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1:1-9 말씀을 묵상하라

여호수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5 views
Notes
Transcript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
여호수아 1장 1-9절
질문으로 설교의 문을 열고자 합니다. 여러분에게 가운데 가장 은혜가 되고 힘이 되는 성경구절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2017년 영국 크리스천투데이에서 ‘미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5개의 성경구절'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어플을 받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성경 어플 중에 “유 버전(You Version Bible App)” 이라는 앱이 있는데 그 앱에서 가장 많이 읽은 말씀을 리서치 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여호수아 1장 9절의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2017년 한 해 약 297,811,840건(2억 9천 건)이 다운로드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경우는 어떨까요?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 말씀을 즐겨 읽고 좋아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이 말씀을 즐겨 읽고 암송하고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통해 어떤 위로를 받기를 원하십니까?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마음은 모두가 같을 것입니다. 그것은 말씀을 통해 위로받고, 말씀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을 있기 때문에 모두가 좋아하는 하고 사모하는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을 보면 여전히 현실의 삶은 두려움고 암담합니다. 특별히 나라에 지도자가 없는 상황은 더 우리를 힘들게 할 것입니다.
1945년 4월 12일 세계 제 2차 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무렵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갑자기 뇌출혈로 사망하면서 미국인들은 큰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이 당시 루즈벨트는 소아마비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네 번 대통령직을 연임했고 미국 국민들에게 있어서는 거의 신화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루즈벨트가 대통령으로 취임했던 1933년 당시 미국은 경제 대공황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혼란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루즈벨트는 대통령에 취임한 후 뉴딜 정책 등 대대적인 공공사업을 벌이면서 실업자들을 구제하고 경제 개혁 등을 통해 국가 경제를 다시 회생시켰습니다. 그리고 세계 제2차 대전이 발발하자, 연합국의 수뇌로서 루즈벨트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의 와중에 루즈벨트가 갑자기 사망한 것입니다. 루즈벨트의 갑작스런 서거로 인해 미국 국민들도 큰 충격을 받았지만, 누구보다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바로 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이었습니다.
해리 트루먼은 미주리주 출신의 상원의원으로서 부통령에 지명된 사람이었는데 그는 외교 경험도 거의 없었고, 루즈벨트처럼 카리스마도 별로 없고, 사람들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트루먼의 입장에서 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갑자기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에게 대통령 대행 직무는 커다란 부담감이었을 것입니다.
이 당시 트루먼이 기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하늘의 달과 별들과 모든 행성들이 나에게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일생에 한 번이라도 기도한다면, 지금 나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트루먼은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비난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가운데서도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 결정을 내리고, 2차 대전이 끝나고 난 뒤 피폐해진 유럽의 경제 회복을 위해 마셜 플랜을 지원하고, 6.25 전쟁 때는 한국에 미군 파병을 결정하고, 재선에도 성공하면서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일들을 충실하게 수행하게 됩니다.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해리 트루먼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해리 트루먼은 카리스마는 없지만, 미국 역사상 최고 경영자 중 한 명이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을 보게 됩니다. 여호수아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도자 모세와 함께 애굽에서 출애굽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넜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한걸음 전진해 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함께 40년을 광야에서 생활하면서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들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지금 그들은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서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 앞에 서 있지만, 사실 가나안 땅은 쉽게 들어가는 땅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민수기 13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탐꾼을 보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가나안에는 거주민이 7족속이나 있었고 강하고 견고한 성읍들이 있었기에 쉽게 차지할 수 있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출애굽기 17장에서 아말렉과의 치열한 전투를 경험한 군대장관 여호수아의 입장에서 보면 가나안 땅은 두려움의 시작이고 공포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특별히 지도자 모세가 없는 상황에서 그 뒤의 바통을 이어받는 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오늘 1장 1-9절을 보면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5,6,7,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문장은 결코 똑같은 단어를 한 단락 속에 반복해서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 짧은 아홉 구절 속에 비슷하고 똑같은 단어를 여섯 차례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문장 자체가 엉킬 정도로 똑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놀라지 말라, 두려워 말라,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이것을 누구에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여호수아에게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여호수아는 지금 어떤 큰 두려움에 붙잡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여호수아가 맞습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여호수아는 기본적으로 군대장군, 승리의 주역, 리더, 용사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찬송가에서도 “여호수아 본받아 앞으로 가세” 찬양이 있을 만큼 여호수아는 강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처음부터 강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가지고 있었던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그는 지금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라고 말합니다. 모세가 누구입니까? 지금까지 이스라엘 공동체를 한복판에서 전체적으로 지휘했던 이스라엘의 아버지입니다.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출애굽 시킨 지도자입니다. 수많은 사건과 수많은 하나님의 기적을 보인 사람이 바로 모세였습니다. 그 모세가 그들을 지도하가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는 누구보다도 모세의 측근에서 그것을 다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호수아에게 어떤 두려움이 있었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나안 7족속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환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에 한 발자국이라도 들여 놓기만 해보라, 가만 있지 않겠다.” 하면서 격렬한 전운이 감도는 일촉즉발의 위가 앞에 여호수아가 서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를 가장 두렵게 만들었던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세에게 불만이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의 습성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오죽했으면 십계명 돌판을 부수고, 백성들이 만든 송아지를 갈아서 물에 타서 백성들에게 마시도록 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을 옆에서 보았던 사람이 바로 여호수아였습니다. 이런 종합적인 위기 앞에서 여호수아는 떨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1장 7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이 말씀은 여호수아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그냥 마음을 안심시키려고 하신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3절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성경을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상한 점이 있지 않습니까? 시제가 이상합니다. 아직 밟은 땅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밟은 땅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성경저자가 틀리게 쓴 것일까요? 하나님이 틀리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여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금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하다가 지금 가나안 땅 앞에 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었고 경험했습니다. 여러분 가나안은 어떤 곳입니까? 가나안은 총과 칼로 전쟁을 해서 얻는 땅이 결코 아닙니다. 가나안은 이미 하나님이 주신 땅을 믿음으로 확인하고 순종해서 밝고 확인하는 땅입니다. 이것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가나안 땅은 인간적인 전략과 용기를 동원해서 빼앗아 내 것으로 쟁취하는 땅이 아니라 이미 나에게 준 땅을 믿고 들어가 밟으면서 그것은 내 것으로 확인되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나안 땅을 하나님이 그들에게 언제 주셨습니까? 언제 약속의 땅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은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을 불러내시고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별들과 바다의 모래를 가리키면서 너의 자손이 이와 같이 될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5년이 지나 창세기 15장에 이르기까지 아브라함에게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8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자식이 생길 기미가 없자 그의 마음은 암담했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 15:1) 그러자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합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레에셀이니이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15년 전에 큰 민족이 되게 하겠다 약속하셨지만 아직도 후사가 없는데 약속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내 상속자는 나의 종 엘리에셀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아니야, 네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다시 하늘의 별을 보면서 “네 자손이 이와 같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약속의 징표를 보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아브라함은 계약서를 씁니다. 고대 근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계약 방식인데 삼 년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와 중간에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대하여 놓고 날이 저물 때에 횃불을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게 하는 의식을 하게 합니다.
이 계약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완전히 분리를 의미합니다. 예레미야 34장 18절 이하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매 내 앞에 언약을 맺었으나 그 말을 실행하지 아니하여 내 계약을 어긴 그들을 곧 송아지 두 조각 사이로 지난 유다 고관들과 예루살렘 고관들과 내시들과 제사장들과 이 땅 모든 백성을 내가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며”
무슨 이야기냐면 “너든지 나든지 지금 이 계약한 내용을 어기거나 지키지 못하면 쪼갠 짐승과 같이 이렇게 죽을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은 이렇게 계약을 합니다. 그리고 시간은 또 다시 흘러 10년 쯤 지났을 때 생명의 기운을 알리는 소식이 없자 아브라함은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라의 몸종 하갈에게 덜컥 아이를 낳게 되는데, 이 아이가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행위를 보시고 13년 동안 침묵하십니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창세기 17장 1절,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자신이 아브라함에게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시려 하시는 것입니까? 이 말씀 속에는 아브라함의 불신앙에 대한 책망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이런 말입니다. “아브라함아, 나는 전능한 하나님인데, 왜 내 약속을 믿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했느냐?” 이제 횃불언약대로 이행해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누가 계약을 위반한 것입니까? 아브라함입니다. 그럼 누가 죽어야 합니까? 이제 아브라함이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죽이시는데 육체적 생명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남성의 생식기 끝을 잘라버리게 하심으로 죽이시고 할례를 통해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 언약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영원한 약속을 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람과 그의 아내 사래는 아브라함과 사라로 계명하고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시고 아들을 주셨는데 그 아들의 이름이 이삭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의 후손들을 통해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언약을 기초로 구원의 행위를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 땅에 기근이 생겼고, 요셉 때에 그들은 애굽으로 이주하여 기근을 이기며 살아갑니다. 시간은 또 다시 흘러, 요셉도 죽고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애굽에 일어났고 이들은 모두 애굽의 종으로 400년을 살게 됩니다. 그들은 그 긴 세월 동안 이 백성들은 그 땅에서 풀무불 속에 던져져 있는 것 같은 고통을 겪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그 고통이 심했던지 하늘에까지 그 소리가 들렸는데 출애굽기 3장 7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고통을 듣고 보고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부르짖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이에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출애굽기 2장 24절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언약 때문입니다. 그러니깐 이 가나안 땅은 이미 이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언약하신 땅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땅은 반드시 이들의 땅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그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느냐, 하지 않으냐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가나안 땅은 칼을 들고 창을 휘두르고 전쟁을 통해 쟁취하는 땅이 아니라 지금까지 그들을 이끄신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고 그 하나님 말씀 앞에 얼마나 순종하는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가운데 여전히 두려움이 있습니까? 문제가 있습니까? 두려움과 슬픔, 근심이 찾아옵니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하셨듯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따라서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는 여러 가지 두려움 가운데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끝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자들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여호수아 1장 7-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놀랍게도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에 앞서 준비하고 있는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전쟁 전략을 세운다던지 작전을 지휘한다던지 무기를 점검하라던지 하지 않으셨습니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전쟁 준비와는 전혀 다른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다 기억하라 네 입에서 떠나게 하지 말고 그것을 묵상하라” 고 하십니다. 여러분, 묵상이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함께하셨는지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좋아하는 영화 벤허는 10년의 제작기간과 10만명의 제작인원 동원된 영화입니다. 중에서 그 영화의 하이라이트였던 15분간의 전차 경주 씬은 1만 5천명이 4개월 동안 연습했다는 전설적인 기록을 남겼습니다. 마지막 전차 경주를 보면 벤허의 원수인 메살라가 4마리 흑마를 이끌고 바퀴에는 톱날이 달린 그리스식 전차를 끌고 주인공인 유다벤허와 경주를 벌입니다. 모든 조건이 불리한 전차경주에서 벤허 역을 감당한 찰톤 헤스톤은 경주에서 이기는 장면을 연기해야 했습니다. <영화를 잠시 감상해 봅시다> 그는 2개월 이상 많은 연습을 거듭한 후에야 마차를 끌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잘 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감독인 윌리엄 와일러에게 물었습니다. “마차는 탈 수 있기만, 경주에서 이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감독이 뭐라고 하신 줄 아십니까? “단지 경주에 남아있기만 해요, 그러면 당신이 이기게 해 줄 테니까”
모든 조건에서 유다 벤허가 이기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장 큰 이유는 감독이 각본대로 영화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에 거대한 각본을 짜시고 감독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동일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경주에 남아 있기만 해라. 그럼 네가 승리하게 해 주마!”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 에서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는게 때로는 두렵고 외롭고 힘들때가 있을 것입니다. 때론 공부하는게 힘들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앞이 보이지 않을 때를 만날지도 모릅니다. 그런 상황이 온다 할지라도 우리를 인도하시고 힘 주시는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고 늘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를 향한 바울의 이 고백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되길 소원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의 각본을 짜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 붙잡고 올 한 해 하나님의 큰 역사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원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생각나는 찬양이 있어 함께 부르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주 너희 하나님이 지켜주시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