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29 주일오후예배: 이사야 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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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저희를 교회로 부르시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저희를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심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희가 매주 이 교회에서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것은 매주 저희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시간 그 은혜를 베푸신 이 교회에 대하여 저희가 말씀을 통해 배우고자 합니다. 특별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교회를 왕궁으로 삼으시고 이 교회를 통해 세상에 자신의 통치를 실현하신다는 것과 그 왕궁에 거하는 저희는 백성이자 신하로서 왕의 명령대로 살아가는 자들임을 배우게 됩니다. 이 시간 이 말씀을 잘 깨달을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고 성령님께서 함께하셔서 말씀을 전하는 저나 말씀을 듣는 청중들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놀라운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함께하실 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사야 9:6-7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9:6–7 (NKRV)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를 읽겠습니다. 25장 2항입니다.
“유형교회 역시 복음 하에서 공교회요 우주적 교회인데, 전 세계에서 참 믿음(종교)을 고백하는 모든 자들과 그들의 자녀들로 이루어지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이며, 하나님의 집이요 권속이며, 이 교회를 떠나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신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느덧 9월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2024년 남은 세 달 동안도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우리를 든든히 지키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참된 안식처인 이 교회 안에서 안식과 평안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교회”라는 주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다는 사실, 그리고 교회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교회, 그리스도의 왕궁이라는 제목으로 교회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왕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21세기, 특히 국민이 국가의 주인인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왕이라는 개념은 굉장히 낯설고 이질적인 개념입니다. 우리는 단 한번도 왕에게 통치를 받아본 적이 없으며, 왕이라는 존재를 본 적도 없습니다. 더 나아가 어쩌면 우리에게 왕이라는 존재는 긍정적으로 다가오기 보다는 부정적으로 다가올 때도 많습니다. 민주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왕은 “독재”라는 개념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과 1-200백년 전만해도 왕이라는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국가가 있다면 당연히 왕이 있고, 그 왕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민주적인 지금 시대가 기나긴 역사 속에서 본다면 이질적인 시대일 수도 있습니다. 몇 천년이라는 시간 동안 고작 1-200이라는 이 짧은 시간에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도 왕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왕을 긍정적인 존재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실 때 어떤 왕을 세워야 하는지, 그리고 왕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규례들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왕을 긍정적인 존재로 여기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 다시 말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을 왕으로 세워야 했습니다. 신명기 17:18-19 입니다.
신명기 17:18–19 NKRV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은 왕을 세워야 했지만 무엇보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은 바로 하나님이 최종적인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인지하고 깨달아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자 함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과 같이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강대한 국가를 만들 수 있는 왕을 필요로 했습니다. 사무엘상 8:5 입니다.
사무엘상 8:5 NKRV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사무엘상 8:7
사무엘상 8:7 NKRV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바로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신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왕으로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래서 율법에서 명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이 아니라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왕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원하는 왕이었지만, 결국 이스라엘에게 불행만 가져다주는 왕이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서는 왕이라는 개념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왕,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할 왕을 세우는 것을 성경은 굉장히 중요하게 이야기합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 유대인들이 그토록 대망했던 존재인 메시야가 곧 왕이라는 사실만 놓고만 봐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왕에 대해서 말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가 왕궁이라는 점을 살피고자 합니다. 그래서 총 세 가지를 제가 전하려고 하는데요. 첫째로는 다윗의 왕국은 곧 그리스도의 왕국의 모형이라는 점. 두 번째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왕궁이라는 것. 마지막 세 번째로는 그리스도께서 왕이시라면 그 왕궁에 모인 성도는 그리스도의 백성이자 그리스도로부터 명령받고 세상으로 파송받은 신하라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 왕국의 모형인 다윗 왕국
첫째로 그리스도 왕국의 모형인 다윗 왕국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왕이었고, 다윗이 다스린 이스라엘은 가장 이상적인 국가였습니다. 다윗이 가장 이상적인 왕이었다는 것은 그가 다스린 이스라엘은 부귀영화를 누렸고, 아주 강대한 국가를 만들었다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가 가장 이상적인 왕이라는 것은 바로 율법에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다 지켜 행한 것에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을 실현한 왕이기에 가장 이상적인 왕이었던 겁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에 사무엘서는 의도적으로 사울과 다윗을 비교하고 대조합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가장 최악의 왕이었고, 다윗은 비록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진 않지만 가장 이상적인 왕의 행보를 보여주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현한 왕이라는 것을 가장 잘 드러내는 부분이 바로 그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순간이 찾아왔음에도 죽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사울은 아말렉 족속과 전쟁했을 때 하나님의 명령대로 진멸하지 않고 자신의 눈에 보기 좋은대로 행하는 왕이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을 질투하였고, 그에 대한 분노로 그를 죽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 어떻게해서든지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고, 그를 죽이기 위해 계속 쫓아다녔습니다. 다윗은 억울하였습니다. 그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울로부터 쫓겨야했고, 도망자 신세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오히려 사울의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였는데도 말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찔렀을 때만해도 사울은 다윗을 총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총애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전쟁에서 개선하고 돌아올 때 개선하는 군대를 향한 백성들의 노랫소리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는 노랫소리 때문이었습니다. 자신보다 다윗을 더 높이는 백성들의 노랫소리 때문에 사울의 마음은 화인을 맞았고, 이때부터 사울의 마음에는 다윗을 향한 총애가 질투와 분노로 뒤바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다윗을 향한 질투와 분노는 사그라질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몇 번이고 기회가 될 때마다 다윗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반해 다윗은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결코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충분히 억울할만 합니다. 누가봐도 억울합니다.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이 기회가 찾아왔을 때 사울을 죽이고 왕이 되라고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이 부하들의 말은 결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말이 아닙니다. 사울이 목숨을 위협하기에 정당방위이며, 부하들의 말은 충언입니다. 우리가 다윗이었어도 지금 이 상황과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의 말이 너무나 합리적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또한 자신이 억울하니 그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모두가 사울을 죽이는 것을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오로지 당사자인 다윗만이 사울을 죽이지 않기로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사울에게 기름부으시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그는 지금 자신의 억울함과 상황보다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기로 합니다. 바로 다윗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의 통치가 이 땅 가운데 실현되기를 소망한 겁니다.
또한 다윗이 이스라엘의 영토를 넓힐 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영토만을 정복한 것 또한 그가 얼마나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왕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군사적으로 강력합니다. 주변 이방 국가처럼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 이후의 국가들이지만 앗수르와 바벨론, 얼마나 큰 영토를 차지하였습니까? 그런 대제국을 건설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그 땅만 정복하고 다스렸습니다. 그 이외에는 그 영토를 가진 국가들로부터 조공만 받을 뿐이었습니다. 자신이 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주인과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것을 알기에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고, 하나님의 통치가 자신을 통해서 실현되길 바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왕이 다윗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이방 국가들은 정복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통치 실현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통치가 얼마나 아름답고 복된 것인지를 보여주시고, 직접 경험시켜 주시기 위해 다윗과 솔로몬이 다스리던 그때에 강대하고 부귀한 이스라엘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스바 여왕이 이스라엘을 찾아왔을 때 솔로몬의 지혜와 아름다운 왕궁을 보았을 때 경탄을 금치 못했다는 것만 봐도 하나님의 통치가 얼마나 아름답고 복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기 보다 자신의 인기와 명성에 집중한 최악의 왕이었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길 원한 이상적인 왕이었습니다. 따라서 이후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왕들은 모두 사울을 답습한 왕들이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왕들은 다윗을 답습한 왕들입니다. 성경이 선한 왕들에 대해서 말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표현이 “다윗의 길로 행”했다는 표현입니다. 바로 왕들을 평가할 때 내리는 절대적인 기준이 다윗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다윗의 왕국인 이스라엘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왕국의 모형이 됩니다. 다윗 중의 다윗인 그분께서 다스리시는 왕국의 표상이 되어 참된 이스라엘의 왕이신 그분이 다스리는 나라는 얼마나 더 위대한지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분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마침내 하나님 나라, 즉 하나님의 왕국이 왔다는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나라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인 “바실레이아”는 “왕국”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예언하는 본문입니다. 6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왕이신 것을 말씀하였다면, 7절은 그 왕은 다윗의 왕좌 위에 군림하실 것을 말씀합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다윗보다 더 위대하신 왕으로서 오실 것을 예언하셨고, 마침내 신약에 와서 그것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왕이 있다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바로 왕이 거할 왕궁이 필요합니다. 왕궁에서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통치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왕궁은 어디입니까? 물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여전히 왕으로서 통치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더 나아가 재림하시기 전까지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을 통치하시는 곳을 교회로 삼으셨습니다. 바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왕궁입니다.
2. 그리스도의 왕궁인 교회
두 번째로 교회는 왕이신 그리스도의 왕궁이라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신약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구약까지 이스라엘 백성, 즉 유대인들에게 국한되어 있었던 복음이 이제 이방인들에게까지 열리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가나안 땅, 팔레스타인 지역뿐만 아니라 모든 세상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교회를 통해 만유의 왕으로 본격적으로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물론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모든 세상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그 중심이 되어 모든 이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하나님께서는 더 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의 기회가 열리고 교회가 유대 지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세워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세워진 모든 곳이 이제는 통치를 받는 곳으로 삼으셨습니다. 다시 말해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을 통치하시기 위해 교회를 왕궁으로 삼으시고, 이 교회에 거하심으로 자신의 말씀과 명령을 주시고 통치하십니다. 에베소서 2:22 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2:22 NKRV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바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 즉 왕이 거하시는 처소인 왕궁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도 이것을 확언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있는 유형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왕국, 또는 왕궁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벨직 신앙 고백서는 그리스도께서 왕이시라는 것에 대하여 더 자세히 말하고 있습니다. 벨직 신앙 고백서 제27조입니다. 앞에 화면을 보시고 함께 읽겠습니다.
“제 27 조: 하나의 거룩한 교회 우리는 하나인 보편적인 교회를 믿고 고백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용서함을 받고 성령으로 성화되고 인쳐졌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구원을 기다리는 참된 기독교 성도들로 이루어진 거룩한 회중이다. 이 교회는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있어왔으며, 세상 끝 날까지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영원한 왕이신데, 그 백성 없는 왕이 존재할 수 없듯이 그의 백성인 교회는 영원히 존재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박해로부터, 비록 한 때 교회가 매우 작아 보이고 사람의 눈에 사라질 것 같이 보여도, 이 거룩한 교회를 보존하신다. 예를 들어서, 아합 시대의 위험한 상황에서 주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바알에게 절하지 아니한 칠천 명을 보존하셨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교회는 어느 한 장소나 사람들에게 제한되거나, 매이거나, 구속되지 아니한다. 교회는 온 세상에 전파되고 퍼져서 존재하지만, 한 성령 안에서 신앙의 능력으로 한 마음과 뜻으로 연합되고 연결된다.”
바로 백성인 교회는 왕이신 그리스도의 왕궁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 가운데 말씀하심으로 자신의 백성을 모으십니다. 예정하신 자들을 모으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교회를 세우시고 말씀을 심으십니다.
교회를 개척할 때 가장 중요한 직분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목사입니다. 목사라는 직분자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목사가 말씀을 직무로 맡은 자이기에 교회를 세우고 자신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목사를 보내어 교회를 개척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통치를 실행하십니다.
사도행전을 보십시오. 사도행전을 보면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통치하시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백성을 모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이들에게 직분자를 통하여 복음을 들려주시고, 그리스도께서 하신 그 복음을 듣고 변화된 성도들은 옆에 있는 형제를 위하여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놓아 구제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통치 원리인 자비와 긍휼, 그리고 사랑입니다. 그리하여 교회 내에서 물질적으로 부족한 자가 없어 모든 이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거리낌이 없도록 합니다.
이것은 구약 율법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율법에도 하나님의 통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약자들을 돌보고 그들도 같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어느 누구 하나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방해 요소가 없도록 모두가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매주 듣는 십계명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4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입니다. 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비단 유력한 유대인들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출애굽기 20:10 입니다.
출애굽기 20:10 NKRV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바로 이스라엘 백성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집안에 머무는 손님, 이스라엘 백성 중에 있는 외국인도 포함이었습니다. 이들을 안식일에 쉬게하여 모두가 잠시 노동을 그만두고 함께 왕이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참여합니다. 더 나아가 희년에 관한 법, 과부에 관한 법, 손해를 보상할 것에 대한 법 등등 수많은 약자들을 보호할 것에 대한 규정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에서부터 공의와 정의, 긍휼과 자비, 그리고 사랑이라는 통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이 통치를 교회를 통해 펼쳐 가십니다. 그리하여 교회 안에 들어온 성도들은 이 왕궁 안에서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왕국이 얼마나 아름답고 풍성한지를 이 땅 가운데서 경험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이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교회가 있는 그 지역에도 자신의 통치를 행하십니다. 교회가 주변 이웃에게 전도하고, 삶이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 왕이신 그리스도의 긍휼과 자비, 그리고 사랑이 전달됩니다. 그리하여 아직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그리스도의 통치가 임하여 그분의 통치를 받기를 소망하며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교회를 통해 일하고 계십니다.
왕궁인 교회에서 거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인간의 왕과 비교할 수 없는 왕이십니다. 우리가 아주 훌륭한 군주, 위대한 왕, 또는 백성들을 위해 통치한 성군이라고 생각하는 왕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시며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조선의 세종대왕보다도, 정조대왕보다도, 심지어 이스라엘의 가장 이상적인 왕인 다윗보다도 더 월등한 왕이십니다.
그분은 폭군이 아니십니다. 절대로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통치하지 않으십니다. 앞에서 우리가 통치 원리를 살펴봤뜻이 그분은 언제나 공의와 정의, 긍휼과 자비, 그리고 사랑으로 통치하십니다.
이처럼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왕궁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왕궁으로 삼으시고 통치하신다면 그 왕궁에 살고 있는 백성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바로 왕의 명령과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3. 성도는 그리스도의 백성이자 명령받은 신하다.
마지막 세 번째는 그 왕궁에 거하는 백성들, 즉 교회의 성도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은 신하임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다윗 왕국은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왕국의 모형이라는 것. 그리고 교회는 그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왕궁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그 왕궁에 거하는 우리, 바로 왕이신 그리스도의 백성인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교회가 왕궁이라면, 그 왕궁에 사는 우리에게 맡겨진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왕이신 그분이 우리에게 하달하시는 명령과 말씀을 지키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왕이신 그리스도의 백성이자 신하입니다. 우리가 매주 주일마다 듣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넘어서서 왕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 말씀대로 우리가 살아내는 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임무입니다. 왕께서 행하시는 통치에 불복하고, 왕께서 내리시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정녕 그 왕의 백성이자, 신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제일 처음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어쩌면 왕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극이나 다른 여타 역사책들을 보면 왕정 제도가 나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뛰어난 왕과 그 왕에게 충성하여 무슨 명령이든지 지켜 행하는 신하의 모습을 볼 때 정말 아름답다고 느껴집니다. 군주와 신하와의 관계가 이렇게 바르게 정립되어 있을 때 억압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아름다움으로 보입니다. 왕정 제대로 나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문제인 것이죠. 현대는 왕정 시대가 아니라 민주정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민주정이 나쁜 것이 아니라 이 안에 있는 사람이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왕정 제도도 마찬가지인 것이죠.
이처럼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폭군이 아니라 언제나 선하시며 공의로우시며,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가장 좋으신 왕이십니다. 심지어 그 왕은 자신의 목숨도 백성을 위하여 희생하신 왕이십니다. 우리가 이런 왕에게 충직한 신하가 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이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목숨조차도 이 왕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내어놓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사도행전 20:24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20:24 NKRV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로 자신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내리신 그 사명을 위하여 바울은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은 충직한 신하가 되었습니다. 그분께서 내리신 명령을 모두 지켜 행하기 위하여 바울은 부단히 노력하였습니다. 여러 곳으로 전도하였고, 그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자신에게 그리스도께서 특별한 것을 해주시지 않았어도, 오히려 그에게 고난이 찾아왔더라도 자신의 왕이신 그분이 자신에게 보여주신 엄청난 사랑과 자비에 힘입어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달려가는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정체성이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는 왕이신 그리스도의 명령을 하달받은 신하입니다. 우리는 주일에 들은 말씀을 가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명령받은 그것을 힘써 지켜 행해야 합니다. 그분이 얼마나 좋은 왕이신지를 우리가 왕의 명령을 지켜 행함으로 알리고, 그분의 통치가 우리가 있는 곳에 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그렇게 왕의 명령을 지켜 행할 때 비로소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이 될 수 있습니다. 형상은 백성들이 왕을 쉽게 볼 수 없으니 왕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려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처음 지으셨을 때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세상에 알려주고 계셨고 우리를 대리 통치자로 삼아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인해 우리는 왕의 명령을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무능력한 상태가 되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명령들을 지켜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렸던 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심으로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명령들을 지켜 행함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세상에 알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은 곧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지켜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마치 우리의 것이 된 것이 아닙니다. 왕이신 그분을 우리가 나타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자신이 이 세상의 왕이시라는 것을 알리시고, 자신의 통치가 임하길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왕궁, 그리고 성도는 그리스도의 백성이자 신하라는 의미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그리스도와 이어져있습니다. 교회의 주어는 항상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가 없다면 교회는 교회가 아니며, 그저 사사로운 집단일 뿐입니다. 왕궁에 왕이 없는데 어찌 그곳이 왕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왕궁입니다. 그분은 다윗보다 훨씬 뛰어나신 왕으로서 교회를 통해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교회를 보존하시면서 백성이자 신하인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명령하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왕이신 그분의 명령을 받은 신하로서 그분의 말씀과 명령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신하인 우리의 도리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임을 나타내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일부터 다시 세상에 나가시는 여러분. 왕이신 그분께서 내리시는 명령에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그분이 내리시는 명령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행복한 명령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이미 주셨고, 지금도 주고 계신 사랑과 은혜를 힙입어 우리가 기꺼이 순종할 수 있는 명령입니다. 왕궁인 이 교회에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내리시는 명령을 받아 날마다 달려가는 것에 전력하는 신실한 백성으로서, 신하로서 살아가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통치가 우리 새순교회를 통하여 임하게 되는 놀라운 복을 누리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기도하시겠습니다. 이 시간 같이 한 가지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왕궁입니다. 그분은 이 교회를 왕궁으로 삼으시고 자신의 통치를 이 땅 가운데 실현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왕궁에 사는 우리는 백성이자 신하로 그분의 명령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인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이 시간 같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왕이신 그리스도의 왕궁인 이 교회가 절대로 그리스도를 잃지 않고 날마다 그리스도께서 계셔서 통치하시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사울과 같이 하나님이 떠나는 교회가 아니라 다윗과 같이 왕이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또한 백성이자 신하인 우리가 매주 선포하시는 말씀과 명령을 듣고 세상 속에서 그 명령대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 참된 하나님의 형상의 모습을 취하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이 시간 이 기도제목으로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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