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14:6-12 영적인 복을 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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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복을 택하라
여호수아 14장 6-12절
여호수아 14장은 두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1-5절 땅 분배하는 과정이 나오는데 전쟁을 마치고 가나안 땅을 열두 지파에게 분배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85세 된 갈렙이 특정 지역의 땅을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땅을 분배하는 방식으로 제비뽑기를 하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열두 지파는 전쟁을 통해서 땅을 거의 다 점령하였습니다. 이제 그 땅을 분배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분배하면 좋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은 광야 40년 동안 모세를 힘들게 했던 자들입니다. 고집과 원망과 불평이 많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분배 방법을 제비뽑기로 한 것입니다. 만약 제비 뽑기가 아니었다면 그들에게 대혼란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이 제비뽑기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어느 누구도 분배한 땅에 대해서 이의가 없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미로 제비뽑기로 뽑은 그 땅은 작든 크든, 좋든 싫든지 하나님이 그 지파에게 주신 땅이요, 아울러 그 민족과 그 지파가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에 의해서 인도될 것임을 선언하는 선언적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비뽑기하는 과정이 공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비 뽑는 일을 주도하는 세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14장 1절을 보겠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받은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니라”
제일 먼저 거론되는 사람은 제사장 엘르아살이고, 그 다음은 눈의 아들 여호수아입니다. 세 번째는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입니다. 가나안 정복을 위한 모든 전쟁에서 언제나 선봉에 섰던 인물은 여호수아입니다. 그런데 땅 분배 과정에서는 여호수아가 첫 번째 나오는 것이 아니라, 두 번째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전쟁이 그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안식과 평화의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때는 제사장 엘르아살의 이름이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호수아가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제비뽑기로 땅 분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갈렙이라는 85세 된 노인이 갑자가 나와서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6절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갈렙이 누구입니까? 민수기 13장을 보면,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광야생활이 거의 끝나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앞에 두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땅이 도대체 어떤 곳인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지 알 수가 없으니 불안하여 지파마다 한 사람씩 뽑아 열두명의 정탐꾼을 만들었습니다. 군대식으로 말하면 수색대를 편성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보냈더니 다녀와서 보고를 하는데 열 명은 부정적으로 애기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호와께서 대적을 손에 붙여 주시면 된다고 긍정적으로 보고합니다. 이 일로 하나님은 모세가 보는 앞에서 증인을 삼아 갈렙에게 ‘이 땅을 네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까지 갈렙은 여호수아를 도와 묵묵히 일관되게 가나안 정복의 역사를 같이 해왔습니다. 이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한번도 이 과업에 대해서 갈렙은 흔들린 적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갈렙이 영적인 공동체의 개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해했던 것입니다.
이제 드디어 땅 분배하는 시간이 왔는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열두 지파가 모두 제비뽑기 방법에 순응해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느닷없이 유다 지파가 여호수아에게 제일 먼저 불쑥 나온 것입니다. 그 유다 지파의 대표로 갈렙이 여호수아 앞에 나와서 요구를 하는 것입니다.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이것이 말이 되는 것입니까? 다른 지파들은 다 제비뽑기 순서를 기다리는데 자기들이 무엇이기에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하는 것입니까? 그런데 그 주동자가 갈렙입니다. 그렇다면 이 갈렙이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 15장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구속사적 언약이 이루어지는 현장이 나옵니다. 19-21절입니다.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19-21절)
여기에 그니스 족속이 나오는데 놀랍게도 그니스 족속은 이방 땅에 살던 이방인의 혈통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14장 6절을 보면 갈렙의 족보가 언급되는데,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던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유다 지파의 대표로 갈렙이 나왔는데, 그가 사실은 유다 지파 사람이 아니다. 이방인 그니스 족속의 자손인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역사의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정통 혈통으로만 이어오지 않으셨습니다. 이방 여인 룻을 통해, 그리고 천하고 낮은 사람들의 혈통을 통해서도 이어 왔습니다.
그니스 사람은 이방인인데 지금 유다 지파의 대표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혈통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라는 믿음의 조상을 통해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갈렙은 이 산지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갈렙이 40년 전에 하나님께 약속받았던 땅이 뭔가 대단한 곳인가 보다, 뭔가 수가 생기는 땅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가 요구한 땅이 도대체 어떤 곳입니까?? 본문 12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그가 말한 ‘이 산지’는 헤브론이라는 땅인데, 해발 3,040피트의 산지로 후에 이스라엘 땅이 되는 지역에서는 최고의 고지입니다. 이왕이면 좋은 평지를 달라고 하지, 왜 고지를 달라고 했을까요? 12절을 계속 보겠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그 땅에는 아낙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아낙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15절에서 언급하였습니다.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놀랍게도 지형은 최고의 고지인 산지요, 거기에는 성경의 역대 종족들 중 가장 전투력이 강한 거인족이 살고 있는 땅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12절)’하다고 말합니다. 갈렙이 그런 곳을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그는 좋은 땅이라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갈렙이 그 땅을 약속 받았지만 세월이 40년이나 흘렀습니다. 그러면 ‘이 나이에 거길 어떻게 가? 제비뽑기 한다고 했으니깐 그 순서나 기다렸다가 그곳이 걸리면 할 수 없고, 안 걸리면 좋은 것이니 밑져야 본전이다’ 하면서 모른척하고 제비뽑기에 동참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유다 지파의 혈통이 아니면서도 유다 지파의 대표로 제일 먼저 나가서 그 산지를 달라고 요구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 본문을 갈렙의 용기, 희생정신, 믿음에 초점을 맞추어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갈렙의 영웅담이 아닙니다. 성경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창세기 14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헤어져서 각자 살던 곳을 택해 가는데 롯이 택한 곳은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그 땅은 당시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최고의 요지였습니다. 그래서 롯은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던 그 땅으로 갔는데 결과는 완전히 망했습니다. 그러면 갈렙에게는 당대 사람들이 최고로 여기는 땅을 볼 줄 아는 눈이 없었을까요? 정탐꾼으로 뽑힐 정도의 실력에다 85년의 인생과 경륜까지 더했으면 갈렙은 어떤 땅이 좋고, 어떤 땅이 나쁜지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헤브론 땅을 요구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과 달리, 자기가 택해서 간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다가 하나님이 주신 땅으로 갔습니다. 나중에 그 땅에 대해 나오는데 그곳은 헤브론입니다. 아브라함이 거기서 여호와께 단을 쌓았습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갈렙이 그것을 알았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무엇인 진짜 복인지를 안 것입니다. 내 눈에 보기 좋아서 택한 떡이 입에는 달 것 같지만 영적으로 눈이 밝은 사람은 그것이 복이 아님을 압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눈이 밝은 사람이 깨닫는 복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만 복임을 아는 것입니다. 왜 갈렙의 눈에 좋은 땅이 안 보였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잡은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땅이 참된 축복의 땅임을 갈렙은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40년 전 모세가 증인을 서고, 하나님이 갈렙에게 주마 한 약속의 땅을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갈렙이 헤브론 땅을 요구한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헤브론 땅에 담긴 구속사적인 측면입니다. 창세기 13장 14-18절을 보면,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장막을 ‘헤브론’으로 옮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갈렙이 요구한 그 땅입니다. 그러면 이 헤브론이 아브라함에게 어떤 땅이 되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창세기 23장 4절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내를 장사하기 위해 헷 족속에서 돈을 주고 산 땅이 바로 헤브론입니다. 18-1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아브라함도 이곳에서 살았고, 아내를 장사합니다. 뿐만 아니라, 창세기 35장 27절을 보면, 이삭도 이곳에서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헤브론의 또 다른 이름이 “기럇아르바” 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장사지낸 후 야곱도 이 땅에서 살게 됩니다. 창세기 49장에는 야곱이 임종이 가까워져 열 두 아들을 불러 기도해 주는 내용이 나옵니다.
열두 아들들에게 한 사람씩 기도해 주면서 지파가 될 것을 예언하고 그 지파의 그림을 예언합니다. 그런데 9절에 유다 지파에 대한 예언을 하면서, 야곱은 “유다를 사자새끼” 라고 말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갈렙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갈렙은 히브리어로 ‘사자 새끼’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갈렙이 유다 지파의 대표로 나왔습니다. 창세기 49장 9-10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여기서 ‘실로가 오시기까지“ 실로가 누구입니까? 이 실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가 유다 지파를 통해 오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까지 이 헤브론 땅에 그토록 집착했던 것은 이 땅에 머물러 살았던 유다 지파의 정통 조상들이 여기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이 땅이 그 족장들의 삶의 터전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유다 지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때문입니다. 갈렙이 단지 믿음이 좋거나 희생정신이 강해서 다른 지파들이 다 싫어하는 그 산지를 달라고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요구는 놀랍게도 이 고백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라는 고백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구속사적인 집착과 신앙고백이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요구하는 갈렙의 신앙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이 땅을 요구할 때 계속 강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호수아 14장 12절에 나오는 갈렙의 이야기이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그냥 산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산지’를 달라고 합니다. 요구의 근거가 ‘약속대로’,‘말씀대로’ 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즉, 말씀대로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고, 말씀대로 십자가에 죽으셔서, 말씀대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갈렙이 붙잡았던 유일한 근거입니다.
또 그는 “오늘날 내가 85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건강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갈렙이 40년 보다 지금이 더 강건하다는 말의 깊은 뜻은 40년 전에 약속받았던 이 땅, 다시 말해 실로가 오실 때까지라고 예언되었던 땅, 유다지파를 통해 오신다고 약속했던 그리스도, 그 약속의 말씀을 85세가 되도록 푸른 기상을 가지고 여전히 붙들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갈렙이 진짜 청년입니다. 나이가 젋다고 청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흐리지 않고 붙잡는 사람, 날마다 영적으로 맑아지는 사람, 그 사람이 약속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이 산지를 달라고 요구해야 합니까?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면서 모든 삶의 시간을 맞추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세계의 움직임을 민감하게 보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 같이 잘 살게 하셨을까요? 왜? 하나님은 교회 성장을 주셨을까요? 왜? 하나님은 예수 믿게 하셨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복음이 들어가지 않는 땅에 들어가 어둠의 권세를 내쫓아내는 갈렙의 결단처럼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라는 헌신과 결단을 우리가 해야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주변의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어둠의 사로잡혀 살아가는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여유가 있어서 나누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내 것을 잘라내는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단 얼마간이라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신앙을 주셨고 기적과 부흥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삶 속에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하는 결단과 헌신이 반드시 있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