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만날 결심

열왕기하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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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헤어질 결심, 만날 결심
[서론]
제가 최근에 들은 가장 충격적인 말이 있습니다.
‘태초에 불안이 있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요한복음 1장 1절에 나온 말을 인용하여 만든 표현입니다.
이것은 유명한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저는 불안이 저와는 그리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불안은 특정 몇몇 사람들만의 문제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원초적인 불안을 타고 났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인간은 이 원초적인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찾아 의지하려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돈을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을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쾌락을 추구합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나 물질에 의존합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결국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찾는 그 대상이 바로 우상입니다.
우상숭배는 일종의 중독입니다.
중독은 우리의 내면 안에서 우리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입니다.
우리는 중독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흔한 예로, 마약중독, 알콜중독, 성중독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요즘은 게임중독, 스마트폰 중독 같은 것도 많이 겪고 있습니다.
이런 중독들이 얼마나 우리 삶을 파괴하는 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중독의 가장 무서운 점은 알고도 끊어내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우상숭배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대상에 지나치게 의존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그것이 우리를 강하게 끌어당깁니다.
그 힘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결국 죄를 짓게 됩니다.
우상숭배가 그 힘의 뿌리라면 죄는 그 힘의 열매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결국 우상숭배는 중독처럼 우리의 영혼을 서서히 파괴합니다.
그럼 하나님은 왜 인간을 이처럼 불안한 존재로 만드셨을까요?
그럼 그 불안의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해결할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하나님의 답을 찾고자 합니다.
[본론]
#본론 1 위기의 본질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한 왕이 우상과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유다왕국의 16번째 왕 요시야입니다.
그가 겪는 위기는 나라 안과 밖의 위기입니다.
유다왕국의 외부 위기는 이렇습니다.
앗시리아라는 그 당시 초강대국에게 유다는 조공을 바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앗시리아의 힘은 점차 쇠퇴해져가고 반면 점차 세력을 키워가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바벨론입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서 시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이집트 입니다.
이런 여러 강대국들의 힘 겨루기 사이에 위태롭게 끼어있는 나라가 바로 남유다입니다.
미스터선샤인 보시면 마치 구한말 강대국들 사이에 낀 우리나라의 상황을 연상하면 됩니다.
그러나 내부의 위기는 훨씬 더 심각합니다.
23장 1-20절을 보십시오.
유다의 모든 성읍 골짜기와 시내, 언덕과 가정의 다락방 심지어 하나님의 성전 내부까지 우상숭배가 만연해 있습니다.
백성들은 이미 우상들에게 깊이 중독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조차 여러 신들중 하나로 여겨지던 때입니다.
바로 이 때, 요시야왕은 하나님의 성전을 보수공사하던중 책 한권을 우연히 발견하게 됩니다.
그 책이 바로 율법책, 즉 성경책입니다.
아마도 신명기라는 구약성경책이었을 것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백성들과 제사장들조차 잊어버린 하나님의 말씀을 되찾게 된 것입니다.
그 말씀을 읽으며 요시야 왕은 유다 왕국이 겪는 위기의 본질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외부의 적이나 내부의 혼란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영적 위기라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스스로 욕망을 따라 우상들을 섬기며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요시야가 발견한 성경책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들이 누구인지를 다시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위기도 다르지 않습니다.
기후위기와 전쟁, 그리고 각종 정신적 고통들의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죄 때문입니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고 그로 인해 기후위기와 전쟁, 그리고 여러가지 고통이 발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스스로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면서 환경은 파괴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상처를 줍니다.
그 결과 우리는 더 깊은 불안과 고통 속에 빠지게 됩니다.
성경은 이 모든 문제들이 하나님을 떠난 결과임을 분명히 말해줍니다.
#본론 2 언약식체결
요시야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위기의 본질을 깨달은후 행동을 취합니다.
그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강력한 개혁을 실행에 옮깁니다.
그의 첫번째 행동은 하나님과의 언약, 즉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갱신하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들을 하나님의 성전에 불러모아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고 언약식을 체결합니다.
언약식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다시 기억하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백성들의 영적 회복의 출발점입니다.
우상과 헤어질 결심을 하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매 주일마다 드리는 예배도 일종의 언약식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우리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매일의 바쁜 생활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세상적인 것들에 사로잡히고, 우리의 영적 시야는 흐려집니다.
예배는 이러한 우리의 흩어진 마음을 다시 모으는 시간입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심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다짐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 숨어있는 우상들과 헤어질 결심을 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1년 52주입니다.
예배는 단순히 반복되는 종교의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흩어진 영적 감각을 회복하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비뚤어지고 무너진 삶의 태도를 다시 바로 잡는 시간입니다.
매주 드리는 예배는 우리의 영적 시야를 맑게 하여 하나님을 중심에 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반복된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몸에 익히고, 내면에 깊이 각인시키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우리의 삶을 새롭게 정비하고 영적 힘을 재충전하는 시간입니다.
#본론3 우상제거작업
이처럼 하나님과 언약식을 체결한후 요시야왕은 우상제거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백성들 삶에 깊숙이 자리잡은 중독을 끊어내는 작업입니다.
헤어질 결심을 실행에 옮기는 작업입니다.
요시야왕은 먼저 성전에서부터 우상을 제거합니다.
성전 안에 우상숭배에 쓰인 물건들을 모두 골짜기로 가서 불태워 버립니다.
우상이 가장 거룩한 공간인 성전까지 침투해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요시야왕은 유다와 이스라엘 전역에 있는 산당들도 제거합니다.
우리로 따지면 서낭당과 같은 장소들을 더럽혀서 다시는 그곳에서 우상숭배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유다 백성들이 드리던 인신제사의 제단도 철저히 제거합니다.
유다왕들이 태양을 숭배하려고 성전 입구에 둔 말 동상과 태양수레도 불태워 버립니다.
심지어 우상을 섬기던 제사장들의 뼈를 무덤에서 꺼내어 불태워 버립니다.
이처럼 요시야의 개혁은 철저하고 전면적이었습니다.
어떠한 성역도 예외도 없었습니다.
앞선 왕들 중에도 개혁을 시도한 왕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부분적인 개혁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정말 철저한 개혁을 시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섬기던 우상들을 물리적으로 제거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게 아닙니다.
그들 마음 속에 깊이 자리잡은 우상들이 사라져야 비로소 진정한 개혁이 완성됩니다.
요시야왕의 개혁은 전무후무한 개혁이지만, 백성들의 마음이 온전히 바뀌지 않으면 결국 불완전한 개혁에 그치고 말뿐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불안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 불안때문에 우리는 무엇인가 의지할 욕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문제는 그 대상을 잘못 찾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대상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일때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그러나 우상숭배는 결코 우리의 불안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상숭배는 우리를 더 깊은 죄와 불안으로 빠뜨릴 뿐입니다.
우리의 삶 속 우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 믿는다고 예외는 아닙니다.
이것만 있으면 행복할것 같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일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것을 잃으면 절망할것 같다고 느끼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 역시 우상일수 있습니다.
우상은 우리에게 헌신과 희생을 요구합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위해 지나치게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이 될수 있습니다.
또는 무엇을 얻기 위해 내게 중요한 관계나 가치를 포기하고 있다면 그 역시 우상이 될수 있습니다.
이러한 우상은 우리 안에서 악한 힘을 발휘하여 우리 영혼을 망가뜨리고, 결국 더 큰 불안을 가져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우상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할 때입니다.
우상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본론4 유월절 회복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은 단순히 우상을 제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상을 제거한 목적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참된 신앙을 회복하도록 유월절을 지키는 일을 시행합니다.
유월절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구원하신 사건을 기념하는 중요한 명절입니다.
기적을 베푸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케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이러한 유월절은 여호수아 시대 이후 오랜 세월동안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시야왕이 모든 백성들과 함께 다시 지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시야는 없앨 것은 철저히 없애고, 세울 것은 분명히 세운 것입니다.
유월절은 단순히 종교의식이 아니라 참된 예배의 회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요시야왕은 우상을 제거한후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정결한 마음으로 예배드리도록 이끌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여전히 그 백성들을 돌보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켜야할 유월절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억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백성임을 다시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여전히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단순한 종교의식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그 은혜에 감사하고 새롭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결단하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고, 그 구원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불안한 존재로 만드셨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의 근본적인 불안은 하나님 안에서만 해결될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만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만 진정한 평안을 찾을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우리 영혼이 참된 안식과 쉼을 얻습니다.
아직도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다니고 예배를 드리지만 여전히 불안해합니다.
우상을 기웃거리며 방황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이러한 잃어버린 영적 감각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참된 평안은 하나님 안에서만 찾을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론]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시야의 개혁을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우리 안에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이 무엇입니까?
제거할 것은 과감히 제거하고, 회복할 것은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뿌리깊은 우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내 영혼을 갉아먹는 우상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들과 단호히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영적 개혁의 시작입니다.
요시야왕의 개혁을 통해 저는 하나님의 마음과 열심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평안을 주시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분은 우리가 우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우상들을 때려부수고, 불태우고, 제거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참된 평안을 얻기를 누구보다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 평안은 우상을 제거할때만 비로소 얻을수 있는 것입니다.
저 역시 아직도 우상과 싸우고 있습니다.
목회자가 아니었을때에는 세상의 성공이라는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된 후에도 역시 성공이라는 우상과 싸우고 있습니다.
우상에 빠지지 않기 위해 때로는 내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부흥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내 성공이 되면 그게 우상입니다.
또한 목회자에게는 교회 자체가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교회를 위해서라면 비윤리적, 비도덕적인 일도 서슴치 않고 하는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상은 아무리 붙들고 의존해봤자 죄와 불안만 더 일으킬 뿐입니다.
여러분의 우상은 무엇이며 어떤 우상과 싸우고 있습니까?
문제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우상들과 싸워 이길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서 강하게 충돌질하는 우상들을 쉽게 밀어낼수가 없습니다.
중독된 사람이 중독을 끊어내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예배가운데 하나님께 그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나의 구원자는 오직 주님밖에 없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우상과 헤어지고 하나님과 다시 만나는 결심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우리의 불안은 사라집니다.
참된 평안이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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