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양분

성경 전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 view
Notes
Transcript
누가복음 9:10–17 NKRV
10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12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 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14 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 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 15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16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

서론

우리는 이제 사도신경 강해를 모두 마쳤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며 올바른 신앙고백으로 계속해서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 다룰 수는 없지만 신약 성경의 각 권의 말씀들을 나누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오늘은 누가복음의 본문입니다.
특별히 오늘의 본문은 여러분이 익히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일명 “오병이어”라고 하는 이름으로 불리어지는 본문이죠.
먼저 오병이어의 본문을 다루기 전에 한 가지 내용을 짚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는 아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도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이 땅에 보여주는 도구입니다.
여러분 한 명 한 명이 교회이고, 바로 여러분을 통해 세상은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음으로서 하나님 나라가 세상 가운데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라는 이 주제를 주의깊게 보아야 합니다.
오늘 오병이어의 본문은 기존에 지나치게 “기적”이라는 토픽에 집중해서 본 경향이 있습니다.
5개의 떡과 2마리의 물고기로 오천명을 먹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당연히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겠죠.
그만큼 오병이어는 놀라운 기적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기적이라는 그 자극적인 토픽 때문에 본문에서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한 가지를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양분”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무엇으로 채움받고 먹는지 말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의 내용이 있기 전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도록 합니다.
누가복음 9:2 (NKRV)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은 곧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6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이렇게 예수님으로부터 파송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동네 이곳저곳 다니며 전하던 제자들의 사역이 끝납니다.
그리고나서 다시 제자들이 돌아옵니다.
누가복음 9:10 (NKRV)
10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사역이 어땠는지 묻습니다.
그리고 벳새다라는 마을로 가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가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이 파송했던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하고 돌아왔으니 고생한 제자들과 함께 따로 시간을 보내고 싶으셨을겁니다.
고단한 육체로 인한 휴식도 취하고, 함께 사역에 대한 피드백을 나누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의도와는 다르게 상황이 흘러갑니다.

1. 희생의 사랑은 하나님 나라의 양분이다. (10-11절)

누가복음 9:11 NKRV
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예수님의 의도는 제자들만 따로 가서 시간을 보내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교제도 하고 싶으셨겠죠.
예수님의 사역을 나누어 함께 한 제자들을 격려도 해야하고요.
그런데 무리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자들의 사역이 상당히 훌륭했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죠.
예수님이 제자들을 동네로 보내신 이유는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기 위해서였거든요.
그런데 그 사역에 아무 능력이 없었으면 무리들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을 거에요.
그런데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제자들이 훌륭히 하나님 나라를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는 달갑지 않을 수도 있는거죠.
PPT
제가 필리핀으로 선교 여행을 네번 갔었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제가 필리핀에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증인은 저희 아내에요. 물론 외국인을 봐서 신기한 것도 있겠지만 제가 약간 동남아 스타일로 생겼는지 모르겠는데 인기가 많더라고요.
특히 아이들이 정말 저를 많이 좋아했어요.
제가 안 믿으실까봐 증거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근데 거기서 제가 마지막에 갔던 선교여행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선교팀이 이제 어린이 선교 사역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잠시 오후에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요.
필리핀 사역 일정이 새벽 4시-5시 예배가 있어요 주일에.
그리고 오전에 어린이 사역을 하는 거에요. 날씨가 더우니까 새벽, 아침에 주일 예배 일정을 끝내는거죠.
이제 쉬는데, 자매들 방 창문에 필리핀 아이들이 몰래 쳐다보고 있었던거에요.
이제 자매들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른거죠.
새벽 일찍 일어나서 일정 중간에 이제 잠시 쉬는 그 꿀같은 휴식 시간을 방해 받게 되면 어떻습니까?
놀라기도 하지만 이제 짜증이 나죠.
예수님과 제자들이 비슷한 상황 아니었을까요?
어쩌면 사역 이후 휴식과 같은 시간에 찾아온 무리들이 불청객으로 느껴졌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습은 절대 그들을 불청객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제자들이 했던 그대로 그들을 직접 섬기십니다.
누가복음 9:11 (NKRV)
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PPT
우리는 여기서 따뜻한 예수님을 마주하게 됩니다.
따뜻한 예수님은 우리를 환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힘들고 지쳐있으실 때도, 결코 자신을 찾아온 자들을 무례하게 대하거나, 내쫓으시지 않습니다.
혹은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들을 내심 좋은 말로 돌려보낼 수라도 있잖아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어요.
예수님은 그때 무엇을 하셨냐면, 정성스럽게 그들을 맞으시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베푸시고,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주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제가 예수님을 정말로 닮아야겠구나라고 생각했던 포인트, 제가 목회자이면서 설교자인 입장에서 닮아야겠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말과 행동의 일치입니다.
예수님은 말로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신 것이 아닙니다.
PPT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사랑하는 방식을 그 자리에서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방식은 뭐였냐면, “희생”인거죠.
여러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좋은 것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보여주신 희생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그 자리에서 즉시 보여주신 희생은 자신의 편안과 휴식을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포기했던 것이죠.
예수님이 보여주신 희생의 사랑은 지금 당장 그들에게 자신의 편함을 희생하고 좋은 것을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해 언어로든, 행동으로든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오천명의 사람들에게로 퍼져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너무 닮고 싶은 거에요 제가.
말로만 사랑을 말하지 않으시고, 말로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지 않으신거죠.
행동으로 희생하면서 사랑을 베푸시고, 행동으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자로서 보여주신거에요.
이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언행일치 속에 하나님 나라는 자연스레 오천 명의 마음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이 순간 하나님 나라의 양분은 무엇이었습니까?
희생의 사랑이었습니다.
적용)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도구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는 세상 가운데 선포되어야 하죠.
그런데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참 많이 깨닫게 되는 것은 말로만 하나님 나라가 절대 선포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거였어요.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말로 전하는 것을 많이 떠올리지만, 사실 그것은 절반짜리 복음 전파인 거에요.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전달은 말과 행동으로 함께 가는 것이죠.
그리고 그 행동의 기저에는 희생의 사랑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먼저 우리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백성으로서 서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데, 외부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수는 없는거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당장 옆에 계신 우리 청년부 지체들에 대하여 나의 편안함을 포기하고, 희생의 사랑을 베푸는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가장 첫 번째 희생의 사랑은 목숨을 희생하고, 전 재산을 갖다 바치라는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가장 첫 번째 희생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나의 편안함을 깨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여 편안함을 희생하고, 그들을 극진하게 환대하며, 그들을 향하여 돌아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보여주신 거에요.
그런데 그 행동의 놀라운 결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가 서로를 통해 선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그 희생의 사랑을 통해서 서로에게 스며드는 거에요.
PPT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도 들어요.
내 예배의 옆자리를 비워두자.
여러분 조금 늦게 오는 청년들이 자리가 없는 거에요. 왜 없냐면 내 옆 자리에 가방을 두거나, 거리가 띄워졌으면 좋겠는 마음들이 모여서 그러는거에요.
제가 그분들을 정죄하는 것은 아니나, 예배 중에 그런 분들이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거리고 있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정말 여러분을 희생한다면, 내 옆자리를 흔쾌히 내어주고 환대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걸 하려면 무엇을 희생해야합니까?
내가 조금 불편할 것을 감수해야죠. 내가 누군가가 오는 것을 항상 신경써야죠.
그러나 그 희생이 사랑이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양분이 공급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삶에서 그러한 모습이 점점 늘어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공동체의 예배의 자리를 정말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작은 실천
그리고 이것이 우리 삶의 전 영역으로 퍼져나가는 실천들을 통해 우리 삶을 하나님 나라로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2.작은 헌신이 하나님 나라의 양분이다. (12-13절)

이제 본문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몰려온 사람들에게 희생의 사랑으로 병을 고치시고 복음을 전하시죠.
그러던 중 날이 저물어 갑니다.
그리고 그들이 빈 들에 있었습니다.
저녁 노을이 점점 져가면 어떤 시간이 오는거죠? 저녁 시간입니다.
저녁이 되면 식사를 해야할 때가 다가옵니다.
제자들은 몰려온 무리들이 마을로 돌아가 식사를 하게 하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먹을 것을 오천 명의 무리에게 공급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시잖아요. 오천 명의 사람들을 먹이는 것이 쉬운 일일까요?
제가 흑백요리사를 보는데, 팀 미션으로 4명 정도 되는 실력있는 요리사들이 100명의 요리를 준비하는 것을 봤습니다.
거기 요리사들이 요리가 직업인 사람들인데도 막상 100명의 대량 음식을 준비하는걸 보니까 상당히 어려워하는 것을 봤거든요.
그런데 제자들에게 문제는 모은 음식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번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출처를 생각해봅시다.
이것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요한복음 6:9 NKRV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한 아이가 가지고 온 음식이었다고 요한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가 음식을 가져온 마음을 한번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 성경에서 5천 명이라고 얘기했던 명수는 모두 5천명이 아니라, 성인 남자만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당시 뭔가 기록을 남길 때 명수에 포함되는 것은 성인 남자만 했거든요.
그렇다면 당시 기적을 경험한 인원은 5천명이 훨씬 넘는 인원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물고기와 떡을 가져온 이 아이는 5천 명의 인원에도 포함되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굳이 “아이”라고 기록한 의도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작은 아이”를 통해서 시작된 “작은 헌신”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분명히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 아이는 분명히 제자들이 있는 음식을 달라고 하니까 계산하지 않고, 재지 않고, 그저 드리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드리기 위해 물고기와 떡을 드렸을 것입니다.
이 헌신은 제자들이 평가했을 때는 말 그대로 적은 떡과 물고기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9:16–17 NKRV
16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
예수님에게 이 작은 헌신이 담긴 물고기와 떡은 5천명이 넘는 자들이 먹고도 남는 충분한 양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양분은 결코 눈에 보이는 음식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양분은 작은 자의 작은 헌신을 통해 충만히 채워집니다.
적용)
제가 항상 봉헌기도를 할 때 하는 기도의 정신이 있습니다.
두 가지가 있지만, 첫 번째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드리는 이 헌신이 비록 작고, 우리가 가진 것의 일부이지만 이것을 믿음으로 드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에 이 작은 아이가 물고기와 떡을 예수님께 드린 것을 예배 때 헌금을 드린다고 생각하면 어땠을까요?
분명히 이 아이가 드린 헌금의 양은 어른들이 보았을 때는 적은 양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이 헌금은 그 아이의 순수한 믿음으로 드렸기 때문에 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을 먹이는 양분을 공급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정말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드렸기 때문입니다.
헌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드림”입니다.
오병이어 이야기 속 아이는 믿음으로 물고기와 떡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드릴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무언가를 주는 것에 대해 상당히 거부감이나 불편감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뭔가 준만큼 받고싶은 그 본성적 시스템이 있거든요.
기브앤테이크라고도 하는 그 본성적 시스템이 당장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드리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가운데에도 바라지 않고 뭔가를 주는 헌신은 그 누구나 숭고하게 생각하는 시스템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바라지 않고 줍니다.
기부자는 누군가에게 바라지 않고 기부합니다.
자원봉사자는 봉사 대상에게 바라지 않고 봉사합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기브앤테이크 시스템을 강하게 선호하는 시대 속에서도 숭고한 가치로,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이 시스템에 가장 숭고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모습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전혀 바라지 않고,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렸습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일 때가 언제일까요?
바라지 않고 드리는 헌신 가운데 있습니다.
믿음으로 드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님이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던 모습을 믿음으로 그와 같이 드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 중 그 어떠한 것도 드릴만한 것들이 됩니다.
우리의 시간도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물질도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도, 이성도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어떤 것이라도 여러분은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이것은 정말 작은 것을 드리는 것이겠지만, 하나님은 이 작은 것을 드림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어린 아이의 작은 드림이 일궈낸 결과는 무엇입니까?
5천 명이 넘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도 남는 충만한 음식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양분을 얻게 되는 재료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의 작은 드림입니다.
예수님은 작은 드림을 축사하시고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드림이 우리 공동체의 영혼을 먹고도 남을 충만한 하나님 나라의 양분을 허락하십니다.

3.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의 양분을 먹고 사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통해 봤을 때, 하나님 나라의 양분은 희생의 사랑과 작은 드림으로부터 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모든 양분의 공급자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희생의 사랑, 작은 드림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양분을 공급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 나라 양분을 충만히 얻길 소망하십니까?
진정으로 여러분이 실천하기 힘써야 할 것은 희생의 사랑과 작은 헌신입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