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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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고통은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지혜문학 개괄: 인과응보를 중심으로
지혜문학 개괄: 인과응보를 중심으로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이번 주 평일에 우리는 욥기의 말씀을 듣습니다. 욥기는 구약 성경에서 지혜문학에 속한 책입니다. 지혜문학에는 잠언, 욥기, 코헬렛, 집회서, 지혜서가 포함되지요. 저번 주에 우리는 잠언과 코헬렛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인생을 관통하는 지혜에 대해 묵상해 보라는 그런 의도가 담겨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런 지혜문학은 크게 보았을 때 약간의 차이가 납니다. 예컨대 잠언의 주제는 이렇습니다. 착한 일을 하면 하느님께서 복을 주시고, 나쁜 일을 하면 하느님께서 벌을 주신다. 간단히 말해 인과응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아보니 생각보다 세상만사가 그리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착한 일을 해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나쁜 일을 하는 데도 잘 사는 것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해법을 내놓았습니다. 세상만사 하느님께서 오묘한 섭리로 하시는 것이니, 이것을 인간이 다 알 수가 없다. 이게 바로 저번 주에 읽은 코헬렛과 욥기의 주제입니다. 그러나 무언가 만족스러운 답변이 아니지요. 그래서 성경은 한 발 더 나아갑니다. 현세에서는 착한 사람이 불행하게 살 수 있어도, 내세에서 하느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다. 이제 내세로 사고가 확장되는 것입니다.
욥기의 맥락: 찬양에서 저주로
욥기의 맥락: 찬양에서 저주로
욥기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이 과도기적인 시기에 딱 끼어 있는 작품입니다. 이는 어제 독서를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탄과 내기를 하셔서, 사탄이 욥에게 여러 고통을 줍니다. 수많은 가축들도 빼앗아 버리고, 자식들도 다 죽게 만들지요. 그래도 욥은 말합니다.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아직까지는 하느님을 찬양하지요. 그러자 사탄이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저자의 뼈와 살을 쳐 보십시오. 그는 틀림없이 당신을 눈앞에서 저주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심한 부스럼으로 욥을 칩니다. 욥은 옹기 조각으로 자기 몸을 긁으며 잿더미 속에 앉아있지요. 아주 비참한 모습입니다. 그런 욥의 입에서 바로 오늘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차라리 없어져 버려라, 내가 태어나던 날!”
고통의 유용성: 겸손
고통의 유용성: 겸손
성경에 있으리라고 생각하기에는 아주 충격적이고 부정적인 내용이지요. 그렇지만 교회는 이 내용까지도 성경에 수록하며 우리가 읽어보게 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부분이 던져주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을 맞습니다. 죽음, 질병, 노화는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고통이죠.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전해줍니다. 바로 우리가 당연히 늙고 아프고 죽게 되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고통 앞에서 당연히 절망하고 분노하고 슬퍼하지요.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한계가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한계에 맞닥뜨리더라도, 우리는 의지하고 우리의 고통을 맡겨드리고, 더 나아가서 가끔은 너무 힘들 때 탄원할 수 있는 하느님이 언제나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이지요.
이번 한 주간 미사에 참여하시면서 욥기의 말씀을 함께 읽어 보시고, 욥이 전해주는 지혜를 묵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