속에 묻어두고, 이윤을 남기지 않았죠. 그래서 주인의 분노를 사서 달란트도 빼앗기고, 쫓겨 나게 됩니다.
이 비유를 웬만하면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이고, 신앙생활 오래하신 분들은 사실 너무 익숙한 본문이기도 하지만, 정작 이 비유가 뜻하는 바를 제대로 알고 있는 분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또한 성경은 읽을 수록 그 깊이가 달라지죠. 안다고 생각했지만, 읽다보니 그 감동과 깨달음의 깊이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본문입니다.
저는 오늘 이 비유를 통해 몇 가지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말씀의 은혜, 또한 우리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달란트 비유는 천국을 설명하기 위한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천국! 천국은 장소적 개념보다 통치적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어요. 쉽게 말해서 이곳이 천국이다. 저곳이 천국이다가 아니라 주님이 다스리시는 바로 그 곳이 천국이라는 겁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때에 임하는 그곳도 천국이지만, 지금 나를 다스리시고, 나의 삶을 인도하시는 주님을 내가 인정할 때 이미 천국이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된 것이죠. 믿으십니까?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시느냐에 대한 깨달음도 중요하고, 그 하나님을 내가 어떻게 믿고 따르느냐? 그것에 따라 천국의 기쁨과 그 영광이 내 삶에 펼쳐지게 되는 겁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과 한 달란트 받은 종의 차이가 뭐에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의 명령에 충성했고, 열매를 거두었어요. 그래서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아무런 이윤을 남기지 않았고, 오히려 주인의 면전에 비난을 쏟아 냅니다. 24절을 보실까요?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해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이렇게 말을 해요. 굳은 사람이라는 말은 못된 사람, 종의 고혈을 짜내는 냉혈한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심지도 않은 땅에서 곡식을 거두길 원하고, 키질도 하지 않은 단에서 열매를 거두길 원하는 고약한 사람으로 주인을 비난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유가 뭘까요? 제일 적게 받았다. 고작 나를 이렇게 본단 말이야? 라는 생각이 들어갔다. 섭섭마귀가 제일 무서운데, 아마도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이 섭섭함을 쏟아냈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종은 가장 현실적인 행위이기도 했다. 장사라는게 어디 쉽나? 잘되면 다행인데 안되면 엄청난 손해를 볼 것이고, 잘 되도 자기에게 유익이 올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
그렇다고 취리하는 자들 즉 돈 맡기면 이자를 불려주는 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도 개인 사업자들이 하는 거라 안전하지 않은 거죠. 은행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방법은 사실 땅 속에 묻어두는 겁니다. 그래서 원금회수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선택한 거죠.
그러나 이 종은 주인의 마음이 뭔지를 제대로 몰랐습니다.
보세요! 다섯 달란트 남긴 종이나 두 달란트 남긴 종이 다른 칭찬을 듣습니까? 아니에요. 똑같은 칭찬을 듣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 뒤에 니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라고 칭찬해요. 둘 다 잘했다는 거에요.
주인은 종들이 이윤을 봐서 칭찬한게 아니에요. 충성해서 칭찬한 거죠. 충성은 뭡니까? 올곧은 마음, 어떤 상황속에서도, 환경이 변해도 여전히 변함없는 그 마음이 바로 충성입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그 충성을 보기를 원했고, 그것을 칭찬한 거에요. 주인이 비록 몸은 떠나가지만 이 큰 돈을 너에게 줄만큼 내가 너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징표를 주었으니 그 마음을 잘 헤아려 충성하기를 원했던 거죠. 이윤을 생각햇다면 주인의 대답이 달랐겠죠.그래서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주인의 마음은 종들이 기쁘고 즐겁기를 바란거지,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그 마음을 잘 몰랐어요,
그러니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고 주인을 오해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세요? 한 달란트가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인지? 요즘 금값이 많이 올라서요. 한 달란트에 30억 정도 해요. 억이 뭐에요? 수중에 몇 천만원도 없어서 다들 얼마나 힘든데, 30억을 줬다? 그것도 종에게 이 큰돈을 줬다? 이 자체 만으로도 주인이 종을 얼마나 신뢰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죠.
그럼 2달란트는 얼마에요? 60억, 5달란트는 150억입니다. 10달란트는 300억이에요. 억! 우리가 봤을 때는 억 하는 돈인데, 주인이 뭐래요? 니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이렇게 말해요.이게 작은 일이에요? 어마어마한 돈인데, 주인은 그게 작은 일이라 여길만큼 부자에요. 능력자란 말이에요. 이런 부자가 돈 잃었다고 나무라겠냐구요?
여기서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백 데나리온 빚진 자 비유 기억나시죠? 일만 달란트를 탕감해줄만큼 주인은 능력과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니 180억도 그냥 작은 일이에요. 그런 주인이 종을 통해 뭘 보고 싶은거에요? 작은 일에도 충성하는 그 마음, 주인이 있던 없던 신실하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주인이 보고싶은 종의 참 모습이죠.
천국은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주세요. 지금도 그 은혜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가장 좋은 것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온전히 신뢰하고 있나요? 그 마음을 안다면 우리는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행복한 성도가 될 줄 믿습니다.
두번째로, 두 달란트 받은 종의 교훈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 달란트 받은 종도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 임한 섭섭마귀가 찾아왔을까요? 안왔을까요?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았죠. 왜 그런지 아세요? 다섯 달란트 보다 적어요. 그런데 한 달란트 가진 종이 막 주인을 욕하면서 섭섭하다 섭섭하다 햇을 때 굳이 표현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두 달란트 가진 종의 마음이 살짝 흔들리기는 했을 거에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두 달란트 가진 종도 참 마음 붙잡기 쉽지 않았겠다 싶어요. 여러분! 그거 아세요? 다섯 달란트 가진 종이 5달란트 남기는게 어려울까요? 두 달란트 가진 종이 2달란트 남기는게 어려울까요? 여러분! 2달란트 남기는게 힘들어요. 돈이 돈을 불러와요. 가진 사람이 더 많이 벌 확률이 높아요. 그러니까 2달란트 가진 종이 힘들었다는 거에요. 아! 조금만 더 있었으면 일이 수월할텐데, 힘들고 어려운 길을 돌고 돌아가야만 했을 겁니다. 그렇다고 돈이 없는 것은 아닌데, 조금만 더 있으면 더 잘 될 거 같은데… 돈이 부족해요. 그러니 마음이 참 힘들었을 꺼에요.
그런데 숨겨진 또 하나의 상처가 있죠. 한 달란트를 빼앗아 누구에게 줘요? 5달란트 남긴 종에게 줘요. 둘 다 잘했따고 하면 공평하게 2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줘야 맞지 않나요? 그런데 주인은 5달란트 남긴 종에게 줘요. 섭섭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종은 환경탓 남탓 하지 않았어요. 부족함에도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2달란트를 남겨요. 중요한게 있어요. 우리 주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을 칭찬하기를 원하세요.
사역을 하다보면, 참 스스로 부족한 걸 많이 느낍니다. 다른 사람이 하면 더 잘할 수 있을텐데 라는 생각도 들고, 괜히 미안하고, 주눅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 때마다 주님이 내가 니 맘안다. 내가 이미 영광 받았다라며 칭찬해주시고, 위로해주시는 주님의 마음을 깨닫게 되면서 다시 힘을 내고, 애쓰다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힘이 나고, 기쁨이 찾아오고, 감사한 일이 참 많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상처 받지 않았어요. 왜요?
주인의 마음과 자신의 본문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교회 사역하다보면 힘들어요. 상처받을 때가 있어요.
상처를 뛰어넘어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
주일학교 교사 - 상처 받지 않도록 관리하는 곳에 교회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일을 감당하는 곳이 교회다. 살릴 수 있는 사람에게 영혼을 맡기는 것이 맞다. 그런 교회가 되야 한다. 상대적으로 적은 것을 가졌음에도 누구보다도 충성스럽게 일한 신앙인.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