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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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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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

릴스: 어린이 처럼 친구를 사귄다면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최근에 인터넷을 보다가 이런 짧은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제목은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친구를 사귀었다면”입니다. 거기서 한 친구가 등장합니다. 그 대사와 상황을 보면 이렇습니다. 상대방이 옷이 좀 더럽거나 허름해요 크게 개의치 않고 “우리 친구할래?”라고 먼저 물어봐 줍니다. 또 다른 상황에서는 여러 사람들 가운데 혼자 있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에게 다가가서 “우리 친구할래?”라고 물어봐 주지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 신학생이 되었을 때, 아무도 알지 못할 때입니다. 초등부 친구들과 당연히 데면데면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신부님께 말씀드려 보니, 신부님께서는 ‘아이들에게는 큰 과정이 필요 없다. 그저 어린이 미사 30분 전에 가서 성당 마당에 앉아 있어라.’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30분 전에 성당 마당에 있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먼저 다가와서 ‘누구냐, 뭐하시냐, 심심하면 같이 놀자, 저희랑 놀아달라.’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제1독서+복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크게 두가지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는 혼인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라는 가르침입니다. 다른 하나는 어린이들과 있었던 일화입니다.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오자, 제자들은 그것을 막으려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반대의 말씀을 하십니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둘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주제는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는 단절과 연결입니다. 조금 더 설명을 드려 보겠습니다. 어른들은 단절을 원합니다. 예수님께 묻지요.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하고 묻습니다. 다른 말로 “이혼해도 됩니까?”라고 물어본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나와 나의 배우자가 이렇게 맞지 않는데, 그러면 서로 관계를 단절해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세기의 말씀으로 답을 하십니다. “남자는 […]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이 말씀의 출처로 돌아가봅시다. 제1독서에 나오지요.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왜 배우자를 만들어 주셨습니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서 하느님께서는 짝을 지어주셨는데, 다시 사람이 여러 이유를 대며 단절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이들은 누구든지 쉽게 받아들입니다. 당시 예수님이 멀끔한 사람이었겠습니까. 여러 고을을 돌아다니는 상황이었지요. 그 당시의 여느 여행자처럼 꾀죄죄하고 먼지도 많이 묻어 있었습니다. 또 당시에 똑똑하다고 하는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이 너무 위험하다고, 너무 급진적인 생각을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렇게 위험하기도 하고 겉모양이 좋지도 않은데, 아이들은 이런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을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이렇듯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 연결되기 원합니다.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 가운데 하느님 나라가 있다.

바로 이렇듯 우리의 선입견이나 욕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 인간이 창조될 때의 본 모습이지요. 그러나 점점 커가면서 그 모습을 잃어버립니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 사람의 성격을 보고 조금씩 양보하면 될 부분도 맞춰 주지 않습니다. 가끔은 내 욕심이나 자존심 때문에 단절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우리 창조 때의 본 모습과 어긋난 우리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또 이렇게도 말씀하시지요.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상대방의 다른 점, 더 나아가서 그의 약점까지도 사랑으로 받아들여주는 데에서 바로 하느님 나라가 시작됩니다. 이번 한 주도 우리는 여러 사람을 만날 것입니다. 나와 잘 맞는 사람도 있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까지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은총을 우리 이 시간 청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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