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5:1-9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

여호수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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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야 한다.
여호수아 5장 1-9절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영적 싸움을 할 것인가에 대한 교훈과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들은 기생 라합의 도움으로 무사히 가나안 정탐을 마치고 여호수아에게 확신에 찬 보고를 하자, 여호수아는 다음 날 아침 일찍 그들이 머물고 있었던 싯딤에서 떠나 요단강 근처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곧바로 요단강을 건너게 하지 않고, 그곳에서 삼일을 머물게 합니다. 그 삼일의 기간은 광야 생활 40년에 비해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당시 전쟁을 하는 이스라엘에게는 상당히 긴장이 되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생소한 곳이었고, 강 건너에서는 적군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아이들과 부녀자들을 포함한 200만 명 되는 사람들이 요단강을 안전하게 건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요단강이 범람한 시기에 이스라엘을 그곳에 인도하시고 그러한 상황에서 삼일 동안 그 곳에 머물게 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가나안 전쟁의 첫 관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철저히 경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기적적인 방법을 통해서 이 강을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그 방법은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백성들 앞에 서서 요단강을 밝을 때, 마치 홍해가 갈라지는 것처럼 요단강이 갈라진 것입니다.
그 소식을 가나안 사람들이 듣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5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적군이 지금 이런 상태라면 전쟁은 끝난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상식적으로 보면 병력의 수나 작전이나 보유하고 있는 무기의 상태에 의해서 승패가 갈라집니다. 그런데 의외로 전쟁이라는 것은 상식적인 요인보다는 전혀 다른 요인에서 승패가 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그것은 군인들의 사기인 것입니다. 적에 대한 마음가짐, 이길 수 있다는 확신, 이것이 있을 때, 어떤 대적을 만나도 승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러시아의 군사력은 세계 최강입니다. 좋은 무기와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우크라이나는 나라도 적고 군사력, 무기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군인들과 국민들의 사기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러시아는 왜? 싸워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싸워야 하는지, 그들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반면에 우크라이나는 왜? 싸워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나라가 존재하는지 분명한 정체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군인들의 사기는 매우 높습니다. 쉽게 끝날 것이라고 예측했던 러시아의 분석에도 불구하고 2달 동안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지금 이스라엘과 대치하고 있는 가나안의 일곱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말려서 건넜고 들어왔다는 소식만 듣고도 간담이 녹아내릴 정도가 아니라,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끝난 전쟁입니다. 적이 아무리 수가 많고 좋은 무기를 보유하고 있어도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군인들이 이미 이 정도의 사기라면 이 전쟁은 하나마나입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보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습니다. 그냥 이대로 밀고 들어가면 이 전쟁은 끝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여기서 또? 잠시 멈추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아군에게는 무장해제에 해당되는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 의식을 거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3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할례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남자들의 생식기 끝, 양피를 베는 것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창세기 34장을 보면, 야곱의 외동딸 디나가 등장합니다. 디나가 어느날 세겜에 갔다가 추장의 아들에게 아주 몹쓸 짓을 당합니다. 그래서 디나의 오빠들이 분노하였습니다. 어떻게 복수를 할까 생각 하다가 꾀를 내어 이런 제안을 합니다. “이왕 물이 엎질러졌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우리 민족이랑 결혼을 하자. 우리민족과 결혼을 하려면 다 할례를 받아야 한다. 그러니깐 우리 누이동생을 데려가기 위해서는 너희들도 할례를 받아라.” 그래서 세겜 성 안의 남자들이 모두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1주일 동안 누워서 끙끙거리고 있을 때, 야곱의 열두 아들이 들어가 피의 보복을 합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진 보복이었습니다. 이 할례는 군인에게는 완전 무장 해제 시킵니다. 적어도 1주일 동안은 꼼짝 못합니다.
가나안 전쟁이라는 대명제 앞에서 가나안 일곱 족속은 지금 초긴장 상태입니다. 그러니 그냥 밀고 들어가면 될 텐데 무엇 때문에 스스로 무장 해제에 가까운 할례를 명하신 것일까요? 여기에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특별히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4-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이 할례가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사안이었던지 400년 동안 종살이를 하면서도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홍해에서 전부 건너왔을 때, 할례를 받았던 사람들은 광야에서 전부 죽었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태어난 출애굽 2세대들 그들은 광야 생활을 했기 때문에, 광야 길에서 40년 동안 할례를 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약속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할례를 명하신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가나안 땅은 할례 없는 백성들은 못들어간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할례를 명하신 최초의 명령은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발견됩니다.
창세기 15장 1절을 보면 ‘이후에’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성경에는 예를 들어 ‘그때에, 이후에, 그러므로’ 같은 접속사들이 자주나오는데, 이 단어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지만 앞뒤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앞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간단히 정리해 보면, 아브라함은 원래 갈대아 우르에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를 불러내셨습니다. 아브라함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조카 롯을 비롯한 식구들을 다 데리고 나옵니다. 그러고는 하나님이 이 집안에 복을 주셨는데, 이제 그들은 한 울타리에 머물기에는 서로 불편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부르며 이렇게 말합니다. “너와 나는 유일한 골육이니 자꾸 목동들끼리 풀밭 때문에 싸우니 우리 이쯤해서 서로 기분 좋은 거리를 유지한 채 갈라서서 지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제안을 합니다.
결국 롯은 눈에 좋은 에덴동산 같이 보이는 소돔을 선택했고,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선택합니다. 롯이 소돔으로 갔을 때, 주변에는 9개의 부족이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롯이 소돔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롯과 큰 전쟁을 치렀고, 롯이 사로 잡히게 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집에서 훈련시킨 318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무조건 뛰어 전쟁을 하였고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롯을 구하고 온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1절 입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잘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상태가 어떤지 상상이 되십니까? 지금 그는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부터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까? 주변 나라들의 보복,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는 네 방패요” 방패가 되어 주시겠다고 아브라함을 위로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다짜고짜 이렇게 말한다. 2절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에 엉뚱하게도 자식이야기를 합니다. 당시 국가의 개념은 혈연으로 이루어진 부족사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이 없다는 것은 후손이 없기 때문에 적군들이 보복해 오면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아브라함의 설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라고 그를 위로하셨지만, “나는 자식이 없고 내 상속자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다”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5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그러자 아브라함은 8절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무슨 말입니까? 한마디로 그 약속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도, 아브라함도 대단합니다. 만만하지가 않아요. 그래서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계약서를 씁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9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17절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고기를 갖다 놓고 고기를 쪼갭니다. 이것은 완전 끊어짐, 완전한 분리를 암시합니다. 그런데 계약은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말씀하신다. “너와 계약하는데 둘 중에 이 계약을 어기는 자는 죽는다.” 이것은 완전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이 계약은 목숨을 걸고 하는 계약인 것입니다. 이렇게 계약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1,2,5,10년 되었는데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아내의 여종인 하갈을 통해 창세기 16장에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사실 이 정도 기다렸으면 아브라함도 상당히 기다린 것입니다. 안 그래요? 우리의 상식으로 볼 때, 이 정도면 그대로 괜찮게 기다리고 참은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의 원리와 철학과 신앙의 기초가 어디에 근거해야 하는가? 우리의 상식, 논리에 맞추어야 하는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논리와 상식과 합리성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과 약속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 약속이 하나님의 죽음을 걸고 약속한 내용이라면 기다려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기다려야 합니다. 목숨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기다리지 못하고 합리적인 인내의 한계선에서 그냥 저질러 버린다. 그래서 이스마엘이 태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나은 나이가 86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13년 동안 아브라함에게 아무런 응답도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셨습니다. 그리고 13년이 되던 어느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첫마디가 무엇입니까? 창세기 17장 1절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13년 동안 침묵하신 하나님의 첫마디는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입니다. 혹시 아브라함이 잊어버릴까봐 다시 말씀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아 내가 누구냐, 네 아비이고 전능한 하나님이지 않느냐? 왜 내 약속을 끝까지 신뢰하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네 힘으로 했느냐”
그리고 9-10절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죽음을 걸고 계약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그 계약을 어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죽이십니다. 생명을 상징하는 남성의 생식기 표피를 자르는 행위, 즉 할례를 통해서 그를 죽이십니다. 아브라함이 할례 받고 낳은 아들이 바로 이삭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전에 낳은 자식 이스마엘은 자신의 노력으로 낳은 자식이지만 이삭은 할례받고 낳은 자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자식이요. 약속의 자녀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가나안 땅에 그냥 밀고 들어가면 되는데 이 백성들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셨습니까? “이 땅은 그리스도의 통치에 순종해야 하는 땅입니다. 우리들의 힘으로 사는 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주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순종해야 하는 땅입니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할례를 통해 다 죽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입성을 위한 뻔한 승리를 앞두고 할례를 명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복잡한 것 같아 보이지만 너무나 단순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 힘으로 사느냐, 하나님의 힘으로 사느냐?”
우리가 예수를 믿고 살아갈 때, 분명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힘으로 살아갑니까? 우리가 누구의 힘으로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살려고 할 때 하나님은 철저하게 우리를 무력화 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힘으로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리실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일하심과 하나님의 은혜에 주목해야 합니다.
어려분이 학생입니까? 공부를 하고 있다면 열심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직장에 다니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직장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업을 하고 계십니까? 중요한 것은 지혜와 집중력이 사업의 경영이 나의 삶의 모든 힘이 누구로부터 오는 것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는 싸움인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정말 별거 아닌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지난 3년 동안 너무나 뼈져리게 깨닫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하나만 내 몸 안으로 들어와서 몸이 부서질 것 같고, 죽을 것 같고, 견디기 너무나 힘듭니다. 세포 하나만 잘못 되어도 우리는 병원에 누워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하는 존재들임을 기억하기 소원합니다.
할례가 무엇입니까? 할례는 매일 내 삶 속에서 이러한 것들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이삭이 태어났고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내가 건너야 할 강을 그분이 건넜고 내가 죽어야 할 강에서 그분이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이고, 복음이고, 할례의 사건입니다.
2천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살려고 몸부림칩니다. 내가 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기억하기 소원합니다. 작은 교회든, 큰 교회든, 사람이 많이 모이든, 작게 모이든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10절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켜으며”
유월절은 출애굽기 12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기 전날 하나님은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집 문설주에 바르면 살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를 통해서 하나님은 죽음을 면하게 해 주셨습니다. 죽음이 넘어갔다고 해서 유월절입니다.
할례와 유월절 이 핵심은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보여주는 행위와 상징이 할례와 유월절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무엇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나의 힘, 나의 공로, 나의 의지가 아니라, 어린양의 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믿으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간 가나안 땅도,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심령에 할례가 이루어지는 복된 은혜를 받은 인생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찬양>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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