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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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8:34-9:1)

서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죄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이기심입니다. 이 이기심의 뿌리는 인류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그들은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는 뱀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본질입니다. 자신에게 좋아 보이는 것, 자신을 높이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택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진정한 생명에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개인의 이익과 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강한 유혹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길을 보여주십니다.

1. 세상의 길과 예수님의 길

예수님께서는 3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는 세상의 길과 예수님의 길이 얼마나 다른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자신을 위해 살라고 말합니다. 더 많이 가지라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라고,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라고 부추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고통을 감내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예수님을 우선으로, 그 다음 타인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Jesus First, Others Second, You last -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습니다. 매 순간 우리는 자신의 이익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넘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완벽한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돌아보면, 그분은 항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최우선으로 두셨습니다. 요한복음 6:38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심지어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의 고통을 앞두고도 예수님은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눅 22:42)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더불어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어려움에 깊이 공감하셨습니다. 그분은 단순히 자신의 사명만을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마음을 열고 반응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사 아들을 살려주셨고(눅 7:13),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는 함께 우셨습니다(요 11:35).
예수님은 또한 소외된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세리와 죄인들, 사마리아 사람들, 나병환자들 - 당시 사회에서 외면받던 이들에게 예수님은 사랑과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그들의 아픔과 소외감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셨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 살아가야 합니다. 매 순간 우리의 결정과 행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지,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아픔과 어려움에 귀 기울이고 깊이 공감하며,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우리가 속한 모든 공동체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편안함과 이익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길이며, 참된 생명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넘어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마음을 열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풍성한 생명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 참된 생명을 얻는 길

35절에서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이 말씀은 얼핏 들으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목숨 걸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과도 좀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진정한 생명을 얻는 비밀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목숨'은 단순히 숨을 쉬고 있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생명, 즉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뜻합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반대가 진리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 자신을 넘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살아갈 때, 우리는 오히려 더 풍성한 생명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러한 삶의 모습을 여러 곳에서 보여줍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라고 하셨죠.
이는 단순히 개인의 안위나 이익을 넘어서는 삶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화평을 이루려 노력할 때, 우리는 참된 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모습도 이를 잘 보여줍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행 2:44-45) 이들의 삶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필요를 채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는 놀라운 결과를 경험했습니다.

3. 가장 귀한 것을 기억하라

36-37절을 보겠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이 진정 중요한지를 일깨워줍니다. 세상의 모든 부와 명예를 얻는다 해도, 그것이 우리의 영혼, 우리의 참된 생명과 바꿀 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단순히 "나만 살겠다"는 이기적인 태도를 권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삶을 통해 우리는 참된 생명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심으로써 가장 충만한 생명을 보여주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목숨'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생명과 생활이 조화를 이루는 온전한 삶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이 말씀은 우리가 모든 사람의 생명의 가치를 인식하고,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동참하라는 부르심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이들의 생명을 위해 우리의 삶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큰 희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에서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그들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는 작은 실천들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 때, 우리는 역설적으로 더 풍성한 생명을 경험하게 됩니다.

4. 말씀으로 인도받는 삶

대신 우리는 말씀을 통해 진정으로 복된 길, 행복한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우리가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그 가르침을 따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유혹이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말씀으로 대응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성경 말씀을 인용하셨죠(마 4:4,7,10). 우리도 이와 같이 말씀으로 무장하여 세상의 유혹과 압박에 대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불편하고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결국 우리를 참된 생명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5. 하나님 나라의 임재

이제 우리 본문의 마지막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때까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할 자들도 있느니라"(막 9: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한다'는 것은 단순히 미래의 사건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 강림, 그리고 초대교회의 폭발적인 성장을 통해 이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우리의 현재 삶 속에서도 실현되어야 할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갈 때, 우리의 삶과 공동체 속에서 실제적으로 임하게 됩니다.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때,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개인의 삶과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상상해 보십시오. 만약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가정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부부간의 이해와 용서, 부모와 자녀 간의 사랑과 존중이 넘치지 않겠습니까?
직장에서는 어떨까요?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대신 서로를 배려하고 협력하는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그곳은 얼마나 건강하고 생산적인 일터가 되겠습니까?
우리 교회와 지역 사회는 또 어떻게 변화될까요?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고, 약자를 보호하며,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지는 공동체가 된다면, 그곳에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풍성히 드러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가 이것을 직접 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지금 여기에서 말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무엇을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는 중요한 질문을 마주했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에게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라고 유혹합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행복과 성공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들은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면 행복해질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정작 그들의 삶은 공허함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끝없는 경쟁 속에서 느끼는 피로감, 관계의 단절로 인한 외로움... 이것이 과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생명'일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는 삶. 이것이 바로 참된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이 길은 때로는 어렵고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충돌할 때면 우리는 외롭고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길 끝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풍성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이웃과의 진정한 사랑의 관계, 그리고 우리 삶의 목적과 의미를 발견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어떤 세상의 부요나 명예와도 바꿀 수 없는 진정한 보물입니다.
오늘부터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예수님의 길을 따라 살아가기로 결단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이러한 삶을 통해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생명과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큰 은혜와 축복을 내려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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