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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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맞는 비
함께 맞는 비
맥락: 세 친구
맥락: 세 친구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우리는 계속해서 제1독서로 욥기의 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미사 때 우리가 읽는 욥기는 굉장히 함축적입니다. 많은 부분을 건너뛰고 중요한 부분만 수록하고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욥기 전체를 읽어 보셔도 좋겠습니다만, 이렇게 전례가 제시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사실은 충분합니다. 욥기는 비슷한 내용의 반복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내용이 반복됩니다. 욥이 자신의 고통을 아주 비참하게 토로합니다. 여기에 욥의 친구 세 명이 등장합니다. 엘리파즈, 빌닷, 초파르입니다. 이 친구가 욥의 이야기에 반박합니다. ‘니가 모르는 죄가 있어서 하느님께서 벌을 주시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도 하고 ‘하느님께서 크신 뜻이 있어서 이런 고통을 주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도 하지요. 나중에 엘리후라는 사람이 등장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진정한 위로는 비를 함께 맞는 것
진정한 위로는 비를 함께 맞는 것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너무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 앞에서 열심히 하느님을 변호하고 고통의 의미를 설명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위로가 될까요? 이미 많은 경험을 해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떨 때에는 욥과 같은 입장이 되신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커다란 질병, 가까운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 갑작스러운 사고의 당사자가 되신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어떨 때 우리는 욥의 세 친구와 같은 입장을 취하기도 합니다. 고통을 겪는 사람 앞에서 여러 의미에 대해서 나름대로 설명을 하지요. 어떠셨나요. 그런 설명이 위로가 되셨나요. 많은 경우, 정말 엄청난 달변가가 아닌 이상 이런 설명은 아무 위로를 주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냥 나와 별 상관 없는 좋은 이야기 정도로만 느끼셨을 테지요. 아니 더 나아가서 잘 알지도 못하는 데 참 쉽게 이야기한다는 분노도 느끼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이런 말이 있습니다. 비를 맞고 서 있는 사람이 있으면, 우산을 씌워 줄 생각을 하지 마라. 그 옆에서 비를 함께 맞아줘라. 무슨 말이냐면, 심한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이런 저런 해결법을 주려 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저 그 옆에 함께 있어 주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잘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지요.
비를 함께 맞아 주신 예수님
비를 함께 맞아 주신 예수님
세상의 많은 종교는 이런 고통의 해결법을 제시하려 합니다. 고통의 의미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지요. 그렇지만 우리 그리스도교는 조금 다릅니다. 고통에 대해서 ‘저 멀리 있는 신의 뜻이 이렇다’라고 쉽게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신이 직접 고통을 받습니다. 바로 참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십자가 고통을 겪으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우산을 씌워주기보다는 직접 우리와 함께 비를 맞는 것, 더 나아가서 우리의 고통보다 더 비참한 고통도 직접 취하신 것이지요.
오늘을 마무리하며 고통에 대해 잘 생각해 봅시다. 나는 혹시 욥의 세 친구처럼 우산을 씌워 주려 노력하고 있지 않았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비를 함께 맞는 사람이 되어줍시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