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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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뜨거울 때에
날이 뜨거울 때에
1.힘에 지나는 섬김의 사람 아브라함
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복주시려고 친히 사람의 모양으로 아브라함에게 가셨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천사나 하나님이 사람의 모양을 하고 인간의 세계에 나타나는 이야기들이 종종 있습니다. 바로뒷장인 19장에도 아브라함 조카 롯에게도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지요. 성경을 배경으로 문화를 형성한 북미에서는 그래서 지금도 천사들이 사람의 모양으로 하고 사람들틈에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외야의 천사들이라는 아주 오래된 영화가 있었는데, 천사가 사람으로 나타나 매번 게임에서 지는 야구단을 도와줍니다. 그래서 이기게 하지요. 아마 우리 성도님들도 그런 류의 영화를 한두번은 보셨을 것입니다.
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신약성경 히브리서서도 그와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히브리서를 13:2을 읽기.
본문 아브라함의 사건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두천사와 함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이유는 복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가 언제냐면 날이 뜨거울 때입니다. 이 날이 뜨거울때라는 말을 중심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왜 이런 축복을 하셨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로, 환대하였을때 축복하셨습니다.
8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아브라함이 나그네로 보이는 이 사람들을 발을 씻게 하고 급히 고운 가루를 준비하여 떡을 만들고 송아지를 잡아 요리를 하여 정성껏 만들어 대접을 합니다. 그리고 천사들은 그것을 다 먹습니다. 그리고 복을 선언하십니다.
어떤 분들은 아브라함이 세명의 나그네를 보고 천사인줄 알아보고 이렇게 극진히 대접했다고 해석하지만, 왜냐하면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송아지 잡고 밀가루를 반죽해서 빵을 급히 만들고 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의 히브리서에 분명히 말하기를 부지중에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천사를 대접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아 보입니다.그냥 아브라함의 눈에 이분들이 귀하게 보였겠지요. 그래서 자신이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해 정성껏 대접을 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말하기를 이렇게 손님대접하는 것을 귀히 여겨라 . 하나님이 반드시 갚으실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천사이야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톨스토이가 쓴 예수님을 만나 구두 수선공이라는 책에 보면 , 구두 수선공 마틴은 평소에 예수님을 직접 만나기를 굉장히 사모했습니다. 그러던 성탄절을 앞둔 어느날 예수님이 음성으로 내가 내일 너희 가게를 들릴테니 잊지 말고 날 기다려라 하는 음성을 듣습니다. 구두 수선공은 다음날 하루종일 예수님을 기다렸지만 예수님은 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힘없는 할아버지 한분, 어린 아이를 낀 아주머니 한분, 딱 봐도 거지인 걸인 한 분 이 가게를 찾았습니다. 그때마다 이 구두수선공은 따뜻한 차와 빵과 스프로 환대를 하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렇게하루가 다 지나고 저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음성으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오늘 너희집에서 잘 대접받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구두수선공은 아니 언제 제가 예수님을 대접했냐고 묻자 예수님이 세 사람의 모습을 연속으로 보여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 세사람이 다 나였다 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곤 하시는 말씀이
작은자에게 한것이 곧 나에게 한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때야 비로서 이 구두수선공은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성경은 남을 환대하는 것, 그것이 복의 비결임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성도님들 오늘도 우리의 수십명의 입을 채워주시기 위해 구역장님과 행사팀에서 많은 음식으로 저희들을 섬겨주고 계십니다. 저는 이민목회를 18년째 하고 있지만 이렇게 힘에 지나도록 섬겨주시는 분들은 정말로 처음입니다. 지치지 않으실까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제가 진심으로 축복하고 기도 하는것은 그 섬김가운데 하나님이 산업과 가정가운데 만배로 갚으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대접받는 손길도 귀합니다. 대접받는 사람이 있어야 대접하는 보람이 있지요. 그리고 받은 대접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흘려보내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본문의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식사기도할때 , 또 섬김의 자리에서 기도할때가 있으면 이 성경이야기를 꺼내곤 합니다.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여 이삭을 복을 받았다고 말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감히 기대하고 싶어도 기대할수 없는 최고의 복 최고의 은혜였습니다.
이러한 복이 이웃을 섬기고 대접하는 손길들 가운데 있으시기를 다시한번 축복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손님을 대접하는 것도 귀하지만 이 섬김이 더욱 가치가 있고 귀한것은 그 섬김이 일어난 때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1절에 보니까 가장 뜨거운 때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동사람들은 농부든 목동이든 새벽에 일찍이 일어나서 일을 시작합니다. 이유는 낮이 되면 해가 너무 뜨거워서 아무것도 할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침에 하루에 해야할 일을 충분히 다 하고 난 뒤 낮에는 그늘에서 낮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 선선해진 저녁에 다시 다가 일을 끝내는 것이 보통의 서민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본문이 이렇게 가장 뜨거운 때라고 일부러 밝히는 이유는 아브라함이 아침에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낮에 쉬고 있음을 설명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하루종일 일하고 피곤에 지친 아브라함이 한참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간인데 손님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나그네들을 대접하고 섬겼다는 말입니다. 섬김 그 자체도 대단하지만 그 섬김의 시점이 한참 쉬어야할 그 시간에 섬겼다는 점에서 아브라함의 섬김의 특별함을 찾아볼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섬김의 적절한 한계에 대해서 생각해볼수 있습니다.
여러분 섬김의 한계가 어디까지일까요? 전혀 부담되지 않은 한도까지일까요? 아니면 너무 부담되서 쓰러질때까지일까요?
섬김은 어느정도하는것이 좋을까에 대한 고민이 늘 우리에게 있습니다. 성도님들 섬김을 항상 너무 쉽게만 하려고 하면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섬긴은 약간은 버거움을 느끼는 시점이 가장 좋습니다. 그렇다고 번아웃 될정도로는 좋지 않습니다.
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3 I testify that they gave according to their ability, and beyond their ability, by their own choice,
힘대로 할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섬김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힘이 전혀 안들면 그것은 섬김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버겁게 섬기면 은혜가 되지 못합니다. 그 중간 어딘가에, 약간 힘에 지나도록 섬기는 것이 좋습니다.
아브라함의 섬김의 그렇습니다. 기둥뿌리를 다 뽑는 섬김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저 마지못해 섬기는 섬김도 아닙니다. 약간은 버겁게 그러나 충분히 감당할수 있는 영역에서 아브라함은 최선으로 다해 나그네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 섬김을 하나님은 귀하게 보시고 이삭이라는 절대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2.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아브라함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중동에서는 이른 아침과 저녁에 일을 합니다. 낮에는 쉬어야 합니다. 본문의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한 때가 바로 그 휴식을 취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일부러 가장 뜨거울때 그가 장막에 앉아 있었다고 말씀하는 것은 한가지 사실을 더 말해주기 위함인데 그것은 그가 아침에 성실하게 일했던 사람임을 말해주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을때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복된 소식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일주일동안 어떻게 사셨습니까?
열심히 사셨습니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것은 완전히 은혜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복은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을 특별은총이라고 한다면 삶의 복은 일반 은총입니다. 일반은총은 심지어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칙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게으르면 힘들어지고 부지런하면 잘 살게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법칙입니다. 성경에 복받은 사람중에 게으른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의 일에 성실하고 삶에 성실한 사람들이 복받았습니다. 베드로가 언제 예수님 만났습니까? 밤세도록 빈그물을 던질때입니다. 여러분 보통 사람같으면 몇번 던져보고 , 어부생활 원데이 투데이 하는것 아니지 않습니까? 몇번 던져보고 안잡히면 오늘은 물고기 없는 날인가 보다 하고 철수 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습니다. 오기가 아닙니다 성실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도 예수믿는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이고 최선을 다했습니까? 율법을 지키기 위해 온몸이 부서져랴 열심히 행동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였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신 이후에 그는 그렇게 동일한 열심으로 최선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은혜가 무엇인지 압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은 공짜로 무엇을 얻어도 고마워할줄 모릅니다. 한다 해도 쉽게 까먹어 버립니다.
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아브라함은 자신이 해야할 일을 잘 마치고 난 뒤 그늘에 앉아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은 그를 찾아오셨다.
이에 비해 천사의 방문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어버린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이야기를 볼까요?
1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저녁때에 롯이 어디에 앉아 있었다고 말합니까? 성문에 앉아 있었다. 조금전에 말씀드렸지만 아침일찍 일하고 저녁 서늘할때 마무리를 하는 것이 일반인들의 삶이다. 그런데 롯은 그 마무리 일을 해야하는 저녁때에 어디에 앉아 있었습니까?성문이었습니다. 당시 성문주위는 그냥 여러사람들이 이야기하고 노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조카 롯은 놀다가 천사를 만난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파이어 족이 인기이다. 30대 40대 까지 불같이 일해서 평생 쓸 돈을 모으는 것이다. 그리고 40대에 리타이어해서 평생 여행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사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가? 좋아보인다. 그러나 저는 그러한 풍토가 유행하는 것이 심히 염려가 된다. 그것이 쉽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이고 두번째 이유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해석이 틀렸기 때문에 염려가 된다. 그러한 생각가운데는 일은 저주다. 일은 못난 사람이 하는 거다. 제일 부러운 것은 놀고 먹는 사람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데살로니가 후서 3장은 전체가 온통 게으름에 대한 경고로 가득차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씀한다.
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바울이 자신에 대해서 말합니다.
8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자신이 수고하고 애써 일함은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자신도 그래서 일한다고 말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일했을까 아니면 매일 매일 먹고 놀았을까? 당연히 일했다. 동산의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고 그들을 다스리는 일을 했다. 동산지기 역활을 한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이후 인간에게 일은 저주의 상징이 되었다. 힘센 사람은 일하고 부려먹는 존재로, 힘없는 사람은 부림을 받고 일만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때 처음으로 그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이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이 동산지기인줄 알고 예수님의 시신이 어디인지 물었다는 말씀이 나온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동산지기이시다. 아담이 실패한 그 일을 완전히 새롭게 하신 분이다.
예수님안에서 일은 저주가 아니다. 일은 축복이다.열심히 일한 사람이 쉼의 달콤함을 안다. 매일 놀아봐라 그것도 지겨워서 엉뚱한 것을 찾게 된다. 리타이어 하신 분들은 교회일을 풀타임으로 하시기를 축복한다. 일을 해야 젊어진다.
일은 저주가 아니다. 일은 은혜다. 공부도 저주가 아니다 은혜다. 머리터지게 무엇인가 할수 있다는 것이 은혜요 축복이다.
아브라함은 최선을 다하여 하루의 일을 마치고 쉬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은 축복하셨다.
바라기는 한주간도 최선을 다해 기쁨으로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한다.
말씀을 마치겠다.
환대가 복의 비결이다. 힘들지 않은 섬김이 아니다.약간은 힘들다 싶은 섬김이 아브라함의 섬김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복의 비결이었다.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