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04 금요기도회: 나훔 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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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금요기도회 자리로 불러주시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 세상의 유일한 주권자는 바로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저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임을 고백합니다. 저희가 소유하고 누리는 것들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저희거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이 금요기도회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나훔 3:1-13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
보라 내가 네게 말하노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 치마를 걷어 올려 네 얼굴에 이르게 하고 네 벌거벗은 것을 나라들에게 보이며 네 부끄러운 곳을 뭇 민족에게 보일 것이요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를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 때에 너를 보는 자가 다 네게서 도망하며 이르기를 니느웨가 황폐하였도다 누가 그것을 위하여 애곡하며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할 자를 구하리요 하리라
네가 어찌 노아몬보다 낫겠느냐 그는 강들 사이에 있으므로 물이 둘렸으니 바다가 성루가 되었고 바다가 방어벽이 되었으며
구스와 애굽은 그의 힘이 강하여 끝이 없었고 붓과 루빔이 그를 돕는 자가 되었으나
그가 포로가 되어 사로잡혀 갔고 그의 어린 아이들은 길 모퉁이 모퉁이에 메어침을 당하여 부서졌으며 그의 존귀한 자들은 제비 뽑혀 나뉘었고 그의 모든 권세자들은 사슬에 결박되었나니
너도 술에 취하여 숨으리라 너도 원수들 때문에 피난처를 찾으리라
네 모든 산성은 무화과나무의 처음 익은 열매가 흔들기만 하면 먹는 자의 입에 떨어짐과 같으리라
네 가운데 장정들은 여인 같고 네 땅의 성문들은 네 원수 앞에 넓게 열리고 빗장들은 불에 타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번 한 주 휴일을 잘 보내셨는지요. 교회에 경조사도 있어서 한 주가 금방 지나갔는데요.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인 우리 하나님과의 교제를 결코 놓치지 마시고 꼭 지키면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말씀을 기도제목으로 삼고 먼저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오늘 말씀은 나훔 3장의 말씀으로 계속해서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를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선지자 나훔을 통해 니느웨의 멸망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오늘 말씀은 특별히 니느웨가 왜 멸망하는지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주시는지 살피고 기도제목으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1절에서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라고 시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라는 이름을 쓰지 않으시고 “피의 성”이라고 부르시면서 니느웨가 사람의 피로 물들어 있음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니느웨를 “피의 성”이라고 부르시는 이유는 니느웨는 전쟁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더 나아가 잔인하게 사람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니느웨는 피로 사람들의 피로 물들게 되었고, 그곳에는 거짓과 약탈이 가득한 성이었습니다. 1절에서 “피의 성”이라고 부른 것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2-5절에서 나옵니다.
2-3절에서 나훔은 전쟁터의 상황을 묘사합니다. 이 묘사는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요. 첫째는 이 전쟁 상황을 수행하고 있는 주체가 다른 민족을 공격하는 앗수르 군대의 모습인지, 아니면 공격당하고 있는 니느웨의 상황인지 분명하지가 않고 모호하다는 겁니다. 둘째는 전쟁 상황 묘사가 영화를 찍는 것처럼 아주 생생하게 표현한다는 겁니다. 2절에서 나훔은 병거들이 전쟁터로 돌진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나훔은 청각을 사용하여 매우 생생하게 니느웨 전쟁을 묘사합니다.
말이 빨리 달리도록 말에게 채찍을 뒤두르는 장면을 청각과 시각으로 구분하기 위해 “채찍 소리”와 “말이 뛰며”를 분리하여 말하고, 빠르게 달리는 병거를 마찬가지로 청각과 시각으로 구분하기 위해 “병거 바퀴 소리”와 “병거가 달리다”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채찍 소리”와 “병거 바퀴 소리”와 같은 소리에 대한 표현을 앞에 두고, “말이 뛰며”와 “병거가 달리다” 같이 시각에 대한 표현을 뒤에 두었습니다. 너무나 생생하게 전쟁 상황을 나훔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휙휙”과 “윙윙”이라는 의성어로 시각적인 효과를 주고 있으며, “뛰는”, “달리는”, “충돌하는”, “번쩍이는”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시각적인 효과를 주고 있습니다.
비록 문자로 되어 있지만, 이렇게 전쟁 장면을 생생하게 표현함으로써 앗수르가 벌인 전쟁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3절에서 나훔은 기병들의 전투 장면과 그 전쟁터에 널 부러져 있는 주검이 된 많은 시체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체가 얼마나 많은지 사람이 걸려 넘어진다고 합니다. 이런 끔찍한 전쟁 장면은 앗수르가 벌인 전쟁들에서 다반사로 일어났었습니다. 앗수르의 전쟁에 대한 기록들을 보면 정말 앗수르가 벌인 전쟁들은 너무나 참혹하고 잔인하며, 끔찍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앗수르는 정복한 도시마다 엄청난 살육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2-3절의 전투 장면과 시체더미가 앗수르 군사들이 저지른 전쟁 범죄인지, 아니면 이들이 공격 당한 결과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앗수르가 이렇게 행한 것인지, 아니면 앗수르가 이렇게 당할 것인지를 알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렇게 애매하게 하나님께서 표현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일부러 이렇게 애매모호하게 말씀하심으로 중의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바로 앗수르가 행한 잔인무도한 것을 하나님께서 앗수르에게 그대로 보응하실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들이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여 즐거움과 쾌락을 즐겼지만, 이제 자신들이 그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당하게 될 겁니다.
전쟁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함으로써 이들이 벌인 전쟁을 기억나게 함으로 그들이 자신들이 행한 것과 똑같이 당하게 될 것을 하나님께서 알려주심으로 이들에게 닥쳐올 심판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지를 알려주고 계십니다.
이렇게 2-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앗수르가 행한 전쟁 때문에 니느웨가 멸망당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앗수르가 강력한 군사를 가지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을 심판하시려는 도구로서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택하셨고, 이들에게 그러한 힘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앗수르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 힘을 자신의 만족과 쾌락을 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지나치게 정복하였고, 심지어 잔인하게 다른 민족들을 다루었습니다. 그리하여 월권을 행사한 앗수르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왜 니느웨를 심판하시게 되었는지 이유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니느웨가 멸망당하게 된 것은 이렇게 비단 전쟁 때문만은 아니었는데요. 다른 니느웨가 멸망하게 된 다른 이유로는 종교적인 이유, 신앙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다른 이방 신을 섬기고, 다른 국가들을 미혹하여 우상 숭배하게 만든 죄를 범했다는 겁니다.
4절은 니느웨를 창녀로 묘사하며 성매매를 니느웨가 모든 민족들에게 행한 종교적 범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4절은 니느웨의 행음을 강조하기 위해 “음녀”와 “음행” 그리고 “미혹”이라는 표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니느웨를 이렇게 창녀로 묘사한 것은 실제로 니느웨 도시가 매음굴이라는 말이 아니라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구약은 종종 이렇게 창녀라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하나님께 대한 배반을 나타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호세아를 통해 하나님께 배반한 이스라엘을 창녀라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나타내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니느웨는 다른 민족들을 자신의 마술로 미혹한 창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만을 믿고 그분만을 사람은 섬겨야 하는데, 사람들을 미혹하여 잘못된 길로 가게 만든 책임을 이 앗수르가 져야했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 겁니다.
5절은 계속해서 니느웨를 창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의 치마를 걷어 올려 벌거벗고 부끄러운 곳을 많은 나라들과 민족들에게 보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치마를 걷어 올려 얼굴에 이르게 한다는 것은 수치를 완벽하게 속수무책이 될 정도로 밝히 드러낸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니느웨가 다른 민족들에게 종교적으로 미혹시킨 것들이 모두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의 신들이 최고의 신이고 니느웨와 앗수르에게 승리와 번영을 준다고 과시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멸망시키심으로 이들이 믿는 신들이 사실 이러한 존재가 아님을 드러내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6절에서 가증스럽고 더러운 것, 즉 우상들을 니느웨 사람들의 면전에 던지심으로 그들로 수치를 당하게 하시고, 니느웨 사람들을 구경거리로 만들어 사람들이 이 사람들을 보고 조롱하게 만드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바로 거짓된 우상의 실체를 드러내심으로써 하나님 자신이 진정한 신이심을 드러내시겠다는 겁니다.
특히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우월감, 즉 자신이 믿는 신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신이라는 우월감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나타내시기 위해 5-6절에서 하나님 자신을 주어로 하는 1인칭 단수 형태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5-6절을 보시면 “내가”라는 말과 함께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어떻게 수치스럽게 하실 것인지 그 행동에 대하여 나와있습니다.
이처럼 니느웨가 멸망당하는 이유는 전쟁과 종교, 또는 전쟁과 신앙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들을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셨지만,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오용하고 남용하여 다른 나라들을 지나치게 정복하고, 착취하였으며 심지어 잔인하게 대하였습니다. 또한 마술로 다른 민족들을 미혹하여 우상 숭배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니느웨를 심판하기로 하셨습니다.
이렇게 니느웨가 왜 멸망당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하나님께서 1-6절에서 말씀하셨다면, 이제 7-13절은 니느웨가 어떻게 멸망당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니느웨가 벌인 만행대로 멸망 당하게 된다는 겁니다.
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멸망한 니느웨를 목격한 자들은 달아나고 그를 위로할 자가 없다고 말합니다. 바로 우리가 주일에 들은 박정락 목사님꼐서 나훔서를 설교해주신 것처럼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에게는 위로가 있을 것이지만, 그 반대로 하나님께 심판받는 자들은 위로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심판받는다는 것은 위로가 없는 암담하고 비참한 상태입니다. 그 심판을 온전히 다 감당해야 하고 위로자가 없어 심판만 받아야 합니다.
또한 니느웨를 목격한 자들이 달아난다는 것은 니느웨를 편들어 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처럼 깜깜하고 비참한 것입니다. 시체처럼 나뒹굴고 있는 니느웨를 보고 이를 위하여 울어줄 사람도 없고 위로해 줄 사람도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8-10절은 바로 이러한 니느웨의 심판을 자세하게 보여줍니다. 바로 군사적으로 니느웨를 도와 줄 사람이 없고,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말합니다. 이렇게 무기력한 니느웨를 조롱하기 위해 나훔은 니느웨가 정복한 노아몬을 대표로 세워 내세웁니다. 노아몬은 이집트의 테베라는 도시이며, 앗수르에 의해 정복당한 도시였습니다. 9절에서 구스, 다른 말로 에티오피아와 애굽을 언급하는 것은 이 당시 테베에서 이집트를 통치한 왕은 에티오피아 왕이면서 동시에 이집트의 왕이 되어 통치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테베는 앗수르에 의해 너무나 쉽게 정복되었고, 10절은 앗수르 군대가 테베를 정복한 후 포로를 잡아갔을 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들을 메어쳐 죽이고, 왕족과 귀족들을 제비 뽑아 종으로 나누어 가졌고, 신하들을 사슬에 결박하여 데리고 갔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나훔이 노아몬을 왜 앞세우는 것일까요? 바로 11-13절에서 나훔은 노아몬을 앗수르가 쉽게 정복하고 처참하게 만들었듯이 니느웨도 똑같은 꼴을 당할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니느웨가 행한 그대로 보응하여 심판하실 것이라는 겁니다. 이를 강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한글 성경에는 나와있진 않지만, “역시”라는 말을 사용하십니다. 11절을 보시면 “역시 너도”라고 시작하고 하반절도 “역시 너도”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정리하면 “너도 역시 술에 취하여 숨을 것이며, 너도 역시 원수들로부터 피할 피난처를 찾으리라”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니느웨와 앗수르 왕은 술에 취한 사람처럼 정상적인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되고, 미친 사람처럼 허겁지겁 달아날 것이고, 마치 노아몬이 그리했던 것처럼 피신하였다가 죽은 것과 같은 처지가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더 나아가 12-13절은 니느웨가 겪게 될 멸망에 대하여 두 가지 비유로 이야기 합니다.
첫째는 12절에서 등장하는 무화과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이사야와 예레미야, 그리고 호세아와 미가에서도 등장하는 비유로 무화과의 첫 열매를 행인들이 따 먹는 모습입니다. 무화과 나무는 두 차례에 걸쳐 열매를 맺으며, 첫 열매는 유월절을 전후하여 여름이 시작할 때 맺습니다. 무화과 첫 열매는 이어서 맺는 열매보다 크기가 작고 달지도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화과 나무 주인은 첫 열매를 따서 버리든지 아미녀 행인들에게 따서 먹게 한다고 합니다. 겨울 동안 과일을 먹지 못한 행인들은 이런 첫 열매를 순식간에 따서 먹어 치우게 된다고 합니다. 바로 이 비유를 통해 앗수르 사람들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만든 철옹성 같은 모든 요새와 산성들은 첫 열매를 맺은 무화과 나무가 이렇게 행인들에게 유린 당하는 것처럼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자신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만든 성이 종잇조각처럼 무너져 너무나 쉽게 수치를 당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둘째 비유는 13절에 등장하는 비유로 니느웨 백성들은 여인과 같다는 겁니다. 성문이 앗수르의 적들 앞에 열리고 불이 성문의 나무 빗장을 태우고 밀려 들어 왔을 때, 아무런 힘을 써보지도 못한 채 주저앉아 미친듯이 울부짖으며 적들의 칼 앞에 처참하게 무너지는 나약한 여자들처럼 니느웨 용사들은 그런 존재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앗수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아주 강대한 국가였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처럼 니느웨가 왜 멸망하는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니느웨가 멸망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앗수르가 이렇게 대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덕분이었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지만 앗수르는 이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자기 마음대로 잔인하게 행동하였고, 다른 민족들을 우상 숭배에 빠지게 만드는 창녀와 같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노아몬에게 그리하였던 것처럼 똑같은 보응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아무런 힘을 써보지도 못한채 유린당하고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앗수르는 강대한 국가였고, 이들이 무너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이 믿는 신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신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맞서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 맞설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에게 힘을 주셨지만,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힘을 남용하고 오용한 니느웨는 이제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니느웨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혹여나 나의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돌아보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앗수르처럼 사람들을 잔인하게 대하고, 미혹하여 우상 숭배하게 만들기까지는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물질을 비롯하여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혹시 내가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진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내 뜻과 내 생각대로 내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들을 오용하고 남용하려고 하진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무시하게 될 때 우리는 니느웨와 같은 심판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알려주셨다는 겁니다. 말씀을 통해 이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매번 알려주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남용하고 오용했을 때 받게 될 심판을 우리의 구주이신 그리스도께서 다 받으셨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내가 가지고 있고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내 마음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맡게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간구하지 않으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들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우리는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필요한 것을 기도로 구하고 그것을 정말 받게 되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셨기에 주셨음을 인지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베푸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잠을 자고 깨어나는 것 또한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임을 기억하고 니느웨와 같이 남용하고 오용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삶을 살아내는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것에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생각에 맡게 행동하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두고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두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받고 누리는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주신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용하고 남용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이 시간 같이 기도합시다. 우리의 욕심과 생각대로 하지 않고 우리가 소유하고 누리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하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가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여 모든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신실한 백성들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이 시간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