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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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과 같은 삶
00과 같은 삶
삶이란 각자가 살아 낸 ‘무엇’이다. 그래서 ‘00과 같은 삶’을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고 ‘무엇’에 해당되는 건 자기가 말할 수도 있지만 타인이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때론 긍정적인 표현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매우 부정적인 용어를 쓰기도 한다. 아무튼 ‘삶’은 그냥 있다고 살아지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듣고 판단하고 사는데 ‘나름대로 기준’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독교인에게 ‘기준’이다.
49편은 1-2절에 ‘들으라’고 한다. 시편은 1편에서 악인과 의인의 삶을 정의하고 의인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이라고 했다. 앞서 ‘여호와의 길’, ‘여호와의 성전’과 같은 표현을 기억해보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 그리고 그러한 삶이 무엇인가를 깨닫기 위해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성전을 간다. 사모한다. 거한다 등과 같은 고백을 했다. 그럼에도 각자의 삶에서 나타난 갈등과 거절 그리고 원수의 배신 등을 앞부분에서 살폈다면 2권을 시작하며 내가 속해 사는 세상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우리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계속해서 살피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왕이시다는 선언 그래서 통치하시고 세상의 군왕들로부터 경배를 받으시는 분이시다. 뿐만 아니라 인생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신다. 태어나고 죽는 유한한 인생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지만 그렇지 않다는 내용을 시편 기자는 말한다. ‘들으라’ 우리는 들어야 하는 존재이다. 들음으로 알고 알아야 깨닫고 깨달아야 ‘무엇’에 대한 방향을 갖는다. 그래야만 인생이라는 길을 지나며 흔들릴 때도 잊지 않고 나의 길을 갈 수 있다.
절망은 타인으로 부터 온다고 대부분 생각한다.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다. 배신과 나를 이용해 부를 얻으려는 자들의 속삭임 등 그럴 수 있지만 ‘나의 죄’(5)가 나를 넘어 뜨리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넘어진다. 자녀의 아픔도 때론 ‘나 때문에’, 친구의 고통도 ‘나 때문에’ 이렇게 죄 의식에 사로 잡힌다. 교활한 세상은 ‘너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자기 절망’이라는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덩이에 빠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자살율이 세계에서 여전히 1위를 하고 있다. 자기 절망의 끝이 ‘자기 죽음’이기 때문이다. 49편은 1편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의 길’(13)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자신을 의지하는 삶을 살았다.(6-12) 그런 결과 시편 기자는 ‘짐승과 같은 삶’이라고(12) 결론을 내린다. 짐승의 특징은 난폭함이 아니라 생각하지 못하는 상태의 삶이다. 생각은 오로지 먹는 것에 대한 뛰어난 감각 외에는 없다. 반면 사람은 말하고, 기록하여 남기고 지난 날을 회상하며 잘잘못을 반성할 수 있다. 짐승에게는 ‘길’이 없다. 그럼에도 사람은 짐승과 같은 ‘어리석은 자들의 길’(13)을 사는 것이다.
그런 길을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6)들이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들의 결과는 ‘스올(지옥으로 이해해도 되는)’(14)이다. 죽은 자들의 세계에 갇혀진 형벌이다. 그들의 목자는 ‘사망’(14)이다. 아름다움이 없는 곳이 스울이다. 어쩌면 우리 사는 세상이 밝은 태양아래 화려한 색으로 둘렀지만 그런 것을 제하고 나면 자신들의 욕망이 출렁거리는 세상도 사망이 주장하는 세계의 일부이다. 반면 그리스도인들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감사하며 산다. 그럼에도 ‘내일까지 구하는’ 정도는 괜찮다고 스스로 타협하며 ‘하나님의 길’과 ‘세상의 길’ 어디즘 서서 살고 있다.
어느 TV광고에 손주를 위해 재산을 신탁해서 물려 주라고 하는 할아버지의 주머니를 떨고자 하는 달콤한 광고가 나온다. 물려 줄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되물림하려고 한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길 역시 ‘멸망하는’ 길이라고(20) 분명하게 말한다. 그럼 어찌해야 할가요?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깨닫고 말씀에 비추어야 한다. 그 길만이 마지막 ‘환난의 날’(5)을 두려움 없이 통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