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부 34과 - 은혜의 방법을 잘 사용하세요!

2024 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3 views
Notes
Transcript
Handout
Handout

23 Ἐγὼ γὰρ παρέλαβον ⸂ἀπὸ τοῦ κυρίου⸃,* ὃ καὶ παρέδωκα ὑμῖν,* ὅτι ὁ κύριος °Ἰησοῦς ἐν τῇ νυκτὶ ᾗ παρεδίδετο ἔλαβεν ⸆ ἄρτον 24 καὶ εὐχαριστήσας ἔκλασεν καὶ εἶπεν·⸆ τοῦτό ⸉μού ἐστιν⸊ τὸ σῶμα °τὸ ὑπὲρ ὑμῶν ⸇· τοῦτο ποιεῖτε εἰς τὴν ἐμὴν ἀνάμνησιν.* 25 ὡσαύτως καὶ τὸ ποτήριον μετὰ τὸ δειπνῆσαι λέγων· τοῦτο τὸ ποτήριον ἡ καινὴ διαθήκη ἐστὶν ἐν τῷ ⸂ἐμῷ αἵματι⸃·* τοῦτο ποιεῖτε, ὁσάκις ἐὰν πίνητε, εἰς τὴν ἐμὴν ἀνάμνησιν. 26 ὁσάκις γὰρ ἐὰν ἐσθίητε τὸν ἄρτον τοῦτον καὶ τὸ ποτήριον ⸆ πίνητε,* τὸν θάνατον τοῦ κυρίου καταγγέλλετε ἄχρι οὗ ἔλθῃ.

27 Ὥστε ὃς ἂν ἐσθίῃ τὸν ἄρτον ⸆ ἢ πίνῃ τὸ ποτήριον τοῦ κυρίου ἀναξίως⸇,* ἔνοχος ἔσται τοῦ σώματος καὶ τοῦ αἵματος τοῦ κυρίου.* 28 δοκιμαζέτω δὲ ἄνθρωπος ἑαυτὸν καὶ οὕτως ἐκ τοῦ ἄρτου ἐσθιέτω καὶ ἐκ τοῦ ποτηρίου πινέτω· 29 ὁ γὰρ ἐσθίων καὶ πίνων ⸆ κρίμα ἑαυτῷ ἐσθίει καὶ πίνει μὴ διακρίνων τὸ σῶμα⸇.

23절
“왜냐하면”은 앞에 절의 이유다. 내가 너희를 칭찬하지 않는 이유를 말하는 것임.

παραλαμβάνω (paralambanō), 동사. 데려오다, 영접하다, 받다, 취하다.

-> 내가 받았다.
=> “왜냐하면 내가 주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
-> 사도바울은 그 성찬을 예수께 직접 배웠다! 하지만 고린도교회는 그 성찬을 잘못 사용하고 있음. 그리고 그것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전해준 것이다.

παραδίδωμι (paradidōmi), 동사. 배반하다, 내어주다, 전하다

-> “그리고 그것은 내가 너희에게 내어줬다, 전해줬다.”
~했던 바를
-> 예수님이 사도바울에게 가르쳐주셨고,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그것을 그대로 전해줬다. 그리스도께서 알려주신 대로!

νύξ -ὸς, ἡ; (nyx), 명사. 밤, 밤에.

-> 주 예수께서 그 밤에

παραδίδωμι (paradidōmi), 동사. 배반하다, 내어주다, 전하다.

내어주게 되었던, 배반 당하셨던
-> 주 예수께서 내어주게 되었던 그 밤에
-> 주 예수께서 내어주게 되었던 그 밤에! 내어주셨던 그 성찬이다! 앞에와 같은 단어. 이 성찬은 예수님의 내어주심, 즉 십자가에 달리셨던 것과 관련이 있다.
-> 예수님께서 내어주신 성찬은, 곧 자신이 내어주시게 된 사건이다.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살이 찢어지고 피를 흘리신 그 사건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성찬은 그 십자가에 대한 것 자체이다.
-> 우리는 성찬을 대할 때, 목사님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바울이 준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내어주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내어주심을 우리에게 내어주신다. 그 내어받은 성례는 그리스도께 직접적으로 내어받은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와 십자가의 은혜는 직접 받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성찬을 실시한다.
-> 그는 떡을 취하셔서
24절

εὐχαριστέω (eucharisteō), 동사. 감사하다, 축사하다, 감사 기도하다.

그가 축사하시사

κλάω (klaō), 동사. 떼어 내다, 뜯다.

떼셨다

εἶπον (eipon), 동사. 말하다, 이야기하다.

그가 말하셨다.
=> 예수께서는 내어주게 되셨던 그 밤에, 떡을 취하시고, 축사하여 떼어내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 예수님께서 감사 및 축사하신 것은 떼어내심이다. 즉 그의 살, 그가 살을 떼어내시게 될 일에 대해서, 즉 그가 살이 찢어지셔서 십자가를 지게 될 일에 대해서 감사하신 것이다.
-> “이것은 “나의” 몸이다. 너희를 위한, 너희를 대신하는”
->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자신”의 몸인 것을 강조하셨다. 그 찢어진 빵처럼 예수님의 자신의 몸은 제자들을 위하여 찢어질 것이다. 원래는 제자들의 몸이 그렇게 찢어져야 한다.

ποιέω (poieō), 동사. 행하다, 만들다

현능명, 2명복
“너희는 이것을 행하라”

ἀνάμνησις -εως, ἡ; (anamnēsis), 명사. 기념, 기억.

나를 기념하기 위하여
=> 너희는 나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것을 행해라
->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주시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대신 찢겨지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감사함으로 빵을 찢어야 한다.
25절

ὡσαύτως (hōsautōs), 부사. 그와 같이, 마찬가지로, 유사하게.

ποτήριον -ου, τό; (potērion), 명사. 잔, 그릇.

καινὴ διαθήκη

새로운 언약
-> 마찬가지로 식후에 잔을 (가지고) 말씀하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인한 새언약이다.”

ὁσάκις (hosakis), 부사. ~때마다, ~할 만큼 자주.

πίνω (pinō), 동사. 마시다

ἀνάμνησις -εως, ἡ; (anamnēsis), 명사. 기념, 기억.

“이것을 너희는 행하라, 만일 너희가 마신다면 그때마다, 나를 기념을 (한다?)…..”
=> 마찬가지로 식후에 잔을 (가지고) 말씀하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인한 새언약이다. 이것을 너희는 행하라, 만일 너희가 마신다면 그때마다, 나를 기념을 (한다?)…..”
왜 에안 만일 가정법 다음에 미래용법으로 되지 않았지? 왜 동사가 생략되어 있지? 어떻게 해석하지?
26절

ὁσάκις (hosakis), 부사. ~때마다, ~할 만큼 자주.

ἐσθίω (esthiō), 동사. 먹다, 소비하다

-> 왜냐하면 만일 너희가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이 잔을 마신다면 그때마다,

καταγγέλλω (katangellō), 동사. 엄숙히 선포하다, 전하다, 알게 하다.

-> 용례에서는 “전파하다”라는 뜻이 제일 많다. 사도행전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 제일 많이 쓰임.
-> 같은 고린도전서에서는 “전하다”라는 뜻으로 제일 많이 쓰임.

ἄχρι (achri), 전치사. ~까지, ~할 때까지, ~에 이르러, ~하도록.

ὅς (hos), 대명사. (관계대명사)~하는 바, ~하는 것.

ἔρχομαι (erchomai), 동사. 가다, 오다, 이르다.

ean과 가정법이 함께 쓰이면, 미래조건이다. : ~한다면, ~할 것이다.
=> “왜냐하면 만일 너희가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이 잔을 마신다면 그때마다, 그가 오실 때까지 너희가 주의 죽음을 엄숙하게 선포할 것이기 때문이다.”
-> 성찬의 의미는 주가 오실 때까지 주의 죽음을 엄숙하게 선포하는 것이다. 성찬은 주의 죽음을 “전파”하는 것, 전하는 것이다. 스스로 전하는가? 성찬 자체가 다른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전파하는 방편으로 사용될 수가 있는가? 기념한다는 것의 의미는 스스로 전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기념한다는 것은 기억나게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27절

ὥστε (hōste), 접속사. 이런 이유로, 그러므로, 그래서.

ἄν (an), 소사(불변화사)., 접속사. (번역 안됨).

불변화사가 뭐지?

ἐσθίω (esthiō), 동사. 먹다, 소비하다.

ἀναξίως (anaxiōs), 부사. 합당하지 않게, 수치스럽게.

가치없이, 부정확하거나 과소 평가된 방식으로
-> 그러므로 가치없이 떡을 먹는 자들, 주의 잔을 마시는 자들은

ἔνοχος -ου, ὁ; (enochos), 형용사. 책임 있는,

법적 조치의 대상이 되는
-> 그러므로 가치 없이 떡는 자들과 주의 잔을 마시는 자들은 주의 몸과 피에 책임이 있다. 고발의 대상이 된다.
28절

δοκιμάζω (dokimazō), 동사. 조사하다, 면밀히 밝히다.

ἑαυτοῦ -οῦ, ὁ; (heautou), 대명사. 그 자신, 그 자체, 스스로.

=> 이제 스스로 면밀히 살펴라, 이와 같이 떡을 먹는 자와 잔을 마시는 자 중에서 (그렇게 해라).
-> 우리들은 떡을 먹고 마시는 자들이다. 하지만 주님의 죽으심을 생각함이 우리는 없다.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그것을 전하는 듯이 행하는 사람들이 없다.
성례의 의미는 분명히 행하는 말씀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먹고 마신다고 하면서,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 주님… 이 세상 가운데서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연약하고, 본질적으로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주님의 살과 피를 기억하는 자로서, 먹는 자로서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저에게 알려주시옵소서. 기억하는 자로 살게 해주옵소서.
-> 한국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살지는 못한다. 이렇게 의미없고 쾌락과 방탕 속에 살 수는 없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하신 사건이 얼마나 큰데? 다른 사람은 다 잊어도 나는 그렇게 살면 안되지 않은가? 주님…….. 어떻게 이렇게 의미없이 살 수가 있는가? 어떻게 그냥 가치 없이 살아갈 수가 있는가? 29절에 보면 그것은 죄를 먹고 마시는 삶이다. 그리스도를 기억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죄다!!
29절

κρίμα -ατος, τό; (krima), 명사. 심판, 유죄선고.

-> 왜냐하면 스스로에게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διακρίνω (diakrinō), 동사. 분별하다, 의심하다, 비난하다, 알아보다, 논쟁하다

언쟁하다, 구별하다, 주저하다, 분별력있게 평가하다
-> 그 몸을 분별-의심-살펴보지 않으면서 먹고 마신다면…
-> 우리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전하는 우리의 삶을 주의깊게 분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내 삶은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그에 합당하게 살고 있는가? 나의 삶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삶이 맞는가? 계속해서 평가-의심-분별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죄 가운데 살아가는 삶일 것이다.
-> 히틀러 부하 아이히만의 삶. “나는 시키는 대로 그냥 살았는뎁쇼?” 한나 아렌트는 사유의 부재에서 나오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 말했다…
-> 우린 그냥 살아간다…. 나의 도처에 있는 악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살아간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삶인가?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또한 아무도 그것이 유죄성을 밝혀낼 수 없다. 하지만 분별하지 않는 것, 생각하지 않으며 그냥 살아가는 것은 죄 가운데 살아가는 삶이다.
-> 주여, 우리로 하여금 분별하게 하옵소서. 주를 기억하며 살게 하옵소서. 주를 기억할 시간을 주옵소서. 주를 생각하고 되짚어볼 시간을 주옵소서…. 주님…
—————————————————
1)
-> 우리는 왜 삶을 분별하고 면밀히 살펴보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억하면서 살지 않으면 안되는가? 우리는 왜 가치없이 살면 안되는가? 왜냐하면,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직접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도들에게 받은 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사도에게 전해준 것이다. 곧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직접 그의 몸과 피를 받은 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냥 이대로 살면 되겠는가? 우리는 “직접” 그 몸과 피를 받은 전달받은 사람이다.
2) 직접적인 연관성 2번째.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내어주신” 그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내어주셔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가능해진 대속의 사건을 말하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자기 몸을 찢으셨다. 원래는 우리의 살이 예수님 대신 찢어져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다시 하나님과 언약을 맺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된다…
3)
우리에게는 전하는 말씀(설교), 보이는 말씀(성례), 행하는 말씀(권징)
우리는 보이는 말씀인 성례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기억이 포인트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우리의 삶을 분별하여 살아내야 한다. 그러므로 가치 없이 사는 사람들은 고발의 대상이다. 우리들은 우리의 삶을 분별하고 의심하고 구별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들은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4)
우리는 먹고 마시는 것, 죄 등 지극히 우리 삶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를 기억하면서 분별해봐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직접 전달받은 나에게 합당한 삶인가?” 이것이 결정적인 질문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은혜를 누린 내가, 합당하고 가치있게 살고 있냐는 것. 우리들은 분별해야 한다.
5) F.C.F) 분별없이 사는 우리들. 그리스도를 기억하지도 않고, 그에 합당하고 가치 있게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그냥 바보처럼 사는 우리들. 그리스도를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은, 실상은 스스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다. 유기농 상표를 확인하는 것만큼만 그리스도를 생각해보자! 내 몸에 지금 뭐가 들어가는지 성분표를 확인하는 것 만큼만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많은 민감한 문제들을 분별하여 성도들 삶의 가이드라인을 지혜롭게 제시한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