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에서 지혜로(딤후3: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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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목사고시를 준비하면서 여러 과목들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총 네 가지 과목들 중, 신조에 관련된 과목을 읽고 공부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배우고 고백하는 교리들이 참 아름답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이전에는 교리라고 하면 뭔가 딱딱하고 지식적인 것이라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찬양하고 교제하는 것 그리고 백 번 양보해서 말씀을 듣는 것까지는 재미있었으나 ‘공부’만큼은 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진행하는 교리공부반이나 제자훈련반에는 어떤 이유를 대서든지 불참하려 노력했었던 예전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며 성경이나 교리를 공부하는 것은 우리의 삶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교단이 고백하는 총 열 두개의 고백 중, 첫 번째 신조 고백은 이렇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본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 교리는 성경과 별개의 지식이 아니라 성경에 기초하여 구원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를 주제별로 간추리고 부가 설명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설교나 성경공부, 교리공부와 같은 교회교육과 우리의 신앙생활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마치 학교 수업시간에 여러 학문들을 접할 때에 외우기는 하지만 이거 배워서 어디다 써? 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학창시절에 가장 싫었던 학문은 수학 중에서 ‘함수’였습니다. 시험을 보거나 수능을 보려면 꼭 필요했기에 공부했는데, 공부할 때마다 이걸 어디다 쓰지? 라고 생각하며 그저 공식만을 외웠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결국, 어려운 공식과 응용문제들을 보자마자 저는 수학이라는 과목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함수의 목적은 시험의 고득점이나 대학진학이 아니었습니다. 물건을 구매할 때, 환율이나 도시가스 요금을 계산할 때에 함수가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미사일의 궤적을 계산하거나 다리를 지을 때에 지지대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구하는 계산식에도 함수가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학문의 목적은 단순히 지식을 쌓고 좋은 성적을 받는 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학문의 목적은 실생활 속에서 우리가 배운 학문이 우리 삶을 더욱 풍성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설교나 성경공부, 교리공부를 통해 얻는 지식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단순히 지식과 교양을 위해 혹은 목사 고시를 통과하기 위해 성경을 읽거나 교리를 배우지 않습니다. 지식과 신앙생활이 분리되어 생각될 때에 우리는 믿음에 대해 아는 것과 삶이 서로 이어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교육에 여러 가지 목적이 있음을 이야기해 줍니다.
함께 읽은 본문은 ‘성경’에 대해 설명할 때에 빠질 수 없는 본문이기에 우리에게 참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본문은 성경과 교리들을 배워서 어디에 쓰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인 그리스도께 우리를 데려다 주어 마침내 구원을 얻도록 하며 점차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해지며,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고 본문은 말해줍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이어서 어떻게 성경이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는지를 말씀해 줍니다.

교훈

첫 번째로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교훈은 가르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누구인지 그리고 나는 누구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가르침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알고자 합니다. 변하지 않는 진짜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세상은 이 문제에 대하여 그럴듯한 ‘가설’을 내놓지만 계속해서 바뀌기에 그것은 ‘진리’는 아닙니다.
이에 대해서 성경은 명확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창조된 존재이며, 또한 비록 타락하였으나 그 사랑으로 구속받았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의 존재 지혜 권능 거룩하심 공의 인자하심 진실하심 사랑하심이 무한하시고 불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과 의와 거룩하심으로 말미암아 남녀로 지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져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진노 아래 살다가 멸망을 받을 처지에 놓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예수님을 이 땅 가운데 보내어 주셨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화목제물로 삼으셔서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이 교훈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되었습니까? 성령님께서 이것을 우리로 하여금 지식이 아닌 믿음이 되게 하셨고,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죄악을 자복하고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내어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0년 전의 한 사건이 아닌 지금 내 삶에 벌어지고 있는 구원의 은혜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의 정체성은 멸망 받을 처지에 놓인 죄인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이자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책망

두 번째로 성경은 우리를 책망하십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다보면, 필터 카메라라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 카메라는 얼굴을 인식해서 화장을 시켜주거나 혹은 얼굴형을 조금 더 갸름하게 바꾸어 줍니다. 심지어는 원하는 대로 체형도 보정해줍니다. 이런 모습들은 당장 우리 눈에 좋아 보일지는 모르지만, 진짜 내 모습은 아닙니다.
거짓이 없는 내 모습을 보려면 거울을 통해 보아야 합니다. 필터 카메라로 본 나보다 다크서클이 좀 내려와 보이고 동글동글하고 살이 좀 쪄 보일 수 있지만 거울을 통해 보는 나의 모습이 제일 정확한 모습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얼굴에 무엇이 묻었는지 또 운동을 할 때에는 어느 부분을 더 열심히 운동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성경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때로 성경을 읽는 나의 눈과 마음에 필터를 씌웁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입맛대로 달콤한 성경말씀들만 찾아봅니다. 잠이 필요할 때에는 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지, 괜히 양심에 찔릴 때에는 괜찮아 하나님 내게 좋은 분이셔.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주시지만, 오늘 본문은 성경의 역할은 책망하는 것, 거울이 되어주는 것이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내 삶에 어떤 죄가 묻었는지 그리고 어떤 부분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기쁘시지 않은지 알게 됩니다.
우리가 고백했다시피 우리의 삶의 기준과 유일의 법칙은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라는 기준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주일 예배 가운데에 성령께서 맺어 가시는 의의 열매들을 배웁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내 자신에게 그 열매가 잘 맺히고 있는가 비교해 봅니다. 그 속에서 아, 내게 이런 부분이 부족하구나, 이런 죄가 있구나 하며 깨닫게 됩니다. 알지 못하면 슬퍼할 수도, 고칠 수도 없습니다. 성경을 통해 죄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자복하고 회개할 수조차 없습니다.

바르게 함

세 번째로 성경은 우리를 바르게 합니다. 바르게 하다는 것은 어떤 기준에 맞게 고쳐나가는 것입니다. 책망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기준인 ‘성경’과 우리의 현주소인 ‘삶’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부분을 고쳐서 성경과 우리의 삶 속에 있는 괴리를 메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그 일들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은 성경을 통해서 깨닫게 된 하나님의 뜻과 다른 나의 모습들을 점차 변화시켜나가 지음 받은 원래의 모습,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나가는 꿈을 꾸고 또 그런 모습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성화’라고도 부르는 이 과정은 힘든 과정입니다. 죄인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매순간 본성을 거스르는 삶을 살아야 하니 말입니다. 성경은 이 씨름을 피흘리기까지 하는 처절한 싸움, 혈과 육이 아닌 영의 싸움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그만큼 어렵고 심지어는 우리가 이겨낼 수 없는 싸움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호하시고 또 격려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순간 지쳐서 우리의 본성으로 돌아가고만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아담에서부터 노아와 아브라함, 모세와 다윗 그리고 예레미야와 예수님을 통해 성취된 언약들을 보여주시며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역량이나 실력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주심으로 우리의 싸움에 확실한 승리를 약속해 주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의 연약함과 실패를 기억하면서도 계속해서 우리의 기준인 성경대로 살아내기 위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우리를 향해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은 무엇입니까?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우리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지만, 연약함과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이겠지만 이 약속을 굳게 의지해서 끊임없이 성경과 우리 삶의 간극들을 메워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의로 교육함

마지막으로 성경은 우리를 의로 교육합니다. 이는 의로움으로 가르치고 징계하며 훈련시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지금까지 우리가 불편해서 하지 않았거나 혹은 전혀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변화시켜 바르게 할 것을 말씀합니다.
운동선수는 시합을 위해 끊임없이 훈련합니다. 그 과정 중에 코치는 곁에서 운동선수의 잘못된 운동방법과 습관들을 지적하고 고치려 격려하기도 하고 때로는 훈계하기도 합니다. 이 훈련을 통해서 선수는 시합에 최적화된 상태로 성장해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훈련시키기에 유익합니다. 하나님의 훈련은 말씀대로 실천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훈련의 목적인 우리의 최종 시합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선악 간에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속속들이 알고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최종 시합의 날 전까지 계속해서 우리를 훈련해나가십니다. 말씀으로 우리를 격려하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무서운 말씀들로 우리를 훈계하시고 야단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목적은 우리를 더욱 믿음 안에서 성장시키시고 또한 사랑하심 가운데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의로 교육하기에, 의를 훈련하기에 유익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만 찾아 읽고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부분들을 잘 읽고 이해하며 내 삶 가운데에 적용해야 합니다.
‘내 삶에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들, 성경대로 행하고 있지 않은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경고하고 계시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바를 실천하는 훈련을 멈추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마지막 17절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7절은 설교에서 말했던 첫 질문, 그래서 성경은 배워서 어디에 쓰는가에 대한 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를 ‘온전케’하며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 24-27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들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 같아서 어떤 어려움 속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행하지 않는 자들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아서 어려움을 만나면 집이 무너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지혜로운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 곧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들이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배우고 성경공부에 참여하며 교리와 여러 지식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람인 ‘나’를 더욱 알아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 목적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원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시켜가며 그에 합당한 선한 일들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학을 처음 접할 때 즈음, 각종 교리와 성경에 대하여, 체계적인 신학들을 통하여 새롭게 알게 된 지식들로 그 은혜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이 마치 구원의 조건인 양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나쁜 모습들이 잠깐 있었습니다. 왜 잠깐이었느냐 하면 그런 모습들에는 온전함과 선함도 없거니와 생명도 없음을 곧 경험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지식은 구원의 조건이 아닌 구원에 대해 이해하고 나를 깎아나갈 수 있는 소중한 지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설교와 교회교육을 통해서 알아가게 되는 모든 지식들은 지혜가 되어 우리의 삶에 ‘변화’ 혹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 가운데에도 하나님, 제가 성경 말씀을 사모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성경을 통해 얻는 모든 지식을 지식으로만 머릿속에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내 삶 가운데 구원에 이르는 지혜로 여겨 그 교훈대로, 책망대로, 바르게 함 대로, 의로 교육함대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로 말미암아 마침내 하나님의 사람인 내가 온전케 되게 하시고, 선한 일을 행할 능력들을 갖추게 하여 주시옵소서.라는 간절한 고백이 있어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정리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의 구석구석의 내용들을 알고 내 삶 가운데 적용하고 실천하여 믿음과 삶이, 지식과 삶이 일치되는 삶을 사는 자들. 예수님의 말씀 속 지혜로운 자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또 동서울광염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이 저녁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 가운데 교훈하시는 것, 고치시고자 하시는 것들을 생각하고 지쳐있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힘과 능력을 구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온전케 되고 싶나이다. 선한 일을 행할 능력들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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