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4:4-7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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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4장 4-7절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바울은 중요한 권면을 남깁니다. “기뻐하라, 관용하라, 기도하라”입니다. 바울이 남긴 권면을 보면, 명령이라기 보다는 태도에 가까운 말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우리가 하루의 삶을 살다보면, 짜증이 날 때가 있습니다. 화가 날때가 생깁니다. 직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기는 문제들, 자녀의 문제들을 만날 때, 기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가깝습니다.
지금 바울의 말을 가만히 들으면, 일방적인 명령처럼 들리지만, 더 중요한 의도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 편에서의 발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삶을 궁극적으로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 까지 이끌어가시고 만들어 가시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분명 오늘 말씀은 바울의 명령형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주도하셔서 기쁨의 상황가운데로 만들어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기뻐하는 것 보다 더 확고한 표현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서 살다보면, 도무지 기뻐할 일들이 생기지 않습니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거나 취업일 되었을 때, 잠시 기뻐할 수 있지만, 기쁨이 영원히 유지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금새 근심이 생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기뻐하라, 기뻐하라!” 재차 강조하십니다. 사실 이 말에는 상당히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감옥에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뼈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르 견디면서 자신들을 도와준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기뻐하라”입니다.
성도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감옥에 오래 갇혀 있더니 정신이 나갔구나!”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은 우리를 향한 명령형으로 되어 있지만,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이 성도의 삶을 만들어 가시겠다는 선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6절을 보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선언합니다. 보통 걱정되는 상황에 처할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거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망하면 어떻게 하지?”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할 때마다, 부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바울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염려의 결과에 대한 승패를 하나님이 붙들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다시 말하면, “네가 걱정한다고 안 될일도 아니고, 네가 걱정하다고 해서 될 일이 안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이 될까 말까?, 걱정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안되고 안 될일 이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씨를 뿌려놓고 ‘이게 꽃이 필까? 잘 자랄까?’ 염려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염려는 우리 인생에서 대부분 부질없는 시간입니다. 승패가 내 손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승패는 하나님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께 주권을 맡기는 태도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모든 삶의 희로애락과 수많은 사건, 사연들을 하나님께 맡기는 싸움입니다.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과 하나님께 맡기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확실해질까요? 하나님께 주권을 맡기는 삶이 더 확실하고 견고해 집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안개속 같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거듭 강조하십니다. 염려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은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약속이 전제되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태도는 우리인생의 마지막 결과를 그렇게 바꾸실 것을 믿고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가 무엇입니까? 기도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사랑, 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 나가는 것입니다. 그 상태를 성경은 겸손이라고 표현합니다. 늘 비천한 심령이 되어 하나님께 기대는 것입니다. 기도는 결과에 대한 조건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했으니깐 되고, 기도 안하면 안되고’ 이런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을, 그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5절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여기서 관용이라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공정하고 적합한 태도를 가리킵니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속에서 흔들리니깐 다른 사람을 향한 태도마저 흔들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흔들리는 환경 속에 있는 우리가 흔들림 없는 태도를 갖추도록 빚어 가십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만들어 가고 이루어 가시는 과정은 우리 인간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조건 하에 놓여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에게는 필요없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인간을 설득하고 구원해서 완성의 자리까지 끌고 갈 때는 하나님이 시간이라는 영역과 공간이라는 삶에서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그 시간과 공간에서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데, 우리는 낮음과 부함 사이에서 티격태격, 울고불고, 슬펐다 기뻤다 계곡에 빠졌다가 산에 올랐다가 요통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몸도 건강하고 돈도 많고, 인품도 좋고, 애들도 다 잘 크고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갖춘 것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쫓겨나고 면접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왜? 불공평한지 우리 마음을 괴롭힐 때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내야 할 본질은 같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축복을 다 받은 것 같은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모든 상황이 안정된다 할지라도 그 성도의 입술과 삶의 고백 속에서 오로지 주님만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바울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 글을 감옥에서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비바람이 불고 폭풍우 치는 인생의 가장 험한 길에서 잘 버티고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이러한 영성의 신비를 드러내는 존재여야 합니다. 누가 봐도, ‘저 사람이 사는 힘은 도대체 무엇일까? 저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끄떡없을 수 있지?’ 싶은 신비함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관용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5절에서 관용을 설명하면서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는 말씀을 더 했습니다. ’주께서 가까우시다‘는 종말론적으로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웠다는 시간 개념을 가리킵니다. 주님이 오셔서 모든 것을 정리하시고 모든 것을 완성하실 때가 분명히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끝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상황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마침내 다 이루실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주님이 우리의 삶을 살피고 계신다는 의미가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이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성도는 홀로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주께서 가까우실 때, 우리 안에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상 바라보고 계십니다. 주님의 손길은 항상 우리를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신자는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는 존재가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함께 하시는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으며 사는 존재들입니다. 주님이 가까이 계시기에 믿음 안에서 우리는 상황과 사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힘이 어디에서 옵니까? 6절을 읽겠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모든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것에서 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의 대인관계와 태도는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 때문에 흔들린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들을 향한 태도에 일관성이 없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환경도 바뀌고 사람들도 변화지만 주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 주님께 우리의 존재를 의탁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의 모든 방향 가운데 하나님에 매달리고 부르짖고 그분의 자비를 구하면서 걸어가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께 주권이 있음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것이 기도를 통해 우리의 인생을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지금 이 놀라운 경륜에 대해 글을 써 편지하고 있지만, 이것은 바울 스스로 안에서 경험된 진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구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1-13절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은 여기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오해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 구절은 자기 확신, 자기 긍정의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 바울이 처해져 있는 상황이 어떻습니까? 감옥 안에서, 성도들이 전달해 주는 위문품을 받으며 지내는 곤핍한 상황입니다. 매여 있는 상황이고, 답답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능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능력입니까? 어떤 힘 입니까?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능력이고 힘입니다. 상황에서 나오는 힘이 아니라, 사람들 안에서 나오는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힘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다가 아닙니다. 모든 상황을 감내하고 갈 수 있는 힘을 그리스도께서 공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단순한 진리를 놓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상황에 쉽게 휘둘립니다. 감사를 잃어버립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충만히 거하시면 감사가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사실을 잊어버리면 환경 가운데 불평만 늘어날 뿐입니다. 일하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우리는 다시 일어날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이 힘을 말합니다.
빌리보서 3장 10-11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이 얼마나 역설적이 말씀입니까? 부활의 능력을 언제 경험합니까? 놀랍게도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따라 갈 때입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모든 것이 평안할 때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우리 육체에 채워지면서, 눈물이 흐리고, 주님을 따라가는 자리에서 오히려 주님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 안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유익을 좇아서 살아갈 때, 편안하고 쉬운 길을 추구할 때 경험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고 주님의 죽으심을 짊어지며, 나갈 때 역설적으로 우리 가운데 나타나는 것은 부활의 권능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활의 권능을 경험하며 나아가는 이들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할렐루야~
왜냐하면 자기 앞에 높여 있는 세상의 상황과 형편들이나 사람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이 다 상대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립보서 3장 7-8절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이것이 우리의 삶에서 매일 결단하는 고백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어느 쪽을 붙잡아야 유익일까요? 그것이 확인되고, 그것에 대한 확신이 들 때, 우리는 기존에 좇던 것들을 감히 배설물로 던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진짜 영광을 만난 사람은 아까울 게 없습니다. 밭을 갈다가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의 전부를 팔아서 그 밭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보화를 발견한 자만이 할 수 있는 결단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얼마나 내 생애 속에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그림이 드러나고 있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의 가치 기준에서 내가 얼마나 떳떳하고 잘났는가에 싸움을 건다면 아직도 우리는 멀었습니다. 하지만 온 세상이 덤벼도 내 생애를 통해 그리스도의 그림이 드러날 수 있다면 기꺼이 견딜 수 있다는 마음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기도는 내 싸움이 아닙니다. 기도의 승패는 나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기도는 내 싸움이기도 합니다. 내 안에 여전히 붙들려 있는 세상 것들에 대한 의지와 신뢰를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나를 구속하신 주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께만 나를 맡기며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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