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라!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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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은 말씀 앞에 즉각적인 변화를 소망해야 한다.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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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나 2장 10절 – 3장 10절 10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1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4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H(Hook): 흥미유발, 들어가는 말
한 달 전, 우리가 한 주 동안 살펴보려고 했던 요나서의 본문을 아쉽게도 이틀만 살펴보고 잠깐 그쳤는데요, 오늘 내일 마져 요나서의 본문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지 않으실 것 같아서 앞에의 본문들을 간단하게 요약해드리면, 하나님이 요나에게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요나가 자기들을 괴롭혔던, 적군이자 이방 민족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러 가는 것이 싫어서, 멀리 다시스로 도망을 갑니다. 그렇게 요나는 배에 올랐지만 표현이 그렇지, 성경은 계속해서 요나가 내려가는 상태를 보여줌으로써,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지고 있으며, 영적인 상태가 어떠한가 보여주고 있고요, 끝내는 잠을 자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세상의 풍랑 가운데 세상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잠들어 있고, 도리어 세상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을 깨우는 그리고 세상은 하나님을 두려워 예배하는데, 정작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요나는 끝내 바다로 던져지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누군가는 풍랑을 만난 것도,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뽑힌 것도, 바다로 던져졌지만 물고기가 삼킨 것도 모두 우연이라고 하겠지만, 하나님은 결코 ‘아니’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주고 계신데, 그 이유는 먼저는 이방 민족에게 선포할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말씀이 요나에게 진실되게 전해지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과정 가운데 요나라는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끈질기게 쫓아오시는 사랑의 추격자이신 하나님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끝내 바다로 던져진 요나는 “주께서 나를 깊은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라고 고백하며 이 모든 상황을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시고, 하나님을 인정하며 찾는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2장의 내용까지 살펴보았습니다.
B(Book): 본문연구(주해적 다리놓기)
그리고 오늘 본문은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밤낮을 보낸 요나가 육지에 토해내지는 장면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보통 “토해내다”는 단어는 성경에서 부정적으로 쓰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요나에게는 상황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우리 모두는 배 속으로부터 나왔던 경험이 있지요? 이것은 태어남, 새로운 생명을 얻음, 새롭게 시작함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아마 오늘 요나가 물고기의 뱃속에서 토하여내지는 장면을 통하여 성경은 요나의 인생이 새롭게 태어나고, 새로운 생명을 얻었으며, 새롭게 시작하는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설명하듯 3장 1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라고 시작하고 있죠?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내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제가 요나서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가장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심 구절이 뭐다라고 말씀드린적 있었는데, 기억나십니까? 그게 바로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내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이 말씀이었습니다. 요나서를 시작하며 1장에 등장했던 말씀이 요나서의 중간 지점인 3장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은? 요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첫날 우리가 요나서 말씀을 나누면서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우리에게도 사역을 그만두고 싶고, 버거워서 모른 채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그때 “그래도 해야지”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하다고 느끼고, 하나님은 내 마음도 모르시는 것 같아 답답하고, 이 상황은 숨이 막히고, 그런 생각이 들지만, 훗날 돌이켜 보면 ‘그때 나를 붙잡아주셨던 것이, 끝까지 나를 쫓아와 주셨던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자, 가장 큰 축복이었구나’ 생각나게 하신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의 추적자’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랑의 마음으로 사역의 현장에서 실패한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는 것이죠.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갈릴리의 자기의 본업으로 돌아갔을 때, 예수님이 찾아와서 딱 한 가지만 물어보시잖아요? “베드로야 너 아직 나를 사랑하지?” 그것이 베드로의 평생에 얼마나 가슴이 찡해지는 감사와 눈물의 순간이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사랑의 추적자’의 하나님이 너무나 무섭고, 귀찮고, 집착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들에게는 그것만큼 큰 하나님의 축복이 없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에도 끈질기게 우리를 쫓아오시는 하나님의 추적이, 사랑으로 느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자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3절 말씀을 보니까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거기까지 끊어보겠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번에는 다시스로 피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느웨로 가는 요나의 순종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십시오.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그 다음에 나오는 하반절은 마치 뭔가 부자연스러운 구절이 끼어든 것처럼 느껴집니다. 맥락 같아서는 “니느웨로 가니라” 그 뒤에 4절로 이어져야 자연스럽거든요? 한 번 보십시오.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그렇죠? 그런데 굳이 성경은 3절 후반부에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는 말을 끼워 넣고 있습니다. 왜 굳이 이런 부자연스러운 구절을 끼워넣고 있느냐? 그 이유가 바로 오늘 말씀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에서 ‘큰’이라는 의미는, NIV 영어 성경으로는 “important”라는 단어로 번역되었는데요, 이것은 ‘중요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NIV 성경뿐만 아니라, 많은 히브리어 역본에도 이러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니느웨 성은 물리적인 사이즈로서의 부피가 크고 넓은 성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매우 중요한 성읍이라는 의미라는 것이죠. 우리도 사업을 하다가 다른 회사와 중요한 체결을 맺을 때, “이거 매우 큰 건이야” 이런 표현을 쓰잖아요?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왜 헷갈리게 “사흘 동안 걸을 만큼”이라고 표현해서 물리적인 크기로 생각하게 만들었느냐? 3일이나 걸어야 할 만큼 많은 영혼이 있건, 구석 구석 하나님의 복음이 들어가야 하겠건, 그 이유는 명확치 않지만 어쨌든 3일의 시간이 필요할 만큼 중요한 이 니느웨의 성읍을 요나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지 보실래요? 4절 말씀입니다.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몇 일이요? 하루! 단 하루 동안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하루 동안 열심히는 했겠죠. 그러나 “사흘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을 “하루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라는 것은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도 ‘그의 마음이 어떠했는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죠. 아마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도, ‘제발 이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으면’하는 마음으로 선포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문제는 내일 4장을 나눠보며 다시 한 번 짚어보기로 하고, 일단은 넘어가겠습니다.
이제 상황은 요나의 기대와 바람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5절 말씀을 보니까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옷을 입은지라” 부흥도 이런 부흥이 없습니다. 요나가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을지는 뻔하기 때문에, 그가 대단한 열정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화려한 언변으로 하지도 않았을 터인데,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니까 그 많은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다 하나님께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금식을 선포하고, 베옷을 입는데 이것은 자신을 낮추는 행동일 뿐 아니라 참회 혹은 애곡을 표현하는, 다시 말해서 보여주기식의 회개가 아니라, 정말로 참회하는 깊은 회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죠.
6절을 보니까 그러한 일이 니느웨 왕에게도 일어나는데, 왕의 변화되는 상태를 보십시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위에 앉으니라” ‘일어나’, ‘앉고’, ‘벗고’, ‘입고’ 이 대조되는 표현을 통하여서 왕의 태도가 어떻게 바뀌는지 보여주는 것이죠?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는 의자에서 내려와, 왕복을 벗고, 그 대신 베옷을 입고 먼지 위에 앉음으로 자신을 낮추는 것. 이것은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취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통치자라 불리는 왕이라고 할지라도 우주의 통치자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겸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리고 그 왕이 명령하길 사람 뿐 아니라 짐승들 즉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회개를 통하여 8절에서 “하나님을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이만한 회개는 성경을 통틀어서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입니다.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는 것은 그들의 말 뿐인 회개가 아니라 행위로 돌이키는 온전한 회개를 보여주고 있고요, 또 놀라운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9절 말씀에서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이게 참 대단하게. 이 사람들이 언제부터 하나님을 믿었다고 하나님 앞에서 정확한 믿음의 고백을 드리고 있냐는 것이죠. 결국 하나님은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는 하나님 마음에도 흡족하고 니느웨 사람들에게도 아름다운 결말로 오늘 말씀은 마무리되어지고 있습니다.
L(Look):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니느웨 백성들의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또 우리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바로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나가 배 위에 올랐을 때, 그것은 ‘세상의 작은 축소판이다’라는 사실 기억하시죠? 거기서 요나는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풍랑 즉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도 요나는 고집을 꺽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도 요나는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기쁨으로 동참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수많은 기적을 경험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 앞에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요. 실제로 지금 동시대의 선지자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선포하고 있지만, 그들은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요. 심판보다 회개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특별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모든 자에게 누구나 상관없이 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열방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자녀들만 통하여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이뤄가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한 민족의 신이 아니라 만물의 창조자요 우주의 통치자이시기 때문입니다.
T(Took):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미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무뎌져서, 하나님의 일하심과 함께하심 심지어 기적에도 감각이 더뎌서, 하나님이 사용하시고자 하는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잠자고 있다면, 우리가 마주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대한 하나님의 구원이 아니라 심판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니느웨 백성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전심으로 회개하여 나의 행동에 변화를 가져오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며 바라보는 것, 그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주어지는 자세는 요나처럼 배의 낮은 곳으로 내려가 깊은 잠에 드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잠을 깨워 새로워지기 위하여, 회개하며 하나님을 찾는 것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 된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안다면 예수를 아는 자와 같이 살아갈 수 있기를 결단할 수 있는 오늘 이 아침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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