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의 병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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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2 Kings 20:1–11 NKRV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한 징표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라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더라
들어가는 말
오늘 말씀은 시간적으로 어제 19장 말씀보다 앞서 있었던 일입니다. 앗수르의 침공중에 일어난 일로 보입니다. 산헤립 침공 히스기야 14년, 통치기간이 29년, 생명연장 15년
히스기야는 유다의 대표적인 선한왕입니다. 다윗의 계보를 따라 이어져 온 왕들중에서 특별한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 왕은 대표적 악한 왕 임에도 몰렉 에게 제사지내는 불 가운데를 통과하여 왕이 된 인물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를 지키기 위해서 힘썼던 왕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적인 연약함을 드러내는 왕이지요!
오늘 본문은 앗수르왕이 쳐들어와 전쟁중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되어서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바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적 섭리를 따라 우리의 기도에 즉답을 하시기도 하고 오랜 시간 묵혀 두시기도 합니다. 그분의 시간과 섭리는 우리의 유익을 따라 베풀어 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전쟁중이기도 하고 그의 간구와 눈물을 보신 하나님의 긍휼이 발현되어 바로 응답되어 집니다.
그 이후 기도 응답의 징표를 요구하는 히스기야에게 해시계를 10도 뒤로 물리는 초자연적인 증표를 하나님이 보여 주십니다. 성경에 보면 이것이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전쟁이후에 히스기야의 사건까지 두번 나오는 초자연적인 사건입니다.
중심되는 말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성도의 죽음은 생명의 시작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부활과 승천으로 이어집니다. 낮아짐을 끝이고 이제 올라가는 일의 시작입니다.
세상은 죽음을 끝이라고 믿거나 죽음이후의 세계가 반복된다고 생각하거나 알수 없다고 생각하고 단지 두려워 합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 같이 주를 믿는 성도들은 죽음이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시작이고 문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짧은 인생 가운데 왜 여기와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 하겠습니까? 놀기도 바쁜 시간에 말입니다. 아직 보지 못한 세상과 하지 못한 일들이 가득 있는데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5:16–19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히스기야의 기도를 생각해 봅니다. 성경에 보면 히스기야는 참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의 같은 신앙인것 같습니다.
내일 나오는 바벨론 사신과 관련된 일도 그렇고 19장의 기도도 그렇습니다.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하나님에게 달려 갑니다. 우리 자녀들이 어렸을때는 무슨 조그만 일이 발생해도 부모에게 달려 갑니다. 그런데 머리가 커지고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부모에게 말을 안하는 시기가 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은것 같습니다. 처음 믿을때 얼마나 하나님에게 모든것을 말씀드리려고 마음이 불타 오릅니까? 그러다 신앙의 연차가 쌓이면서 더 이상 하나님께 나의 사소한 (?)일들을 가져가지 않게 됩니다. 정말 해결할 수 없는 큰 일이 아니면 도무지 기도하지 않습니다. 오늘 새벽 기도에 나오신 성도님들은 제외입니다.^^
마태복음 18:3–4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은 어리석은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낮아진 마음을 뜻합니다. 우리의 자아가 하나님과 분리되어 내가 왕 노릇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와 하나라고 생각하듯이 100%신뢰와 사랑으로 엄마에게 달려 가듯이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시편 131: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히스기야는 3절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열왕기하 20: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 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 하더라” 여러분 이 기도 어떠세요?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 하옵소서! 저는 이 기도를 들으면서 아니! 얼마나 선하게 행 하였기에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자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새로운 언약을 통해 눈이 밝아져 우리 속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상대적인 선한 행실이 절대적 선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만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 관점에서 보면 히스기야 의 기도는 때쓰는 어린아이의 수준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그것을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시지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 할까요? 정답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공의로움을 조금도 손상하지 않으시고도 우리에게 긍휼을 무한하게 베푸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히스기야 처럼 우리는 우리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맞는 사실이 아니여도 우리 하나님에게 통곡 하며 상한 심령으로 나아가면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에게 나아갈 때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성숙한 성인의 마음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고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누울 자리 보고 발을 뻗는 것이 아닙니다. 긍휼과 인애가 풍성하신 사랑의 주님을 보고 달려 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생각해 봅니다. 본문 4절부터 6절까지를 살펴보면 긍휼의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답을 하십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우리의 눈물을 보시는 하나님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대적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자녀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응답의 증표를 요구하는 히스기야와 그 증표를 주시는 하나님은 보면 우리 하나님이 참 좋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히스기야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으로 하나님의 응답으로 보이는 증표를 요구합니다. 우리가 잘 아시지만 믿음은 무엇이죠?
히브리서 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마가복음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미래형이 아니라 과거완료형입니다. 이제 주님이 오신 신약의 시대 종말을 살아가는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대로 따라야 합니다. 히스기야처럼 증표를 구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없음을 고백하고 믿음을 달라는 기도조차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가복음 9:23–24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귀신들인 아이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
그럼에도 하나님이 이 증표를 요구하신 히스기야의 청을 들어주시고 이것을 성경에 기록한 것은 징표의 성격에 있습니다. 이 사건은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해시계가 뒤로 10도 물러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초자연적으로 역사 하신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기에는 이런 사건이 단지 두번만 있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것이 분명합니다.
2 Chronicles 32:31 NKRV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Job 33:25 NKRV
그런즉 그의 살이 청년보다 부드러워지며 젊음을 회복하리라
10도는 10시간이 뒤로 물너난 일인데 이것이 일시적으로 발생했다가 다시 원위치 되어 천체에 변화가 없었는지? 태양의 역행 운동은 기이하다. 설명 불가해이다. 과학적으로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아려운 사건이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명백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불가해적인 사건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해가 어려운 일들이 어디 한두가지 인가? 그것들은 받아들이기 쉬운 불가해한 일인가? 그런것은 없다. 이해 불가능한 일은 모두 이해 불가능한 일이고 그런 많은 일들 가운데 한가지이다. 성경이 이런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고 성경의 말씀을 허구라고 공격하는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존재, 인간의 필요에 의하여 만든 우상으로 전락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이 사건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상식과 과학을 넘어서 초자연적인 역사로 받아 들여야 한다.
정리하는 말
우리 하나님은 선하신과 미담이 끊이지 않으시는 좋은신 아버지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옳고 그름을 따라 우리를 판단하시는 엄한 아버지가 아니시고 자애와 긍휼의 시선으로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언제나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하나님은 불편하시고 전능하시고 우주의 통치자이시고 우주 질서를 보존하시고 유지하시는 분이시다.
우리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없음 조차 도와주시고 세워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병이나 어떤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때 주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만 특별히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이 아니라 영원토록 변함없는 왕이십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하시고 천년이 하루같고 하루 가 천년같이 영원도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앞에 우리의 마음을 이 새벽에 쏟아내시고 그분앞에 나아가 응답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 합니다. 기도 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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