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복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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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오늘은 우리가 ‘다른 복음은 없다’는 말씀을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니까 왜 예수님을 믿는데 삶의 모습이 다르지? 왜 세월이 5년 10년 20년이 지나도 자기 예전 모습과 그대로일까? 어느 때는 이전보다 더 자기 색이 강해지는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면 진정한 자유와 평안과 쉼을 얻을 수 있다고 했는데 교회는 무지 열심히 다니지만 항상 삶에 찌든 것 같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교회에서만 반짝 쉼을 얻고 삶으로 돌아가면 다시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복음을 누리지 못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복음은 사실 예수님을 가리키는데 그분이 길이고 진리고 생명되시기 때문에 복음을 누리면 바른 길로 갈 수 있고, 확신의 삶을 살 수 있고, 생명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길을 잃게 됩니다. 확신이 없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생명력 있는 삶이 아니라 죽음을 향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인해 염려와 걱정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을 보며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 무리는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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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서 목회를 할 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바울의 복음을 듣고 얼마나 사모하는 마음이 컸던지 4장에서 바울이 회상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13–16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바울이 말더듬이었다는 설도 있고 간질이나 눈병을 앓고 있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워낙에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수많은 고문과 형벌을 당했기때문에 몸이 성한 곳이 없었겠지요. 그런데 성도들이 이런 바울의 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천사나 예수님처럼 영접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할 때 목사님을 예수님처럼 섬기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옆에서 보기에 오해를 할 수도 있고 눈살을 찌뿌릴 수도 있지만 복음을 받은 당사자는 그것이 너무 좋기때문에 너무 값진 것이기때문에 그 메시지를 전한 메신저를 그렇게 섬기는 것입니다.
갈라디아교인들이 바울에게 그렇게 섬겼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바울이 눈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눈이라도 빼 줄 사람들이 갈라디아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다른복음에 의해 변질되어 바울과 원수가 되게 생겼으니 이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황당한 상황입니까?
이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속히 떠나
속히 떠나
정말로 누가 뭐라고 해도 복음에서 떠나지 않을 것 같았던 갈라디아 성도들이 너무나 쉽게 그리고 빨리 복음을 떠나는 모습에 바울은 놀람을 감추지 못합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혀도 정말 세게 찍힌 것입니다.
이렇게 ‘떠남’이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의미인데 복음을 떠나는 것은 단순히 다른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버리는 행동과 같습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실족’이라고 말하는데 자기가 교회를 계속 다니거나 아니면 교회는 안나가지만 자기 안에 믿음이 있다고 말할지라도 성경이 말하는 복음을 떠나 다른 복음을 붙잡고 산다면 그것이 이미 예수님을 떠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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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성경에서는 ‘실족’이라고 표현하는데 실족에 관한 말씀을 보면 그 내용이 더 와닿습니다.
마태복음 5:29–30 (NKRV)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실족할 기미가 보이면 내 몸이라도 잘라내버리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실족하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1: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때로는 예수님의 말씀이나 성경의 말씀이 나로 흔들리거나 거부감이 들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때를 잘 넘기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이 말씀은 얼마나 중요한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도 똑같이 기록된 말씀입니다. 실족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를 이야기합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다른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이와같은 잘못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9-10
요한복음 11:9–10 (NKRV)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실족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밤과 어둠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예배와 멀어지고 말씀이나 성도들과 교제가 적어지면서 사회에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자주 자리하고 티비나 스마트폰의 미디어들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복음이 희미해지고 가벼워지고 잊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실족하기 쉬울 수 밖에 없지요.
요한복음 16: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로 실족하지 않게 하기위해 보내주신 진리의 영이 바로 ‘성령’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성령을 받으라고 자주 말하고, 성령 세례, 성령충만 등의 말로 표현합니다. 또 성령의 불로 우리의 죄를 태운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등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하고 신령한 영적인 인격으로 우리의 내면에 들어와 나의 영혼을 살리고 변화시키고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인도해주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아야 우리는 분별도 할 수 있고, 실족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3장과 5장에서 성령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함께 성경 찾아보기)
갈라디아서 3:2–5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갈라디아서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성령받기를 사모하고, 기도하기시를 바랍니다.
다른 복음
다른 복음
복음과 다른 복음은 약간 다른 개념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복음에서 조금만 변해도 다른 복음이 되는데 다른 복음은 복음이 아닌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참 다른 복음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특히 요즘같이 선생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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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 교회와 같은 다른 복음의 종류는
복장, 음식, 의식 준수 등과 같은 규정이나 계율을 강요하려 한다.
이렇게 단속이 심한 교회나 공동체의 경우에는 성도들을 엄격하게 통제하며 여러 가지 규제를 엄격하게 지킬 것을 고집한다.
갈라디아서 2: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바울은 그 당시 기독교의 주류를 이루었던 유대인들의 주장대로 행동해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대로 행동했을 때 복음의 본질이 변해버리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이 내용에 대하여 맞서서 올바르게 정정했습니다.
이 복음에 얼마나 확신이 있었던지 8절에 우리나 천사라도 이것 외에 다른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갈라디아서 이장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11–12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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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진짜 같은 다른 복음도 있다.
자유주의에 영향을 받은 복음이다. 이런 교회들은 ‘사랑’을 가장 중요한 신앙의 가치로 보기 때문에 믿음을 비교적 덜 중요하게 여긴다.
그로 인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여긴다.
이런 사유가 확장되면 기독교만이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서로 사랑하며 착하게 사는 사람들과 종교에는 모두 구원이 있다고 말한다.
이로인해 다른 종교들은 종교를 통합하기가 거리낌이 없고, 오직 선행과 봉사로 하나되자고 외치는 상황이다.
이단들은 이런 것을 이용해 많은 자원봉사활동으로 사람들의 민심을 사는 경우도 많다. 그것을 보고 일반교회보다 낫다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착취와 불의한 행동을 알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복음이 가짜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가지 예로 일장오절에 영광이 세세토록 주님께 있다고 말한 성경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구원을 이루는 조건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자기 자신의 행으로 이룬 것이기 때문에 구원에 대한 영광 또한 모두 자신의 것이 된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기독교의 신앙과 전혀 다른 모양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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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진짜 같은 다른 복음도 있다.
우리도 속한 교회와 같은 복음주의 교회의 예이다. 성경의 말씀에는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는다고 하였는데, 일부 복음주의 교회에서 예수님께 ‘순복하고’, ‘예수님께 삶을 드려야’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매우 미묘한 차이인데 결과적으로는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준비된 파이차트를 보면 젊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중 대부분이 실망감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과다한 헌신도 이런 이유 중에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모두 복음과 닮은 다른 복음으로 젊은 이들을 강요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나는 이런 이유로 교회를 떠나는 젊은이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우리는 신앙생활 중에서 이런 실수를 언제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늘 말씀에 비추어 스스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행함에 대하여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야고보 사도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이야기했듯이 온전한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라 온다.
그런데 행함이 있어야 믿음이 있는 것이고 그래야 구원을 얻는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예배를 잘 드리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봉사와 헌신이 있어야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그런 루트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경험하게 될 수 있기에 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순종이나 헌신이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고, 성도의 자발적인 동기에서 나오는 순종이라야 그것이 온전하다는 것이다.
그 외에 어떤 강요나 눈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헌신은 오히려 올바른 신앙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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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행함의 관계는 마치 야구할 때 상체와 하체의 관계와 같다.
하체가 믿음이고 상체가 행함이다.
사실 초보자나 관중들은 공을 상체로만 던진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게 던져도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그렇게 계속 던지면 폼이 점점 떨어지고 나중에는 힘도 약해지고 속도도 떨어진다.
공을 잘 던지는 방법은 먼저 하체가 잘 움직여서 그 힘을 바탕으로 상체가 따라오는 방식으로 던져야만 최상의 구질과 속도를 낼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믿음을 바탕으로 한 행함이라야 시간이 갈수록 더 빛을 발하고 신앙이 성장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억지스럽게 자기 의지와 힘으로 행함을 이루려하면 언젠간 부작용이 올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젊은이들이 얻은 피로감과 같은 원리이다.
그리스도의 종
그리스도의 종
결국 바울이 이야기하는 소결론은 그리스도의 종이 되라입니다.
여러분 모두 그리스도의 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웃음)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몸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알고 나면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고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종노릇하며 살게 태어났습니다. 끊임없이 주인이 되고싶어하는 것이 사람이지만 결국 주인노릇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히브리서 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그래서 주인이 되고자하는 사람들의 갈망을 표현한 단어가 바로 ‘자유’입니다. 자유는 언제나 사람들이 원하는 바였고, 특히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이전에 있었던 ‘선과 정의’보다도 더욱더 자유와 평등이 강조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유’에 대하여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하고싶은대로 다 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에 대해 부분적으로 아는 오류입니다.
ppt 자유와 평등의 극치를 보여준 파리 올림픽 개막식
예를 들어 우리가 어려서는 미성년자들은 술, 담배, 성관계를 하면 안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왜냐하면 선과 정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유와 평등이 더 강조되는 시대이기때문에 학생들이에 술과 담배와 성관계를 자유롭게 할 권리를 줘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자유를 누린 학생들의 삶이 평안하고 행복하고 윤택해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 중에 대부분은 알콜 중독과 담배 중독 그리고 잘못된 성관계로 인한 임신, 질병, 트라우마 등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 끊고 싶다고 쉽게 끊을 수 있을까요?? 술도 담배도 섹스도 이미 중독되면 끊지 못합니다.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됩니다. 마약의 경우에는 더 심각합니다.
이것을 ‘종노릇’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외에도 수많은 것들에 메어살아요. 내가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종살이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종이 되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원치 않던 모든 것이 다 끊어집니다. 그것이 복음의 능력이에요. 그러니까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술과 담배, 섹스 중독에서 벗어납니다. 관계가 회복됩니다. 내 나쁜 습관들을 끊을 수 있습니다.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이 떠나갑니다.
그러니 삶이 갈수록 평안하고 행복하고 윤택해지죠.
ppt 진정한 자유에 관한 로마서 말씀
복음은 이렇게 죄에 종노릇하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 위에 오셔서 모든 인류의 죄를 감당하기 위해 죽으신 이후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죄가 모두 사하여졌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 성경의 모든 메시지가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버리고 또 자기 힘으로 해보겠다고 애쓰며 또 종살이하러 가버린 성도들을 보며 바울이 얼마나 애가 타겠습니까?
그러므로 이것은 정말 단순한 메시지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 복음을 사랑하고 더 알기를 원하며 이것으로 인하여 복을 받는 인생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