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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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7일(월)
전도대상자를 위하여
1.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시며 애타게 찾으시는 주의 음성을 듣게 하여 주옵소서.
2.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1. 막 14:3-9
옥합을 깨뜨린 여인?
1) 무명한 자나 유명한자로
옥합을 깨뜨린 여인은 누구인가?
요한복음 = ‘죽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라고 말함
마태복음, 마가복음 = ‘한 여인’이라고만 나오고 있음.
누구와 관계가 있는 사람인지?
어떤 집안의 사람인지? 그 어떤 정보도 주고 있지 않음.
‘한 여자’라고만 밝힘.
우리는 이 여인을 ‘옥합을 깨뜨려 머리에 부은 한 여인’으로만 기억함.
이 여인은 분명 이름 없는 자인데,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유명한 사람임.
무엇 때문에 그렇게 유명한 자가 되었나?
이름 없는 한 여인은 오직 예수님께 드린 그녀의 귀한 마음 때문에
가장 무명한 것 같으나 가장 유명한 자가 되었음.
오늘 이 옥합을 깨뜨려 드린 여인의 모습을 보면, 바울이 선포한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예수 믿는 자들의 삶이 바로 이런 모습이어야 될 줄 믿습니다.
이름을 드러내기에 바쁜 삶이 아니라,
가장 귀하고 아끼는 것을 깨뜨려 드릴 때
우리의 이름 없는 헌신을 통해 주가 영광 받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감사로 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
2) 유다의 길과 마리아의 길
but, 이 여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화를 내며 나무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오늘 4절 말씀을 보면 누가 분개하였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저 이 여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사람들이 있었다 말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한 발더 나아가 화를 낸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었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제자들 중에서도 누가 이 말을 꺼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유다의 길과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길은 확연한 차이가 있음.
유다는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는 일, 눈에 보이는 칭찬이 기다리는 일, 작은 일을 포장해서 폼나 보이는 일에 마음을 쓰는게 더 유익하다 말합니다.
그러나 이름 없는 한 여인은 옥합을 예수님께 깨뜨려 드리는 일이 가장 귀한 일요, 값진 일이라는 믿음으로 향유를 부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름 없는 여인의 드림을 선택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이름 없이 드리는 나의 헌신을 하나님이 아십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자 발버둥치는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래서 복음이 전파되는 온 천하 어디에서든 ‘이 여인이 행한 일’을 기억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정말 말씀 그대로 되지 않았습니까?
나의 이름이 기억되기 보다
나의 이름 없는 헌신이 대대로 기억되는 놀라운 역사의 주인공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3)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 앞에서
마가복음 14장은 JX이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시기 직전에 일어난 일들이 집중적으로 기록되어 있음.
최후의 만찬, 체포 당하시는 예수님, 유다의 배신, 베드로의 부인 등 많은 내용들이 다뤄짐.
한 절 한 절 중요하지 않은 말씀이 하나도 없지만,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라는 선택의 기로에 섰던
두 사람을 비교하며 집중해 보고자 함.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베드로와 유다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음.
베드로와 유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
둘 다 예수님을 부인했던 사람들이었음.
베드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정말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 부인하였습니다.
그러자 곧 닭이 두 번째 울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그 말씀이 생각나서, 엎드려서 울었다.
그런데 세 번째 부인 후 닭이 울자,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더올라 자기 죄를 깨닫고 통곡함.
아마 이 불편한 감정은 베드로에게 계속 남아 있었을 것.
but,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세 번의 물음’을 통해 그를 회복시키셨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모른다 부인했던 베드로는
세 번 다시 물으시는 예수님께 세 번 다시 답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초대 교회의 교부였던 클레멘트는 베드로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처형되기 전 자신 같은 존재가 감히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고 하여 자진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되었다”
반면 유다의 결말을 어떻습니까?
유다는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팔아 넘길까 기회만 엿보던 자 였음.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를 넘겨줄 마음을 품고, 그들을 찾아갔다.
그들은 유다의 말을 듣고서 기뻐하여, 그에게 은돈을 주기로 약속하였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를 넘겨줄 적당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태복음(26:14-16)을 보면 유다가 결국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다고 말함.
실제로 유다는 예수님을 완전히 넘겨버리기 위해
칼과 몽둥이를 든 종교인들과 함께 주님께 달려왔음.
그런데 예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가 곧 왔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보낸 무리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그와 함께 왔다.
유다는 끝까지 자기 계획을 철회하지 않고, 실행에 옮김.
결국 죽음의 칼 날을 예수님께 향하게 하는 장본인이 되어 버렸음.
그런데 마태복음은 유다가 뒤늦게 후회가 몰려왔다고 말함.
스스로 뉘우쳐 은 삼십을 다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갖다 바쳤음.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소”라고 상황을 되돌려 보려 했으나
종교인들은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요? 당신이 자처한 일이요”라고 답함.
예수님을 팔아넘겼다는 죄책감과 수치를 이기지 못한 유다는 결국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말함.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음.
우리는 하루에도 참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곤 함.
특히 ‘믿음의 길’을 갈 것이냐? ‘세상의 길’, ‘쉽고 빠른 길’을 선택할 것이냐? 라는 물음 앞에
한참을 망설이기도 함.
but, 예수님은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말씀하심.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다! 말씀하셨음.
예수님이 선택하신 길은 ‘십자가의 길’이었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십자가의 길’을 택하신 예수를 바라보라! 말씀함.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사랑하시되 십자가를 참으사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조금 느린 것 같고,
조금 더딘 것 같아도,
지금 당장 불안하고,
지금 당장 막막할지라도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끝까지 예수만 바라볼 수 있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우리의 삶이 지금!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선택의 기로 앞에 서 있다면,
예수를 붙드는 선택을 내릴 수 있는 믿음의 담대함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
누가복음 = ‘마르다의 여동생 마리아’
막 14:22-26
막 14:27-31 실패를 딛고 일어서시는 예수님
막 14:32-42 (겟세마네 기도 -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
막 14:43-50(인생의 갈림길에서 하나님의 방법 택하기)
주제 - ‘수난’, ‘만찬’, ‘기도’, ‘스트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