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 예수님의 족보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3 viewsNotes
Transcript
최악이라 할지라도
241006 마 1:1-2
최악이라 할지라도
오토바이 사고로 다쳤을 때 구두로 한 약속과 바이크보험을 들어서 합법적으로 모든 수리비와 위자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마1:1 하나님이 약속하신 루트를 통해 오신 분
Point 1 - 이스라엘의 예언을 따라 나타난 왕으로서 예수그리스도를 확증하기 위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초기 생애와 사역을 마태가 기록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 그 분이 정말 우리의 왕인지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마태는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의 계보와 출생을 제시하므로서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왕좌의 합당한 상속자인 것을 기록하였다. 마태복음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의 기록을 시작한다. 만일 우리가 메시야를 유대인 독자에게 오늘날 제시한다면 시대적인 간격과 이스라엘의 상황적 특징에 때문에 어려움을 가질 것이다.
본문에서 마태가 구약성경의 예언을 가지고 신약시대 때 그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조명하고 있다. 마태는 자기 시대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이런 맥락을 따라 구약의 예언의 성취를 유대인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다. 본문은 메시야이신 예수그리스도의 계보를 다룬다. 마태는 시작부터 와인의 코르코마개를 뿡 뽑아 버리듯이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을 선포한다.
예수는 연대기적으로 역사적으로 다윗의 후손으로 오기로 한 그 왕이시다. 적어도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그가 유대인의 왕이라면 다윗의 자손을 따라 올 바로 그 메시야가 맞는가? 라는 질문에 충족해야 한다. 예수가 유대인인가? 다윗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후손이 맞는가? 여기에 대답해야 한다. 그래서 마태는 유대인 독자들을 겨냥하며 1-16절 까지 아브라함의 후손의 계보를 따라 예수를 소개한다. 여기에서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누어 다윗의 이름의 음역을 따라 예수그리스도의 계보를 분류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메시야 기름부음 받은 자
기름부음을 받고 임명된 자, 한나의 기도에서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학교 졸업장이 나올 것을 믿는가? 라이센스가 있으면 통과 될 것을 믿는가? 그런데 왜 하나님의 법과 약속은 긴가민가 하는가?
마1:17 14대 - 14대 – 14대 대표적인 3대 언약
1-16절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세 그룹으로 나누는데 이것은 다윗의 이름을 히브리어 어간을 따라 분류한 것이라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히브리어로 다윗의 이름은 다비드인데 달렛은 4번째 알파벳이고, 바브는 6번째, 다시 달렛은 네 번째 합계가 14이다. 다윗의 이름을 가지고 14대로 족보를 분류해서 나눈다. 그러나 17절을 보면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 14대 다윗에서 B.C. 586년 유다의 멸망 후 있었던 바벨론 포로까지 14대, 포로부터 예수그리스도 까지 14대로 나눈다. 마태는 무엇을 주장하고자 하는가? 예수님은 메시야라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역사의 완성이시다. 이 족보가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다윗의 후손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합당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마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족보로 정리하면서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는 아브라함의 언약의 성취됨을 강조한다. 다윗에서 포로까지는 다윗언약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었을 보여주고, 다윗에서 그리스도까지는 새 언약을 중심으로 그룹을 나누었다. 그래서 본문에서 첫 번째 핵심 포인트는 그리스도는 언약을 중심으로 온 합당한 왕이며, 언약의 성취자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ICC주석에서는 14대로 세 그룹으로 편성된 이 족보는 언약의 성취와 강조를 중심으로 기억하기에 괄목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강조한다.
실패한 인생이 찾아야 할 대상
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여야 하는가?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약과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왕 되심과 구원자 되심을 선포하신다. 이 사실은 내 인생의 어두움과 참 생명을 얻고 싶을 때 내가 누구를 찾아가며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는지 명확한 대상을 알려주신다. 다른 종교도 아니고 다른 이데올로기도 아니며 성공과 돈과 명예도 아니다. 오직 인류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다.
하나님은 왜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의 자손으로 오셨는가?
다섯 명의 여자 - 그리스도께 나아 갈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의 범주
본문에서 두 번째 핵심 포인트는 마태의 족보에는 예상치 못하며 독특한 다섯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왜냐하면 보통 유대인들은 족보에 여인을 배열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런 종류의 여인들은 더더욱 기록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만일 족보의 주인공으로 자신을 소개하신다면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헬로우 마이네임 이즈 지져스, 저희 집안은 완전히 콩가루 집안이에요” 왜냐하면 등장하는 여인 때문에 그렇습니다. 소개 해드릴까요?
첫 번째 조상 할머니의 이름은 다말입니다. 그 할머니는 스스로 창녀가 되어 씨아버지와 잠자리를 가지고 두 명의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저는 그 후손으로 태어났죠. 메시아의 집안이라고 하기에는 절대적으로 어불성설입니다. 사실 누구도 족보에 이런 조상의 이름을 집어넣지는 않습니다. 만일 마태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믿도록 하기 원했다면 다말의 이름은 제거해야 했습니다. 다말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위해서 이름을 올리기에는 유대인의 관점에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여자였고 음란한 짓을 했는데 그것도 시아버지와 했습니다. 누구도 그런 이름을 거론함으로 자기 민족의 계보를 더럽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이 여기 있습니다. 그 다음 여인은 누구인가요?
기생 라합입니다. 라합은 뭐하는 여인이었던가요? 그녀 또한 매춘부였습니다. 라합은 나중에 거룩한 여인이 되고 믿음의 대표적인 여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라합은 원래 창녀였고 그런 여인이 믿음의 어머니가 되었죠. 라합은 여리고 성의 우물가를 맴도는 여인이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몸을 파는 여자로서 말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두 번째 여인이 바로 가나안에 거주하는 여리고 여자였습니다. 여리고는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함락된 성읍이었습니다. 이 성읍은 다시 건축되면 저주를 받기로 되어 있던 죄악의 성읍이었습니다. 마태는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두 번째 여인을 등장 시키는데 유대인이 가볍게 여기는 여자입니다. 게다가 그들이 치를 떠는 이방인이이죠. 그것뿐이겠습니까. 유법대로라면 돌로 쳐죽여야 할 창녀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런 기생 라합을 족보에 실었습니다. 갈수록 태산입니다. 지금 마태가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 걸까요?
그 다음은 룻입니다. 어디 출신인지 기억 하십니까? 모압이다. 모압의 시조는 어떻게 되는지 아시는가요? 모압은 암몬과 함께 롯의 딸들아 낳은 아들들입니다. 어 이거 뭐죠? 예수님의 계보 치고는 형편없는 여인들이 또 등장하네요. 패륜계보를 보여주는 가족스토리입니다. 저의 이름은 예수인데요, 저의 선조 조상 할머니는 아버지와 잠자리를 가졌고요 제가 바로 그 분의 상속자입니다. 모압으로부터 베들레헴으로 건너간 룻은 말하기를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그리하여 룻은 보아스를 만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닿고 이새의 아들은 다윗입니다.
그 다음 여인은 거론할 가치도 없는 여인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계보에서 밧세바라는 이름조차 넣지 않고 우리야의 아내라고 소개합니다. 우리야는 헷사람입니다. 성도님이 마태라면 우리야의 아내 밧새바의 이름을 넣으시겠습니까? 그녀는 이방인의 아내일 뿐 아니라 다윗이 불륜을 저질러 가진 세컨드입니다.
그 다음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여인은 십대에 임신을 한 마리아입니다. 혼전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절대적으로 임신을 가진 여인입니다. 유대인 독자의 입장에서는 의문이 들만한 문제가 있는 출생입니다. 이방인이고 패륜적인 죄의 극치를 보여주고, 문화적으로 더럽고, 이해되지 않는 출생의 비밀을 보여주는 가계도입니다. 게다가 5명이 다 여자입니다. 그러나 이 족보는 왜 그의 이름을 예수로 불러야 하는지를 증거합니다. 21절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그들의 무엇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그들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본성을 가진 자들인지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계속해서 연약함과 죄 가운데 살아갈 존재라는 사실을 더더욱 잊지 마십시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라는 사실을 더더욱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메시야의 계보에 등장하는 어떤 죄인도 구원할 수 있는 분이신가요? 그렇다면 오늘 인류에 등장하는 저희가 어떤 사람일지라도 어떤 어려움과 문제를 가질지라고 근본적인 해결을 해주실 분이시라는 점을 믿으시길 바란다.
더 쉽게 말해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죄가 없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없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어그러진 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의 출생은 더욱 값진 은혜의 스토리입니다. 저는 성도님들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패륜적이고 이방인이고, 유대인들이 없이 여기던 여인들이었고, 더러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람들의 계보에서 출생하여 그런 최악의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는 구세주라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명백히 증거하십니다.
핵심은 나의 연약함과 죄인됨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 약함과 연약함을 구원받고자 하는 갈망을 담아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신앙의 핵심은 내가 하나님을 믿을만한 자격이 있는가 삶이 받쳐주는가가 아니다. 오히려 자격이 없고 삶이 안되고 상태가 최악일수록 그리스도가 나는 필요하다는 자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