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5:13-15 신을 벗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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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여호수아 5:13-15
지난 시간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요단강을 건너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적을 앞에 두고 할례를 명하셔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할례를 행하게 됩니다. 지난 시간 말씀드린대로, 할례는 나의 힘이 누구로부터 오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싸움인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사는 존재인지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나의 삶 속에서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것이 할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할례의 사건을 통해서 이삭이 태어났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내가 건너야 할 강에 예수님이 건넜고, 내가 죽어야 할 강에서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이고, 복음이고 할례의 사건입니다.
이제 그들은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지도자 여호수아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는 많은 두려움과 외로움과 여러 가지 생각에 붙잡혀 있을 것입니다. 눈 앞에 보이는, 이 땅이 ‘정말 여기가 우리 조상 때부터 약속해 오던 바로 그 땅인가? 앞으로 어떤 일이 전개 될 것인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눈 앞에서는 전혀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여리고 성이 여호수아의 눈 앞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한 걸음씩 앞으로 전진해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호수아 1장에서 살펴보았듯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계속 반복해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의 말씀입니다.
지금 여리고성은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성은 이중벽으로 둘러싸여서 좀처럼 함락시키기 어려운 요새 중의 요새입니다. 고고학자들의 의하면, 여리고성은 이중성벽으로 되어 있고, 약 4m 정도의 돌로 되어 있고, 그 위에 또 다시 4m 진흙 벽돌로 이루어진 견고한 성이었다고 합니다. 언덕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밖에서 본다면 20m 정도 달하는 거대한 성읍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이 정도라고 한다면, 난공불략의 요새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따라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대한 요새는 그들에게 상당한 공포감을 느끼게 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여호수아 5장 13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수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느닷없이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낯선 사람이 그냥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칼을 빼들고 서 있습니다. 그래서 엉겁결에 여호수아 입에서 이런 질문이 튀어 나왔습니다. 13절 다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여호수아의 이 질문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광야를 걸어오면서 드러냈던 모든 문제가 총체적으로 녹아 있는 질문입니다. 여호수아가 한 이 질문에는 지난 광야 40년의 삶의 전부가 들어있습니다. 이 질문은 이렇습니다.
“너는 우리한테 이익이 되는 사람이냐? 손해가 되는 사람이냐?”라는 뜻입니다.
신명기에 보면 시내산에서 가나안까지의 거리를 걸어서 열 하루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냥 올 수 있는 땅을 그들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을 돌아 다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의 시간을 방황하며 낭비한 것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40년을 지내면서 한 번도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절박하고 필요한 때만 불러내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생각했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창조주 아버지로 인정하고 그분의 계획과 뜻에 따라 순복하기를 절실히 원했던 시간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언제나 그들이 요구하고 부르짖고 불평했던 내용은 빵을 달라, 물을 내라, 죽겠다, 못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 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셨지만, 그런 후에 또 편안해지면 마음대로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을 안 듣고 대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채찍하시면 그때는 또 살려달라고 난리를 쳤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에도 많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런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내 인생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구원의 계속 속에서 만들어지고 순종되고 있는가?’ 하는 것에 관심이 있지 않고, 하나님을 절박하거나 어렵고 곤고한 일이 있을 때만 찾아와서 도와주고 채워주는 요술램프와 같은 분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살아가는데 하나님이 절실히 필요합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왜 필요합니까? 내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시련이나 외로움을 회복시키고 채워주실 분이기 때문입니까? 지금 여호수아 군대 대장을 향해 던진 질문 속에 이런 생각이 다 녹아져 있습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을 위하느냐?”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섬기고 사는 사람들의 입에서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고백입니다. 이 질문을 받은 군대 대장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14절에 “그가 이르되 아니라,”
이것은 전체를 부정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너를 위해 온것도 아니고, 네 대적을 위해서 온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잘 해석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호와의 군대가 누가인가? 천상의 군대를 이야기 하는가?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군대는 출애굽기 12장 40, 41절에 본문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사백삼십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여기서 말하는 군대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 ‘여호와의 군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51절을 보면 “그 같은 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군대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속사적 맥락에서 “여호와의 군대”로 통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군대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고 있고, 그 군대의 사령관을 하나님이 직접하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호수아는 알아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여리고 전쟁은 자신이 작전을 짜고, 계획을 해서 싸우는 전쟁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은 내가 순종으로 싸우는 싸움이 아닙니다. 더 확실한 것은 사령관이신 주님 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급할 때만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요청합니다. 급할 때만 부르는 하나님,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와 살고 싶지 않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공동체는 아직 이 차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기서 말씀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여호수아야, 이 전쟁은 네가 전략을 짜는 전쟁도 아니고, 네가 지휘관이 되어서 책임을 져야 하는 전쟁도 아니다. 내가 하는 전쟁이다.” 아에 확실하게 말씀해 주고 계신 것이다.
그러자 이어지는 본문 말씀에 여호수아가 어떻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하시나이까?” 라고 말합니다. 바로 엎드리고는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칭합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여호수아가 이제까지 사령관이 되어 이 전쟁을 어떻게 해야 하나 두려움 속에 머리가 깨질 지경이었는데, 갑자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여호수아야, 전쟁은 내가 한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여호수아가 얼른 엎드려서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렵니까?” 묻습니다.
엎드려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첫 번째 명령을 하십니다. 15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내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왜 하나님은 갑자기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신 것일까요?
고대근동 아시아에서 신은 사람의 신분을 구별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신을 신지 않는 사람들은 종으로 분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율법 아래 신을 벗는 행위는 자기 권리를 포기한다는 것을 뜻입니다.
그래서 룻기에 이런 사례가 나옵니다. 한 이방여인이 마을에 흘러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녀를 아무도 맡으려고 하지 않자 마을 회의가 열렸습니다. 보아스가 그 회의를 열었습니다. 왜냐하면 보아스는 그 마을에서 가장 유력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순서상 보아스가 제일 먼저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친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여인을 맡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여인에 대한 자신의 권리와 책임을 포기한다는 의미로 신을 벗어 버렸습니다. 신을 벗는 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권리를 내려놓는다’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을 벗는 다는 것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의미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한가지는 ‘네 책임과 권리를 내려놓는다. 네가 짐을 지고 가는 삶이 아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1장 3절에서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은 모든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발바닥으로 밟으려면 먼저 신을 벗어야 합니다. 가나안 땅은 발바닥으로 땅을 밟아야 얻어지는 축복의 땅입니다. 이 말은 맨 발로 서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전쟁은 네가 싸우는 전쟁도 아니고 네가 힘을 써서 얻어지는 가나안 땅도 아니다. 철저히 네 권리를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종으로 서라’는 이야기 입니다.
이와 똑같은 경우에 처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누구 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모세입니다. 모세가 한가로이 양떼를 치고 있던 어느날, 가시떨기 불꽃 가운데 하나님이 현현하셔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야 모세야”
그가 놀라서 다가가 이상한 광경 앞에 섰을 때, 가시는 불이 붙어 타고 있는데 나무가 타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가까이에서 보려고 다가가자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 3:5)
상식적으로 봤을 때, 모세가 다시 내려놓을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40년 전만 해도 모세는 애굽에서 후계자가 될 뻔했던 엄청난 위치에 있었습니다. 돈, 여자, 권력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습니다. 그런 그가 실상은 친어머니 손에 자라면서 히브리인으로서 신앙 교육을 받은 탓에, 동족들의 싸움에 참견했다가 그만 사람을 죽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고는 바로 도망 길에 올랐는데 잠깐일 줄 알았던 도망자의 세월이 40년이 훌쩍 흘렀습니다. 그것도 미디안 광야까지 도망갔습니다. 미디안 광야는 아주 삭막한 곳으로,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그 삭막한 곳입니다.
이방인 제사장의 데릴사위로 들어가 앙을 치던 어느날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의 나이 80세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고난 받는 백성을 구하라.” 그러자 모세가 한 첫마디가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입이 둔하고 혀서 뻣뻣한 자입니다. 이제는 모국어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모세는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몇 번씩이나 그를 설득하셨습니다. 호렙산에서 계속 애기를 하시다가 미디안 광야에서까지 쫓아가서 설득하셨습니다. 그래도 모세가 말을 듣지 않자, 지팡이가 뱀이 되는 이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권리를 포기하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만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못한다고 하는 것도 권리를 포기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사고 속에는 아직도 자기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있습니다. 여호수아도 이것에 대한 싸움을 하는 것이고, 모세도 같은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함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저 사람이 없으면 안 되는데...”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누가 하는 싸움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싸움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데려다놓고 그 작업을 하시는 것입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이 땅은 네 힘으로 사는 땅이 아니다. 네가 못하겠다고 하는 그 권리마저도 내려놓아라. 네가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내가 무엇을 좀 갖춰야지, 내가 돈이라도 좀 있어야 교회에서 일 좀 하지...” 하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를 망하게 합니다.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매일 내 삶 속에서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삶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우리의 형편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될 일이 아무것도 없이 보이 십니까?아무리 계산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문제들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우리의 모든 것은 내려놓는 것입니다. 나의 능력과, 지혜, 나의 수단과 방법으로 무언가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쓰임 받은 사람은 모두 그랬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랬고, 모세도 그랬고, 다윗도 그랬고, 바울도 그랬습니다.
자주 하는 찬양 중에 “내가 주인 삼은” 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 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직접 우리의 사령관이 되셔서 지휘봉을 잡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1진 100미터 앞에, 2진은 200미터 앞에, 앞부대가 쳐서 깨지면 그 다음 부대 나간다.” 이런 작전을 짜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여리고성을 돌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작전입니까? 전쟁을 하는데 무슨 작전이 그런가? 한마디도 못하게 하고 그냥 돌라고만 하셨습니다. 여리고성을 도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달밤에 체조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던 그들이라고 뭐 달랐겠습니까? 인간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훈련시키십니다. “이것은 내가 하는 전쟁이니 너희들은 내 말을 믿고 따라오기만 해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그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하고 계십니다. 내 상식으로 이해가 안 가고, 계산이 안 나온다 하더라도 신발을 벗으십시오. 내 권리와 책임을 다 내려놓고 우리의 대장 대신 주님을 따르는 복된 삶, 복된 승리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