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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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인사말-도입]
할렐루야! 오늘 우리의 찬양예배를 통해 하나님 한 분만 영광 받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우리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마음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기억 하옵소서! 다 같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근원되시고 우리 삶의 주인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박사로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말씀 보겠습니다. 빌립보서 4장 4절 말씀입니다. 한 목소리로 함께 읽겠습니다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Χαίρετε ἐν κυρίῳ πάντοτε· πάλιν ἐρῶ, χαίρετε.
카이레테 엔 큐리오 판토테, 팔린 에고 카이레테 (현재 능동태 명령법 2인칭 복수)
[서론]
그리스도인의 특징을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오늘날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위선적이다. 이기적이다. 편협하다. 사랑이 없다. 이런 말들을 듣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일에 우리의 잘못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1세기 초기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면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다는 것이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초대 문헌을 보면 초기 그리스도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서로 사랑하는 이상한 사람들, 얼굴에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사람들이라는 표현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외부의 어떠한 압력이 없음에도 신앙과 믿음안에 있다면서도 왜 이렇게 세상적인 평가는 상반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조금만 내가 원하는 환경이 되지 않아도 몸살을 앓듯이 힘들어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을까요? 거기에 대한 답을 우리는 빌립보서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매우 짧은 오늘의 본문은 사실 빌립보서 전체의 내용을 요약한 말씀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개척했고 끝까지 그의 선교를 지원했던 교회로서 빌립보서를 쓰는 사도 바울의 필체는 타 교회에 보내는 편지와는 다른 사랑이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안에는 불화가 있었고 이단과 잘못된 삶, 잘못된 믿음이 어떻게 기쁨을 빼앗아 가는가? 라는 그 문제를 사도는 다루면서 강한 명령법을 사용하여 교회에게 기뻐하라고 합니다. 그것도 항상 (언제든지) 그리고 주안에서라는 조건을 앞에 달고 있습니다. 주안에서는 조건과 전제가 됩니다.그리고 ‘항상’ 은 부사로서 상태를 표현합니다. 그리고 사도는 반복법을 사용하여 이 간단한 명령이 매우 중요하고 확실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명령합니다. 흔히들 이 말씀을 듣고 오해를 하는 것이 항상이라는 부사에 강조점을 때문입니다. 저도 처음 이 말씀을 볼 때 항상이라고? 어떻게 항상 기뻐해? 이건 최면인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과연 불가능한 일을 사도를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도저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던져주고 우리가 죄책감에 빠지도록 성경이 함정을 판 것일까요?
[본론]
먼저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감정과 정서가 ‘기쁨’밖에 없는 것이라는 모순에 빠집니다.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로애락을 주셨습니다. 슬퍼할 때는 슬퍼하고, 화낼 때는 화내고 즐거워 할 때는 즐거워 하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떠한 상황과 형편에 놓여 있던지 우리는 기쁨을 잃지 않는 그리스도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가 말한 기쁨은 감정을 넘어선 우리의 상태를 말합니다.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지속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가요? 사도가 명령하는 기쁨은 감정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4장 말씀은 사랑과 기쁨과 인내와 평강을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이 명령문은 신약을 대표하는 교리입니다. 기쁨은 최초의 그리스도인이 살았던 삶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본문을 이해하는 키워드를 항상에서 빠져나와 주안에서로 옮겨가야 합니다. 상황과 외적
조건이 좋지 않더라도 기뻐하라는 명령은 정신 승리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NLP 심리기
법이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내 안에 잠근 거인을 깨우라’는 자기 개발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그 저자가 사용한 기법이 NLP입니다. 인간의 뇌가 현실과 상상을 인지
하는데 구분을 못한다는 것에서 착안한 심리기법으로 생각과 상상기법을 사용하여 내 안
에 있는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신승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후 ‘시크릿’등 온갖 심리기법이 나와서 세상을 혼미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심리적 기법
들의 효과는 극히 제한적이고 일관성이 없습니다. 부분적입니다. 오늘 사도의 명령은 이
런 심리적 기제를 말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사도의 근거는 ‘주안에서’입니다. 주안에서
기뻐할 때만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쁨의 근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놓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안에서 사는 것을 잘 몰라서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하시고 우리의 모든 죄의 값을 지불하시고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여기에 머무른다면, 그래서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인지? 화목하게 된 삶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실제로 그런 삶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예수님의 구원사역은 마음속에 담고 이해하는 교리이거나 따라가야 할 도덕적 교훈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십자가의 죽음이 마지막이겠지만 성경은 그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성결의 영으로 부활하셔서 그 의가 이제 저와 여러분이 이것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의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우편에서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우리 몸을 성전 삼아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깨달아 알게 하시고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주안에서’ 라는 의미입니다. 말씀이 성육신 하여 이 모든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이 땅에서 다 이루시고 다시 오실 때까지 주의 백성들을 가르치시고 거룩의 길로 이끌어 가십니다.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의 형상을 이루기 까지 인도하십니다.이것이 고후5:17의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셨는데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 된 상황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지는 여러분 상상에 맡기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형편과 상황에서도 우리를 눈동자같이 보호하시는 신실하신 우리의 아버지를 이정하고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의 사랑을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는 다시 말하지만 최면을 걸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억압하라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그렇다면 그것은 병리적인 현상입니다. 우리에게 항상 좋은 상황,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진다는 세상복음도 아닙니다. 시험을 당할 때에 항상 피할 길을 주신다는 현실적인 기대감을 통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주안에 있다면 우리의 형편이 어떠한 상황이든지 그 상황으로 인하여 힘들고 괴롭고 인내하기 어렵더라도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소망으로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4장 5절 후반에 사도는 주께서 가깝다고 위로합니다. 성령 하나님이 이것을 이루십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재림 하시는 것에 대한 소망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명령하시는 기쁨은 적극적인 기쁨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이 지적인 동의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적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삶의 구석까지 주님의 빛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
주안에 있다는 것의 적용점은 말씀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이것은 다른 말로 하나님과의 관계안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견인해 가는 삶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 있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일고 묵상하고 품으시기를 권면 드립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있으면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듯이 그 말씀이 역사하여 우리를 거룩과 성화의 길로 인도해 나갑니다.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 주안에 있는 이 기쁨 뿐입니다. 이 기쁨은 안전하고 확실한 것,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 그래서 세상이 손 댈 수 없는 곳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언제든지 변하고 우리의 기대를 저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해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롬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취업에서 좀 떨어져도, 대학진학에 실패해도,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도, 건강을 조금 잃어도, 친구들과 관계가 힘들어져도, 미래가 보이지 않아도 기뻐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심지어는 실패하고 죄를 지었을 때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죄에 빠지면 성령의 정죄를 받고 비참해 집니다. 그러나 참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는 그 자리에 주저 않는 것이 아니라 다시 그리스도께로 돌아갑니다.그리고 그렇게 돌아간 자신을 깨끗이 씻어 주신 것을 깨닫고 기뻐합니다. 그 사람은 주님의 사랑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비록 죄를 짓고 실패했음에도 변함없이 기뻐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요17: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 기쁨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어깨 펴시고 살든지 죽든지, 심지어 죄를 짓고 실패하더라도 무슨 일이 닥치고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제가 다시 말씀 드리니 기뻐하십시오! 찬양 드리겠습니다.
빌1:21
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2:5-8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12-13,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