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약하고 두려운 시기를 지날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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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바울의 선교 여정에서 고린도와 에베소는 아주 중요한 교회들 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 고린도를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머문 기간은 약1년육개월 정도 됩니다.
이 기간은 바울에게 어떤 시기 였을까요?
네, 예상 하셨겠지만 어려운 시기 였습니다.
박노해 시인의 시 “고마운 돌” 에서 나오는 글귀 인데,
아프리카 어느 마을에서는 물쌀이 아주 센 강을 건널때
물쌀에 휩쓸리지 말라고
한 사람당 하나씩 큰 돌멩이를 안고 건너게 한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보면
어려운 고난의 강을 건너야 할 때가 옵니다.
그럴때, 우리가 짊어져야 할 고민과
그 시기에 꼭 해결해야 할 문제와 질문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 돌멩이가 아닐까요?
그 돌멩이를 안고 건너는 것이 당시에는 더 힘들지만
그 강을 건너고 보면 그 돌멩이 덕에 강물에 휩쓸려 가지 않았구나 알게 됩니다.
인생의 시기마다 안고 건너야 할 돌멩이가 있는 것같습니다.
그 선택들이 모여서 우리 인생을 이루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아이는 아이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그 나이에 배워야 할 것과 역할이 있고
장년도 어르신도 각자 각자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도 고린도를 지나며 얻어야 할 해답이 있었을 것입니다.
안고 가야 할 돌멩이가 있었습니다.
오늘 바울이 그 혼란스럽고 두려운 강을 건널때
하나님은 그에게 어떤 돌멩이를 주셨는지
또한 어떻게 그를 도우셨는지 살펴 볼때,
여러분의 인생의 시기에서 지금 주어진 즉 안고 건너야 할 질문과 과제가 무엇인지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울의 그 시기에 바울이 알기 원했던 그 한 가지가 무엇인지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1.힘조절과 기다림
2.강하게 선포해 할 때
3.가장 약하고 두려울 때 알아야 할 것

1.힘조절과 기다림

젊은이들은 넘치는 힘을 믿고 저돌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매력 입니다.
연륜이 쌓일 수록 노련함을 갖게 되고 완급조절을 알게 됩니다.
야구에서도 160km 속구를 빵빵 던질 줄 안다고해도
그것만으로는 성공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콘트롤 능력이 있어야 하고
변화구와 체인지업으로 상대 타자의 타이밍을 뺏을 수 있어야
팀을 승리로 이끄는 투수가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지성과 열정을 겸비한 능력 있는 전도자 였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살펴본 아덴의 아레오바고 언덕에서의 설교는 그런 그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당대의 최고의 철학과 고도의 정치의 중심지인 아덴에서
그들을 상대로 당당히 “예수와 그의 부활”을 선포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런 그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동한 곳은 아덴에서 서쪽으로 약60km 정도 떨어진 고린도 였습니다.
아덴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으니 그대로만 하면 고린도의 성공은 보장 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 없어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아덴은 그리스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도시였고
고린도도 아덴과 유사한 문화권이었으며
고린도 또한 아덴 못지않게 번창하고 큰 도시 였기때문 입니다.
또한 그곳에는 유대인의 회당도 있었기에
어떤 면에서는 더 좋은 환경 처럼 보였습니다.
만만치 않은 시작
아마도 아덴에서 얻은 경험은 바울로 하여금 확신과 자신감을 주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역시나 신앙세계의 서사는 언제나 신자에게 호락 호락한 흐름을 허락 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에서의 시작은 예상과 달리
아주 소소하고 조용하게 전개 됩니다.
한 마디로 전력질주 할 줄 알았던 고린도의 사역이
한 템포 쉬어가는 형국을 맞이 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18:2–3 NKRV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모든 열정을 다해
복음 전파하는 일에 전념 할줄만 알았는데
현실은 자금 마련을 위해 생업에 종사 해야만 했습니다.
고린도에서의 바울의 사역을 가장 잘 나타내는 구절이 4절인데 보시겠습니다.
사도행전 18:4 NKRV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매일 매일 전도하며 말씀 준비하고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평일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안식일에만 회당에 가서 말씀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삶이 무슨 문제인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 전파를 위해 전생애를 바친 전도자에게는
한시가 아까운 상황 입니다.
모든 시간을 드려서 말씀을 준비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전파하는 것을 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풀타임으로 사역에 매진하기에는 상황이 녹녹치 않았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애가 탔을 것입니다.
저도 호주에 이민을 오고 보니,
이제 영주권을 받으면 이 땅의 청소년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하는 일에 매진 해야지 했었습니다.
그런데, 영주권을 받으려고 준비해온 모든 경력과 서류가
이민법이 바뀌면서 하루 아침에 쓸모 없는 종이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생업을 하면서 때를 기다렸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하나님 저는 가야 할 길을 아는데 가지 못하니 답답합니다” 하면서
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웠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비자를 빨리 받아서
구령사역에 전념할 수 있는 날을 앞당기자 하고 열심히 일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묘연 한 것입니다.
그럴때, 제게 필요한 것은 힘을 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나를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바울도 그랬을 것입니다.
자신이 배운 텐트 메이커 일을 열심히 하면서 주님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 지원이 없는 그 시기를 이기게 하시기 위해
아마도 힘을 빼는 연습을 기다리는 연습을 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든 인생이든
이렇게 힘을 빼는 법을 배우는 시기가 있습니다.
열심히만 하면 되면 인생이 얼마나 쉽겠습니까?
얼마나 형통 하겠습니까?
열심히 살아도 어느 날 예상치 못한 불행과 병마가 찾아 옵니다.
성실히 살았는데, 일이 생각 같이 잘 풀리지 않아서 밤마다 자책하며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인생에는 이렇게 마음 먹은 대로 안될때가 옵니다.
바울은 이 시기를 힘을 빼고 눈 앞에 주어진 상황을 열심히 신실하게 받아 들입니다.
일단 대중 연설을 통해 복음을 전파던 힘있는 선포에서
일대일에 가까운 양육에 집중 합니다.
그 대상은 아굴라(본도 출신 유대인)과 브리스길라(헬라 여인) 부부였습니다.
마침,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하는 칙령을 내렸고
이 부부는 고린도로 이주하게 되면서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성경주석학자들은 이 부부가 바울을 만나기 이전 부터 신앙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이들이 바울 만나면서 그들의 신앙이 깊어지고 성장하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에게도 장차 든든한 동역자를 얻게 되는 만남이어서 의미가 있지만
또 개인적으로 소그룹의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양육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생업을 같이하고 … 회당에서 강론하고 권면하니라 4절
평일에는 아굴라와 브리스굴라 부부와 생업을 함께 하면서
일상에서의 신앙생활을 훈련하고 가르쳤습니다.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강론 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권면 하였습니다.
여기서 “강론”과 “권면” 은 영어버전에서
“argue”강론 “convince”권면
엣센스 영한사전 (Ar·gue)
⁑ar·gue [ɑ́ːrgjuː] vi. 1 논하다, 논의하다; 논쟁하다⦅about; on, upon; over; with
⁑con·vince [kǝnvíns] vt. …에게 납득시키다, …에게 깨닫게 하다, …에게 확신시키다; 설득하여 …하게 하다; ⸨폐어⸩ 논박하다
회당에서 말씀과 교리로 논의하고 때론 치열하게 논쟁 하였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예수 믿도록 권면 하였다는 것입니다.
논쟁이라는 것이요
처음에는 누구든 지고 싶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다시 만날 사람이면 몰라도 매주 만나야 하는 사람과 논쟁이 반복 되면
어느 정도 수그러 들고 어느 정도는 맞춰지는 부분이 나옵니다.
아주 대쪽 같아서 자존심이 강해서 절대 지고는 못사는 사람 말고는 다 그렇게 됩니다.
바울 같은 사람 일수록 남에게 굽히는 것과 자신의 의견을 내려 놓는 일이 힘든 사람들에게
매주 반복되는 논쟁은 죽을 맛입니다.
고린도전서 2:1 NKRV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바울의 강론에 대해 비판하고 논쟁하였습니다.
상대방이 거칠게 나오는데 심지어 욕설을 하고 폭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미사어구를 써서 대응을 할 수 있겠습니까?
고린도전서 2:4 NKRV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이런 아름다운 표현이나 언변은 소용이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말씀을 근거로 복음만 전해야 상대가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을 것입니다.
상대가 아주 거칠고 무도할 수록
예수님이 사탄을 상대하시는 방식대로
우리는 더욱 더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여 정공법으로
정도에 따라 오직 말씀으로 대응을 해야 합니다.
말씀을 전파하는 데에도 언변과 미사어구에 의존 하다가는
영적인 아무런 유익과 열매를 맛볼 수 없게 됩니다.
이것 또한 힘을 빼는 과정 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바울은
‘그렇지 내 자존심 조금 내려 놓고 저 영혼들 구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오더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도록 사람들을 인도하려면 내가 조금 죽어야지’ 하는 생각이 바울이 자존심을 내려놓게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날카로운 지성과 비판이 아닌 부드러운 말로 권면 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의 강의를 듣다 무릎을 탁 친 얘기가 있었습니다.
나무가 꽃이 피면 그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꽃이 떨어져야 비로서 열매가 맺힙니다.
꽃은 자존심이고 열매는 인격 입니다.
나무가 꽃이 피면 그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꽃이 떨어져야 비로서 열매가 맺힙니다.
꽃은 자존심이고 열매는 인격 입니다.
젊은 사람들도 그렇지만
나이든 사람들 중에도 옛날 꽃 피던 시절만 그리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꽃이 졌다고 슬퍼하지 말고
오늘 나는 인격의 열매를 맺었는가 살펴 보아야 합니다.
만약에 아직도 자존심의 꽃을 붙잡고 아쉬워 하고 있다면 과감히 버리고
더욱 더 영의 양분을 빨아들여서 더욱 더 풍성한 인품의 열매, 영의 열매를 맺기에 힘써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힘을 빼는 법을 배웁니다.
수 많은 대중이 아닌,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양육하고
논쟁해서 이기는 것보다
부드러운 말로 사람들을 예수께 돌아오도록 권면하는 인품을 훈련 합니다.

2.강하게 선포해 할 때

바울은 고린도에서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성숙하여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전력을 다해 선포할 때가 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도움의 손길과 동역자를 보내주십니다.
사도행전 18:5 NKRV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베뢰아에 머물고 있던 동료들을 보내주십니다.
능력 있는 동료들, 의지하고 함께 동역할 수 있는 친구들을 보내주시고
그 동안 전념 하지 못했던 이유였던 경제적인 문제도
디모데와 실라가 가져온 선교 후원금을 통해 해결이 됩니다.
이제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됩니다.
이 상황에 대해 본문은 “말씀에 붙잡혀” 라고 적고 있습니다.
영어 원문에서는 “Paul was occuppied with procaiming the word…”
붙잡히다 라는 단어 occupy 라는 단어는 헬라어 시네코 입니다.
“에워싸다, 지키다, 통제 당하다, 점령 당하다” 등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상황에서
소망을 품을 수 있는 상황으로 반전 시키십니다.
말씀을 전하는 일 외에는 생각할 수 없게 둘러 싸시고
점령해버리시는 역사가 나타는 것이
말씀에 붙잡히는 상태 입니다.
하나님이 개입 하시면 우리 인생의 모든 상황은 역전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열정과 간절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원없이 전할 수있도록 은혜로 둘러싸주시고
다른 것 보지 못하게 하고 오직 하나님 말씀에 붙잡히게 하십니다.
비등 비등한 위치에서 논쟁하고
조심 스럽게 권면하던 시기는 지나고
이제는 당당하게 위엄 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도행전 18:5 NKRV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그리고 여전히 대적하는 유대인들에게 마지막 경고의 말씀을 선포 합니다.
사도행전 18:6 NKRV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결과
사도행전 18:8 NKRV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지금까지 힘을 빼고 기다리면서 사역한 결과
전심전력으로 선포 할 때가 온 것입니다.
회당장과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믿고 세례를 받는 열매를 맺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과 때를 정확히 따랐고 그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3.가장 약하고 두려울때 알아야 할 것

바울은 신앙적 성숙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성숙하여짐과 상관 없이
여전히 상황은 변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전혀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8:6 NKRV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여기서 대적 했다는 말과 함께 “비방하다” 라는 동사가 등장 하는데,
DKV 버전에서는 이 단어를 “욕설을 하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영어 단어도 “revile” 리베일 인데, “revilement”는 욕설을 하다는 뜻입니다.
그냥 대놓고 욕설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분명 옳은 일을 하고
진리의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고린도 라는 타지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어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교의 전통 속에서 자랐고
철저한 성결생활을 해오던 바울에게
고린도는 죄악된 도시 였습니다.
당시 고린도는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활발한 항구 도시 였습니다.
새로이 건축된 신도 였습니다.
2년 마다 이스미아 체육대회 가는 세계적인 올림픽 같은 행사가 열렸고
많은 신전과 이방종교와 회당이 있고 고린도의 가장 높은 곳에는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곳에서 신녀로 일하는 여인들만 1000여명이 넘었고 이 여인들은
밤이 되면 몸을 파는 일을 하기 위해 길거리를 헤멨습니다.
복음전파로 수많은 사람이 믿어 세례를 받았다하여도
죄악이 만연한대도시 고린도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인간은 한 없이 가벼운 존재의 가벼움을 느낍니다.
이 상황에 대해 실제로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던 시기를 회상하는 구절이 고린도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3 NKRV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바울의 고린도 에서의 사역이 얼마나 힘들었고 인격적으로 모멸감을 느꼈을지 알 수 있는 대목 입니다.
자신이 한 없이 약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말해서 유대인들의 돌로 침과 살해 위협이 두렵고 떨렸습니다.
로마제국이라는 대국의 힘앞에서
한 사람의 전도자에 불과한 바울은 나약한 존재 였습니다.
아마도 어느 정도 열매를 맺은 상태에서 여러 곳을 여행하던 바울의 내면에서는
떠나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무기력함과 두려운 마음도 한몫 했을 것입니다.
그때, 성령께서 환상중에 말씀을 주십니다.
사도행전 18:9 NKRV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두려워 말라십니다.
그리고 침묵하지 말라십니다.
사도행전 18:10 NKRV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우리가 하는 일에 확신이 떨어지고
잘 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엄습할때,
우리가 구해야 할 기도는 바로 성령님의 명령 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믿어야 할 것은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 입니다.
두려울때 우리가 하기 가장 쉬운 실수는 무엇입니까?
혼자 다니는 것입니다.
공포영화를 보신적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등장인물들이 살인마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이유는 주인공을 떠나
혼자 나설때 입니다.
공포가 엄습할때 우리가 할 일은 성령님께 꼭 붙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가지는,
내가 이 일을 해야 할 이유를 확인 받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고
이 성중에 구원할 영혼이 여전히 많다면
떠날 이유가 없고
당연히 남아 전도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의 사역을 회상하면서
그 당시 한 없이 약하고 두려움에 떨던 자신을 고백하면서
한 가지 그를 붙잡았던 신앙의 다짐을 소개 합니다.
고린도전서 2:2 NKRV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바울은 두려울때
내가 한 없이 능력이 없어 보일때,
눈 딱감고 한 가지만 생각하기로, 한 가지만 알기로, 한 가지만 전하기로 작정 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 입니다.
그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그분의 십자가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그것에만 몰입하였습니다.
이것이 그 죄악의 도시 고린도에서의 1년6개월을 보낼 수 있었던 유일한 비결 이었습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결말은 해피 엔딩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줄로 믿습니다.
내가 오늘 너무 힘을 주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 나의 힘을 빼야 할 때라면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위해
자존심의 꽃을 버리시고 순종 하십시오
강하게 선포해야 할 때라면
담대함으로 전하고 전진 하십시오
내가 두려움에 쌓여 있으고
내 자신이 한 없이 나약하게 느껴질때,
이것 한 가지만이 우리에게 소망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인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알면
세상에 두려울 일이 없습니다.
죽어도 주를 위해
살아도 주를 위해
우리는 그분을 위해 누구와도 어떤 상황에도 맞설 수 있습니다.
그 사랑에 메어
그 말씀에 붙잡혀
오늘의 어려움과 두려움과 연약함을 이겨나가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시간 고통 많은 이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 저를 사용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주님의 십자가만 알고 전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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