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정해야 함
Notes
Transcript
에어팟프로
예수님의 마음도 동일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서
밥을 먹고 계셨습니다.
그때 바리새파 사람들하고
율법학자들이 투덜거리며 말했어요.
“어떻게 죄인들과 겸상을 할 수 있죠?”
“죄인들과 어울리는게 이게 맞아?”
예수님께서 어울렸던
세리들은 세금을 걷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영어로 ‘tax collecter’라고 해요
지금으로 치면
세무서 직원이자 공무원입니다.
공무원이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 당시 세리들은
로마에서 제시한 세금 이외에도
자신들이 임의대로 세금을 더 부과할 수 있는
권력이 있는 존재들이었어요.
당연히 사람들에게 미움을 샀겠죠?
돈에 눈이 멀어 같은 민족의
돈을 필요 이상으로 뜯어먹고 사는
무리였으니까요.
그리고 죄인들은
실제로 범법을 한 죄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에게
막 뭐라고 했던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바리새파 사람들은
굉장히 성실하고
엄격하게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교회를
굉장히 열심히 다니시는
집사, 권사, 장로님들이 될 것 같아요.
율법학자들은 음…
신학교 교수님이라고 할까요?
저와 같은 전도사, 목사님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율법을 굉장히 깊게 공부하는 사람들이었어요.
너무 비교가 되지 않나요?
한 쪽은 범죄자와 양심을 팔아먹은
사람들로 구성된 무리이고,
다른 한 쪽은 교회를 너무 열심히 다니시고,
성경말씀도 밤낮으로 파헤치는 연구가들이니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범죄자들,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계셨어요.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항상 거룩하게 살기 위해
무진장 애를 쓰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제쳐두고
어둠의 자식들과 식사를
하고 계셨단 말이죠.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두 무리,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비난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니!
왜 그런 거룩하지 못한 어둠의 자식들과
겸상을 하시죠?
그때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세요.
어렵지 않은 말씀구절이니까
한 목소리로 함께 읽어봅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 다니지 않겠느냐?
찾으면, 기뻐하며 자기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서, 벗과 이웃 사람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일단 가장 먼저,
예수님께서 어둠의 무리들과
어울리신 이유는,
그들이 저지르는 죄에
동참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들도 구원하시기 위해,
그들의 무너진 삶을 회복시키기 위해
그들과 어울리신 것입니다.
그들의 삶도 새로운 삶을 살아갈
가능성을 열어주시기 위해서
그들과 어울리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관심은
세상의 기준으로 박수 받고, 칭찬 받고,
의롭게 여겨지는 사람에게
향해있지 않습니다.
과거에 지은 죄 때문에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만 같은
어둠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다는 거죠.
100마리의 양 중에서
한 마리를 잃어버리게 되면
그 한 마리에
온통 관심이 쏠리는 것으로
비유를 해주셨습니다.
그럼 이제 약간의 불만이
생길 수도 있죠.
아니 그럼 99마리는 안 중요합니까?
뭐 어찌보자면 99마리도
한 마리 한 마리 너무나 귀중한
양이 무려 99마리나 모여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고작
잃어버린 양 한 마리에게
관심이 가 있다니…
심지어 4절 말씀에 보면
아흔 아홉마리를
‘들에 두고’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서 들은 그냥
어디 갑천변 어디 들판 정도가 아닙니다.
원어를 살펴보면
‘광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스트롱 맹 히브리어 헬라어 성경 원어 사전 ἔρημος
2048. ἔρημος 에레모스. eremos, wilderness, desert, desolate, solitary, 광야, 마(Mt) 3:1, 24:26, 황폐하여, 마(Mt) 23:38, 한적한, 막(Mk) 1:35, 45, 항폐하게 하시며, 행(Ac) 1:20.
아무튼 들판이 되었든 광야가 되었든
99마리의 양을 내버려두고
다른 한 마리의 양을 찾으러 가면
99마리가 위험하잖아요?
예수님께서 너무 감정적이셔서
집나간 1마리의 양에 정신이 팔려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시지
못하신 걸까요?
그런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비유 중에서
완벽한 비유는 없다.
어떤 사실을 잘 알아듣게 하기 위해서
비유라는 방법을 사용하지만,
비유가 모든 것을 100퍼센트
완벽하게 설명해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또 하나의 비유를 들어주십니다.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한 아들은 아빠 말도 열심히 듣고
정말 바르게 모범적인 아이로 자랐어요.
그런데 눈치가 없는 둘째는
아빠 재산 어차피 나중에 나 줄거잖아?
그럼 그냥 미리 가불해줘. 땡겨줘.
그래서 아버지에게 재산을 땡겨받고는
방탕하게 살면서 아버지께 받은 소중한 재산을
사창가를 기웃거리며
온갖 놀음과 먹고 마시는데
다 탕진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돈이 없으니까
어디 잠깐 알바자리 취직해서
일을 하는데 너무 힘든거에요.
맨날 아빠한테 돈 받아써보기만 했지,
지가 스스로 돈을 벌어본 적이 없으니까
이게 너무 힘든거죠.
그래서 둘째 아들이 생각해냅니다.
아 내가 아빠 집에 있을 때
그냥 엄마아빠가 시키는거 하고
엄마아빠가 차려주는 밥 먹고
그때가 좋았는데…
안되겠다 돌아가야겠다!
하고 돌아갑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께 받은 돈을
다 탕진해버렸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어요.
그래서 망설였죠.
돌아가면 나를 받아주실까…?
몽둥이로 뒤지게 패고 옷 홀딱 벗겨서
쫓아내실 것 같은데…
하… 인생 망했다…
그러고 다시 뒤를 돌아보니
남들 밑에서 종살이 하면서
벌어먹고 사는 건 더 싫은거에요.
그래서 그냥 눈 딱 감고
아버지를 찾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부터
아버지가 신발도 제대로 안 신고
막 뛰어오시는 게 보였어요.
아들은 죽음을 직감했죠.
흡사 멧돼지가 뛰어오는 것 같구나
난 이제 죽은 목숨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달려오자마자
부등켜안고 펑펑 울며
기쁨과 다행과 설렘과 안도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둘째 아들이 돌아와서
굉장히 흥분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들이 돌아왔으니
파티를 열자면서
소도 잡고 음악도 틀어놓습니다.
그러던 중 성실한 첫째 아들이
일을 열심히 하고
집에 오는데 왠 파티?
싶어서 가보니까
망할 동생놈이 돌아왔는데
아버지께서 혼내지도 않고
오히려 파티를 벌이는 거에요.
그래서 첫째가 화가 나서
자기 방에 들어와서 분노를 삭히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빠가 들어와서
왜 삐져있냐? 물어보셨어요.
그때 첫째가
“아니 평생을 성실하게 일한
나를 위해서는
돼지 한 마리도 안 잡아줬으면서,
사창가를 기웃거리느라, 쳐 노느라
아버지 재산 다 탕진하고 돌아온 저자식이
뭐가 예쁘다고 파티를 여셨어요?!”
아버지가 그에게 말하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
그런데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
즉, 하나님은 99마리의 양에게
관심이 없으신 분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99마리는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있으니까
이미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다 99마리의 것이니까
오히려 더욱 복 받은 인생이라는 거죠.
그런데 잃어버린 1마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울타리를 떠나
자기 인생이 어느 곳을 향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채로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이 그 1마리에게
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리고 애타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만큼
1마리의 양을 찾게 되면
하나님은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찾으면, 기뻐하며 자기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서, 벗과 이웃 사람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세요.
잃어버린 양 1마리를 찾는 것을
너무나 기뻐하시는 분이시고,
나머지 99마리의 양도 너무나 사랑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씀으로 오늘 우리의 삶을
비춰봅시다.
우리의 삶은 양과 같습니다.
양은 눈이 매우 안 좋아서
앞에 있는 양의 엉덩이만 보고
걸어갑니다.
그래서 양에게는
양을 관리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반드시 필요해요.
그 양을 관리하는 사람을
목자라고 부릅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위대하고 가장 선한 목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그런데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목자의 음성은 듣지 않고,
다른 양의 뒷꽁무늬만
보고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힘써서
예수님의 사랑을 그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예전에 오늘 본문 말씀 가지고 설교를 했는데,
예배가 끝나고 저하고 얘기하다가
어떤 청소년이 재밌는 말을 하더라고요.
오늘 말씀처럼 열심히 전도하겠습니다.
그래야 전도사님 실적이 올라가서
월급도 많이 받으시는거 아니에요?
미안한데 아무런 관계 없습니다.
여러분이 친구들을 많이 데려온다고 해서
제 실적이 올라가거나 하지도 않고요.
제 월급이 올라가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전도를 하는 이유,
친구들을 교회로 데려와야 하는 이유,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이에요.
그 사랑을 나만 누릴 수 없기 때문이에요.
집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때
아버지가 사람들을 초청해서
같이 파티를 열죠.
그 파티 안에서 내가 할일은
아버지의 그 마음에 접속되어서
나도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할 뿐이에요.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좋으니까
한 사람의 인생이 완전하게
변화될만큼 너무 감사하니까
그 마음을 그대로 이어 받아
잃어버린 1마리 양,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고, 관심조차 없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고 싶을 뿐인거죠.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죠.
하나님의 사랑을 갑자기 전하면
길가다가 도를 아십니까?
라고 하는 사람들이랑 별반 다를 것 없는 것 같아서
우리 안에 주저함이 생긴다는거죠.
어떻게 해야 당당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비유하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가 누군가에게
맛집을 추천하는 걸 생각해봅시다.
내가 누군가에게
맛집을 추천할때 생각해보면,
굉장히 당당하게 추천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확신은 왜 생겼을까요?
확실한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음식을 먹어봤는데
너무 좋으니까
주저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는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맛집 주인이
우리한테 광고수임료라도 주나요?
그냥 너무 맛있으니까
너무 좋으니까 그 좋은 경험을
내 소중한 사람한테 나누고 싶은거에요.
마찬가지로
친구들을 교회에 데려올 수 있는 것도,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경험해보니
내 삶이 변화되었고,
너무나 감사하니까, 너무 좋으니까
이 경험이 있다면 우리는
그제서야 당당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거에요.
전도사님이 전도사님이 된 이유도 그래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이곳은
진짜 맛집이거든요.
우리 인생에서 여기보다 중요한
맛집은 존재하지 않거든요.
전도사님이 가끔 장난식으로
신학교 가지마
신학교 가는거 다시 생각해
이렇게 말할 때도 있지만,
사실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마음을 정하고
신학의 길로 걸어가는거
굉장히 굉장히 추천합니다.
왜냐하면,
저처럼 목회자가 되면
이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귀하고 값진
놀라운 경험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것이 무엇이냐면
한 사람의 삶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다는 거에요.
그래서 깨닫게 되죠.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한 영혼을
되찾으셨을때 기분이
이런 기분이겠구나.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기뻐하며 파티를 여는 인생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거죠.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전도사님은 개인적으로 이번에
정말 큰 결단을 했어요.
전도사님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잃어버린 양 1마리는 누구일까?
세 그룹이 생각이 났어요.
하나는 당연히
지금도 전도사님의 연락을 받지 않는
청소년들,
둘째는 전도사님의
아버지였어요.
전도사님의 아버지는 교회를 싫어하세요.
교회에 다니는 사람하고
말을 섞는 것 자체를
혐오해 하시는 분이에요.
저는 그냥 아들이니까
말 섞고 할 뿐이죠.
그래서 이번 주에 용기를 내서
아버지에게 컴앤씨 초청장을 드렸어요.
우리 다음세대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10월은 컴앤씨 기간을 갖거든요.
그래서 아버지한테 딱 당당하게
“10월 24일 7시에 시간 비워유”
라고 말했어요.
그냥 단순하게 아빠가 교회 다녔으면 좋겠다.
가 아니라,
아빠도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으면 좋겠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이 사랑이
나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건데,
아빠도 당연히 누렸으면 좋겠다.
그렇게 느꼈고, 그게 곧 하나님의 마음이었던거죠.
여러분에게
잃어버린 1마리의 양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늘 기다리고 계십니다.
전도사님이나 목사님들의 실적? 월급?
그딴 사소한 것 떄문에 이러는게 아닙니다.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나누고 싶을 뿐이에요.
여러분에게도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여러분도 하나님의 마음을 본받아
누군가를 향한 뜨겁고 애끓는 그 사랑을
마음껏 알리며 살아가는
우리 청소년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